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새 유럽축구는 우리 생활에서 밀접한 연관을 맺는 키워드가 되었습니다. 국민들은 박지성, 이영표, 김두현, 박주영 같은 유럽리거들의 활약을 TV와 컴퓨터를 통해 카타르시스를 느끼며 응원의 목소리를 높이는 것은 물론 일상 생활에서도 많은 이야깃거리를 남기고 있습니다. 심지어 유럽리거 활약 뿐만 아니라 유럽축구에서 있었던 경기 결과와 가십거리 또한 팬들의 흥미를 끌게 되어 자국리그 인기를 훨씬 능가하는 수준에 올라섰습니다.
그런 가운데 최근 '조투소' 조원희(26, 위건)의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위건 입단이 확정되었습니다. 지난 20일 워크퍼밋(취업 허가서)을 발급받아 정식 위건 선수가 되었으며 다음달 1일 첼시전 데뷔로 '조원희vs히딩크'의 맞대결이 성사되어 축구팬들의 관심을 끌고 있습니다. 박지성(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이영표(전 토트넘, 도르트문트) 설기현(전 레딩-풀럼, 알 힐랄) 이동국(전 미들즈브러, 전북) 김두현(웨스트 브롬위치)에 이은 코리안 프리미어리거 6호 선수로서 앞으로의 활약이 기대를 모을 수 밖에 없습니다.
한 가지 놀라운 것은, 불과 4년전까지만 하더라도 '축구 종주국'이자 세계 최고의 리그인 프리미어리그에 몸담았던 한국인 선수는 단 한명도 없었습니다. 최근 4년 동안 6명의 한국인 선수가 축구의 본고장에서 뛰고 있었다는 것은 한국 축구의 인지도가 날이 갈수록 향상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심지어 이들뿐만 아니라 이천수, 김정우, 박주영(이상 위건) 조재진(위건, 뉴캐슬, 포츠머스, 풀럼) 송종국(토트넘, 풀럼)까지 프리미어리그 진출을 코앞에 앞둔 한국인 선수들도 있었습니다.
한국인 선수들이 잉글랜드에서 자리잡기 이전에는 일본과 중국인 선수들이 뛰고 있었습니다. 일본인 선수로는 2001년 아스날에 진출한 이나모토 준이치를 필두로(2002년 이후 풀럼, 웨스트 브롬 이적) 토다 가즈유키가 토트넘, 니시자와 아키노리가 볼튼, 가와구치 요시카쓰가 포츠머스에서 활약했습니다. 2005년 하반기에는 나카타 히데토시가 일본인 선수로는 마지막으로 프리미어리그(볼튼)에서 활약했죠. 중국에서는 판즈이와 순지하이가 1998년에 챔피언십 크리스탈 팰리스에서 활약한 것을 시작으로 순지하이(맨체스터 시티) 리 티에, 리웨이펑(이상 에버튼) 덩팡저우(맨유)가 프리미어리그에서 뛰는 영광을 안게 된 뒤 정즈가 2007년부터 찰튼에서 뛰었습니다.
(한 가지 첨언하자면, 가와구치가 프리미어리그 출신으로 알려져 있는데 현재 포츠머스가 프리미어리그에 속해있어서 잘못 알려진 것 같습니다. 가와구치가 잉글랜드에서 활약할 때 포츠머스는 챔피언십리그에서 있었으며, 포츠머스가 2003/04시즌 프리미어리그로 승격되던 그 시기에 가와구치는 덴마크리그로 떠났습니다. 실제로 가와구치는 프리미어리그 출장 경험이 없습니다.)
일본과 중국 선수들이 한국인 선수보다 프리미어리그 무대를 먼저 밟은것은 어찌보면 당연했을지 모릅니다. 외국에서는 동양권에 대하여 일본과 중국에 대한 인지도가 높았기 때문이죠. 일본은 웬만한 유럽팀의 재정을 배부르게 할 수 있는(방송 중계권, 마케팅) 자본이 있었으며 중국은 13억 인구라는 잠재력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잉글랜드를 비롯 스페인, 이탈리아 같은 소위 '빅 리그'에서 활약한 일본과 중국인 선수들이 여럿 있었던 것이며 이들 중에는 '마케팅 선수'로 들어온 경우도 있었습니다. 반면 한국은 일본과 중국의 틈에 끼어 유럽팀들에 매력을 끌 만한 요소가 부족했죠.
