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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박지성, 스콜스처럼 쓸쓸히 은퇴하지 않기를


-가장 정점에 있을때 대표팀을 그만둔다는 얘기가 있었는데?

"그때(2011년 1월 아시안컵) 되면 정점이 아니라 벌써 정점에서 떨어지고 나서다. 기량으로 보더라도 내가 대표팀에 있을만한 실력이 되지 않을거라 생각한다. 그만큼 지금 현재 어린 선수들이 충분히 성장하고 있고, 몇년 후에는 또 다른 어린 선수들이 그만큼의 능력을 보여줄거라 믿고 있다." (박지성, 15일 파주 NFC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산소탱크' 박지성(28,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이하 맨유)이 국가대표팀 은퇴를 선언했습니다. 1년 7개월 뒤에 열릴 2011년 1월 카타르 아시안컵을 끝으로 태극마크를 반납할 예정이라고 하는군요. 2002년 한일 월드컵 4강 신화를 시작으로 대표팀의 에이스를 거쳐 주장에 이르기까지 한국 축구의 대들보로 성장했던 그가 대표팀 은퇴를 발표했습니다.

박지성의 대표팀 조기 은퇴는 어쩔 수 없는 결과입니다. 지금까지는 윙어로서 넓은 활동량과 부지런한 움직임, 강철같은 체력으로 그라운드를 멋지게 휘저었지만, 곧 있으면 30대가 되기 때문에 왕성한 기동력을 발휘할 수 있을지는 의문입니다. 이미 3번의 무릎 수술을 받았던 적이 있어서 30대가 넘으면 제 기량을 발휘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윙어는 나이가 들면 기동력과 체력이 저하되는 것은 물론 압박 대처능력과 수비력에서도 젊은 선수들에게 뒤쳐질 수 밖에 없는 한계가 있습니다. 그래서 세계 최고의 윙어로 이름 떨치던 라이언 긱스(맨유) 루이스 피구(은퇴, 전 인터 밀란)는 30대가 넘어서야 중앙 미드필더로 전환하여 선수 생명을 오래 연장했습니다.

어떤 이들은 박지성의 대표팀 은퇴가 맨유의 영향을 받은 것이 아니냐는 추측을 내놓기도 합니다. 틀리지 않는 말입니다. 알렉스 퍼거슨 감독은 소속팀 선수들이 시즌 도중 A매치 데이를 위해 대표팀에 차출되는 것에 난색을 표하기로 유명한 사람입니다. 대표팀에 다녀오면 체력 저하로 지치는 선수들이 여럿있기 때문입니다. 박지성 같은 경우에도 대표팀 차출 이후 맨유에 복귀하면 체력 및 컨디션 저하로 제 기량을 못찾는 문제점이 있었습니다. 2011년 1월 대표팀에서 은퇴하기 전까지 맨유와 대표팀을 오가는 바쁜 일정에 시달리는 어려움에 직면할 수 밖에 없습니다. 만약 일시적인 부진 마저 쉽게 사그라들지 않는다면 슬럼프에 빠지게 됩니다.

그래서 박지성의 대표팀 조기 은퇴는 선수 본인에게 있어 매우 현명한 선택입니다. 맨유에 오랫동안 남고 싶다는 것이 꿈이기 때문에 소속팀에 전념하는 것이 더 낫다는 생각입니다. 물론 대표팀에게는 아쉬운 일이겠지만 최근 세대교체 성공으로 한국 축구의 10년을 든든하게 짊어질 존재들이 등장했기 때문에 '캡틴 박'에 대한 공백은 크지 않을 전망입니다. 또한 한국축구는 전통적으로 수준급 윙어들이 여럿 배출되었기 때문에 머지않아 박지성을 능가할 윙어가 출현할 가능성이 없지 않습니다.

