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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러시아전 패배, 그러나 졸전은 아니었다

 

한국 축구 대표팀이 올해 마지막 A매치였던 러시아전에서 1-2로 패했다. 전반 6분 김신욱 선제골로 기분 좋은 출발을 했으나 전반 12분 페도르 스몰로프, 후반 14분 드미트리 타라소프에게 실점을 허용했다. 많은 사람들이 한국의 승전보를 기대했으나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지난주 금요일 국내에서 스위스전을 마쳤던 하루 뒤에 아랍에미리트(UAE)로 이동하면서 러시아와 대결했던 강행군이 주력 선수들의 체력 저하로 이어졌다. 그러나 졸전을 펼친 것은 아니었다. 러시아전 패배에 대한 몇 가지 소감을 밝힌다.

 

 

[사진=러시아전에서 선제골을 넣었던 김신욱, 한국의 11월 A매치 2경기 최대의 성과는 김신욱의 재발견이었다. (C) 대한축구협회(KFA) 공식 홈페이지 프로필 사진(kfa.or.kr)]

 

1. 선수들의 피로가 쌓인 것을 봐선 홍명보 감독의 러시아전 선발 라인업 변화는 옳았다. 스위스를 꺾었던 선발 라인업을 그대로 러시아전에서 활용할 수는 없는 일이다. 해외 원정을 치르는 특성상 컨디션 좋은 선수 위주로 나오는 것이 맞다. 경기 상황에 따른 교체도 적절했으며 김신욱-이청용-기성용-손흥민 같은 과부하 위험을 안고 있는 선수들을 러시아전 도중에 교체한 것도 옳았다. 조커 중에서는 남태희와 고명진이 돋보였다. 백업 선수들에게 동기 부여를 심어주겠다는 홍명보 감독의 심산을 읽을 수 있으며 남태희와 고명진을 좋게 봤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한국의 러시아전 소득은 '옥석 가리기'였다. 브라질 월드컵 본선에서 경쟁력 있는 선수와 아닌 선수가 잘 드러났다. 이제부터는 브라질 월드컵 최종 엔트리를 고민할 시기에 접어들었으며 평가전을 통해 선수 개개인의 국제 무대 경쟁력을 점검할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러시아전 패배를 졸전이라고 단정지을 수 없다. 러시아전 패배에 불만을 품는 사람이 있겠으나 평가전에서 결과는 절대적으로 중요하지 않다.

 

2. 한국의 가장 큰 고민이었던 원톱 문제가 11월 A매치 2경기를 통해 완전히 해결됐다. 김신욱으로 최종 확정되었다고 봐야한다. 빼어난 연계 플레이와 위력적인 공중볼 다툼, 부지런한 움직임을 바탕으로 한국의 공격 과정에서 많은 기여를 하며 상대 수비를 위협했다. 그의 러시아전 선제골은 한국의 원톱 문제가 끝났음을 상징하는 장면으로 봐도 무방하다. 지금 분위기라면 김신욱 주전, 이근호 백업(또는 2선 기용) 체제로 브라질 월드컵 본선을 대비할 것으로 예상된다.

 

변수는 지동원과 박주영이다. 소속팀 문제가 얼마냐 풀리느냐가 관건이다. 내년 1월 이적시장을 통해 충분히 뛸 수 있는 팀을 찾지 못하거나 평소의 폼을 되찾는데 어려움을 겪으면 브라질 월드컵 최종 엔트리 합류가 어려울 전망이다. 지동원의 경우 지난 1월 아우크스부르크 임대를 통해 경기력을 끌어 올리며 런던 올림픽 동메달 주역으로 활약했던 경험이 있다. 다시 한 번 소속팀 문제를 짚고 넘어가야 한다. '원톱 : 김신욱-이근호, 왼쪽 윙어 : 손흥민-김보경' 체제로 굳어지는 현 시점에서는 소속팀에서 얼마나 출전하고 경기에서 잘하느냐에 따라 최종 엔트리가 결정될 것이다.

 

3. 러시아전은 정성룡 선발 출전이 옳았다. 김승규가 스위스전에서 충분히 검증되었기 때문에 러시아전은 정성룡에게 명예회복 기회가 주어질 필요가 있었다. 러시아전은 평가전으로서 정성룡의 현재 경기력을 점검할 필요가 있었다.

 

이번 A매치 2경기를 통해서 김승규가 정성룡보다 폼이 더 좋다는 결론이 나왔다. 그 중에 러시아전은 정성룡이 주전 골키퍼를 맡기에는 브라질 월드컵 본선이 위험하다는 것을 많은 사람들이 알게 됐다. '골키퍼는 경험이 중요하다'며 여전히 정성룡 주전 기용이 바람직하다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선수는 실력으로 말하는 것이지 경험으로 평가되지 않는다. 2010년에는 정성룡이 부쩍 성장하면서 그동안 붙박이 주전으로 활약했던 이운재를 제치고 남아공 월드컵 주전 골키퍼로 뛰었다. 심지어 이케르 카시야스도 소속팀 레알 마드리드에서는 두 시즌 연속 백업 골키퍼다. 어느 분야에서는 실력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4. 기성용 파트너 경쟁이 매우 치열하게 됐다. 한국영-장현수-박종우-고명진이 경합을 벌이게 됐다. 잠재적으로는 하대성과 이명주까지 포함된다. 다만, 하대성-이명주는 기성용과 역할이 겹칠 우려 때문에 서로 공존하기 부담스럽다. 기성용 파트너는 수비 지향적인 선수여야 한다. 그래야 팀의 공수 밸런스가 짜임새 있게 구축되며 실제로 그 조합이 그라운드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했다. 만약 기성용과의 호흡이 어긋나면 팀이 경기를 풀어가기가 어렵다는 것을 이번 러시아전을 통해 드러났다.

 

러시아전은 한국영 부상 공백이 아쉬웠다. 박종우가 제 역할을 보여주지 못한 끝에 더블 볼란테가 러시아와의 중원 싸움에서 밀렸고 한국이 힘든 경기를 펼쳤다. 기성용-박종우 조합은 런던 올림픽에서 성공했던 조합이나 그 이후 박종우의 폼이 떨어진 것이 한국 대표팀의 고민이다. 박종우가 런던 올림픽때의 전사적인 면모를 되찾아야 최소한 브라질 월드컵 최종 엔트리 합류를 보장받을 수 있다.

 

5. 흔히 해외파가 대표팀 전력의 중심으로 비춰지는 모양새지만 실질적으로 홍명보호에서 울산 선수들의 강세가 돋보인다. 김신욱, 이용, 김승규가 대표팀 주전으로 자리잡았거나 그럴만한 영향력을 확보했다. 원 소속이 울산인 이근호도 마찬가지. 울산이 대표팀 전력의 젖줄 역할을 했다. 원톱과 골키퍼, 오른쪽 풀백 문제가 해결되면서 경기 흐름을 바꾸는 슈퍼 조커까지 든든하다. 현재 울산을 K리그 클래식 선두로 이끄는 중인 김호곤 감독이 대단한 지도자임을 실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