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정무 감독이 이끄는 한국 축구 대표팀이 17일 이란전을 끝으로 월드컵 최종예선 일정을 마무리 했습니다. 허정무호는 이번 최종예선에서 2010 남아프리카 공화국 월드컵 본선 진출을 조기에 확정지으면서 7회 연속 월드컵 본선 진출에 성공했습니다. 브라질, 독일, 이탈리아, 아르헨티나, 스페인에 이은 여섯번째 대기록으로서, 이제는 어느덧 '월드컵 단골손님'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월드컵 본선 진출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는 것이 한국 축구입니다. 1954년 스위스 월드컵부터 2006년 독일 월드컵까지 7번이나 월드컵 본선에 출전했지만 토너먼트 무대에 진출한 것은 2002년 한일 월드컵 4강 진출에 불과했습니다. 물론 허정무호의 앞날도 장담할 수 없습니다. 월드컵 최종예선 경기를 치를수록 절치부심한 것은 분명하나 어떤 면에서는 예전의 답답했던 한국 축구의 모습이 되돌이표되는 듯한 느낌입니다. 단면적인 모습이 아닌 양면적인 모습으로 월드컵 최종예선을 마친 허정무호의 지금까지 행보는 '절반의 진화, 절반의 정체'로 정리될 수 있습니다.
세대교체, 허정무호의 진보를 상징하다
허정무호에서 가장 변화된 것은 세대교체입니다. 한국 축구가 그동안 쿠엘류-본프레레-아드보카트-베어벡으로 이어지는 잦은 감독 교체로 지나치게 정체된 모습을 보였기 때문에 세대교체가 절실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허정무 감독은 팀의 쇄신을 위해 김남일, 안정환, 설기현, 조재진, 이천수 같은 이름만 있고 실속이 없는 선수들을 포기하고 젊고 싱싱한 영건들을 과감히 기용하여 미래를 대비했습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습니다. 이근호, 박주영, 기성용, 이청용, 강민수 같은 베이징 세대들은(와일드카드 김정우는 제외) 허정무호 전력의 핵심으로 성장하면서 이제는 대표팀에 없어선 안될 존재로 떠올랐습니다. 그리고 박지성에게 주장 완장을 채우며 팀을 새롭게 변화시키기 위한 의지를 나타냈습니다. 이는 젊은 선수들이 실전에서 박지성의 존재감에 힘을 얻으며 자신있게 경기를 풀어갈 수 있었던 밑바탕이 되었습니다.
허정무호 베스트 일레븐 중에서 5명이 베이징 올림픽에서 뛰었던 영건들이라는 것은 세대교체가 완전히 정착했음을 의미합니다. 세대교체의 진정한 효과는 영건 기용만으로는 어림 없습니다. 젊은 선수가 팀 전력에 어떤 영향을 미치느냐에 따라 세대교체의 성패를 좌우하기 때문입니다. 특히 평균 나이 20.5세인 '쌍용' 기성용-이청용 콤비는 일취월장한 기량으로 선배들을 제치고 당당히 주전으로 올라섰습니다. 기성용은 중원에서 공격을 완만하게 조절하는 경기 운영과 정확한 패스워크로 팀 공격에 활기를 쏟았고 이청용은 오른쪽 측면에서 문전으로 찔러주는 예리한 패싱력으로 상대 수비의 허를 찔렀습니다.
그동안 한국 축구에 요원했던 A급 공격수 부재도 이제는 걱정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박주영-이근호 투톱이 대표팀 공격의 핵으로 자리잡았기 때문입니다. 박주영은 팀 공격을 이끌어가는 플레이메이킹 능력과 부드럽고 정확한 패싱력, 상대 수비를 한꺼풀씩 벗겨내는 기교, 그리고 상대 수비수를 꼼짝 못하게 하는 절묘한 슈팅으로 골망을 출렁이며 슈퍼 서브에서 주전로 거듭났습니다. 이근호는 이란전까지 5경기 연속 무득점에 그친 것이 흠이지만 지난해 10월 11일 우즈베키스탄전부터 지난 3월 28일 이라크전까지 A매치 8경기에서 7골을 몰아 넣는 인상적인 경기를 펼쳤습니다.
그리고 영건들만 대표팀에서 두각을 나타낸 것은 아닙니다. 그동안 A팀과 인연이 많지 않았던 선수들까지 세대교체의 또 다른 핵심으로 성장했습니다. 그 중 대표팀 수비 자원인 조용형-강민수-이정수-오범석은 허정무 감독의 꾸준한 부름을 받은 끝에 대표팀 수비에 필요한 옵션으로 거듭났습니다. 그리고 세대교체가 남아공 월드컵 본선까지는 점진적으로 이루어질 것이라는 점에서 허정무호의 진화가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지 주목됩니다. 물론 허정무호에 대한 칭찬은 여기까지입니다.