이러한 박지성의 행보는 유로 2004를 끝으로 대표팀에서 은퇴했던 폴 스콜스(35, 맨유)의 전례와 유사합니다. 맨유에서 한솥밥을 먹는 두 선수 모두 30세의 나이에 대표팀에서 은퇴하거나 그 나이에 옷을 벗었기 때문이죠. 또한 아시안컵과 유로 대회는 각 대륙 최고의 대표팀을 가리는 대회라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다른 점이라면,  박지성은 아시안컵이 열리기 한참 전인 최근에 대표팀 조기 은퇴를 선언했고 스콜스는 유로 2004가 끝난 뒤에 은퇴했습니다. 필자의 추측이지만, 박지성의 대표팀 조기 은퇴는 팀 동료인 스콜스의 사례를 참고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박지성의 대표팀 목표는 2010년 남아공 월드컵에서 한국의 16강 진출을 이끈 뒤 이듬해 아시안컵에서 한국의 우승을 견인하는 것입니다. 특히 아시안컵은 한국이 1960년 우승 이후 반세기 동안 아시아를 제패하지 못했기 때문에 박지성으로서도 아시안컵에 임하는 의미가 남다를 겁니다. 선수 본인으로서도 2010년 월드컵에서는 4강 진출 및 우승을 달성하기가 현실적으로 어렵기 때문에 2011년 아시안컵 우승을 통해 대표팀 커리어를 해피엔딩으로 장식하려고 할 것입니다. 어느 선수든 마지막 경기에서는 팀이 승리하는 것을 원하기 때문이죠.

그러나 박지성은 스콜스의 대표팀 말년을 닮아선 안됩니다. 스콜스는 1997년 대표팀 발탁 이후 7년 동안 잉글랜드 대표팀에 없어선 안될 미드필더진의 핵으로 꼽혔지만 2003년을 넘기면서 걷잡을 수 없는 내림세에 빠지고 맙니다. 공격 공헌도 부족으로 주춤하던 사이, 자신의 후배이자 공격 성향이 서로 비슷한 프랭크 램퍼드(첼시)가 대표팀에서 급성장하면서 어느새 '램퍼드-제라드(하그리브스)' 조합에 의해 주전 경쟁에서 밀리고 말았죠. 그러더니 유로 2004 이전에는 후배 선수들과의 주전 경쟁에 부담감을 느끼는 인터뷰를 하기도 했습니다.

스콜스는 유로 2004에서 대표팀의 주전 선수로 뛰었습니다. 그러나 그 자리는 중앙이 아닌 왼쪽 윙어였습니다. 잉글랜드 대표팀이 왼쪽 윙어 부재로 어려움을 겪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측면으로 빠졌습니다. 큰 대회에서 주전으로 뛰었지만 실질적으로는 계륵과 다를 바 없는 존재였습니다. 그러더니 8강 포르투갈전에서는 마니쉐-코스티나-데쿠로 짜인 상대 미드필더진과의 중원 싸움에서 밀리더니 결국 후반 12분에 교체됐습니다. 잉글랜드 대표팀은 이날 경기에서 승부차기 끝에 패했고, 스콜스는 이 경기를 끝으로 대표팀 은퇴를 선언했습니다. 자신과 가족, 그리고 소속팀 맨유를 위해 대표팀 은퇴를 결정한 것이지만 실제로는 주전 경쟁에 대한 부담감이 강하게 작용했습니다. 30세가 넘은 나이에서는 램퍼드-제라드 조합을 뛰어넘을 수 없을거란 판단이 들었기 때문이죠.

이러한 스콜스의 전례는 박지성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스콜스가 주전 경쟁에 대한 부담감에 못이겨 은퇴를 결정했다면 박지성은 기량 저하에 대한 염려를 이유로 조기에 대표팀 은퇴를 선언했습니다. 물론 지금까지는 대표팀 차출 이후를 제외한 경기에서 꾸준히 맹활약을 펼쳤지만, 30세가 넘는 그 시점부터는 윙어라는 포지션 특성상 신체적인 한계를 느낄 것임이 분명합니다. 지금은 대표팀에서의 위치가 굳건하더라도 2009/10시즌 소속팀과 대표팀 일정을 병행하는 시점에서는 몸 관리를 잘할 수 있을지 좀더 두고봐야 합니다.

그렇다고 박지성의 선수 생명이 일찍 끝나지는 않을 것입니다. 아직은 유럽 축구에서 보여줄 것이 많은 선수이기 때문이죠. 하지만 스콜스처럼 대표팀에서 쓸쓸하게 은퇴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한국과 아시아의 축구 영웅인 박지성의 순탄치 않은 행보는 많은 팬들에게 아쉬움이 클 것입니다. 하지만 박지성은 박지성이고 스콜스는 스콜스이기 때문에 2010년 월드컵에서 한국의 16강을 이끈 뒤 2011년 아시안컵에서 대표팀의 우승을 이끌며 '캡틴 박' 시대를 화려하게 마감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항상 대표팀에서 아름다운 모습을 잃지 않았던 박지성의 대표팀 마지막 경기는 2011년 아시안컵 우승으로 끝나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