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사진은 제가 오랫동안 컴퓨터에 저장했던 사진 중 하나입니다. 당시 정규리그 3연패 및 통산 6회 우승을 기록한 성남의 주장이 샴페인을 들고 환호하는 장면이죠. 성남의 정규리그 우승(1993~1995년, 2001~2003년) 순간에는 항상 빠짐없이 등장했던 등번호 7번의 테크니션 미드필더 였습니다. 2003년 연말 성남 구단 홈페이지에 저 사진이 있어서 컴퓨터에 저장할 수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그 사진을 보면서 예전에 성남 구장을 빈번하게 찾았던 추억을 떠올리기 위해서였죠.

저 사진은 2003년 11월 1일 성남vs부천전 종료 후에 성남 측에서 찍었던 것이며, 저는 이날 관중석 맨 앞에서 경기를 지켜 봤습니다. 경기 종료 후 성남 선수들이 정규리그 우승을 축하하기 위해 샴페인을 흔들고 그라운드를 한 바퀴 도는 행사가 있었는데 '사진 속의 주인공'은 15,000명의 관중들에게 손을 흔들고 환호하면서 큰 소리로 이렇게 외쳤습니다. 성남을 응원했던 관중들에 대한 보답이었죠.

"여러분 고맙습니다"

그러나 그가 성남 홈구장에서 우승의 기쁨을 누렸던 것은 이때가 마지막 이었습니다. 성남이 2004년 A3 챔피언스컵과 하우젠컵에서 우승하고도, 전자는 중국에서 열렸던 대회였고 후자는 성남 홈 구장에서 우승을 확정지었지만 대전 서포터즈가 그라운드에 난입하여 우승 트로피를 파손하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성남 선수들이 우승 세레머니를 마음 껏 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성남 홈 구장에서 열렸던 2004년 12월 1일 AFC 챔피언스리그 결승 2차전에서는 그가 그라운드에서 뛰는 모습을 볼 수 없었습니다. 성남이 1차전 원정에서 '사우디 최강' 알 이티하드를 3-1로 이겨 2차전이 열리는 성남 홈 구장에서 우승이 기정 사실인것 처럼 여겨졌는데 뜻하지 않게 0-5 대패로 준우승에 만족했습니다. 성남이 전반전에 2골 내주는 어려운 경기 운영을 펼치고도 끝내 이 선수는 그라운드를 밟지 못했죠. 후반전 직전, 전광판에서 그의 모습을 비췄지만 그는 벤치에서 후배 선수들을 가만히 지켜봤을 뿐 몸을 풀지 않았습니다. 결국, 이 선수는 경기에 출전하지 못했고 연말에 구단으로부터 청천벽력의 소식을 들었는데,

"재계약 포기"

1992년 프로 데뷔 이후 13시즌 동안 '이적 없이' 성남을 위해 몸을 바쳐 헌신하던 30대 중반의 노장 선수가 한순간에 방출 통보를 받은 것입니다. 그의 활약에 아낌없는 찬사를 보냈던 K리그 팬들에게 큰 충격을 안겨줬던 것이죠. 그가 성남 구단에 대한 아쉬움을 언론에 털어놓았던 내용이 아직도 제 머릿속에 떠오릅니다.

"성남에서 13년 동안 뛰면서 많은 기록을 세웠는데 구단의 배려가 아쉽다. 통산 100호골과 70-70클럽 가입 등 앞으로 세워야 할 기록도 많은데 안타깝다"

그리고 계약 만료 시점이 다가왔던 12월 말 즈음에는 성남 서포터즈 <천마불사> 홈페이지를 통해 이러한 내용의 글을 남겼습니다.

"저에게는 아직도 많은 시간이 주어지지는 않았지만 성남구단을 위해 여러분들을 위해 단 1분간이라도 뛸 수 있는 기회를 가져보고 싶습니다. 이제는 100골에 대한 미련도 70-70에 대한 미련도 버렸습니다. 오직 진정한 스포츠인으로서 여러분 앞에 서고 싶습니다. 만에 하나 그러한 여건이 허락되지 않는다 하여도 최선을 다한 사람들로서 이세상에 비추어 진다면 미련없이 뒤돌아서 한번 크게 웃어보는 것도 좋을 듯합니다."

