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생제르맹이 UEFA 챔피언스리그 16강 1차전 발렌시아 원정에서 2-1로 이겼다. 하지만 파리 생제르맹의 승리보다는 에이스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의 퇴장이 더 눈길을 끌었다. 즐라탄은 후반 47분 오른쪽 측면에서 발렌시아 선수 2명에게 거친 파울을 범했다. 자신과 볼을 다투던 다니엘 파레조를 오른쪽 다리로 넘어뜨린 뒤 근처에 있던 안드레 과르다도의 발을 밟으면서 레드 카드를 밟았다. 즐라탄은 16강 2차전에 뛸 수 없게 됐으며 파리 생제르맹은 8강 진출을 장담할 수 없게 됐다.
즐라탄의 거친 파울은 불필요한 장면이었다. 경기 종료를 얼마 앞두고 퇴장당한 것. 일각에서 주심의 퇴장 판정이 과했다는 반응을 내비쳤으나 오해받을 만한 행동을 한 것 자체가 매끄럽지 않다. 상대팀 선수와 볼 경합을 벌이면서 파울에 주의했다면 홈에서 펼쳐질 16강 2차전에 모습을 내밀었을지 모를 일이다. 파리 생제르맹은 16강 2차전에서 즐라탄 공백을 메워야 하는 숙제를 안게 됐다.
파리 생제르맹의 8강 진출 전망이 매우 어두울 정도는 아니다. 1차전 원정에서 2골 넣은 것이 의미있다. 홈에서 펼쳐질 2차전에서 0-1로 패하더라도 16강을 통과한다. 따라서 카를로 안첼로티 감독은 2차전에서 무실점을 노리는 전술을 꺼내들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발렌시아 파상공세에 의해 대량 실점으로 패할 경우 8강에 오를 수 없다. 즐라탄 퇴장이 8강 진출 실패의 결정적 원인으로 몰릴 수 있는 상황. 자칫 즐라탄 커리어의 오점으로 남게 될지 모를 일이다.
즐라탄은 챔피언스리그 악연과 밀접한 공격수다. 정규리그에서는 소속팀 1위를 공헌하는 '우승 제조기'로 군림했으나 유독 챔피언스리그에서 우승과 인연이 없었다. 2009년 여름 인터 밀란에서 FC 바르셀로나로 이적한 것이 챔피언스리그 악연의 시작이었다. 당시 바르셀로나는 트레블을 달성하며 유럽 최고의 클럽으로 맹위를 떨쳤다. 즐라탄은 2009/10시즌 바르셀로나의 프리메라리가, FIFA 클럽 월드컵 우승 멤버로 활약하는 등 팀의 최전방 공격수로 입지를 다졌다.
하지만 즐라탄은 2009/10시즌 챔피언스리그 4강 1~2차전 인터 밀란전에서 부진했다. 친정팀 수비수들에게 봉쇄 당하면서 타겟맨 구실을 하지 못했던 것. 바르셀로나 탈락의 빌미를 제공하면서 2010년 여름 AC밀란으로 임대되는 신세로 내몰렸다.(1년 임대 후 완전 이적) 그런데 즐라탄과 작별했던 인터 밀란은 2009/10시즌 트레블을 이룩했다. 즐라탄을 내보내고 사뮈엘 에토(현 안지) 디에고 밀리토를 영입하며 화력을 업그레이드 한 것이 엄청난 성과로 이어졌다.
즐라탄은 2010/11시즌 AC밀란의 세리에A 우승을 이끌었다. 그러나 이번에도 챔피언스리그에서 웃지 못했다. 토트넘과의 16강 1~2차전에서 상대팀 선수들의 집중 견제에 시달리며 골을 넣지 못했던 것. 챔피언스리그 32강 조별리그 6경기에서 4골 터뜨렸던 활약상과 달리 토트넘전 2경기에서 무득점에 그쳤고 AC밀란은 8강 진출에 실패했다. 자신을 세리에A로 보냈던 바르셀로나는 프리메라리가와 챔피언스리그 동시 우승에 성공했다. 즐라탄 보직이었던 최전방 공격수 자리를 리오넬 메시가 맡으면서 두 시즌 만에 유럽 정상을 탈환했던 것.
그 이후에도 챔피언스리그 악연은 계속됐다. 지난 시즌 32강 조별리그 4경기 4골, 16강 아스널전 2경기 1골 기록한 것과 달리 8강 바르셀로나전 두 경기에서 무득점에 그쳤다. AC밀란의 4강 진출은 좌절됐다. 지난해 여름에는 AC밀란의 재정적 문제를 이유로 파리 생제르맹에 안착했으나 16강 1차전 발렌시아전 퇴장으로 여전히 악연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즐라탄과 챔피언스리그의 불편한 관계는 기록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즐라탄은 유벤투스로 이적했던 2004/05시즌 이후 지금까지 챔피언스리그 74경기에서 24골 기록했다. 하지만 챔피언스리그 토너먼트에서는 4골에 그쳤다. 대회 우승의 길목으로 접어들 때마다 골잡이 본분에 충실하지 못했다.
악연은 소속팀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지난해 유로 2012 본선 3경기에서 2골 넣었으나 스웨덴 대표팀은 D조 4위에 그쳐 탈락했다. 스웨덴은 우승 전력이 아니었지만 즐라탄 개인에게는 유럽 제패와 단단히 인연이 없었다. 현역 선수로 활동하면서 챔피언스리그 우승컵을 들어올리는 날이 과연 올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