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한국 최고의 스트라이커로 이름 떨치던 이동국(29, 성남)이 선수 생활에 있어 가장 큰 고비를 맞았다. 잉글랜드 미들즈브러에서 이렇다할 활약없이 방출되더니 최근 K리그에서도 부진으로 고개를 숙이며 자신의 체면을 구긴 것. 최근 ´페널티킥골 포함´ 두 경기 연속 골을 넣으며 살아나는 듯 했으나 26일 서울전 부진으로 얼굴이 또 붉어졌다.

그런 이동국이 미들즈브러에 이어 성남에서도 궁지에 몰렸다. 이날 성남이 서울에게 0-1로 패해 3위로 내려가자 김학범 감독이 패배의 원인으로 이동국을 지목한 것.

김학범 감독은 이날 경기가 끝난 뒤 "이동국에게 몇 번의 골 기회가 왔는데, 살려내지 못한 부분이 0-1 패배의 원인으로 이어진 것 같다. 모따의 결장보다 (이동국의) 골 결정력 부족이 더 아쉽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더욱이 김 감독은 평소 인터뷰에서 특정 선수에 대한 언급을 자주 내뱉는 스타일이 아니어서 이동국을 향한 마음이 ´실망´에 이르렀음을 읽을 수 있다.

문제는 이동국의 부진 탈출 ´징조´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지난 18일 부산전서 유일한 필드골을 넣었을 뿐 나머지 10경기에서 상대팀 수비진의 저항에 이렇다할 힘을 쓰지 못했거나 슈팅은 번번이 골문을 벗어났다. 특히 ´1위 경쟁팀´ 서울전 부진으로 김학범 감독의 쓴소리를 들으며 남은 경기서 붙박이 주전 투입 조차 장담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이동국의 부진은 성남의 하향세로 이어졌다. 성남은 이번 시즌 중반부터 15경기 연속 무패(5월 10일~9월 13일)를 기록하며 정규리그 1위를 질주했으나 이동국이 뛰었던 11경기서 4승2무5패로 부진하여 정규리그 3위로 내려갔다. ´이동국 영입´으로 8번째 정규리그 우승의 야망을 품었던 성남의 꿈이 ´제대로´ 역효과 맞은 것이다.



이러한 이동국의 침체는 2년 전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첼시 이적 이후 끝 없는 부진에 빠졌던 안드리 셉첸코(32, AC밀란)의 행보와 유사하다. 두 선수는 나란히 2006/07시즌 프리미어리그에 입성했으나(이동국은 시즌 중반에 미들즈브러 이적) 이렇다할 활약 없이 올해 여름 잉글랜드 땅을 떠난 공통점이 있는데다 포지션까지 똑같다.

두 선수는 성남과 첼시에서 화려한 몸값에 걸맞는 경기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이동국이 연봉 4억원의 조건으로 성남에 입단했다면 셉첸코는 당시 프리미어리그 최고 이적료인 3,000만 파운드에 연봉 1,290만 달러(유럽 리그 6위, 2008년 4월 기준)를 받았으나 그라운드에서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던 것. 이미 셉첸코는 프리미어리그 역사에 길이 남을지 모를 ´먹튀의 본좌´로 전락했고 그를 괴롭혔던 ´먹튀의 그림자가´ 이동국을 향해 짙게 드리워졌다.

이동국과 셉첸코의 부진은 성남과 첼시 성적 하락까지 부추겼다. 특히 첼시는 2006년 여름 EPL 3연패와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위해 ´득점 기계´로 명성 떨친 셉첸코를 영입했으나 리그 2위 추락의 역효과를 맞은데다 그가 활약하던 시기에 두 번이나 감독을 경질했다. 그가 드록바 중심의 첼시 공격 전술에 적응하지 못해 두 시즌 동안 리그 9골에 그쳤다면 이동국은 ´모따-두두´로 짜인 삼바 듀오 중심의 성남 공격 패턴에 녹아드는데 실패했다.

더구나 김학범 감독은 당초 이동국 영입을 반대한 바 있다. 지난 7월 27일 이동국의 성남 이적설이 여론에 제기되자 "우리가 이동국을 쓰는 일은 없다. 구단과 검토 끝에 이동국을 영입하지 않기로 최종 결론 내렸다"며 국내 여러 언론을 통해 일침을 가했기 때문. 그러나 성남은 이적 시장 막판 ´기존의 계획을 바꿔´ 이동국을 받아들였으나 지금까지의 결과는 ´헛수고´에 가까워졌다.

흥미로운 것은 2006년 당시 첼시 사령탑을 맡았던 조세 무리뉴 감독(현 인터밀란)도 셉첸코의 영입을 반대했었다. 선수 영입에 권한이 없던 무리뉴 감독은 자신의 계획에 없던 셉첸코를 데려온 로만 아브라모비치 첼시 구단주와 관계가 틀어졌고 이것은 ´무리뉴vs셉첸코´, ´무리뉴vs아브라모비치´의 대립으로 확대됐다. 2006/07시즌 중반까지 주전 공격수로 활약했던 셉첸코는 무리뉴 감독의 미움(?)을 받으며 그가 경질되기 전까지 꾸준한 출전 기회를 얻지 못했다.

그러나 이동국이 지금의 부진에서 탈출할 수 있는 교훈은 셉첸코에게 있다. 셉첸코는 첼시 시절 연이은 부진 속에서도 팀 플레이에 녹아들지 못해 끝내 고개를 떨궈야만 했기 때문. 지네딘 지단이 레알 마드리드에 입단했던 첫 시즌 ´먹튀´라는 비아냥을 받다 팀 플레이에 적응한 노력끝에 다음 시즌부터 기량이 만개했던 것 처럼 이동국도 성남의 빠른 공격 패턴에 익숙해진 몸놀림으로 변신하여 상대팀 골망을 출렁여야 한다.

이동국에게 있어 한 가지 긍정적 희망이 있다면 성남은 유독 ´공격수 부활´과 인연이 많은 팀. 2001년 성남의 정규리그 우승을 이끈 샤샤를 비롯 김대의, 김도훈, 우성용, 두두가 그 대상이다. 그 중 한 명인 김도훈이 성남 코치로 몸담고 있어 과거 대표팀에서 그와 함께 호흡을 맞췄던 이동국의 부활 가능성이 ´끝까지´ 없는 것은 아니다.

아무리 이동국이 지금의 셉첸코 행보와 비슷하더라도 분명한건 두 선수는 엄연히 다른 선수다. 셉첸코는 새로운 무대였던 프리미어리그에서 실패했지만 이동국은 98년 신인 시절부터 2006년까지 K리그 최정상급 스트라이커로 이름 떨친 경험이 있는데다 프로 데뷔 이후 10년 동안 산전수전 다 겪었던 선수였기에 다시 일어설 ´자신감´이 충만할 것으로 보인다.

현재 이동국의 나이는 29세. 자신의 우상인 황선홍이 오랜 세월 동안 집중적인 비난 여론을 받음에도 불구 34세였던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 ´4강 신화 영웅´으로 떠오른 것 처럼 ´포스트 황선홍´ 이었던 이동국이 다시 정상에 우뚝 설 기회는 아직 많이 남아있다. 2000년대 중반 한국 축구를 호령하던 이동국의 저력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Posted by 나이스블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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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나그네 2008.10.27 09:0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최근에 넣은 한 골도 그저 먹은 것이잖아 솔직히 말하자면.

  2. 후후 2008.10.27 10:1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동국, 셉첸코...

    발가락이 닮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