이 글에 '감동'했던 성남 서포터들은 한달 뒤 이 선수의 방출방침 철회를 요구하며 재계약할 것을 요구 했습니다. 그러나 성남 구단은 서포터들의 요구에 아랑곳 않고 '벤치 멤버로 밀렸던' 그를 받아주지 않았습니다. 이후 그는 2005시즌 개막에 맞춰 성남 구장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K리그 은퇴를 발표했습니다. 성남 가슴에 별 6개를 안긴 주역이었음에도 홈팬들 앞에서 가진 은퇴식, 은퇴 경기, 영구 결번도 없이 정든 K리그 그라운드를 쓸쓸히 떠난 것이죠. 역대 K리그 최고의 선수로 활약했던 그의 K리그 선수 생활 '말년'은 이렇게 초라함으로 끝을 맺었습니다.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은, 1992년 프로 데뷔 이후 올해까지 17시즌 동안 줄곧 한 팀에서 뛰던 롯데 염종석(은퇴)과 SK 안경현(전 두산)을 떠올리실 겁니다. 최근 여론에서 큰 이슈가 되고 있는 두 선수의 일이 4년전 K리그에서 똑같이 벌어진 것입니다. 물론 염종석은 내년 시즌 롯데 홈 개막전에서 은퇴식을 치르지만, 그래도 씁쓸한게 사실입니다.)

이후, 저는 2005시즌 성남에서 개막전이 열렸던 경기를 본 뒤 -김학범 전 감독의 사령탑 부임 후 첫 경기였기 때문- 다시는 성남 구장을 찾지 않았습니다. 성남을 K리그 최고의 팀으로 이끌었던 선수를 내친 구단이 너무나 싫어서였죠. 당시 성남의 7번 주장 완장을 차던 그는 제 마음속의 데이비드 베컴(잉글랜드 대표팀의 7번 주장선수. 지금은 테오 월콧에게 7번을 넘겨주었죠.) 같은 또 하나의 '축구 영웅'이었던 셈입니다. 공교롭게도 그는 베컴처럼 프리킥 스페셜 리스트로 명성을 떨쳤죠.

그리고 2008년 12월 1일, 다시는 성남에 돌아올 것 같지 않았던 그가 우리들 앞에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성남팬들을 위해 선수 자격으로서 단 1분 이라도 뛰고 싶다던 그가 친정팀에서 다시 일하게 된 것이죠. 성남 선수도, 성남 코치도 아닌 성남 감독 대행으로서 말입니다. "건방지다고 할 수 있겠지만 프로는 2등이 필요없다. 우승에 도전하겠다"는 그의 말에는 전혀 거만함이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현역 시절 많은 우승 경험을 했던 K리그 최고의 선수였기 때문에 감독으로서 성공할 수 있는 역량이 있는 겁니다.

축구팬들은 그를 역대 K리그 최고의 선수이자 K리그를 대표하는 레전드로 치켜 세우고 있습니다. 그의 이름은 신태용.



어떤 이들은 신태용을 김현석(현 울산 코치)과 더불어 한국의 대표적인 '국내용 선수'라고 말합니다. 신태용은 1993년부터 1997년까지 A매치 21경기(3골)에 출장했지만 K리그의 멋진 활약과는 달리 국가 대항전에서 인상깊은 활약을 심어주지 못했습니다. 자신의 마지막 A매치였던 1997년 5월 21일 일본전에서는 상대팀 선수들에게 철저히 막힌 끝에 고전했고 이후 무릎 부상까지 겹쳐 더 이상 태극마크를 달 수 없었습니다. 당시 축구 전문가들은 그가 몸싸움과 체력에 약점이 있다고 지적했고 축구선수 치고는 왜소한 체격(174cm, 66kg...은퇴 전 70kg)도 아쉬웠던게 사실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기억하는 신태용은 '한국 축구 최악의 굴욕이었던' 1996년 아시안컵 이란전 2-6 패배 당시 그라운드에서 뛰었던 선수 중에 한 명입니다. 전반 33분 서정원을 대신하여 교체 투입된 뒤 1분 만에 한국의 2번째 골을 넣는(이때까지만 하더라도 한국이 2-1로 앞섰죠.) 활약을 펼쳤습니다. 그런데 후반전이 되자마자 다리가 풀린 듯 이란 선수들에게 힘 한번 제대로 쓰지 못해 무너져 후반 6분 아지지의 동점골을 헌납하더니, 알리 다에이에게 4골 내주고 2-6 패배의 현장에 서게 되었습니다.

