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우즈베키스탄전 2-0 승리는 기록만을 놓고 보면 2골 넣었던 손흥민 공헌도가 큰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경기를 봤던 사람이라면 차두리 드리블 인상 깊게 기억할 것이다. 연장 후반 14분 무려 70m를 질주하며 손흥민 추가골의 발판을 마련했던 차두리 드리블 장면은 어쩌면 한국 축구의 역사적인 순간으로 회자될지 모를 일이다. 한국이 아시안컵에서 우승한다면 더욱 그럴 것이다. 차두리하면 그 장면 떠올리는 사람 많을 것 같다.
자칫 잘못하면 우즈베키스탄전은 차두리 대표팀 은퇴 경기가 될 뻔했다. 그는 이번 아시안컵을 끝으로 대표팀에서 은퇴할 예정이다. 그가 대표팀을 떠나면 2002년 한일월드컵 4강 멤버 중에서 한국 대표팀 현역 선수로 활동할 인물은 사실상 없을지 모른다. 어쩌면 차두리가 끝이다.
[사진 = 차두리가 1월 14일 자신의 트위터에 남겼던 메시지 (C) 차두리 트위터(twitter.com/robotdr22)]
"저런 선수가 왜 월드컵 때 해설을 하고 있었을까요"
차두리와 함께 지난해 브라질 월드컵에서 중계를 했던 배성재 아나운서는 우즈베키스탄전에서 손흥민 두 번째 골이 터진 뒤 이런 말을 했다. 차두리는 브라질 월드컵에서 한국 대표팀 선수가 아닌 SBS 해설위원으로 활동했다. 아마도 누군가는 차두리를 대표팀에서 은퇴했거나 아니면 박지성처럼 현역 선수 생활을 끝낸 선수로 기억할지 모른다. K리그 클래식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라면 충분히 이러한 생각을 할 수 있다. 그때 차두리 근황 잘 몰랐던 사람들이 알고 보면 적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가 브라질에서 해설했던 것은 K리그 휴식기였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무엇보다 차두리 브라질 월드컵 최종 엔트리 제외에 대하여 인맥 축구 희생양으로 인식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차두리 제외는 부상이 맞다. 지난해 3월 6일 A매치 그리스 원정 명단에 발탁되었으나 뜻하지 않게 햄스트링 부상을 겪으면서 끝내 경기를 뛰지 못했다. 당시 홍명보호에서 A매치 1경기도 뛰지 못했던 차두리 월드컵 최종 엔트리 제외는 불가피한 일이었다. 냉정히 말해서 그는 홍명보 전 감독 체제에서 검증된 선수가 아니었다. 그때의 홍명보 전 감독은 자신이 대표팀 사령탑을 맡으면서 잘했던 선수를 월드컵에서 함께 하고 싶었다. 그땐 그랬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홍명보 전 감독은 브라질 월드컵 이전까지 현역 선수였던 박지성 대표팀 복귀를 권유했으며 그때가 2014년 2월이었다. 하지만 박지성 무릎 상태를 확인하면서 대표팀에서 뛸 수 없는 선수로 판단하고 차두리를 그리스전 명단에 발탁했다. 영건 일색이었던 대표팀 스쿼드에서 팀에 부족한 경험을 채워줄 노장 선수로서 차두리가 필요했다는 것을 홍명보 전 감독은 알고 있었다. 비록 차두리가 부상으로 그리스전을 뛰지 못했지만 복귀했던 시기는 3월 6일 그리스전이 끝난지 5일 뒤였던 3월 11일 AFC 챔피언스리그 베이징 궈안전이었다. 햄스트링을 다친 것은 큰 부상이 아니었다.
만약 홍명보 전 감독이 팀 전력의 약점을 강점으로 바꾸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했다면 차두리를 브라질 월드컵 최종 엔트리에 포함시켰을지 모를 일이었다. 당시 소속팀에서 이렇다할 출전 경험 없었던 박주영을 대표팀에 뽑은 것도 파격이었는데(차두리와 다른 점이라면 그리스전에서 결승골 넣었다.) 그보다 더 파격적이면서 팀 체질 개선에 필요했던 인물인 차두리 대표팀 발탁을 못한 것은 결과적으로 아쉬웠다. 배성재 아나운서가 우즈베키스탄전 차두리 드리블 이후에 손흥민 골이 터지면서 왜 월드컵때 해설했냐는 발언에 대하여 사람들이 설득력 있게 느꼈던 것은 당연하다. 차두리가 브라질 월드컵 당시 한국 대표팀에 필요했던 선수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국민들에게 씁쓸한 추억으로 회자되는 브라질 월드컵은 2002년 한일 월드컵 4강 세대가 단 1명도 현역 선수로 참가하지 않았던 최초의 월드컵이었다. 한국 대표팀의 당시 경기력은 굳이 떠올리기 싫을 정도다. 하지만 2015년 아시안컵은 다르다. 한일 월드컵 4강 세대 중에서 지금까지 현역 선수로 활동중인 차두리가 대표팀 맏형으로 대회에 임하는 중이다. 현재까지 아시안컵에서의 활약상은 좋다. 아시안컵 공식 페이스북에서는 조별 본선에서 잘했던 BEST11을 선정했는데 오른쪽 풀백에 차두리가 뽑혔다.(한국에서는 기성용과 함께 포함됐다.) 8강 우즈베키스탄전에서는 70m 질주했던 차두리 드리블 사람들을 열광시키며 팀의 4강 진출을 기여했다.
차두리는 앞으로 A매치 2경기를 더 뛰고 대표팀과 작별할 예정이다. 대표팀 은퇴 무대가 아시안컵 결승전일지 아니면 3~4위전이 될지는 아직 모른다. 어쩌면 아시안컵 이후 대표팀 고별전을 치를 수도 있으나 아직 그 부분까지는 결정되지 않았다. 우즈베키스탄전 차두리 드리블 장면은 2002년 한일 월드컵 4강 세대의 유일한 대표팀 선수로서 국민들에게 감동을 선사했던 '감동적인 선물'이라고 봐야 한다. '마지막 선물'이라는 표현이 더 어울릴 수도 있으나 마지막이라는 단어는 아직 어색하게 느껴진다. 4강과 '어쩌면' 결승에서 우리들에게 보여줄 것이 더 있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