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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이영표의 성실함, 한국축구가 배워야

 

유럽리거의 맏형이었던 '초롱이' 이영표(32)가 사우디 아라비아(이하 사우디) 알 힐랄로 전격 이적했습니다. 유럽이라는 네임벨류보다 남아공 월드컵 본선 출전 의지와 세금 한 푼 내지 않는 100만 유로(약 17억원) 연봉의 실리가 더 중요했기 때문에 사우디 땅을 밟게 된 것입니다.

이영표가 유럽에 재진출할 가능성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사우디에서의 활약을 발판으로 유럽 상위리그에 진출한 사례가 거의 없기 때문이죠. 설기현은 알 힐랄에서 풀럼의 임대 선수로 뛰었기 때문에 유럽 재도전을 할 수 있었지만 이영표는 완전 이적 형식으로 진출했기 때문에 '30대의 나이와 맞물려' 잉글랜드-독일 같은 상위 리그 진출은 현실적으로 어렵습니다. 물론 유럽 중소리그 진출은 가능하겠지만, 사우디보다 더 좋은 리그에서 뛸 수 있을지는 의문입니다. 지금으로서는 사우디 알 힐랄에서의 활약에 온 힘을 쏟아야 할 때입니다.

왜 이영표의 성실함이 최고인가?

하지만 한 가지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이영표가 2003년 1월부터 올해 전반기까지 유럽리거로서 맹활약을 펼쳤던 지난날의 활약 만큼은 후한 칭찬을 줘도 아깝지 않습니다. 그는 네덜란드 PSV 에인트호벤과 잉글랜드의 토트넘 홋스퍼, 독일의 도르트문트 같은 유럽의 명문 클럽에서 두각을 나타냈습니다. 특히 네덜란드리그 시절에는 리그 최우수 왼쪽 풀백과 유럽 정상급 풀백으로 호평받으며 한국 축구의 저력을 유럽에 심어줬습니다.

그 원동력이 바로 성실함입니다. 이영표가 유럽 팀에서 주축 선수로 활약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성실한 활약이 뒷받침됐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에인트호벤에서 단기간에 주전으로 자리잡아 세 시즌 동안 팀 전력의 중심으로 활약했던 것을 비롯해서 UEFA 챔피언스리그에서는 세계 정상급 공격수들에게 위축되지 않는 모습을 보여 자신의 위치를 든든하게 버텼습니다. 성실한 선수는 감독이 사랑한다는 축구의 진리가 상징하듯, 그는 거스 히딩크(에인트호벤)-마틴 욜(토트넘)-위르겐 클롭(도르트문트) 감독의 신뢰를 얻으며 자신의 성실함을 인정 받았습니다.

일각에서는 이영표가 도르트문트에 잔류하지 못한 것을 아쉬워합니다. 하지만 이영표는 데데의 부상 공백을 메꾸기 위한 카드라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데데는 최근 10년간 분데스리가에서 빼어난 기량으로 독일 축구의 평정한 브라질 출신 수비수였기 때문에, 애초부터 이영표가 넘기 힘든 벽이었습니다. 도르트문트의 1년 연장 계약 제안을 뿌리치고 사우디 알 힐랄에 이적했던 것도 그 때문이었죠.

이영표가 도르트문트에서 시즌 중반까지 14경기 연속 풀타임 출전할 수 있었던 것은 클롭 감독으로부터 능력을 인정 받았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독일 축구잡지 <키커>에서도 이영표가 팀 내 하위권 평점을 받은 적은 없었습니다. 이는 도르트문트에서 기대 이상의 활약을 펼쳤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지난해 11월 20일 A매치 사우디 원정에서 대표팀 승리의 주역으로 거듭날 수 있었던 것도, 도르트문트에서 좋은 경기력을 유지할 수 있었기 때문에 공수 양면에 걸친 맹활약을 펼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어쩌면 토트넘 시절이 아쉬울 수 있습니다. 이영표가 2005/06시즌 부터 땀 흘리며 노력했던 팀 공헌도는 토트넘의 끝없는 왼쪽 풀백 영입 속에 희생된 것과 마찬가지였죠. 토트넘은 2004년 에릭 에드만에 이어 이영표(2005년)-야수 에코토(2006년)-베일(2007년)을 영입해 최고 수준의 왼쪽 풀백을 보유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2007/08시즌 도중에는 후안 데 라모스 감독의 리빌딩 작업이 들어가면서, 이영표는 토트넘을 위해 쏟았던 노고와 헌신을 그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토사구팽 당했습니다. 지난해 8월까지 토트넘으로부터 배번 조차 받지 못했던 찬밥 신세였기 때문이죠. 그런 토트넘은 2008/09시즌 초반 꼴찌로 추락 및 라모스 감독 경질로 인과응보의 댓가를 치르고 말았습니다.

이영표는 2007/08시즌 UEFA컵 경기 도중 상대 선수의 발에 맞아 기절하며 다음 경기에 출전하는 투혼을 발휘하며 토트넘을 위해 뛰겠다는 의지를 내비쳤습니다. 지난해 1월까지 12경기 연속 선발 출전했고 빡빡하기로 악명높은 박싱 데이 기간까지 모두 소화했습니다. 그 중 한 경기였던 2007년 12월 10일 맨체스터 시티전에서는 상대 선수의 강력한 백태클을 당했음에도 불구 경기 출전을 강행했습니다. 만약 그가 성실하지 않았던 선수라면 이 같은 저력은 없었을 것입니다.
 
그동안 유럽에 진출했던 한국인 축구 선수들은 여럿 있었습니다. 하지만 유럽에서 이영표처럼 오랫동안 두각을 나타냈던 선수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그것도 유럽 3개 리그에서 경기력을 인정받은 선수는 이영표외에는 없을 것입니다. 아무리 이영표가 도르트문트에서 데데의 벽을 넘지 못했다고 해서, 사우디에 진출한다고 해서 커리어에 악영향이 끼친 것은 아닙니다. 이미 이영표는 유럽에서 충분히 가치를 인정 받았으며 방출설 및 이적설, 경쟁자 등장이라는 악조건 속에서도 최선을 다했습니다. 왜소한 체격(176cm/66kg)의 동양인 선수가 유럽에서 이렇게 두각을 나타낼 수 있었던 것은 대단한 일입니다.

이영표의 성실함은 이미 유럽에 진출한 한국 선수들에게, 향후 유럽 진출을 꿈꾸는 국내 축구 인재들이 배워야 할 덕목입니다. 이제는 유럽 진출을 희망하는 한국 선수들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이들이 유럽에서 자신의 꿈을 이루려면 실력 이외에 성실함이라는 플러스 알파 요소가 필수 입니다. 동양인 선수가 유럽 땅에서 실력을 인정받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에 성실함으로 인정받을 필요가 있습니다. 비록 이영표는 사우디 알 힐라로 떠났지만, 6년 6개월 동안 유럽 3개리그에서 두각을 나타냈던 키워드인 성실함 만큼은 과소평가 되어서는 안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