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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레알의 독이 든 성배, 무리뉴도 희생양

 

2012/13시즌 무관에 그쳤던 조세 무리뉴 감독이 결국 레알 마드리드를 떠나게 됐다. 경질이 아닌 구단과의 상호 계약 해지에 의해 팀을 떠나게 되었다고 플로렌티노 페레즈 레알 마드리드 회장이 밝혔다. 무리뉴 감독도 팀을 떠나기를 원했던 것으로 보여진다. 그는 얼마전 "나를 사랑하는 팀에 있고 싶다. 그러나 스페인은 일부에서 나를 싫어한다"며 레알 마드리드와의 작별을 암시하는 발언을 하면서 친정팀 첼시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을 내비쳤다.

 

무리뉴 감독은 지난 10년 동안 FC 포르투, 첼시, 인터 밀란에서 승승장구하며 세계 최고의 감독(2010년 FIFA 올해의 감독상)으로 명성을 떨쳤다. 2010년 5월 말 레알 마드리드와 계약하기 며칠전에는 인터 밀란의 2009/10시즌 트레블을 이끌었으며 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의 기쁨을 만끽했던 장소가 산티아고 베르나베우였다. 레알 마드리드의 숙원이었던 통산 10번째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이루어낼 적격자로 꼽혔다. 그러나 3년 만에 팀을 떠나면서 그들의 기대치를 충족하지 못했다.

 

사실, 무리뉴 감독은 레알 마드리드에서 실패하지 않았다. 6시즌 연속 챔피언스리그 16강 탈락으로 고전을 면치 못했던 레알 마드리드의 사령탑을 맡아 3시즌 연속 챔피언스리그 4강 진출을 이끌었다. 2010/11시즌 코파 델 레이 결승에서는 라이벌 FC 바르셀로나를 꺾고 우승했으며 2011/12시즌에는 프리메라리가 정상에 등극했다. 2012/13시즌 FC 바르셀로나와의 전적에서는 3승 2무 1패로 앞섰고 팀은 맞수와의 시즌 전적에서 5시즌 만에 우위를 나타냈다.

 

문제는 챔피언스리그 우승 실패였다. 3시즌 연속 4강에서 탈락했다. 16강 징크스에서 벗어났을 뿐 번번이 4강에서 고전을 면치 못했다. 2010/11시즌 FC 바르셀로나, 2011/12시즌 바이에른 뮌헨, 2012/13시즌 도르트문트에게 탈락한 것. '스페셜 원' 답지 못했던 결과였다. 레알 마드리드의 챔피언스리그 경쟁력을 높였을 뿐 그들이 가장 원했던 통산 10번째 우승을 이루지 못했다. 도르트문트에게 덜미를 잡힌 이후에는 훈련장에서 레알 마드리드 팬들의 야유 세례를 받은 것이 화제를 모으면서 백곰군단과의 작별을 눈 앞에 뒀다. 다수의 현지 레알 마드리드 팬들에게 경질 압박을 받게 된 것.

 

레알 마드리드 감독직은 '독이 든 성배'다. 1989년 존 토샥 전 감독부터 2010년 마누엘 페예그리니 전 감독(현 말라가)에 이르기까지 21년 동안 24번의 감독 교체를 단행했다. 마지막으로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이루었던 2001/02시즌 이후에는 11시즌 동안 11명의 감독을 바꿨으며 무리뉴 감독도 그 중에 한 명이 됐다. 1960년부터 1974년까지 팀을 지휘했던 미구엘 무뇨스 전 감독 이후 레알 마드리드에서 장기 집권했던 감독은 없었다. 심지어 파비오 카펠로(현 러시아 대표팀) 전 감독은 2006/07시즌 레알 마드리드의 프리메라리가 우승을 달성했음에도 수비 축구를 이유로 경질됐다.

 

무리뉴 감독도 희생양이 됐다. 만약 올 시즌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이루었다면 지금 같은 안좋은 분위기에서 팀을 떠날 일이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레알 마드리드 사령탑으로서 유럽을 제패하는 것은 다른 팀에서 지휘하는 것보다 더 힘들다. '반드시 챔피언스리그를 우승해야 한다', '많은 경기를 이겨야 한다'는 압박감이 감독들을 지치게 했고 무리뉴 감독도 마찬가지였다. 만약 무리뉴 감독이 경험 부족한 지도자였다면 지금보다 스트레스를 크게 받았을지 모를 일이다. 레알 마드리드 현지 팬들이 무리뉴 감독을 싫어하는 것도 챔피언스리그 우승 실패에 따른 실망감에서 비롯됐다.

 

특히 스페인 언론이 문제였다. 올 시즌 내내 무리뉴 감독과 이케르 카시야스 같은 몇몇 선수와의 불화를 끊임없이 제기했다. 특히 '무리뉴vs카시야스'의 대립은 무리뉴 감독이 스페인 언론 및 레알 마드리드 팬들과의 관계가 악화된 요인으로 작용했다.

 

카시야스는 레알 마드리드의 유스 출신이자 팀의 살아있는 레전드다. 무리뉴 감독이 그를 벤치 멤버로 내린 것은 팀의 전력 강화를 위한 선택이었을지 몰라도 스페인 언론에게는 곱지 않은 시선으로 비춰졌다. 물론 무리뉴 감독은 평소 스페인 언론과의 관계가 좋지 못했다. 그런데 카시야스를 주전에서 제외하면서 스페인 언론과의 관계가 더 나빠졌고 레알 마드리드 팬들은 무리뉴 감독이 아닌 카시야스에게 힘을 실어줬다. 무리뉴 감독은 디에고 로페즈에게 힘을 실어주는 발언을 하며 카시야스를 옹호하는 여론을 자극했으나 결과적으로 불난 집에 기름을 붓는 격이 됐다.

 

무리뉴 감독에게 2012/13시즌은 최악의 시즌이었다. 올 시즌 3개 대회에서 우승을 이루지 못했고, 현지 여론의 경질 압박에 시달렸으며, 나쁜 분위기에서 팀을 떠나게 됐다. 레알 마드리드에서 나름의 의미있는 업적을 이루었으나 마치 실패한 감독이 된 것 처럼 보인다. 그의 직장이 레알 마드리드였기 때문이다. 이제는 새로운 팀에서 명예회복을 해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됐다. 그 팀이 첼시가 될지 앞날의 상황이 흥미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