신태용은 당시 이란전의 충격을 이기지 못한듯, 1997~1998년 K리그에서 부상과 슬럼프까지 겹치는 힘든 나날을 보냈습니다. 1996년 미드필더로 뛰었음에도 29경기 21골 3도움으로 정규리그 득점왕을 수상했던 그가 이듬해 19경기 3골 2도움에 그쳤고 1998년에는 24경기 3골 6도움에 벤치 멤버로 밀리는 수모까지 당했습니다. 신태용이 2년간 부진했던 시절의 성남(당시 팀 명은 천안 일화)은 그저 그런 평범한 팀으로 전락하던 때였습니다.

그런 신태용이 '제2의 전성기'로 나래를 펼치기 시작한 것이 1998년 9월 고 차경복 감독이 성남 사령탑을 맡으면서 부터 였습니다. 차 감독에 의해 '열심히 운동에 매진하라'며 팀의 정식 주장을 맡아 연일 붙박이 주전 선수로 뛰었던 것이죠. 스승의 힘에 자신감을 되찾은 신태용은 1993~1995년에 이어 2001~2003년에 또 한번 정규리그 3연패 달성을 이끌었습니다. 90분 동안 충분히 뛸 수 있는 체력에 수비형 미드필더까지 도맡아 끈질긴 몸싸움을 펼치는 선수로 거듭나면서 '업그레이드'에 성공한 것이죠. 무릎 부상으로 선수 생활의 중대 위기를 맡던 그가 그라운드에서 강건한 모습을 뽐낸 것이었습니다.

통산 401경기 출장 99골 68도움,
정규리그 6회와 하우젠컵, FA컵 우승/아시아 클럽 선수권, 아시아 슈퍼컵, A3 챔피언스컵, 아프로-아시안컵 우승,
1992년 신인왕,
1995년과 2001년 K리그 최초 두 차례 정규리그 MVP,
1996년 정규리그 득점왕,
K리그 BEST 11 9회(1992~1996년, 2000~2003년) 등등...

신태용은 많은 우승과 대기록을 세우며 K리그에서 가장 화려한 경력을 자랑했습니다. 그것도 성남 소속으로 쌓았던 경력이기 때문에 축구팬들로부터 '역대 K리그 최고의 선수'라는 찬사를 받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유일하게 기록을 세우지 못했던 것은 100호골 달성과 70-70클럽이었을 뿐이죠.

특히 신태용의 100호골이 무산된 것은 두고두고 아쉬운 일입니다. 하지만 그가 실력이 부족해서 넣지 못한 것이 아니라 일부러 넣지 않았던 것입니다. 2004 시즌 막판 팀의 페널티킥 기회가 왔으면서도 후배들에게 넘긴 것이죠. "100호골은 페널티킥 골로 넣지 않겠다"는 자기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였습니다. 100호골 만큼은 자신의 전매특허였던 날카로운 슈팅으로 멋지게 넣고 싶었던 것이죠.

100호골과 관련된 하나의 일화가 생각납니다. 2004년 9월 부산전이었는데 99호골 기록하던 신태용이 자신의 페널티킥 기회를 98호골 기록하던 '후배' 김도훈에게 넘겼던 것입니다. 신태용은 100호골을 반드시 필드골로 넣으려고 후배에게 페널티킥을 양보했고 김도훈이 99호골을 기록했습니다. 그런데 한달 뒤 포항전에서 페널티킥 기회가 주어지더니 이번에도 김도훈에게 양보한 것입니다. 후배가 자신보다 먼저 100호골을 기록하더라도 끝까지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고 싶었던 겁니다. 결국 김도훈은 선배의 양보 속에 100호골을 넣었지만 신태용은 더 이상 자신의 통산 골 기록에 숫자 '1'을 더하지 못하고 쓸쓸히 그라운드를 떠났습니다.




