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C서울의 아시아 정복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결승에서 중국의 광저우 에버그란데(이하 광저우)와 홈&어웨이 방식으로 두 차례 경기를 펼쳤으나 원정 다득점 열세에 의해 준우승에 만족하게 됐다. 결승 두 경기에서 잘싸웠음에도 1차전에서 상대 팀에게 2실점을 허용한 것이 아쉬웠다. 적어도 1차전은 이겼어야 했다.
한편으로는 서울이 광저우와의 두 경기 모두 패하지 않은 것이 다행이었다. 원정 다득점에서 밀렸을 뿐이다. 스쿼드의 무게감에서는 광저우가 더 우세했다. 아시아 무대에서 엄청난 몸값을 자랑하는 남미 출신 선수들과 한국 최정상급 센터백으로 꼽히는 김영권이 전현직 중국 대표팀 선수들과 함께 하나의 팀을 형성했다. 이들이 AFC 챔피언스리그에서 최상의 호흡을 과시하며 우승을 달성한 것은 이탈리아 축구의 명장 마르첼로 리피 감독의 영향이 컸다.
[사진=광저우 에버그란데 공식 홈페이지 메인에서는 AFC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축하하는 이미지를 볼 수 있었다. (C) gzevergrandefc.com]
리피 감독은 유럽과 세계 무대를 정복했던 명장이다. 유벤투스 사령탑 시절이었던 1995/96시즌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경험했으며 이탈리아 대표팀을 지휘했던 2006년 독일 월드컵에서는 자국의 우승을 이끌었다. 이제는 광저우의 AFC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주도하여 유럽과 아시아 두 대륙에서 클럽 대항전 우승을 달성하면서 월드컵 우승 이력이 있는 전무후무한 지도자로 이름을 남기게 됐다. 유벤투스를 지휘했을 때 소속팀의 세리에A 우승을 다섯 번이나 이루었던 업적까지 포함하면 20여년 동안 세계 최정상급 명장으로 군림했다.
그런 리피 감독을 광저우가 영입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엄청난 자금력이 있었다. 불과 3년 전까지 중국 2부리그에 속했던 광저우가 슈퍼리그 3연패와 AFC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달성했던 것은 한마디로 돈이 많았다. 리피 감독의 연봉은 한국에서 1100만 유로(약 156억 원)로 알려져 있다. 웬만한 K리그 클래식 팀들의 1년 예산과 맞먹는다고 봐야 한다.(이보다 더 많은 돈을 쓰는 K리그 클래식 팀들이 몇몇 있지만) 부자 구단들이 잘 나가는 유럽 축구의 흐름이 이제는 아시아 무대에서도 재현됐다. 한국 축구가 중국보다 실력이 더 좋은 것은 분명하나 광저우가 No.1이 된 AFC 챔피언스리그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이제는 AFC 챔피언스리그에서도 부자 구단의 강세가 두드러지게 됐다.
외국인 명장을 영입했다고 무조건 성적이 좋아지는 것은 아니다. 스페인 출신의 명장이었던 호세 안토니오 카마초 전 중국 대표팀 감독이 팀의 성적 부진을 이겨내지 못하고 지난 6월에 경질된 것이 대표적 예다. 중국이 태국에게 1-5로 대패했던 영향이 컸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2005년 9월에 네덜란드 출신의 명장 딕 아드보카트 감독(현 AZ 알크마르 감독) 영입을 발표했으나 이듬해 6월 독일 월드컵 본선에서 16강 진출에 실패했다. 월드컵 원정 첫 1승이라는 값진 결과를 이루었음에도 2002년 한일 월드컵 4강 진출에 비하면 본선 탈락이 아쉬움에 남는다. 다만, 아드보카트 감독은 거스 히딩크 전 감독에 비해 한국 대표팀을 완성시킬 시간이 부족했다.
그럼에도 팀의 성적 향상에 있어서 외국인 명장의 필요성이 강한 것은 사실이다. 2011년 아시안컵 결승에 올랐던 일본과 호주의 공통점은 외국인 명장을 보유했다. 일본에는 이탈리아 출신의 알베르토 자케로니 감독, 호주에는 독일 출신의 홀거 오지크 전 감독(2013년 10월 경질)이 있었다. 두 감독은 2014 브라질 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에서 팀의 본선 진출을 이끌었다. 일본이 B조 1위, 호주가 B조 2위를 기록했다.(참고로 오지크 전 감독은 2007년 일본 J리그 우라와 레즈의 AFC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이끌었던 이력이 있다.)
A조에서는 이란이 한국과의 조 1위 싸움에서 이기면서 본선행을 확정지었다.(한국은 2위) 이란의 사령탑은 포르투갈 출신의 명장 카를로스 케이로스 감독이다. 케이로스 감독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수석코치 출신으로서 '퍼거슨 브레인'으로 통했던 지략가였다. 특히 한국은 이란과의 아시아 최종예선 두 경기에서 모두 패했다. 이란 뿐만이 아니다. 한국은 일본에게 최근 A매치 4경기 연속 무승(2무 2패)을 허용 당했다. 4경기 모두 자케로니 감독의 지략을 이겨내지 못했다. 오지크 전 감독이 지휘했던 호주와는 A매치 3경기에서 2무 1패에 그쳤다.
아시아 축구의 대세는 외국인 명장이다. 대표팀과 AFC 챔피언스리그에 걸쳐 외국인 명장의 중요성이 커졌다. 이러한 흐름은 앞으로도 계속 될 것이다. 월드컵 본선 진출이나 2002년의 한국 같은 기적을 일으키기 위해, AFC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위해 외국인 명장을 데려오려는 아시아 여러 팀들의 시도가 계속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히딩크 효과'를 경험했던 한국 축구도 외국인 명장이 많았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 외국인 감독의 실패 사례가 있었던 것은 분명하나 히딩크 전 감독 이외에도 니폼니시-귀네슈-파리아스-빙가다 감독 같은 성공 사례가 즐비했다. 특이하게도 대표팀보다는 당시 K리그(현 K리그 클래식)에서 성공한 케이스가 많았다. 물론 한국 축구에서 외국인 명장 영입이 부담스러운 것은 사실이다. 광저우처럼 엄청난 거액을 투자하며 외국인 명장을 데려올 팀이 없다. 리피 감독보다 몸값이 낮은 외국인 지도자라고 할지라도 금액이 만만치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한국 축구가 아시아와 세계 무대에서 선전하려면 외국인 명장이 필요하다. 그렇다고 대표팀에 외국인 감독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국가 대표팀과 인천 아시안게임 대표팀에 새로운 사령탑(홍명보 감독, 이광종 감독)이 지휘봉을 잡은 것이 최근이라 현실적으로 외국인 감독 영입이 불가능하다. 하지만 2013시즌을 거의 끝마친 K리그 클래식이라면 외국인 명장을 더 많이 보고 싶다. 귀네슈 감독과 파리아스 감독이 지략 대결을 펼쳤던 2000년대 후반처럼 말이다. 현재 경남에 외국인 감독(일리야 페트코비치 감독)이 있으나 한 명으로는 부족하다. 한국 축구는 외국인 명장 영입을 통한 체질 개선이 여전히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