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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홍정호, 진정한 홍명보 후계자로 진화하다

 

한국 축구 대표팀은 2002년 한일 월드컵 4강 신화를 달성한 이후 한동안 황선홍-홍명보의 뒤를 이을 확실한 후계자를 찾지 못했다. 그동안 몇몇 선수가 대표팀에서 두각을 떨치며 이들을 대체했으나 그 기세를 오랫동안 이어가는데 어려움을 겪은 끝에 대표팀에서 경쟁력을 잃었다. 그래서 어떤 관점에서는 현재까지 황선홍-홍명보의 진정한 후계자는 등장하지 않았다고 봐야 한다. 아무리 기량이 한국 최고라도 대표팀과 소속팀에서 꾸준히 잘하지 못하면 소용없다.

 

특히 홍명보 후계자에 대해서는 11년 동안 마땅한 인물이 등장하지 않았다. 지금까지 몇몇 센터백들이 제2의 홍명보로 각광 받았으나 부침에 시달리며 대표팀 롱런에 실패했다. 심지어 한국 대표팀은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한결같이 수비 불안으로 어려움을 겪었다. 그나마 홍명보 감독이 2012년 런던 올림픽을 통해 강력한 수비 조직을 구축하며 한국의 동메달을 이끌었다. 런던 세대가 현재 국가 대표팀 세대 교체의 주역으로 성장한 것은 반가운 일이다.

 

 

[사진=홍정호 (C) 아우크스부르크 공식 홈페이지 프로필 사진(fcaugsburg.de)]

 

한국 국가 대표팀의 센터백 홍정호(24, 아우크스부르크)는 런던 올림픽을 앞두고 오른쪽 무릎 후방 십자인대 파열로 런던행 비행기에 탑승하지 못했다. 비록 올림픽 본선에 뛰지 못했으나 홍명보호 센터백이자 주장으로서 제 역할을 다했다. 실질적으로 런던 세대라고 보는 것이 맞다. 올해 하반기에는 1년 부상 공백을 딛고 국가 대표팀과 아우크스부르크의 주전 센터백을 굳히는 단계에 접어들었다. 특히 아우크스부르크에서의 활약상이 의미있다. 한국인 센터백 최초로 유럽 빅 리그에서 붙박이 주전으로 그라운드를 누빌 명분을 얻은 것이다.

 

홍정호는 손흥민과의 코리안 더비로 눈길을 끌었던 지난 26일 레버쿠젠전에서 인상적인 수비력을 과시했다. 후반 3분 손흥민 왼발 슈팅을 직접 몸으로 막아내면서 팀의 실점 위기를 모면했던 것. 볼을 걷어내지 못했다면 손흥민은 리그 2호골 및 시즌 4호골을 달성했을 것이다. 경기를 봤던 축구팬들은 손흥민의 득점 불발을 아쉽게 여기겠지만 한편으로는 홍정호의 호수비를 보며 '분데스리가에 또 다른 한국인 선수가 성공하겠구나'라는 생각을 가졌을 것이다. 아우크스부르크는 레버쿠젠에 1-2로 패했으나 홍정호의 빼어난 수비력이 돋보였다.

 

현재 홍정호는 3경기 연속 출전 및 2경기 연속 선발로 나섰다. 아우크스부르크 전력에서 점점 비중이 늘어나는 중이다. 자신의 장점인 빌드업이 아우크스부르크 경기력 향상에 필요했던 것이다. 실제로 홍정호의 레버쿠젠전 패스 성공률은 팀 내 2위(85%)였다. 함께 센터백을 맡았던 얀-잉버 칼센-브라커(74%)보다 더 좋았다. 팀의 원활한 공격 전개에 힘을 실어주면서 아우크스부르크가 레버쿠젠과 대등한 접전을 펼치는데 도움을 줬다. 비록 아우크스부르크는 패했으나 경기 내용은 결코 나쁘지 않았다.

 

홍정호는 센터백으로서 위치선정이 좋았다. 손흥민과 스테판 키슬링 같은 레버쿠젠 공격수들이 골대 가까이 침투하지 못하도록 위치를 잡으며 자신의 뒷 공간이 뚫리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다했다. 전반 34분 시몬 롤페스에게 골을 허용하는 과정에서 마크 실수가 있었으나 경기 전체적으로는 반드시 위치했어야 할 지점에 나타나면서 레버쿠젠 공격수를 상대했다.

 

이날은 키슬링 봉쇄에 많은 노력을 쏟았다. 키슬링은 아우크스부르크를 상대로 최근 4경기 연속골(총 5골 3도움)을 기록했던 레버쿠젠의 에이스이자 지난 시즌 분데스리가 득점왕이었다. 홍정호의 수비력이 과연 분데스리가에서 통할지 중요한 분수령이 됐다. 결과는 좋았다. 키슬링은 홍정호의 끈질긴 마크에 시달린 끝에 이날 경기에서 골을 넣지 못하고 후반 44분에 교체됐다. 홍정호가 후반 20분 키슬링에게 볼을 빼앗겼음에도 그에게 실점을 허용하지 않은 것은 의미가 있다. 분데스리가 경험이 쌓이면 지금보다 기량이 뛰어난 센터백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레버쿠젠전 활약을 통해 보여줬다.

 

공교롭게도 아우크스부르크는 구자철(볼프스부르크) 지동원(선덜랜드)이 성공적인 활약을 펼쳤던 팀이다. 한국 축구와 좋은 인연을 맺고 있다. 그 팀에서 홍정호가 주전 센터백으로 떠오르며 '한국인 센터백이 유럽 빅 리그에서 성공할 수 있다'는 인식을 계속 심어줄 것으로 기대된다. 분데스리가에서 지속적으로 두각을 떨치면 한국 국가 대표팀은 항상 믿고 기용할 수 있는 센터백을 보유하게 된다. 홍정호가 홍명보 후계자를 완전히 굳히면서 '제1의 홍정호'로 거듭날지 앞으로의 활약상을 지켜보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