신태용이 축구팬들에게 아낌없는 사랑을 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항상 K리그에 대한 사랑이 넘쳐났기 때문입니다. 특히 2001년에는 성남이 정규리그에서 우승하자 일본 J2리그에 속한 오이타 트리니타로 부터 이적 제의를 받았던 적이 있었습니다. 당시 한국 선수들의 J리그 진출이 활발했던 시기여서 J2리그에서도 한국 선수 영입에 군침 흘렸고 교토 퍼플상가가 '촉망받는 유망주' 박지성을 영입하더니 오이타는 그해 K리그 MVP를 수상한 신태용에게 접근한 것입니다.

그러나 신태용은 "K리그 MVP가 왜 일본 2부리그에서 뛰어야 하느냐"며 단호하게 거절했습니다. -사실, K리그에서 최고의 활약을 펼치는 선수가 J2리그에서 뛴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되는 이야기죠.- 그는 성남에 대한 충성심을 나타내며 K리그의 자존심을 지켰습니다. 지금도 일본 진출을 원하는 국내 선수들이 새겨들어야 할 대목이죠. 이후 신태용은 K리그 올스타전 등 각종 K리그 행사에서 인터뷰를 가지면 항상 "K리그 경기 많이 보러오세요"라는 멘트를 빼놓지 않았습니다.

2003년 7월 27일 대전전에서는 축구팬들에게 두 번의 '진기명기쇼'를 펼쳤습니다. 하나는 자신의 왼쪽 코너킥이 누군가의 머리도 거치지 않고 아름다운 곡선을 그리며 K리그 통산 11번째 코너킥 골을 성공시킨 것입니다. 또 하는 경기 도중 골키퍼를 봤던 것입니다. 후반 막판 골키퍼 김해운이 목부상으로 경기를 뛸 수 없는데 팀이 교체 한도 카드 3명을 모두 쓰는 바람에 필드 플레이어 중 한 명이 골키퍼를 보게 된 것입니다. 이에 신태용은 골키퍼를 맡겠다며 장갑을 끼었고 상대팀 슈팅 5개를 잡아 2골 내줬음에도 팀의 3-2 승리를 지켰습니다.




그리고 제 머릿속에 영원히 잊혀지지 않을 신태용의 트레이드 마크가 하나 있습니다. 신태용은 관중석 가까이에 있으면 항상 박수를 유도했습니다. 주로 성남의 홈 경기와 올스타전에서 관중석에 다가가 박수를 치며 사람들의 환호와 박수를 이끌었죠. 축구팬들이 축구 경기를 재미있게 관전하기 위해서, 관중들의 박수가 그라운드에 서 있는 22명의 선수들에게 힘이 될 수 있도록 박수를 유도했던 것입니다.

2004년 3월 전북과의 슈퍼컵에서는 관중들에게 큰 웃음을 선사하기도 했습니다. 팀이 경기 종료 전까지 0-2로 패색이 짙어지자 후반 45분 관중석 가까이에서 윤정환의 마크를 뿌리치기 위해 드리블 돌파를 시도 할때 큰 목소리로 "야. 아저씨도 좀 뛰자"라며 관중들을 웃기게 했습니다. 팀이 지고 있는 상황에서도 관중 앞에서 신경질을 부리지 않고 농담성 어조로 관중들에게 팬 서비스를 안긴 것이죠.

2003년 7월 수원전에서는 신태용의 '배짱'이 두둑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수원 서포터즈 그랑블루가 심판 판정에 불만 품으며 그라운드를 향해 물병 투척하자 그 자리로 다가간 것이죠. 신태용은 자신 앞에 물병이 떨어진 것을 발견하자 병 뚜껑을 열고 물을 마셨습니다. 그가 그랑블루에게 외쳤던 한 마디가 이랬습니다.