하지만 프리미어리그에서 동양인 선수가 맹활약을 펼친 것은 드뭅니다. 특히 일본인 선수중에 프리미어리그에서 성공한 선수는 단 한 명도 없었죠. 그나마 이나모토가 5년 동안 뛰었지만 챔피언십 카디프 시티 임대를 포함 4개팀이나 전전하는 신세였을 뿐입니다. 이 때문에 일본은 나카타 이후 4년 동안 프리미어리거를 배출하지 못했으며 다른 리그 진출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습니다.(현재 일본인 선수들은 빅리그보다 중상위권리그 진출을 선호하고 있습니다. 일본팬들은 프리미어리그보다 세리에A에 대한 관심이 높죠.) 중국인 선수 중에서는 순지하이가 2002년부터 2008년까지 맨시티에서 오랫동안 주전 풀백으로 활약했을 뿐(챔피언십 포함) 어느 누구도 긍정적 결과를 거두지 못했습니다.
한국 축구가 유럽 무대에서 인지도를 끌어 올리는 과정에서는 적지 않은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1999년 1월 프리미어리그 웨스트햄 진출을 추진했던 최용수와 김도근은 계약서 사인만 남았다는 에이전트의 말을 믿고 잉글랜드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으나 정작 현지에서 테스트 요구를 받았습니다. 그러더니 에이전트측과 현지 구단 사이의 이적료 차이가 너무 커서 결국 두 선수는 테스트 불합격은 물론 이적협상 결렬로 쓸쓸히 국내로 돌아왔습니다. 당시 국내에서 에이전트의 역사가 짧다보니 유럽 현지 사정이 어두웠던 겁니다. 그보다 더 아쉬운 것은, 최근 염기훈 사례처럼 유럽 진출 과정에서 에이전트 문제가 아직까지 만연하다는 것이죠.
2000년 이탈리아 페루자에 진출했던 안정환도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페루자에서 뛰는 동료들이 한국이라는 나라를 모르자, 2002년 한일 월드컵 기념 옷을 보여주면서 알아들었다고 하죠. 우리 입장에서는 어처구니 없는 케이스겠지만 유럽 입장에서 보면 당연했을지 모릅니다. 그네들은 동양권에 속한 나라로 일본과 중국을 가장 쉽게 떠올리기 때문이죠. 2002년 한일 월드컵 이후 부터 한국이란 나라의 인지도가 크게 향상되었던 겁니다.
물론 아쉬운 전례도 있었습니다. 이천수는 2003년 스페인 레알 소시에다드에 진출했지만 적응 실패로 부진하면서 이듬해 누만시아로 임대 되었습니다. 이에 스페인 에이전트들 사이에서는 이천수의 영향으로 한국인 선수의 스페인 진출이 힘들거라는 이야기까지 나돌았다고 합니다. 이후 이호진이 2006년 초 라싱 산탄테르에 진출했지만 처절하게 실패하고 돌아왔죠. 두 선수 모두 현지에서 뚜렷한 인상을 심어주지 못해 많은 선수들이 스페인 무대를 밟지 못한 것이었습니다. 이는 일본인 선수들의 프리미어리그 실패 사례와 똑같은 케이스죠.
그럼에도 한국인 선수가 빅 리그, 특히 프리미어리그에서 성공할 수 있었던 밑바탕에는 박지성과 이영표가 성공적인 활약을 펼칠 수 있었기에 가능했던 겁니다. 두 선수 모두 성실하기 때문에 알렉스 퍼거슨 감독, 마틴 욜 감독(현 함부르크 감독)의 신뢰를 얻을 수 있었던 것이며 팀에 없어선 안될 주축 선수로 활약 할 수 있었던 겁니다. 설기현 같은 경우에는 챔피언십리그에서 잠재력을 쌓으면서 스티브 코펠 레딩 감독에 의해 2006년 여름 프리미어리거로 자리잡으며 레딩의 주전급 선수로 활약했던 것이죠.(물론 시즌 중반에는 컨디션 저하로 주전에서 밀렸지만, 워낙 기복이 심한데다 겨울철에 약한 선수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던 것 같습니다.)
