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천수와 리웨이펑. 얼핏보면 다른 성향의 선수들 같지만 조금 면밀하게 들여보면 닮은 구석이 여럿 있는 선수들입니다. 한때 한국과 중국 대표팀의 간판 스타로 뛰었고 유럽 진출 경력도 있습니다. 차범근 수원 감독과의 관계가 친밀한점(혹은 예전에 친밀했거나)도 빼놓을 수 없겠죠. 그리고 그라운드 안팎에서 많은 문제를 일으키며 팬들의 눈살을 찌푸리기도 했습니다.

특히 이천수가 최근에 처한 상황은 리웨이펑의 과거를 떠올리게 합니다. 리웨이펑은 다혈질 성격과 순간적인 감정을 추스르지 못해 거친 매너를 일관하며 자국 리그와 국가대항전에서 많은 문제를 일으켰던 선수입니다. 거친 파울을 일삼는 것은 기본이며 상대팀 선수를 밀거나, 목을 비틀거나, 폭행을 일삼거나, 그리고 난투극에 이르기까지 중국 언론에서 '악마'라는 말까지 들을 정도로 그라운드에서 수많은 더티 플레이를 했습니다. 국내에서도 '폭력 선수', '비매너 선수'로 불릴 만큼 나쁜 이미지쪽으로 유명했던 선수죠.

반면 이천수는 '삽질 X천수'라는 플랜카드를 내건 상대팀 서포터즈에게 가운데 손가락을 내미는 도발을 했고 심판에게 욕설을 했습니다. 그리고 지난 3월초 K리그 개막전에서는 심판에게 감자 세리머니로 물의를 일으켜 국내 프로축구 사상 처음으로 국제축구연맹(FIFA) 페어플레이 깃발을 드는 기수로 나오는 유례없는 징계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이천수는 리웨이펑에 비하면 비매너 선수로 낙인찍히기에는 조금 약하다는 생각입니다. 이천수는 그라운드보다는 바깥에서 많은 문제를 일으켰던 선수였을 뿐입니다. 많은 안티들을 몰고 다녔던 결정적 발단도 2002년 자서전 파문이었지, 리웨이펑 처럼 더티 플레이 때문에 사람들의 맹비난을 받던 선수는 아닙니다. 다만 국내 선수들보다 그라운드에서 문제를 일으켰던 적이 여럿 있는데다(국내 선수들이 전체적으로 조용한 성향입니다.) 튀는 성향 때문에 많은 사람들에게 좋은 이미지를 심어주지 못했을 뿐입니다. 보수적인 분위기의 국내 스포츠 문화에서는 이천수의 돌출언행 자체를 받아들이기 어려웠던게 사실입니다. 6년전 모 K리그 감독이 언론을 통해 "이천수는 머리 색깔부터 검은색으로 바꿔야 한다"는 쓴소리를 했을 정도죠.

축구팬들에게 과소평가된 경향이 짙지만, 이천수는 그저 그라운드에서 누구보다 열심히 뛰기위해 노력하던 선수였을 뿐입니다. 상대 수비수를 제치기 위해 안간힘을 다했고, 골을 넣기 위해 최전방을 부지런히 뛰었고, 중요한 고비때는 흔히 말하는 악바리 근성을 발휘하며 무언가 해내려는 집중력이 대단했습니다. 와일드카드 자격으로 뛰었던 3년전 도하 아시안게임때는 주장을 도맡으며 후배 선수들을 이끌기도 했습니다. 아마도 이것이 그가 본래 지니던 '초심'이 아닌가 싶은 생각입니다. 그라운드에서 문제를 일으킨 적도 있었지만 리웨이펑처럼 상습적이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천수는 지난해 여름 수원에 임대되면서 자신이 본래 품고 있던 초심을 완전히 잃었습니다. 무단으로 훈련에 불참하고 코칭스태프 지시에 반발하더니 평소 아버지와 아들처럼 절친했던 차범근 감독과의 관계가 멀어지면서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너고 말았습니다. 경기 중에는 후배 선수들에게 온갖 쓴말들을 내뱉더니 나중에는 팀 분위기까지 뒤집어지는 불상사까지 벌어지고 말았습니다. 예전의 이천수라면 2005년 울산에서 부활에 성공했던 것 처럼 경기를 열심히 뛰기위해 사력을 다했지만 수원 시절의 이천수는 재기하겠다는 의지 자체가 전혀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더니 수원 구단에 의해 임의탈퇴 공시 되면서 벼랑끝으로 추락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더니 온갖 천신만고 끝에 전남으로 둥지를 틀면서 새출발을 단단히 노렸습니다. 하지만 전남 소속으로 첫 경기를 뛰었던 서울전에서 심판에게 감자 세리머니를 하는 경솔한 행동으로 팬들의 맹비난을 받으면서 '재기에 성공하겠다'던 자신의 의지까지 꺾이고 말았습니다. 전남에서는 박항서 감독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의 세심한 배려속에 부활 성공을 위한 천군만마 같은 존재를 얻었지만 문제는 자신의 순간적인 감정을 조절하지 못했습니다. 이전에 상대팀 서포터들에게 가운데 손가락을 내밀거나 심판에게 욕설을 퍼부었던 사건 또한 같은 맥락이죠. 이러한 모습은 자신의 감정을 추스리지 못하고 온갖 더티 플레이들을 일삼는 리웨이펑을 떠올리게 합니다.

