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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아르연 로번, 더 이상 만년 2인자 아니다

 

2012/13시즌 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의 주인공은 바이에른 뮌헨이 됐다. 라이벌 도르트문트를 2-1로 제압한 것. 승리의 일등공신은 아르연 로번이었다. 후반 15분 골대 왼쪽에서 도르트문트 골키퍼 로만 바이덴펠러를 앞에 놓고 왼발로 패스를 높이 올린 것이 마리오 만주키치의 선제골로 이어졌다. 후반 43분에는 페널티 박스 안쪽으로 침투하는 과정에서 상대 팀 선수들을 따돌리고 볼을 탈취한 뒤 왼발로 골망을 흔들었다. 이날 1골 1도움 기록하며 바이에른 뮌헨에게 다섯 번째 빅이어를 안겨줬다.

 

로번은 이날 활약으로 지난 시즌 챔피언스리그 결승전 페널티킥 실축의 악몽을 해소했다. 친정팀 첼시를 상대로 연장 전반 3분에 페널티킥 키커로 나섰으나 페트르 체흐 선방에 막혀 골을 넣지 못한 것. 바이에른 뮌헨은 승부차기끝에 3-4로 패하여 준우승에 머물렀다. 특히 경기 장소는 바이에른 뮌헨의 홈 구장 푸스발 아레나 뮌헨이었다. 로번은 바이에른 뮌헨 팬들에게 역적이 됐다. 며칠 뒤 푸스발 아레나 뮌헨에서 펼쳐진 네덜란드 대표팀과 바이에른 뮌헨의 친선전에서는 홈팬들의 야유 세례를 받았다.

 

당시 로번을 향한 바이에른 뮌헨 팬들의 야유는 선수 입장에서 억울함이 있었을 것이다. 2011/12시즌 각종 대회를 포함한 35경기에서 18골 6도움 기록하며 주축 선수로서 제 몫을 다했다. 레알 마드리드와의 챔피언스리그 4강 2차전에서는 팀이 0-2로 뒤진 상황에서 전반 27분 페널티킥 골을 넣었다. 만약 페널티킥을 성공시키지 못했으면 바이에른 뮌헨은 결승에 진출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바이에른 뮌헨 팬들은 팀이 홈에서 유럽 챔피언 등극이 좌절되는 충격을 크게 받았다. 로번을 원망할 수 밖에 없었다.

 

로번은 그때의 좌절로 결승전에 약한 면모가 두드러졌다. 2009/10시즌 챔피언스리그 결승 인터 밀란전, 2010년 남아공 월드컵 결승 스페인전에서 무득점에 그쳤고 팀은 우승에 실패했었다. 특히 인터 밀란전에서는 7개의 슈팅을 날렸으나 유효 슈팅이 1개에 그쳤다. 바이에른 뮌헨이 0-2로 완패했던 원인 중 하나. 팀이 인터 밀란의 강력한 압박을 뚫지 못하면서 자신쪽으로 골 기회가 많이 찾아왔으나 골대 안쪽으로 향하는 슈팅이 적었다. 스페인전 무득점도 아쉬움에 남았다. 16강 슬로바키아전 1골, 8강 브라질전 1도움, 4강 우루과이전 1골로 3경기 연속 공격 포인트를 기록했으나 결승 스페인전에서는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

 

이뿐만이 아니다. 흔히 로번하면 '유리몸'이라는 수식어가 떠오른다. 잦은 부상으로 신음했던 것. 박지성-이영표와 함께 PSV 에인트호번에서 호흡을 맞췄던 2003/04시즌 이후부터 10시즌 동안 정규리그에서 30경기 이상 뛰었던 경험이 없다. 올 시즌 분데스리가에서는 16경기 출전에 그쳤다. 현 소속팀 바이에른 뮌헨에서 활약했던 4시즌 동안 분데스리가에서 25경기 이상 그라운드를 밟았던 시즌이 없었을 정도. 마지막으로 정규리그에서 30경기 이상 뛰었던 때는 2002/03시즌(33경기)이며 당시 그의 나이는 19세였다. 10년 동안 고질적인 부상으로 어려움을 겪었다.

 

만약 로번이 부상으로 어려움을 겪지 않았다면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레알 마드리드)에 뒤지지 않거나 또는 능가했을지 모를 커리어를 자랑했을 것이다. 결승전 징크스까지 없었다면 2009/10시즌 UEFA 챔피언스리그와 2010년 남아공 월드컵을 우승하며 리오넬 메시(FC 바르셀로나)를 제치고 2010 FIFA 발롱도르를 수상했을지 모를 일이다. 재능만큼은 그 누구에게 뒤지지 않는다. 하지만 잦은 부상과 결승전 징크스에 의해 만년 2인자에 머물 수 밖에 없었다.

 

최근에는 바이에른 뮌헨의 호셉 과르디올라 감독 영입에 의해 팀을 떠날 것이라는 루머가 전해졌다. 인터 밀란과 갈라타사라이 이적설에 시달렸던 것. 문전 쇄도에 이은 마무리 혹은 측면에서 크로스를 띄우는 자신의 경기 패턴이 티키타카를 선호하는 과르디올라 감독과 잘 안맞았을 것이라는 외부의 견해가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올 시즌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서 1골 1도움을 기록하며 팀의 우승을 공헌하며 자신이 팀에 필요한 존재임을 실력으로 입증했다. 그것도 결승전 징크스까지 극복했다. 과르디올라 감독이 그를 쉽게 포기하지 않을 것 같다.

 

로번은 더 이상 만년 2인자가 아니다. 자신의 첫 유럽 대항전 우승을 경험했으며 그것도 결승전에서 강력한 임펙트를 과시했다. 물론 2013 FIFA 발롱도르 수상 여부는 불투명하다. 올 시즌 분데스리가 16경기 5골 5도움의 스탯이 만족스럽지 않다. 2013/14시즌 전반기 활약이 중요하나 그동안 부상이 잦았다. 그럼에도 바이에른 뮌헨에서 자신의 축구 인생 최고의 나날을 보내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첼시와 레알 마드리드에서는 주축 선수였음에도 팀을 떠나게 되었으나 바이에른 뮌헨에서는 팀의 절대적인 존재로 군림했다. 축구 실력 하나 만큼은 1인자에 어울린다는 것을 도르트문트전 1골 1도움으로 보여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