이들이 프리미어리그에서 좋은 활약을 펼치면서 유럽 구단들의 한국인 선수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고, 그 뒤를 이어 이동국-김두현-조원희가 잉글랜드 무대를 밟게 되었습니다. 불과 4~5년전 까지 일본과 중국인 선수들이 여럿 있던 프리미어리그에 이제는 동양권 선수 중에서 한국인 선수들만 남게된 것이니, 한국 축구의 인지도가 향상되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물론 빅 리그 진출이 능사는 아닙니다. 이동국 같은 경우 2007년 초, 십자인대 부상에서 회복된지 얼마되지 않은 시점에서 유럽리그에서 아무런 검증을 받지 못한 상황에서 무리하게 잉글랜드 진출을 성공하다 처절하게 실패한 사례는 앞날 유럽 진출을 꿈꾸는 선수들이 되짚어 봐야 할 사례입니다. 이천수 같은 경우에도 2003년 여름 유럽 이적 과정에서 스페인 보다 더 낮은 유럽 리그에서 활약했다면 그의 축구인생은 분명 지금과 다른 길을 걷고 있을지 모릅니다. 박지성과 이영표가 성공할 수 있었던 것과 설기현이 유럽리그에서 롱런할 수 있었던 밑바탕에는 중상위권 혹은 중위권 리그에서 '유럽에서 통할 수 있다'는 검증된 활약을 펼쳤기에 가능했던 겁니다.
그래서 일본인 선수들이 중상위권 리그 진출을 선호하는 것은 한국 축구가 본보기로 삼아야 할 대상입니다. 일본은 2008년 1월 이후 오노 신지(보쿰) 하세베 마코토(볼프스 부르크) 미즈노 코키(셀틱) 혼다 케이스케(VVV 벤로) 같은 선수들을 독일, 스코틀랜드, 네덜란드에 배출시켰습니다.(참고로 벤로는 2008년 여름 2부리그로 강등) 많은 일본인 선수들이 잉글랜드를 비롯 스페인, 이탈리아에서 실패한 현실을 깨달으며 중상위권 리그에서 뛰고 있는 겁니다. 특히 미즈노와 혼다 같은 젊은 선수들은 장래 '일본판 박지성과 이영표'를 꿈꾸며 스코틀랜드와 네덜란드에서 열심히 땀을 흘리고 있습니다. 그중 벤로는 PSV 에인트호벤과 제휴관계를 맺는 클럽이어서 혼다의 앞날 거취가 주목됩니다.(벤로로 이적했던 이유가 아마 에인트호벤 때문일겁니다. 일본에서 활약할 당시에는 '제2의 나카무라'로 명성을 떨쳤죠.)
그런 점에서 얼마전 터키 1부리그 부르사스포르 이적 후 세 경기만에 정규리그에서 데뷔골을 넣은 신영록의 사례는 칭찬을 받아야 마땅합니다. 낮은 리그에서 경쟁력과 실력을 쌓으며 빅 리그에 진출하겠다는 꿈을 키우고 있는 것은 선수의 밝은 장래를 위한 좋은 선택입니다. 굳이 빅 리그가 아니더라도 터키리그에서 오랫동안 롱런하여 맹활약을 펼친다면, 많은 한국인 선수들이 터키리그를 발판삼아 유럽 진출을 향한 꿈을 키우고 있을지 모릅니다. 한국 축구에 대한 인지도는 자연스럽게 향상되는 것이고요.
물고기도 큰물에서 놀아야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한국인 선수가 기량이 뛰어난 선수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국내보다 여건이 더 좋은 유럽리그에서 뛰어야 합니다. 한국 축구가 세계에서 통할 수 있다는 인식을 널리 심어주려면, 유럽리그에서 두각을 나타내야 하는 선수들이 여럿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 과정에서 여러가지의 시행착오들이 있었지만 지금은 박지성과 이영표 같은 선수들이 맹활약을 펼치면서 여러명의 한국인 선수들이 차례로 유럽 무대를 밟고 있습니다.
언제까지 차범근과 박지성 같은 소위 '아시아의 영웅'급 선수로 만족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이들과 같은 대열에 포함될 선수들이 많아야 한국 축구의 인지도가 향상되는 것이며 그것이 한국 축구의 발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