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혁의 소치 올림픽 메달 획득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6회 연속 올림픽에 출전했던 저력을 이번 대회에서 충분히 보여줬습니다. 이를 악물면서 빙판을 질주하며 기록 단축을 위해 최선을 다했죠. 실제 기록과 순위는 자신의 전성기 시절에 비해 부족함이 있었으나 36세에 접어든 체력적인 약점을 근성으로 만회하려는 모습이 국민들에게 좋은 인상으로 다가왔습니다.
이로써 이규혁의 올림픽 도전은 막을 내렸습니다. 16세였던 1994년 릴리함메르 올림픽을 시작으로 1998년 나가노 올림픽, 2002년 솔트레이크 시티 올림픽, 2006년 토리노 올림픽, 2010년 벤쿠버 올림픽, 그리고 2014년 소치 올림픽에 이르기까지 20년 동안 6번의 올림픽에 참가했습니다. 비록 올림픽에서 메달을 따냈던 경험이 없었으나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 끊임없이 도전했다는 것만으로도 대단합니다. 지금까지 한국의 모든 스포츠 선수 중에서 6회 연속 올림픽에 참가했던 유일한 인물이 바로 이규혁입니다.
[사진=이규혁 (C) 소치 올림픽 모바일 공식 홈페이지 프로필 사진(m.sochi201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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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피드스케이팅을 잘 모르는 사람이라면 '이규혁이 국제 경기에 약한 것 아니냐?'는 의문을 가지기 쉬울 겁니다. 국민들이 스피드스케이팅을 TV 생중계로 시청할 기회가 올림픽 말고는 마땅치 않으니까요. 올림픽에서 메달을 획득한 경험이 없는 이규혁의 모습을 보며 충분히 그런 생각을 할 수도 있습니다. 실제로 이규혁은 올림픽을 제외한 나머지 국제 대회에서 선전하거나 두 번의 세계신기록을 달성했던 경험이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사람들의 눈높이는 올림픽에 쏠리기 쉽죠. 세계 최고의 스포츠 대회니까요.
지금도 이규혁에 호감을 느끼지 않는 사람이라면 그가 지금까지 올림픽에서 메달을 따내지못한 것을 불편하게 여길 것임에 틀림 없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금메달에 민감하니까요. 1등을 중요시하는 한국적인 정서랄까 그런 특성 때문에 스포츠 스타가 올림픽 금메달 따는 모습을 많이 기대했습니다. 이규혁도 과거 올림픽 금메달 후보로 각광 받았던 때가 있었죠. 하지만 메달 획득이 번번이 좌절되면서 사람들은 그를 '비운의 스타'라고 일컬었습니다.
하지만 이규혁에 대한 현재 여론의 반응은 긍정적입니다. 포털에 이규혁 기사가 뜨면 그를 응원하는 댓글이 지배적입니다. 축구로 비유하면 FC 바르셀로나보다 더 많은 점유율을 나타냈습니다. 아마도 역대 올림픽에서 메달권이 아닌 선수가 경기 이전과 이후에 걸쳐 이렇게 국민적인 지지를 받았던 것은 매우 드뭅니다.(소치 올림픽만을 놓고 보면 이규혁은 메달권에 속하지 않죠.) 마라톤 스타 이봉주를 떠올리는 분도 있을것 같은데 그는 1996년 애틀란타 올림픽 은메달리스트 입니다. 반면 이규혁은 올림픽에서 메달과 철저하게 인연 없었죠.
사람들은 이규혁이 올림픽에서 끊임없이 도전하는 모습에 감동 받았습니다. '이규혁은 최선을 다하는 선수'라는 진정성을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알게 되었죠. 그는 벤쿠버 올림픽 때 5회 연속 올림픽 출전으로 주목 받더니 소치 올림픽에서는 6회 연속 올림픽 참가로 눈길을 끌었습니다. 그동안 자기 분야에서 얼마나 열심히 했는지 국민들이 잘 알게 됐습니다. 일상에서도 자신의 주변에서 무언가 열심히 하는 사람에게 호감을 느끼는 것과 마찬가지 입니다.
사실, 한국 사람들은 1등 지상주의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어렸을적부터 '1등해야 한다'는 어른들의 말을 많이 듣다보니 1등에 대한 집착이 커졌으나 한편으로는 그런 분위기에 피로감을 느꼈습니다. 올림픽 2연패 여부로 주목을 끌었던 모태범이 소치 올림픽 500m와 1000m에서 메달을 따내지 못했음에도 여론은 그를 향한 위로와 격려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포털 기사 댓글의 추천수를 봐도 알 수 있죠. 이제는 이규혁에 대해서도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게 됐습니다. 6회 연속 올림픽 출전이라는 '도전적인 이미지'가 사람들의 매력을 끌었던 겁니다.
흔히 이규혁하면 떠오르는 수식어가 비운의 스타였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그 수식어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 것 같습니다. 이번 올림픽에서는 국가대표 선발전을 통과하면서 소치에 입성할 자격을 얻었습니다. 오로지 자신의 실력으로 6회 연속 올림픽 출전이라는 대기록을 달성했습니다. 올림픽 실전 무대에서도 이를 악물며 좋은 기록을 달성하기 위해 노력했죠. 현역 선수로서 마지막 올림픽을 치렀던 이규혁에게 가장 어울리는 수식어는 '레전드'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