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니를 경쟁자로 생각해 본적은 전혀 없습니다. 나니 말고도 제 포지션에서 뛸 수 있는 선수가 있고 언제든지 다른 선수를 보강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특정 선수를 경쟁자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산소탱크' 박지성(27,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은 지난 5일 <스포츠 동아>와의 단독 인터뷰를 통해 루이스 나니(22)가 자신의 포지션 경쟁자가 아님을 밝혔다. 그동안 두 선수를 경쟁자 혹은 라이벌로 주목했던 국내 여론과 대조적인 반응을 보인 것.
물론 박지성은 나니를 경쟁 상대로 의식하고 싶지 않을 것이다. 같은 맨유의 일원인데다 5세 어린 선수이기 때문에 라이벌이 아닌 '맨유 후배'로 여기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더욱이 맨유는 현 유럽 최고의 클럽으로서 지구촌에서 기량이 뛰어난 선수들이 스쿼드를 가득 메우고 있기 때문에 박지성과 같은 반열에 있는 선수들이 대부분이다. 국내 여론에서는 두 선수를 경쟁 구도로 바라보며 맨유 경기를 보고 있지만 분명한 것은 이 과정 속에서 '왜곡된' 시선이 자리잡고 있다는 것이다.
박지성, 긱스-나니와 다른 선수일 뿐
그동안 국내 여론이 두 선수를 라이벌 관계로 부각시켰던 이유는 두 선수의 포지션이 똑같기 때문이다. 더욱이 알렉스 퍼거슨 감독이 지난해 11월 11일 잉글랜드 일간지 <데일리 메일>을 통해 "현재 내 스쿼드의 구상은 긱스는 나니로 대체되는 것이다. 맨유는 나니의 영입을 위해 많은 돈을 투자했다"고 발언하면서 본격적으로 박지성과 나니의 경쟁구도가 그려졌다. 즉, 35세 백전노장 라이언 긱스를 대체하기 위해 2005년과 2007년 맨유로 이적했던 박지성과 나니가 '긱스의 자리'를 노리고 있다는 것이 국내 여론의 공통적인 시각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박지성은 긱스의 후계자로 영입된 선수로 보기 어렵다. 2005/06시즌 개막 직전 잉글랜드에서 가졌던 프리시즌 경기에서 줄곧 수비형 미드필더로 뛰었던 것이 그것이다. 당시 박지성은 4-3-3 포메이션에서 원 볼란치 역할을 맡아 두 명의 공격형 미드필더를 보조하는 역할을 소화했다. 이미 PSV 에인트호벤 시절 왼쪽 윙 포워드로서 맹활약을 펼쳤기 때문에 측면 옵션으로서는 더 이상 검증받을 필요가 없어 멀티 플레이어 능력이 있는 선수인지에 대한 확인 절차가 이뤄졌던 것이다. 퍼거슨 감독은 애초부터 박지성과 긱스의 역할을 다르게 생각했던 것이다.
더욱이 박지성은 긱스와 스타일이 다른 유형의 선수다. 박지성이 '이타적'이라면 긱스는 '이타와 이기를 고루 활용하는' 유형이라 할 수 있다. 긱스는 자신의 감각적인 왼발을 앞세워 날카로운 슈팅과 세트 피스, 크로스, 패스를 자유 자재로 구사하여 팀의 골을 엮어내는 선수다. 이러한 역할을 비슷하게 소화할 수 있는 선수가 나니였고 퍼거슨 감독이 긱스의 대체자로 나니를 선택했던 이유가 이 때문이었다.
국내 여론에서는 나니를 '이타심 없는 선수'로 바라보고 있지만 지난 시즌 11도움으로 팀 내 도움 2위를 기록했다는 것은 이를 뒤집기에 충분하다. 무리한 슈팅 난사와 팀 공격의 템포를 끊는 타이밍 느린 드리블 돌파 때문에 '이기적인' 선수로 불려지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타적인 면모가 없는 것은 아니라는 것. 긱스의 역할을 이어받을 수 있는 잠재력이 있기 때문에 맨유에 존재하는 것이며 1400만 파운드의 비싼 이적료가 책정될 수 있었던 것이다.
박지성 경쟁자는 리차드슨이었다?
많은 사람들은 2006/07시즌까지 맨유의 왼쪽 윙어로 활약했던 왼쪽 윙어 키어런 리차드슨(선더랜드)의 존재를 잊고 있다. 긱스의 백업 역할을 소화했던 잉글랜드 대표팀 경력의 유망주였지만 확연한 성장세를 거듭하지 못하면서 지난해 여름 선더랜드로 이적했던 선수.
