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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베르바토프, 3075만 파운드 사나이 맞아?

 

지난해 9월 1일 프리미어리그 역대 최고 이적료 2위(3075만 파운드, 608억원)의 거금으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하 맨유) 유니폼을 입었던 디미타르 베르바토프(28, FW). 전 소속팀 토트넘 시절처럼 맨유 공격의 첨병 역할을 다할거라 기대를 모았고 일각에서는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에 이은 또 하나의 맨유 에이스가 될 거라 예견했습니다. 그만큼 베르바토프에 대한 팬들의 기대가 높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뚜껑을 열은 결과, 베르바토프는 자신의 이적료에 걸맞는 활약을 펼치지 못하고 있습니다. 시즌 초반 골 침묵에 시달리며 '먹튀'로 꼽히다가 중반들어 제 구실을 다했지만 최근 5경기 연속 무득점에 시달리면서 기복이 심한 경기력을 일관하고 있죠. 물론 몇몇 경기에서는 결승골 혹은 쐐기골로 해결사의 진면목을 발휘하며 맨유의 고공행진을 이끌었지만 다른 경기에서는 상대 압박 수비에 발이 묶여 고전하는 불안함을 안겨줬습니다. 특히 지난달 21일 풀럼전에서는 전반 45분 동안 7번의 패스만 연결하는 극도의 부진한 경기를 펼치며 팀 패배의 빌미를 제공했습니다.

베르바토프는 올 시즌 35경기에서 13골 8도움을 기록했습니다. 얼핏보면 준수한 성적을 거둔 것 처럼 보이지만 문제는 토트넘 시절이었던 2006/07시즌 49경기 23골 15도움, 2007/08시즌 46경기 22골 13도움에 비하면 공격 포인트가 떨어집니다. 아무리 올 시즌 종료가 40여일 남았다고 하더라도 토트넘 시절 처럼 많은 공격 포인트를 올리기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비단 공격 포인트 뿐만이 아닙니다. 챔피언스리그 32강 조별예선 4~5차전까지만 하더라도 4골로 득점 1위를 달렸지만 여전히 골이 잠잠하며, 프리미어리그에서는 한때 도움 1위에 올랐지만 지난 1월 27일 웨스트 브롬위치전 이후 80여일 동안 도움을 기록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베르바토프는 전 첼시 공격수였던 안드리 셉첸코(AC밀란) 같은 먹튀가 아닙니다. 공격 포인트를 보더라도 어느 정도 제 구실을 했기 때문이죠. 기복이 심한 경기력이 아쉬웠던 것은 사실이지만 여전히 출중한 개인 능력과 저력을 자랑하고 있기 때문에 먹튀라고 볼 수는 없습니다. 특히 지난 16일 포르투전에서는 80%의 패스 정확도(40개 시도 32개 성공)를 기록하며 60%대를 기록했던 웨인 루니, 호날두보다 양질의 패스를 배급하며 맨유 공격의 시발점 역할을 다했습니다.

문제는 3075만 파운드라는 거금의 이적료에 걸맞지 않은 활약을 펼치고 있다는 것입니다. 프리미어리그 역대 최고 이적료 2위의 선수라면 거금과 비례할 수 있는 경기력을 펼치는 것이 당연하지만 '시즌이 끝나가는' 지금까지의 행보를 놓고 보면 아쉬운 감이 있습니다. 이러한 그의 발자취는 지난 2001년 맨유 입성당시 2810만 파운드의 거금 이적료를 기록했음에도 활약도가 그에 미치지 못했던 후안 베론(에스투디안테스)의 행보와 유사합니다. 한때 맨유 현지 팬들이 그를 가리켜 '디미타르 베론'이라고 악평을 쏟아냈던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물론 역대 세계 최고의 이적료를 자랑하는 지네딘 지단(4400만 파운드)도 레알 마드리드에 완벽히 적응하기까지 1년이라는 세월이 필요했습니다. 하지만 베르바토프는 지난해 12월 30일 미들즈브러전 이후 7경기 동안 5골 2도움을 기록하며 이미 적응에 성공했음을 알렸습니다. 그리고 토트넘 시절을 통해 프리미어리그에서 충분히 검증되었기 때문에 이탈리아에서 스페인 무대로 틀었던 지단과는 엄연히 다른 성격을 지녔습니다.

