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축구 대표팀이 일본에게 1-2로 패한 것은 예상치 못한 결과였다. 그것도 후반 인저리 타임에 결승골을 내줬던 터라 마음이 쓰라리다. 더욱 믿기지 않는 것은 한국 대표팀이 일본과의 최근 A매치 4경기 연속 무승(2무 2패)에 그쳤다. 불과 3년 전까지 일본에 강한 모습을 보였으나 이제는 역전됐다.
이번 한일전은 아시아 축구의 최강이 한국이 아닌 일본으로 완전히 넘어갔음을 뻐져리게 실감했다. 50년 넘게 아시안컵을 제패하지 못했던 한국과 최근 4번의 아시안컵에서 3번의 우승을 거머쥐었던 일본의 명암은 분명 달랐다. 이제는 한국의 홈에서 일본에게 패하는 현실이다.
[사진=2011년 8월 10일 한국과 일본의 경기 모습. 당시 한국은 일본 원정에서 0-3으로 완패했다. 그리고 1년 11개월만에 펼쳐진 A매치 일본전에서도 1-2로 패했다. (C) 국제축구연맹(FIFA) 공식 홈페이지 메인(fifa.com)]
한국의 점유율 축구vs일본의 실리 축구...결과는 일본 승
겉으로는 한국의 경기 내용이 우세했다. 경기 내내 점유율과 패스 성공률에서 앞섰으며 공격 기회도 더 많았다. 흔히 일본 축구의 강점으로 기술이 꼽히나 오히려 이번 한일전에서는 양팀 선수들이 대등했거나 한국 선수들이 앞서있던 인상이었다. 반면 일본은 수비적인 경기를 펼쳤다. 한국이 점유율 축구를 펼쳤다면 일본은 실리 축구로 맞섰다.
그러나 점유율-패스 성공률-공격 기회가 상대 팀보다 많다는 이유로 경기 내용에서 앞섰다고 단정짓는 것은 어떤 관점에서는 옳지 못한 판단이다. 과연 자신들이 원하는 축구를 했느냐가 경기 내용 우세를 판단하는 또 다른 기준이 될 수 있다. 일례로 바이에른 뮌헨은 FC 바르셀로나와의 지난 시즌 UEFA 챔피언스리그 4강 1~2차전 모두 점유율에서 밀렸다. 그러나 상대 팀에게 점유율을 내주면서 강력한 압박과 빠른 역습을 펼친 것이 두 경기 통합 스코어에서 7-0으로 이겼던 계기가 됐다. 누가봐도 경기 내용은 바이에른 뮌헨의 우세였다. 점유율 높다고 경기 내용이 좋은 것은 아니다.
이러한 관점이라면, 이번 한일전은 일본의 경기 내용이 우세했다. 일본이 실리적인 자세로 나선 것은 최근 A매치에서 드러난 수비 불안을 만회하겠다는 목적과 동시에 한국의 약점이었던 원톱 문제를 물고 늘어지겠다는 계산이었다. 자케로니 감독을 비롯한 일본의 코칭 스태프는 틀림없이 한국의 최근 A매치 경기를 봤을 것이다. 호주전과 중국전에서 슈팅 31개를 날렸음에도 단 1골도 넣지 못했던 한국의 고질적인 골 결정력 부족도 파악했을 것임에 틀림 없다.
따라서 일본은 한국에게 문전 침투 공간을 내주지 않기 위해 미드필더들의 적극적인 수비 가담을 주문했다. 다카하기-야마구치로 짜인 더블 볼란테는 포백을 밀착 보호했고, 아오야마-하라구치-구도 같은 2선 미드필더들도 밑으로 자주 내려오면서 경기 상황에 따라 전방 압박까지 시도했다. 자케로니 감독의 전략은 적중했다. 한국의 원톱을 맡았던 김동섭을 비롯한 공격 옵션들이 좀처럼 페널티 박스 안쪽에서 일본 수비진을 완전히 벗겨내지 못했다. 페널티 박스 안쪽에서 슈팅을 날렸던 장면도 있었으나 골 운이 따르지 못했다. 그나마 윤일록의 동점골이 위안이었으나 스스로의 힘으로 중거리 슈팅을 날렸다.
특이하게도 한국과 동아시안컵에서 맞대결 펼쳤던 호주-중국-일본의 전술은 너무나 비슷했다. 선수들의 무게 중심이 중앙 쪽으로 쏠리면서 한국 선수들을 압박한 뒤 수비적인 경기를 펼쳤다. 한국의 측면 공격이 활발했던 것도 이 때문이다. 중앙보다는 측면쪽에 공간적인 여유가 있었다. 그러나 측면에서 공급되는 크로스의 퀄리티가 전체적으로 좋지 못했다. 때로는 롱볼도 날렸으나 오히려 상대 팀들이 한국의 긴 패스 공격을 미리 읽으며 세컨 볼을 대비하는 수비적인 자세를 취했다. 한국의 공격 전술이 호주와 중국에 이어 일본에게 읽힌 것이다.
이는 일본이 한국을 상대로 실리적인 경기를 펼쳤던 빌미로 작용했다. 호주전과 중국전을 봐도 한국의 약점이 뻔하게 드러났기 때문이다. 일본은 아시아권 팀을 상대로 점유율을 늘리는 축구를 하는 팀으로 유명하나 한국전에서는 평소와 다른 전략을 취했고 결국 자케로니 감독의 지략이 적중했다. 또한 실리 축구를 펼치는 팀들의 특징은 역습으로 골 기회를 노린다. 일본의 2골은 모두 역습 상황에서 벌어졌다. 아마도 한국의 수비진이 흐트러졌을 때 빠른 역습으로 골 기회를 노리겠다는 공격 전략을 설정했는지 모른다.
한국과 일본은 원톱의 경기력이 서로 달랐다. 김동섭이 나름 분주하게 움직였으나 임펙트가 약했던 반면 카키타니는 볼 터치가 많은편은 아니었으나 한국을 상대로 2골 터뜨렸다. 홍명보호에는 카카타니 같은 골 기회 포착 능력이 뛰어난 원톱이 없었고 이것이 일본전 패인이었다. 아무리 점유율과 공격 기회가 많아도 공격수가 제 구실을 못하면 경기에서 승리하기 힘들다. 일본이 실리 축구를 잘했던 배경에는 카키타니 같은 좋은 원톱이 있었다. 조영철 제로톱 전환마저 실패했던 한국은 일본에게 패할 수 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