그런데 리웨이펑은 현재 수원에서 자신의 부정적인 이미지와 전혀 반대되는 행보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비매너 수비를 버리고 팀을 위해 공수 양면에 걸쳐 열심히 뛰고 몸을 날리더니 여러차례 골까지 넣으면서 수원팬들에게 '만리장성'이라는 별명까지 얻게 되었습니다. 일본 J리그 오미야로 떠난 마토 네레틀야크의 공백 걱정과 함께 '리웨이펑이 사고 치면 어떡하나...'고 염려하던 수원팬들에게 새로운 희망을 안겨준 것이죠. 한국이라는 새로운 환경에서 자신의 안좋은 이미지를 떨치기 위해 노력했던 것, 무적 선수였던 자신을 수원으로 데려온 차범근 감독의 믿음에 보답하기 위한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비매너 선수라는 꼬리표를 뗄 수 있었습니다.

특히 지난 7일 상하이 선화 원정 경기에서는 자신이 직접 골을 넣은 뒤 '미안해요 세리머니'를 하며 자신의 친정팀 팬들에게 사과를 구했습니다. 골을 넣자마자 두 손을 얼굴앞에 모으고 관중석 사방을 향해 고개를 푹 숙이며 미안하다는 의사 표시를 한 것이죠. 그동안 부정적인 이미지로 가득쳤던 그가 얼마만큼 달라졌는지를 실감할 수 있는 대목입니다. "리웨이펑은 중국에서 거칠기로 악명 높은 선수다. K리그에 잘 적응할지 궁금하다"는 축구 전문가들과 팬들의 전망을 비웃게 했을 정도입니다. 이제는 수원팬들에게 '형'이라는 친근한 단어로 불리면서 수원의 명실상부한 스타 플레이어로 거듭났습니다.

사실 리웨이펑의 코리안 드림이 처음부터 순조로웠던 것은 아닙니다. 지난 1월말 홍콩에서 열린 칼스버그컵 스파르타 프라하(체코)전에서 경고 누적으로 퇴장 당하면서 거친 선수라는 꼬리표를 떼지 못한 것이죠. 하지만 리웨이펑의 '갱생 시나리오'가 성공적으로 정착될 수 있었던 것은 그라운드에서 팀을 위해 솔선수범하겠다는 자신의 의지가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이러한 리웨이펑의 갱생을 이천수가 가슴속 깊이 받아들여야 더 좋은 선수로 거듭날 수 있을 것입니다.

공교롭게도 이천수도 리웨이펑처럼 현 소속팀에서의 첫 출발이 좋지 못했습니다. 감자 세리머니로 팀을 발칵 뒤집힌 것이죠. 하지만 이천수는 자신을 벼랑끝에서 구했던 박항서 감독이라는 믿을맨이 있습니다. 리웨이펑이 차범근 감독의 믿음속에 꽃을 피웠던 것 처럼 이천수도 본인의 의지가 충만하다면 충분히 갱생에 성공할 수 있습니다. 이제는 그라운드에서 무슨 일을 하면 안되는지 뼈저리게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다시는 불썽사나운 모습이 재발되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 이천수가 징계를 마치고 오는 22일 인천과의 컵대회 홈 경기 출격을 앞두고 있습니다. 징계 기간 내내 컨디션을 조절하며 복귀전을 잔뜩 벼르고 있었기 때문에 '그라운드에서 무언가 보여주고 싶다'는 절실함이 앞서있을 것입니다. 그동안 자신에게 많은 격려와 사랑을 아끼지 않았던 동료 선수들과 코칭스태프, 그리고 홈팬들에게 보답할 수 있는 방법은 실력입니다. 올 시즌 마토의 공백을 확실히 메운것과 더불어 비매너 선수라는 꼬리표를 뗀 리웨이펑의 성공기는 이천수가 본받고 배워야 할 대상입니다.

Posted by 나이스블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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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ONG 2009.04.21 18:1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너무아까운선수입니다.전개인적으로우리나라현역선수중가장축구재능이뛰어난선수라고생각합니다..
    그라운드에서보여준이천수선수의튀는행동에대해선전뭐라왈가불가하고싶지는않습니다..잘하는선수가튄다면스포테이너측면도잇으니까요..허나..축구판에기본은어디까지나축구입니다..현대축구는재능으로만은절대버틸수없읍니다..노력..연습..자기관리...뭐이런것들만이앞으로이천수선수에ㅔ게필요한부분들인데..참으로아까운선수입니다..박지성선수와너무대조적이죠..

    • 나이스블루 2009.04.21 18:4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이천수와 박지성...정말 반대되는 길을 걷는 것 같습니다.
      BONG님의 댓글을 통해서 개인적으로 느껴지는게 많네요...^^

      댓글 잘 읽었습니다.

      기분 좋은 밤 되세요...^^

  2. 반바스틴 2009.04.23 11:2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리웨이펑 같은선수는 편견의 희생양이라는 생각을 가졌습니다. 전 처음에 수원이 리웨이펑 영입때 정말 최고의 영입이자 클래스있는 선수의 영입이라고 생각했는데 요즘 칭찬듣는거 보면 제가 흐뭇하더군요

    • 나이스블루 2009.04.24 07:3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편견의 희생양이라는 점도 있었지만,
      리웨이펑의 변신이 없었다면...수원에서 성공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었습니다. 결과적으로는, 리웨이펑 스스로의 변화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죠.

      즐거운 하루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