베르바토프가 토트넘 시절에 비해 활약상이 저조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토트넘과 맨유의 경기 스타일이 전혀 다르기 때문입니다. 토트넘에서는 '환상의 짝궁'이었던 로비 킨과 최전방에서 찰떡궁합 호흡을 맞춘데다 동료 선수들이 자신에게 많은 골 기회를 제공하면서 다양한 패턴에 의한 득점과 도움을 기록할 수 있었습니다. 최전방에서 많이 움직이지 않더라도 얼마든지 '아하게' 골을 넣을 수 있었기 때문에 팀 공격의 무게감과 중심이 자신에게 향했습니다.

하지만 맨유에서는 토트넘 시절처럼 팀의 에이스로 활약하지 못했습니다. 맨유는 공격진과 미드필더 옵션들의 넓은 활동 폭과 부지런한 움직임, 빠른 순발력을 앞세운 파상적인 공격력을 자랑하는 팀이지만, 베르바토프의 기동력은 동료 선수들을 따라가지 못했습니다. 물론 팀에 점차 적응하면서 미드필더 후방까지 넘나들며 활동 폭을 넓히기도 했지만 동료 선수들과 활발한 호흡을 주고 받으며 상대 문전을 빠르게 침투하는데에는 지구력이 부족한 인상을 지울수가 없었습니다. 더욱이 맨유의 공격은 주로 호날두를 통해 거치는 공격 루트들이 많기 때문에, 베르바토프도 그의 공격력에 힘을 실어주는 조연이었을 뿐입니다.

맨유가 베르바토프를 영입한 이유는 득점력 강화 뿐만이 아닙니다. 퍼거슨 감독은 지난해 7월 23일 <타임즈 온라인>을 통해 "루니 같은 23세 선수는 완성된 공격수라고 보기 어렵다. 경험 있는 공격수(베르바토프)와 함게 뛰면 (기량 발전에)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고 말한 적이 있었습니다. 이는 맨유로 부터 영입 러브콜을 받았던 베르바토프가 '퍼거슨 감독 시각에서' 루니의 공격력에 힘을 실어줄 수 있는 선수였던 것입니다. 하지만 베르바토프는 기복이 심한 경기력을 일관하고 있으며 루니는 잦은 부상으로 부침에 시달렸습니다. 두 선수의 콤비 네이션을 통해 공격력을 업그레이드 하려던 퍼거슨 감독의 계획이 자주 차질을 빚었죠.

그리고 베르바토프의 원래 이적료는 3075만 파운드의 3분의 2 수준인 2000만 파운드(약 395억원)였습니다. 맨유가 지난 여름 2000만 파운드에 영입하려 했으나 토트넘이 3000만 파운드 이상의 이적료를 강력히 원하는 바람에 자신의 이적료가 불어날 수 밖에 없었죠. 그래서 맨유는 3075만 파운드의 거금으로 베르바토프를 영입했으며 그 조건으로 프레이져 캠벨을 토트넘에 임대 보내야만 했습니다. 베르바토프는 애초부터 3075만 파운드의 사나이가 아니었던 것입니다. 맨유와 토트넘의 장외 대결이 후끈 달아오르면서 자신의 이적료만 눈덩이처럼 올라갔던 것입니다.

그렇다고 맨유가 베르바토프 영입으로 손해를 봤던 것은 아닙니다. 루니의 잦은 부상과 테베즈의 경기력 저하가 웬만한 유럽 빅 클럽보다 바쁜 일정을 소화해야 하는 맨유의 불안 요소가 될 수 밖에 없었기 때문에 새로운 공격수의 존재감이 절실 했습니다. 특히 베르바토프는 토트넘에서의 빼어난 활약으로 프리미어리그에 완벽히 적응했기 때문에 퍼거슨 감독의 영입 대상 0순위가 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아무리 베르바토프가 자신의 이적료 값을 다하지 못하더라도 맨유로서는 어느 정도의 만족스런 성과를 올리고 있는 셈입니다.

결국 베르바토프가 3075만 파운드의 사나이임을 증명하기 위해서는 지금보다 더 분발할 수 밖에 없습니다. 기복이 심한 경기력만 보완할 수 있다면 자신의 커리어를 밝게 비출 수 있는데다 퍼거슨 감독의 전술 운용에 커다란 도움을 안겨줄 것입니다. 퍼거슨 감독이 자신에게 '포스트 칸토나'라는 찬사를 보냈던 것은 그만큼 자신의 재능이 맨유에서 충분히 통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디미타르 베론에서 '칸토나의 재림'으로 확실하게 진화하기 위해서는 부단한 노력이 요구될 수 밖에 없습니다. 베르바토프가 지금까지 쌓았던 저력을 놓고 본다면 충분히 가능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