한 가지 흥미로운 것은, 리차드슨이 맨유에서 출전 기회가 많았던 시기가 박지성 합류 이후였다. 그는 2004/05시즌까지 맨유에서 10경기 이상 출전한 적이 없었지만 2005/06시즌 36경기(6골 2도움), 2006/07시즌 22경기(2골 1도움)에 출장하는 등 긱스와 박지성의 체력 부담을 덜어줬다. 만약 그가 거의 매 경기에서 맹활약을 펼쳤다면 국내 여론으로부터 '박지성 경쟁자'로 그려졌거나 나니의 영입이 이뤄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많은 경기에 출장했음에도 경기력이 퍼거슨 감독을 흡족시키지 못했고 철저한 '긱스의 백업'으로 그려졌기 때문에 박지성과의 경쟁 구도에서 벗어나 있던 것이다.
그런 리차드슨을 대신하기 위해 영입된 선수가 바로 나니였다. 당시 긱스가 노쇠화 기미를 보인데다 박지성이 9개월 부상 공백으로 빠졌기 때문에 2007/08시즌 전반기에 많은 경기에 출장할 수 있었고 꾸준히 공격 포인트를 기록하는 인상적인 활약을 펼쳐 팀에 필요한 공격 옵션이 된 것이다.
여기에는 나니의 영입을 주도했던 '나니와 같은 포르투갈 국적인' 카를로스 퀘이로스 전 맨유 수석코치(현 포르투갈 대표팀 감독)의 영향이 있었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다. 퀘이로스 감독은 포르투갈 선수들을 편애한다는 외부의 지적이 있었지만(판니가 호날두와 다툴 당시 "너의 아버지(퀘이로스)에게 일러라"고 말한 부분에서 비롯된 것) 반대로 나니가 맨유에서 성공적인 적응을 할 수 있도록 '아버지' 처럼 도와줬던 존재라 할 수 있다.
이렇듯, 리차드슨의 사례처럼 국내 여론에서 흔히 말하는 '박지성 경쟁자'는 원래부터 존재했었다. 맨유는 2000년대 중반 6명의 측면 옵션을 보유했는데 왼쪽 윙어로 긱스-박지성-리차드슨, 오른쪽 윙어로 호날두-플래처-솔샤르(공격수와 번갈아감)를 두고 있었으며 리차드슨이 떠난 이후에는 나니가 그 몫을 대신했다. 단지 리차드슨이 경기에서 기대에 미치지 못했을 뿐 나니가 제 몫을 했기 때문에 '박지성vs나니'의 경쟁 구도가 국내 여론에서 이뤄졌던 것이다.
박지성-나니, 활용도가 다르다
그런데 퀘이로스 감독이 올해 여름 팀을 떠나면서 나니의 활용도가 달라졌다. 퍼거슨 감독은 지난 시즌 나니와 긱스를 번갈아가면서 기용했지만 올 시즌 퀘이로스 감독이 떠나자 박지성과 나니의 활용도를 철저하게 구분했으며 긱스를 중앙 미드필더로 변신시켰다.(퀘이로스 감독은 맨유의 전술을 총 지휘했던 지도자로서 퍼거슨의 브레인으로 통했다. 지금은 퍼거슨 감독이 다시 팀 전술을 담당하게 된 상황)
박지성은 프리미어리그 선발 출장이 많았던 반면에 나니는 UEFA 챔피언스리그와 칼링컵에서 선발 출장이 잦았다. 프리미어리그에서는 나니의 출장이 적었지만 챔피언스리그와 칼링컵에서는 박지성이 많은 경기에 모습을 드러내지 못했다. 박지성은 'EPL 전용', 나니는 '챔스&칼링컵 전용'이었던 셈. 퍼거슨 감독이 두 선수의 기용을 철저하게 구분하고 있다는 것을 엿볼 수 있다.
그런데 강팀 경기 출장 횟수는 박지성이 월등히 높다. 맨유가 챔피언스리그와 칼링컵에서 '대회 우승'을 노릴만한 강팀과 상대하지 않았지만 프리미어리그에서는 라이벌 팀들과 다크호스 팀과 맞대결했었다. 박지성은 무릎 부상 여파로 9월 13일 리버풀전에 결장했지만 21일 첼시전과 11월 8일 아스날전, 22일 아스톤 빌라전, '지역 더비'인 30일 맨체스터 시티전에 선발 출장한 반면에 나니는 프리미어리그 선발 출장이 2회에 그친 상황. 칼링컵 3경기에 선발 출장 하는 등 중위권 및 약팀 경기에 많은 모습을 드러냈다.