답답한 경기력, 예전과 다를 바 없다
그러나 허정무호의 경기력은 많은 축구팬들을 사로잡지 못했습니다. 지금까지의 전반적인 경기 흐름은 소강상태가 잦았고 공격 마무리가 미흡했습니다. 미드필더들은 무의미한 크로스와 한쪽 방향으로 쏠리는 패스를 일관하여 상대에게 쉽게 읽히는 경기 운영을 했습니다. 그리고 수비라인은 공을 소유하고 있음에도 쉽게 앞으로 나서지 못하면서 미드필더들의 활동 반경에 부담을 주었고 후방에서 전방으로 찔러주는 롱패스도 부정확하게 연결되어 '뻥축구'가 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이를 요약하면, 답답하게 경기했던 예전의 대표팀을 보는 듯 했습니다.
이러한 경기력은 선수들이 과감하게 경기를 풀어가지 못하고 있음을 말합니다. 때로는 부정확하더라도 상대 압박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위협적인 패스와 끊임없는 빈 공간 창출, 패스를 받을 수 있는 공간 확보 같은 과감함이 있었더라면 지금보다 경기를 원활하게 풀어갔을 것임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선수들 모두 공격보다 지키는 성향의 경기 운영을 펼치면서 볼 점유율에서 상대를 앞서고 있음에도 자유자재로 경기를 풀어가지 못하는 문제점이 나타났습니다. 특히 지난 2월 이란 원정과 4월 북한 홈 경기는 납득할만한 결과를 얻었음에도 무언가 찝찝했던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이번 이란과의 경기에서는 공격 전개 과정에서 불안한 모습을 여러차례 노출했습니다. 전반 25분 상황에서는 수비수들이 두번씩이나 상대팀 선수 앞쪽으로 패스하면서 슈팅 기회를 내주는 문제점이 있었는데, 이는 무조건 앞쪽으로 공을 걷어내기에 급급하고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만약 수준급 팀들에게 불필요한 패스미스를 범하면 실점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수비수들의 확실한 공격 역량이 요구됩니다. 이 날은 측면과 중앙에서의 간격이 넓게 벌어지면서 이란에게 역습 기회를 당하는 문제점도 있었습니다. 이는 허정무호의 공격 완성도가 떨어지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월드컵 최종예선 8경기에서 12골에 그쳤다는 것은 분명히 되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입니다. 약체 UAE와의 두 번의 경기에서 6골을 넣은 것 이외에는 좀처럼 골을 넣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대표팀의 골 부족은 한국 축구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지만 국제 경기에서 좋은 결과를 올리기 위해서는 다득점으로 이길 수 있는 역량을 키워야 합니다. 최종예선에서 골망을 쉽게 가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대표팀의 공격 마무리가 여전히 위협적이지 못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특히 '박주영-이근호' 투톱은 종종 활동반경에서 겹치는 문제점이 있어, 대표팀 코칭스태프들이 서로 머리를 맞대며 부분 전술을 강화해야 할 것입니다.
주전 경쟁에 대한 뜨거움도 이제는 식어가는 느낌입니다. 골키퍼에 이운재, 포백에 이영표(김동진)-조용형-강민수(이정수)-오범석, 미드필더진에 박지성-김정우-기성용-이청용, 공격수에 박주영-이근호를 기용하고 있는데 이영표와 강민수의 자리를 뺀 9개의 자리는 주전이 확실하게 가려져 있습니다. 물론 최종예선의 중요성 때문에 주전 선수들을 기용할 수 밖에 없었지만 이미 월드컵 본선 진출이 확정된 이후였던 10일 사우디 아라비아전과 이번 이란전은 백업 선수들에게도 동기 부여 차원에서 선발 출전 기회를 제공해야 마땅했습니다. 대표팀 선수들의 경쟁 유발과 승리욕을 자극하여 실전에서의 좋은 경기력을 유도하기 위해서는 끝까지 경쟁심을 부추겼어야 했습니다.
허정무호는 출범 이후부터 지금까지 홈 경기에서 관중석이 매진된 경기를 펼친적이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상암 6만 관중도 이제는 옛말이 되었을 정도로, 대표팀에 대한 축구팬들의 관심이 떨어졌습니다. 과감함을 찾아보기 힘든 '뻔한' 경기력은 답답함을 가중시킬 뿐이며 축구팬의 관심과 초점을 받기가 어려워집니다. 최종예선까지 세대교체의 성공을 꾀했다면 이제는 월드컵 본선 16강 진출을 위해 경기력 향상에 모든 힘을 다해야 합니다. 축구팬들은 박지성의 대표팀 경기보다 박지성의 맨유 경기에 열광적인 시선을 보내고 있음을 허정무호를 비롯한 한국 축구가 깨달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