"물 마시게 해줘서 고마워"

라며, 그랑블루를 향해 엄지 손가락을 치켜 세우고 박수를 쳤습니다. '이런 일을 예상치 못했던' 그랑블루 분위기는 갑자기 조용해졌고 이후 수원 서포터 어느 누구도 그라운드에 물병을 던지는 못했습니다. 신태용의 '포스'가 다른 선수와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는 일화였죠. 당시 K리그 최고의 다혈질로 꼽히던 190cm의 샤샤도 자신보다 16cm 작은 신태용 앞에서 쩔쩔맸고 상대팀의 후배선수들이 신태용에게 거친 파울을 가하면 재빨리 고개 숙여 인사할 정도로(주로 광주 상무 선수들이 그러더군요.) 오랜 주장 생활을 통해 후배 선수들을 장악하는 리더십이 강했던 겁니다. 그런 영향력이 있었기 때문에 38세의 나이에 사령탑을 맡게 된 것이죠.




신태용 하면 '최고'라는 이미지가 떠오릅니다. 현역 시절 관중들에게 엄지 손가락을 치켜 세웠던 것 처럼 실력에서도, 커리어에서도 늘 K리그 최고였으니까요. 25년의 K리그 역사가 50년, 100년이 흘러도 '신태용'이란 이름은 잊혀지지 않을 것이며 '역대 K리그 최고의 선수', 'K리그 레전드'라는 수식어는 영원할 것입니다.

그런 신태용이 지난 1일 성남 감독 대행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는 2009시즌 성남의 정규리그 우승을 이끌겠다는 당찬 포부를 나타냈는데 이러한 면모는 37세의 나이에 스페인 FC 바르셀로나 사령탑을 맡아 팀의 프리메라리가 독주를 이끌고 있는 호셉 과르디올라 감독을 떠오르게 합니다. 현역 시절 '신태용 맹활약=성남 우승' 공식을 성립시켰던 그가 사령탑으로서 성남의 고공질주를 이끌며 '한국판 과르디올라'로 떠오를지 주목됩니다. 공교롭게도 신태용과 과르디올라는 현역 시절 성남과 바르셀로나의 미드필더이자 주장으로 활약하여 선수들을 강하게 통솔했던 스타일에 공통점이 있습니다.

2009시즌 K리그 최대의 이슈는 '신태용의 성남'입니다. 성남 감독 대행으로서 K리그 지도자에 첫 발을 내딛는 신태용이 자신의 화려했던 선수 시절에 이어 또 하나의 '신화'를 이룰 수 있을지 기대됩니다. 아울러 "성남 홈 구장을 노란 물결로 뒤덮일 수 있도록 팬들과 함께 노력하겠다"고 밝힌 그의 축구팬 사랑이 영원하기를 바랍니다.

신태용 감독 화이팅...!!!

By. 효리사랑
Posted by 나이스블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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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나이스블루 2008.12.03 00:1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 글을 쓰는데 4시간 걸렸습니다. 2주 후에 시험인데도, 신태용 글을 적고 싶어서 엄청난 시간을 투자했네요. 시간 손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 글을 쓰면서 보람이 나네요.

  2. 감자 2008.12.03 01:4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팬을 즐겁게 하는 재주가 있었던 선수로 기억합니다.
    다시 돌아와서 축구팬으로써 기쁩니다. ^^
    또한 짧고도 굵게 타올랐던 '노상래'선수도 다시 보고 싶네요.
    또 들를께요.~

  3. 문수 2008.12.03 02:2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글 감사합니다. 신선수에 대한 잊지못할 기억이 저도 한가지있지요. 외국팀과의 경기로 기억하는데 고정운선수와 둘이 상대팀 전체를 들었다놨다 했지요. 2명이 4백 4명을 가지고노는 경기,이런 경기는 지금까지 본 적이 없었어요.그 경기가 혹시 어떤 경기였는지 글쓴님은 아시면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나이스블루 2008.12.03 13:1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 당시 '성남이 아닌' 일화가 외국팀과 가졌던 경기는

      제 기억엔 1996년 잠실 주 경기장에서 열렸던 남아공 클럽과의 아프로-아시안컵에서 5-0으로 이겼던 경기가 아니었나 싶네요.

      그때 박종환 감독 있었고, 신태용, 고정운 등 '제1 전성기' 시절 멤버들이 여럿있었죠.