이는 두 선수의 스타일이 강팀과 약팀 경기에 잘 맞기 때문이다. 박지성은 강팀과 다크호스와의 대결에서 부지런한 움직임을 앞세운 압박 수비로 상대팀의 측면 돌파를 철저히 견재하는 재미를 봤다. 지난 4월 FC 바르셀로나전에서 리오넬 메시가 소유하던 공을 몇 차례 인터셉트한 것을 비롯 9월 21일 첼시전 조 콜과 조세 보싱와, 11월 8일 아스날전에서 테오 월콧을 봉쇄했고 30일 맨시티전에서는 하파엘 다 실바와 함께 협력 수비하여 호비뉴를 괴롭히는 등 팀 전력에 활기를 불어 넣었다. 반면 나니는 언제든지 공격 포인트를 기록할 수 있기 때문에 맨유를 상대로 밀집수비를 펼치는 약팀 전술에 잘 맞았던 것이다.
박지성에게는 나니의 존재가 필요하다
퍼거슨 감독은 '스쿼드 로테이션 시스템'을 쓰기로 유명한 지도자. 매 경기마다 주전 선수를 바꾸는 전술로서 20여명의 주전 가용 인원을 확보한다. 웨인 루니와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리오 퍼디난드, 네마냐 비디치 같은 팀의 공격과 수비 중심에 있는 몇몇 선수들을 제외하면 로테이션 멤버인 셈이다. 물론 붙박이 주전이었다가 벤치 신세를 지게 된 카를로스 테베즈의 사례처럼 맨유에서 영원한 주전은 없는 법이다. 그나마 올 시즌에는 박지성과 데련 플래처의 프리미어리그 선발 출장이 잦았기 때문에 이들은 맨유의 붙박이 주전 멤버로 통할 수 있었다.
특히 박지성은 나니가 있었기 때문에 프리미어리그에 집중할 수 있었다. 만약 나니가 리처드슨처럼 기량이 저조했다면 박지성의 출장 기회가 늘었을지 모르나 무리한 출장으로 인한 부상 가능성이 커 '잦은 부상으로 신음하던' 박지성에게는 충분히 독이 된다. 나니가 챔피언스리그와 칼링컵에서 제 몫을 다했기 때문에 박지성이 프리미어리그에서 출중한 기량을 발휘할 수 있었던 것이며 이러한 두 선수의 '동반' 기량 상승과 경기 감각 향상을 노리는 퍼거슨 감독의 지략은 칭찬받아 마땅하다.
한때 국내 여론에서는 박지성이 지난달 아스날전 이전까지 3경기 연속 결장할 때 ´박지성이 나니에게 밀렸다´, ´맨유 2군으로 전락했다´는 주 된 부정적 반응을 형성했다. 그러나 박지성은 이후 거의 매 경기 선발 출장을 거듭하여 이들의 주장을 뒤엎었다. 이미 박지성의 가치와 존재의미는 맨유에서 보낸 네 시즌을 통해 충분히 증명되었기 때문에 '박지성<나니', '박지성=맨유 2군' 같은 일희일비는 철저히 배제되어야 할 것이다. 더욱이 박지성은 맨유 2군 격인 리저브 경기에 출전한 경력이 없는 철저한 1군 선수다.
박지성에게는 나니의 존재가 필요하다. 2003년 1월 PSV 에인트호벤 입단 시절 롬 메달(아약스)이 있었기 때문에 주전을 목표로 뛸 수 있었고 그 토대가 맨유에서 이어졌기 때문에 붙박이 주전을 향해 뛰었던 것이다. 그리고 나니가 있음으로 해서 자신의 자리를 확고하게 지키겠다는 책임감이 우러나오며 팀 내 입지가 조금이라도 떨어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물론 나니도 팀 내 입지 상승을 바라고 있는 존재이기 때문에 이들은 맨유의 동료이자 공생관계, 그리고 선의의 경쟁자였을 뿐 포지션 한 자리를 다투려고 치열하게 경쟁하는 라이벌 관계가 아니다.
p.s : 최근에는 맨유 입단이 기정 사실화된 조란 토시치까지 박지성 경쟁자로 여겨지는 상황이다. 그러나 필자는 토시치가 박지성 경쟁자가 아님을 밝히고 싶다. 그 이유는 며칠전 이 블로그를 통해 올렸던 칼럼에서 말하고자 한다.
http://bloggernews.media.daum.net/news/2130824
By. 효리사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