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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박주영의 EPL 풀럼행을 반대한다

 

한편으로는 반가운 소식이고 또 한편으로는 전혀 달갑지 않은 소식입니다.

'박 선생' 박주영(24, AS모나코)이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풀럼의 영입 관심을 받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프랑스 라디오 방송인 라디오 몬테카를로가 24일 "풀럼이 박주영에게 (영입) 관심을 나타내고 있다. 몇주 전부터 박주영을 계속 지켜보고 있다. 한국의 LG가 메인 스폰서를 맡고 있기 때문이다"고 보도한 것이 국내 언론에 알려지면서 팬들에게 전파 되었습니다.

숲이 아닌 나무의 관점으로 바라보는 팬들이라면, 박주영이 풀럼의 영입 관심을 받았다는 것에 반가워할 것입니다. 풀럼은 세계 최고의 리그인 프리미어리그의 중위권 팀인데다 런던을 연고로 한다는 점, 모나코보다 더 좋은 팀이라는 요소가 있기 때문에 일부 팬들이 반가워할지 모를 일입니다.

물론 풀럼도 한국인 선수 영입에 대한 많은 관심을 가지는 팀입니다. 지난 2004년 박주영에 대한 영입 관심을 가졌고 이듬해 6월에는 스카우트를 국내에 파견하여 박주영이 포항전에서 해트트릭 했던 경기를 관전했습니다. 박주영 외에도 이천수, 조재진, 송종국도 풀럼으로부터 영입 관심을 받거나 입단테스트 절차까지 밟았던 적이 있기 때문에 국내에서도 낯이 익습니다. 그리고 설기현이 2007년 9월부터 올해 1월까지 몸담았던 팀이죠.

풀럼이 한국인 선수의 영입을 노리는 주 요인은 지난 2007년 5월에 맺었던 LG전자와의 메인 스폰서 계약 때문입니다. 풀럼은 LG전자측의 요청에 따라 3년간(2010년 상반기까지)의 스폰서십 기간에는 반드시 한국 선수를 보유하고 있어야 한다는 조항에 합의했고 그해 8월 31일 레딩에서 뛰던 설기현을 영입했습니다. 그러더니 그해 12월에는 조재진, 송종국이 풀럼으로부터 영입 관심을 받기도 했습니다. 엄연히 말하면 마케팅 차원에서 한국 선수를 보유하는 것이죠.

그러나 풀럼이 박주영에 관심을 나타내는 것은 냉정하고 곰곰하게 따져봐야 합니다. 그것도 한국 기업과 스폰서 계약을 맺는 풀럼이라면 더 조심해야 합니다. 풀럼이 그동안 한국인 선수 영입에 애착을 들였던 이유는 한국 기업으로부터 수익을 더 많이 얻으려는 욕망 때문입니다. 이미 LG와 메인 스폰서 계약을 맺었지만 또 다른 한국 스폰서가 따라붙는다면 풀럼에게 금전적인 이익이 따르기 때문이죠. 이는 전력 강화 목적이 아닌 한국인 선수를 상업적으로 이용하려는 '마케팅용' 일환입니다. 물론 한국인 선수 뿐만 아니라 중국과 일본 선수들도 마찬가지 입니다.

흔히 말하는 '마케팅용 선수'에 대한 잉글랜드 현지인들의 반응은 그리 달갑지 않습니다. '마케팅용 선수'에 대한 편견에서 벗어나기 어렵기 때문이죠. 지난 2001년 아스날에 입단했던 이나모토 준이치(일본) 이듬해 에버튼에 입단했던 리웨이펑과 리 티에(이상 중국)는 현지에서 마케팅 선수라는 꼬리표를 떼지 못했습니다. 세 선수 모두 자국 기업이 스폰서를 하는 형식으로 잉글랜드 땅을 밟았기 때문입니다. 그 여파는 동양인 선수들이 프리미어리그에 진출할때 마다 "유니폼을 팔기 위해 입단했다"는 비아냥으로 이어지게 된 것이죠. 2005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 입단했던 박지성도 현지 언론으로부터 이러한 말을 듣기도 했습니다.