      그 경기가 제 기억속에 남는데,
      그때 당시 K리그 팀이 외국 클럽과 경기한게 많지 않았고, 경기 내용및 결과에서 엄청난 우세를 점했고, 방송 중계까지 되었다면...

      제 기억으로는 96년 아프로-아시안컵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 문수 2008.12.03 18:31  댓글주소  수정/삭제

      맞습니다. 효리럽님의 해박한 지식및 열정에 감동했습니다. 성남이 신감독님아래 우승하길 빕니다. 기자들보다 100배 뛰어난 님같은 전문가분이 모따 귀화를 촉구하는 글좀 써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나이스블루 2008.12.03 23:3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비슷하게 나마,

      http://bloggernews.media.daum.net/news/2113518

      11월말에 라돈치치 귀화 관련 글을 쓰긴 했는데,
      만족하실라나 모르겠네요...ㅎㅎㅎ

      항상 건겅하고 행복하세요...^^

  4. 소울 2008.12.03 03:2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 멋진 글입니다.. 보고 감동의 눈물을 글썽거렸습니다.. 전 서울팬이지만 K리그의 레전드, 킹오브레전드 신태용 선수를 존경하는 사람으로서, 신태용의 성남이 천마처럼 높이 날기를 기원합니다.

  5. shingun 2008.12.03 08:3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신태용선수와 최근에 호주에서 술을 한잔 했었습니다.
    마음 씀씀이가 참으로 좋았던것을 기억합니다.
    약간 짖굿은 장난을 좋아하시 더라구요 ㅋㅋ
    (체구가 제 생각보다 왜소해서 놀랐습니다. ^^;;절대로 왜소하다는건 아닙니다. )
    참으로 잘 챙겨주시더라구요. 눈빛 캬~~
    다시 한번 성공하시기를 바랍니다^^ 신태용 화이팅~~!!

    • 나이스블루 2008.12.03 13:2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사실 태용 선수 체격이 다른 축구 선수들에 비해 왜소한건 사실입니다. 호리호리하죠...^^

      태용 선수가 '의리파'라서,
      남자다운 기백이 넘쳐나는 사람임엔 분명합니다.

  6. 암바 2008.12.03 08:5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고작 5년밖에 안됐거늘 신태용이라는 이름이 머릿속에서 살짝 지워져 있었네요.

    골키퍼를 보던 모습이 너무 인상적이라, 그당시 제가 생각하던 신태용의 위상이
    그대로 다시 떠올라 버렸습니다. 너무 감사합니다! ^ ^

    정말 멋진선수였지요 ㅋㅋ 이젠 감독님!
    기대하겠습니다!

  7. deutsch90 2008.12.03 09:2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글 너무 감동이고 고맙습니다.. 퍼가고 싶은데.. 소스밖에 복사가 안되네요..
    소스라도 가져갑니다.. 멋집니다..

    • 나이스블루 2008.12.03 13:2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오른쪽 마우스를 제가 금지했던 이유는
      다른 분들이 배끼실 것 같아서
      (블로그 표절 사례가 많죠...ㅡ.ㅡ)
      제가 작년 6월 블로그 오픈 이후 지금까지 오른쪽 마우스를 금지 했어요.

      네...고맙습니다...^^

  8. 쵸파블 2008.12.03 11:2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신태용 "감독" 의 활약이 기대됩니다.
    걱정도 많은게 사실이지만 잘 하겠죠..
    성남이 어떤 모습으로 2009년을 맞이할지 궁금해지는군요.
    정성어린 글 잘봤습니다.

    트랙백 남기고 갑니다.

  9. 후식이 2008.12.03 14:2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글 잘 읽었네요,
    롯데팬으로서 염종석 선수에대한 언급 감사하네요.

    신태용선수, 경기장에서 참 오래 보였던 선수였는데,

    어느 순간 잊고 지냈던 것 같습니다.

    글쓴이님께서 얼마나 신태용선수를 아끼고 존경하는지 잘 느낄 수 있었습니다.

    성남일화를 잘 이끌어서, k리그 부흥에도 큰 역할을 햇으면 좋겠군요 ^^

  10. shkworld 2008.12.06 21:3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 읽었습니다. 신태용선수에 대한 애정이 묻어나오는 글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