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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지소연, 여자 축구의 대들보로 성장하다

 

개인적으로 지난 27일 여자축구 한일전은 큰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한국 여자 대표팀이 북한전과 중국전에서 패한 상황에서 일본전 전망마저 어려웠기 때문이다. 일본은 2011년 여자 월드컵 우승팀이자 세계 랭킹 3위를 기록중인 아시아 여자 축구의 최강자다. 한국은 일본과의 A매치 역대 전적에서 24전 2승 8무 14패의 열세를 나타냈으며(7월 27일 이전까지) 이번 일본전에서 패배를 모면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이 일본에게 패하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았다. 한일전이 펼쳐졌던 오후 8시에 나는 인터넷 검색으로 시간을 보냈다.

 

[사진=지소연 (C) 고베 아이낙 공식 홈페이지 프로필 사진(inac-kobe.com)]

 

그런데 페이스북에 지소연의 일본전 프리킥 골 동영상이 올라온 것을 봤다. 일본 선수들이 형성한 벽을 허무는 멋진 오른발 프리킥 골 장면이 전반 13분에 터진 것이다. 지소연 발끝에서 득점이 나온 것을 보며 '잘하면 일본을 이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일본에게 선제골을 내주면 강팀을 상대로 2골을 넣어야 하는 부담이 있으나 오히려 한국이 앞서가게 됐다. 동아시안컵 3전 전패를 당하지 않겠나는 여자 대표팀 선수들의 집념이 살아나면 일본을 제압할 것 같다는 확신이 생겼다. 그러면서 한일전을 시청하게 됐다.

 

후반 21분 지소연의 추가골은 그녀의 스타 기질을 읽을 수 있는 장면이었다. 골대 앞으로 쇄도하면서 볼을 받아냈을 때 일본 골키퍼를 앞에 두고 강력한 오른발 슈팅으로 골망을 흔들었다. 첫번째 골이 일본을 이기겠다는 기선 제압 성격이 짙었다면 두번째 골은 한국 승리의 쐐기를 박는 결정적 장면이자 빅 매치에 강하다는 것을 보여줬다.

 

일본전 같은 큰 경기에서는 이름값 있는 스타의 활약이 돋보여야 한국이 이길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한다. 스포츠 스타는 많은 국제 경기를 치렀던 경험이 있으며 자신의 재능을 마음껏 발휘하는 재주가 넘쳐난다. 지소연도 그런 능력이 있다는 것을 이번 일본전 2골을 통해 보여줬고 한국의 2-1 승리를 이끌게 됐다.

 

만약 한국 대표팀 전력이 세계 강팀급 이었다면 지소연은 북한전과 중국전에서 수월하게 경기를 펼쳤을 것이다. 미드필더들의 활발한 공격 지원을 받으며 여러차례 골 기회를 얻어냈거나 페널티 박스쪽으로 침투하는 동료 선수의 골을 돕는 도우미 역할을 통해서 말이다. 하지만 한국 대표팀은 아직 아시아 축구를 압도하는 수준이 아니다. 지소연이 지난 2경기에서 상대 팀의 강한 견제에 시달리며 고전했던 것도 이 때문이다. 반면 일본전은 지소연이 스스로 골을 해결지으면서 한국의 승리까지 결정짓는 원맨쇼 기질을 발휘했다. 한국 여자 축구의 에이스다운 저력을 일본전에서 보여줬다.

 

지소연은 일본전 2골을 통해 모처럼 사람들의 높은 주목을 끌게 됐다. 2010년 FIFA U-20 여자 월드컵 3위 및 광저우 아시안게임 동메달 획득을 통해 한국 여자 축구의 샛별로 떠올랐고 이듬해부터 지금까지 일본 여자 축구리그(고베 아이낙)에서 활약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여자 축구에 대한 인기가 높지 않다. 남자 축구와 관련된 콘텐츠가 오랫동안 축적되고 대중적인 관심을 끌면서 여자 축구의 영향력이 약했다. 여자 축구의 인프라도 남자 축구에 비해 매우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열악한 환경에서 지소연이라는 여자 축구 천재가 배출된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닐까 싶다.(여민지까지 포함하여)

 

사실, 지소연이 여자 축구의 스타로 발돋움했던 U-20 여자 월드컵도 처음에는 남아공 월드컵 이슈에 묻히면서 국내 여론의 눈길을 끌지 못했다. 하지만 지소연이 조별본선 1차전 스위스전에서 해트트릭을 달성하며 한국의 4-0 승리를 이끌었고 2차전 가나전 2골로 4-2 승리를 공헌하는 돌풍을 일으켰다. 그녀는 이 대회에서 득점 2위(8골)를 기록하며 팀의 3위 입상을 주도했고 한국 여자 축구가 세계 무대에서 통한다는 것을 국민들에게 실력으로 보여줬다. 이번 일본전 2골까지 포함하면 한국 여자 축구의 대들보로 성장했다고 봐야할 것이다.

 

만약 지소연이 독일-미국-일본 같은 여자 축구 강팀의 골잡이였다면 지금쯤 세계 성인 무대를 호령했거나 근접하는 수준으로 도약했을지 모른다. 소속팀 동료 사와 호마레처럼 말이다. 그녀가 한국 대표팀 선수라서 다행이다. 앞으로 일본 무대에서 지속적으로 좋은 모습을 보이면서, 여민지가 끊임없이 성장하고, 한국 대표팀 전력이 지금보다 더욱 업그레이드 된다면 2015년 캐나다 여자 월드컵에서 태극 낭자들의 선전을 기대해도 될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