박지성이 뛰고 있는 맨유는 금호 타이어와 스폰서 계약을 맺고 있습니다. 하지만 금호 타이어가 스폰서로 들어온 것은 박지성이 맨유에서 좋은 활약을 펼쳤기 때문에 한국 스폰서가 자연스럽게 따라왔을 뿐이지, 박지성이 철저한 마케팅 수단으로 영입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설기현 같은 경우에는 이미 프리미어리그 레딩을 통해 충분히 검증되었기 때문에 풀럼의 전력 강화 수단으로 영입 되었으며(그것도 1-1 트레이드 형식이었습니다.), 철저한 마케팅용 선수와는 격이 다릅니다.(물론 규정적인 관점에서 바라보면 마케팅용 선수겠지만요.)

하지만 박주영은 아닙니다. 풀럼이 박주영을 영입하려는 것은 그들이 마케팅 효과를 위해 박주영을 이용하려는 것에 불과합니다. 물론 박주영도 풀럼의 영입 목적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박주영측과 전 소속팀 FC서울이 지난해 8월 위건으로부터 영입을 제안 받는 과정에서 국내 기업의 스폰서 유치에 활용하기 위한 수단이라는 것에 불쾌감을 드러냈기 때문이죠. 당시 박주영측과 서울 구단측 관계자는 언론을 통해 "위건이 선수를 스폰서 유치의 미끼로 활용한 것에 기분 나쁘다. 솔직히 자존심 상한다", "유럽 구단들이 K리그를 너무 얕잡아 보는 것이 아니냐"고 발끈한 적이 있었죠.

그리고 한 가지 조심해야 할 것은, 풀럼은 아직 박주영에 대한 공식적인 영입 의사를 나타내지 않았습니다. 풀럼이 박주영에게 영입 관심을 나타낸다고 해서 박주영의 풀럼행이 초읽기에 들어간 것은 아닙니다. 일부 언론들은 국내 선수의 이적설이 뜰때마다 항상 그랬던 것 처럼 박주영 풀럼행과 관련된 성급한 보도를 내보낼지 모르겠지만, 우리는 거기에 '낚여서는' 안됩니다. 유럽 축구를 좋아하는 팬들은 잘 아실겁니다. 좋은 활약을 펼치는 선수들에게는 다른 팀의 이적설이 항상 따라 붙는 다는 것을 말이죠. 박주영이 풀럼으로부터 영입 관심을 받았다는 사실은 그걸로 끝나야 할뿐, 이적이 눈앞에 두고 있다는 내용으로 해석해서는 안됩니다.

이를 역설적으로 받아들이면, 박주영이 그만큼 모나코에서 잘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모나코의 공격 옵션 중에서 유일하게 붙박이 주전으로 뛰고 있는데다 팀 공격을 이끄는 플레이메이커 역할을 소화하고 있기 때문에 다른 팀으로부터 영입 관심을 충분히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한국인 선수를 타깃으로 마케팅 효과를 거두려는 풀럼이라면 우려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또한 박주영이 현 시점에서 모나코를 떠난다는 것은 한마디로 '시기상조' 입니다. 최근들어 프랑스리그 적응에 성공한 모습을 보여줬을 뿐이지 완전히 꽃을 피우지는 않았습니다. 유럽 축구에서 경쟁력이 충분한 선수라는 이미지를 확고하게 쌓기 위해서는 적어도 1~2시즌 동안은 모나코에서 좋은 활약을 펼칠 필요가 있습니다. 유럽에서 붙박이 주전으로 뛸 수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대단하기 때문입니다.

만약 박주영이 올해 여름 '모나코보다 더 높은 전력을 지닌' 풀럼으로 둥지를 틀게 된다면 새로운 팀에 순조롭게 적응하지 못할 가능성이 없지 않습니다. 그만큼 박주영은 유럽에서의 완벽한 성공을 위해 모나코에서 철저히 준비할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물론 박주영은 작년 8월에 위건 러브콜을 거절했던 전례가 있기 때문에 풀럼 이적을 성급하게 원하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풀럼이 한국인 및 아시아 선수를 마케팅용으로 다루려는 태도는 씁쓸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