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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홍정호, 독일 분데스리가 성공을 기대하며

 

지난해 여름에 일본인 센터백 요시다 마야가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 승격팀이었던 사우스햄프턴으로 이적하는 것을 보면서 이런 생각을 했었다. '일본인 센터백은 유럽 빅 리그에 진출하는데 왜 한국인 센터백은 저런 곳에 못가는 걸까?'라고 말이다. 요시다의 기량은 한국인 센터백을 능가할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런던 올림픽 한일전과 올해 3월 초 퀸즈 파크 레인저스전에서 박지성에게 농락 당했던 장면을 봐도 알 수 있다.

 

하지만 네덜란드의 VVV 벤로와 일본 대표팀에서 검증된 활약을 펼치면서 사우스햄프턴의 선택을 받게 됐다. 2012/13시즌 붙박이 주전으로 활약하며 시즌 내내 강등 위기에 빠졌던 소속팀의 잔류(14위)를 공헌했다. 프리미어리그에서 뛰었던 일본인 선수 중에서 유일하게 제 몫을 다한 것. 비록 올 시즌 프리미어리그 초반 3경기에서는 단 1경기도 뛰지 못했으나 지금까지 활약만으로 동양인 센터백의 유럽 경쟁력을 어느 정도 올려 놓았다.

 

 

[사진=홍정호 (C) 아우크스부르크 공식 홈페이지(fcaugsburg.de)]

 

이제는 한국도 유럽 빅 리그에서 활동하는 센터백을 배출했다. 홍정호가 얼마전 여름 이적시장 마감을 앞두고 K리그 클래식의 제주 유나이티드를 거쳐 '유럽 3대리그'에 속하는 독일 분데스리가 아우크스부르크로 이적했다. 그는 비록 부상으로 런던 올림픽 본선에 뛰지 못했으나 올림픽 대표팀과 국가 대표팀에서 우수한 기량을 과시하며 아우크스부르크를 흡족시켰다. 이제는 유럽 진출을 통해 한국인 센터백의 가치를 끌어 올릴 기회를 맞이했다. 어쩌면 홍정호 활약에 따라 또 다른 한국인 센터백의 유럽 진출 또는 빅 리그 활동이 성사될 수 있으며 아니면 당분간 그런 일이 없을 수도 있다. 홍정호가 중요한 기준점이 되는 것이다.

 

사실, 홍정호의 아우크스부르크 이적은 구자철-지동원 영향이 크다. 구자철은 2011/12시즌 후반기와 2012/13시즌, 지동원은 2012/13시즌 후반기 아우크스부르크 임대 선수로 활동하면서 팀의 잔류에 힘을 실어줬다. 심지어 구자철은 지난 시즌 아우크스부르크에서 등번호 7번을 달았다. 팀에서 중요한 선수로 인정 받았음을 상징하는 사례이자 아우크스부르크가 한국인 선수를 좋아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지난 시즌 분데스리가 전반기를 마친 뒤 지동원을 임대했고 얼마전 홍정호를 완전 이적으로 영입한 것을 봐도 말이다.

 

무엇보다 아우크스부르크는 수비 보강이 절실했다. 분데스리가의 약팀 치고는 많은 실점을 허용하는 편이 아니지만 빌드업이 뛰어난 센터백이 없었다. 후방에서 깔끔하게 패스를 찔러주는 선수의 존재감이 드러나지 못하면서 팀의 공격 전개가 전체적으로 매끄럽지 못했다. 분데스리가 대부분의 팀들이 공격 성향의 축구를 펼치는 특징을 놓고 볼 때 아우크스부르크의 후방 공격은 문제가 있었다. 그나마 구자철과 지동원 같은 2선 미드필더들의 개인 능력을 앞세워 두 시즌 연속 잔류에 성공했다.

 

실제로 아우크스부르크는 2011/12시즌 최소 득점 3위(34경기 36골) 2012/13시즌 최소 득점 2위(34경기 33골)에 그쳤다. 올 시즌 4경기에서는 3골에 머물렀다. 후방의 빈약한 공격 전개를 놓고 볼 때 특급 골잡이가 아우크스부르크에서 많은 골을 넣기 힘든 구조였다. 아우크스부르크가 득점력을 향상시키려면 골잡이 영입보다는 팀의 전술적 근본을 바꿀 선수가 더 절실했다. 홍정호가 이러한 역할을 해주기를 바랬던 것이다. 만약 홍정호가 제 몫을 다하면 아우크스부르크의 체질 개선 성공을 기대할 수 있다.

 

흔히 홍정호의 장점으로 빌드업이 거론된다. 유럽 축구에서는 빌드업이 뛰어난 센터백이 선호 받는 추세다. 마츠 훔멜스(도르트문트) 헤라르도 피케(FC 바르셀로나) 얀 베르통헨(토트넘)이 대표적인 예다. 이들은 체격이 크지만 팀 공격을 차근차근 풀어갈 수 있는 빌드업이 발달됐다. 최근에는 전방 압박을 펼치는 팀들이 늘어나면서 빌드업이 뛰어난 센터백의 중요성이 커졌다. 이러한 유럽 축구의 전술적 변화는 홍정호가 유럽 빅 리그에 진출하는데 어느 정도 영향을 끼쳤다고 볼 수 있다.

 

지금까지 한국인 센터백이 유럽에 진출하는 경우는 드물었다. 10여 년 전 오스트리아 라스크 린츠에 입단했던 강철, 당시 독일 분데스리가 2부리그 프랑크푸르트의 일원이 되었던 심재원 말고는 없었다. 두 선수 모두 2002년 한일 월드컵 이전에 유럽 무대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하지만 그 이후 유럽에 진출했던 센터백은 없었다. 유럽 빅 리그에 도전장을 내밀었던 센터백도 지금까지 존재하지 않았다. 심지어 국가 대표팀에서도 지난 11년 동안 홍명보 감독 현역 시절을 능가하는 센터백이 등장하지 않았다.

 

이제는 홍정호가 독일 분데스리가에 진출했다. 소속팀에서 맹활약 펼쳐야 '한국인 센터백이 유럽 빅 리그에서 성공할 수 있다'는 인식이 커진다. 또 다른 센터백이 유럽 무대에 도전할 수 있는 명분으로 작용할 것이며 한국인 선수의 유럽 경쟁력이 향상 될 것이다. 또한 홍정호는 분데스리가에서 축적된 경험과 노하우를 통해 한국 대표팀 수비력 향상에 힘을 실어줄 것으로 기대된다. 그의 분데스리가 도전이 성공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