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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에우제비오 별세, 얼마나 대단한 선수였나?

 

포르투갈 최고의 축구 영웅 에우제비오가 2014년 1월 5일에 별세했다.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나게 된 것. 1942년 1월 25일 모잠비크 태생이었던 에우제비오는 1960년대와 1970년대 유럽과 세계 축구를 빛냈던 스타였다.

 

흔히 포르투갈의 대표적인 축구 스타로서 루이스 피구와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를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겠지만 그 이전에 포르투갈 축구를 빛냈던 선수가 바로 에우제비오였다. 글쓴이의 시선에서는 포르투갈 대표팀 경기를 TV로 봤을 때 에우제비오가 관중석에 있는 모습을 종종 봤던 것으로 기억한다.

 

 

[사진=크리스티아누 호날두는 에우제비오 별세 이후 자신의 페이스북과 트위터에 에우제비오와 함께했던 사진을 올리며 애도의 뜻을 나타냈다. (C) 호날두 페이스북(facebook.com/Cristiano)]

 

에우제비오는 아프리카 출신이다. 모잠비크가 당시 포르투갈의 식민지였으며 어린 시절에 그곳에서 생활했다. 1960년 포르투갈의 벤피카로 떠나면서 본격적으로 유럽에서 활동하기 시작했다. 그는 벤피카에서 1975년까지 몸담았다. 자신의 축구 인생 전성기 시절을 벤피카에서 보냈던 것이다. 1960/61시즌부터 1974/75시즌까지 총 15시즌 동안 715경기에서 727골 넣는 괴력을 발휘하며 유럽 최정상급 골잡이로 명성을 떨쳤다. 포르투갈 대표팀에서는 64경기에서 41골 넣었다.

 

특히 벤피카에서 15시즌 뛰었을 때는 11번이나 포르투갈 리그 우승을 경험하며 팀의 전성기를 주도했다. 벤피카가 32회 우승했음을 떠올려봤을 때 에우제비오의 활약이 얼마나 뛰어났는지 알 수 있다. 1961/62시즌에는 벤피카의 유로피언컵 우승 멤버로 활약했다. 유로피언컵은 지금의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다.

 

1965년에는 발롱도르를 수상했다. 포르투갈 선수 최초로 발롱도르를 획득하는 영광을 안게 된 것. 2000년 피구가 발롱도르의 주인공이 되기 이전까지 35년 동안 포르투갈에서 그 상을 받았던 선수가 없었을 정도로 에우제비오가 포르투갈 최고의 축구 스타로 활약했다. 실제로 포르투갈에서 발롱도르를 획득한 선수는 에우제비오와 피구, 호날두(2008년) 뿐이다.

 

많은 축구팬들이 떠올리는 에우제비오 최고의 활약상은 1966년 잉글랜드 월드컵 8강 북한전일 것이다. 포르투갈이 전반 중반까지 0-3으로 밀렸으나 전반 27분에 만회골을 넣으며 추격의 발판을 마련한 뒤 그 이후에 3골을 추가하며 포르투갈의 4-3 역전극을 주도했다. 후반 35분에는 조제 아우구스투가 1골을 추가하면서 포르투갈이 5-3 역전승을 확정지었고 에우제비오는 페널티킥 2골을 포함하여 총 4골 넣으며 잉글랜드 월드컵을 빛냈다. 이 대회에서 9골로 득점왕에 올랐으며 포르투갈의 3위를 이끌었다. 당시 3위는 포르투갈의 월드컵 역사상 최고 성적이다.

 

에우제비오는 1975년 벤피카를 떠난 이후 1980년 은퇴하기까지 미국과 멕시코, 포르투갈 리그에 소속된 여러 팀에서 활동했다. 2004년에는 펠레에 의해 국제축구연맹(FIFA) 세계 축구 100대 스타에 선정됐다. 포르투갈 선수 중에서 3명이나 100대 스타에 이름을 올렸는데 에우제비오와 피구, 후이 코스타가 이름을 올렸다. 아시아에서는 홍명보(한국) 나카타 히데토시(일본)가 선정됐다. 그만큼 에우제비오의 선수 시절 활약상이 대단했다고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