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이영표가 현역 은퇴하면서 2002년 한일 월드컵부터 2011년 아시안컵까지 한국 대표팀을 빛냈던 박지성-이영표 콤비를 더 이상 공식 경기에서 볼 수 없게 됐다. 한때 한국 대표팀이 왼쪽 풀백 불안에 시달리면서 일부 축구팬들은 이영표의 대표팀 복귀를 원했다. 하지만 이영표는 2011년 아시안컵을 끝으로 박지성과 함께 대표팀에서 은퇴했으며 미국 메이저리그사커(MLS) 벤쿠버 화이트캡스에서 2년 동안 활동한 뒤 그라운드와 작별했다.
이제 한국 축구는 박지성-이영표 콤비의 뒤를 이을 새로운 콤비를 발굴해야 한다. 콤비가 단순한 말장난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한국 대표팀에는 팀 전력의 구심점이 되었던 선수들이 콤비를 형성하며 국민적인 주목을 끌었다. 1990년대와 2000년대 초반에 걸쳐 황선홍-홍명보가 대표팀과 포항 스틸러스, 가시와 레이솔에서 H-H 라인을 형성했으며 특히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 한국의 4강 신화를 주도했다. 2002년 한일 월드컵 이후에는 박지성-이영표가 대표팀과 PSV 에인트호번의 왼쪽 측면을 빛냈다.
[사진=런던 올림픽 시절의 구자철(왼쪽) 기성용(오른쪽) (C) 국제축구연맹(FIFA) 공식 홈페이지 메인(fifa.com)]
황선홍-홍명보 그리고 박지성-이영표는 대표팀에서 월등한 실력을 과시했다. 네 선수 모두 센추리 클럽(A매치 100회 출전)에 가입하며 대표팀 경기력 향상을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 다른 선수와의 포지션 경쟁에서 우세를 점한데다 팀 전력에 없어서는 안 될 대체 불가능한 존재였다. 실제로 한국 대표팀은 이들의 대표팀 은퇴 이후 후계자 문제로 어려움을 겪으면서 경기력이 침체됐다. 황선홍-홍명보 후계자 문제는 11년이 지난 현재까지 완전히 풀리지 못했던 상황. 박지성-이영표 후계자 문제는 이전 대표팀 체제에서 해결되지 못했으나 홍명보 감독 부임 이후 잘 풀리는 분위기다.
지금의 홍명보호에서 한국 대표팀 전설의 콤비로 거듭날 가능성이 높은 인물을 꼽으라면 구자철과 기성용이다. 지난해 런던 올림픽에서 한국의 동메달을 이끌었으며 A매치와 유럽 빅 리그에서 충분한 경쟁력을 보여줬다. 그 중에 기성용은 지난달 A매치 브라질전과 말리전을 통해 대표팀에 꼭 필요한 선수임을 실력으로 과시하며 팀의 중원 문제를 해소했다. 구자철은 잦은 포지션 전환에 따른 경기력 저하가 아쉽지만 홍명보호가 2009년부터 각급 대표팀을 거치는 동안 항상 주장을 맡았다. 다른 선수들에 비해서 홍명보 감독 전술에 대한 이해가 밝다고 볼 수 있다.
최근의 한국 축구는 측면보다는 중앙에서 경쟁력이 뛰어난 인재들이 늘었다. 그 중에서 수비형 또는 공격형 미드필더로서 두각을 떨치는 선수가 많아졌다. 기존의 한국 축구는 측면에서 좋은 인재들이 꾸준히 배출되었고 이를 상징했던 선수가 박지성-이영표였으나 이제는 양상이 달라졌다. 구자철과 기성용이 런던 올림픽에 이어 국가 대표팀 중원에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됐다.
더욱이 두 선수는 유럽 빅 리그에서도 맹활약 펼쳤다. 기성용은 지난 시즌 스완지 시티의 캐피털 원 컵 우승을 공헌했으며 구자철은 임대 팀이었던 아우크스부르크의 강등을 두 시즌 연속 막아냈다. 올 시즌에는 각각 선덜랜드와 볼프스부르크의 붙박이 주전으로 뛰었다. 비록 기성용은 선덜랜드에 임대되었고 구자철은 볼프스부르크와 궁합이 안맞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풍부한 국제 경기 경험과 잠재력을 놓고 볼 때 앞으로 몇 년 더 유럽 무대를 누비며 한국 축구의 우수성을 보여주기 위해 열심히 노력할 것이다.
홍명보 감독 부임 이후에는 '1992년생 듀오' 손흥민-김진수가 박지성-이영표 후계자를 굳히는 분위기다. 손흥민은 지금까지 홍명보호 최다 득점자로 활약하며 대표팀의 골 부진을 해소했으며 특히 골 결정력은 현 대표팀 No.1으로 치켜 세워도 손색없다. 공간을 파고드는 빠른 침투를 통해 왼쪽 측면에서 중앙으로 접근하면서 골을 넣는 패턴을 즐긴다. 김진수는 브라질전과 말리전에서 풀타임을 소화하며 믿음직한 경기력을 과시했다. 박주호와 윤석영 같은 유럽파와의 주전 경쟁에서 이길 만큼 이영표를 완전히 대체할 적임자로 떠올랐다. 대표팀의 고질적 문제점이었던 왼쪽 풀백 불안도 김진수 등장에 의해 거의 해결된 분위기다.
한국의 중앙 수비를 맡는 김영권-홍정호 콤비도 주목해야 할 것이다. 두 선수의 수비력은 이미 올림픽 대표팀과 국가 대표팀에서 검증되었으며 해외에서도 좋은 활약상을 펼쳤다. 김영권은 광저우 에버그란데의 중국 슈퍼리그 3연패를 이끌었으며 최근에는 AFC 챔피언스리그 우승에 도전중이다. 홍정호는 한국 센터백 최초로 유럽 빅 리그에 진출했으며 최근 아우크스부르크의 붙박이 주전 센터백으로 도약했다. 지난 주말 레버쿠젠전에서는 손흥민의 결정적인 슈팅을 몸으로 막아내며 팀의 실점 위기를 구했다.
그리고 지난해 울산의 AFC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주도했던 이근호-김신욱 콤비가 과연 홍명보호에서 통할지 앞으로가 기대된다. 이근호는 지난해와 올해 A매치를 통해 유럽파와의 주전 경쟁에서 밀리지 않는 모습을 보였으며 말리전에서는 원톱으로서 기대 이상의 활약을 펼쳤다. 김신욱은 최근 K리그 클래식 득점 선두를 달리며 홍명보호 발탁 가능성을 높였다. 과연 어느 콤비가 황선홍-홍명보, 박지성-이영표 콤비의 뒤를 이어 한국 축구 전설의 콤비가 될지 앞으로가 흥미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