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격적인 패배였다. 지난해 5월 31일 스페인전 1-4 패배보다 씁쓸했다. 그때는 세계 최강 스페인을 맞이하여 그나마 1골 넣었지만 이번 평가전 상대인 크로아티아는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 10위 팀이다. 크로아티아도 강팀이지만 스페인-브라질-독일-아르헨티나 같은 전통의 강호와는 레벨이 달랐다. 크로아티아와의 역대 전적에서는 한국이 2승2무1패로 앞섰다. 1996년 3월 13일 0-3 완패 이후 17년 동안 크로아티아에게 지지 않았다. 1골차 패배라면 몰라도 0-4 대패는 믿기지 않는다.
한편으로는 크로아티아전 0-4 패배가 반가웠다. 한국 대표팀의 현 주소를 제대로 파악할 수 있었던 경기였기 때문. 지금의 전술과 선수들의 경기력으로는 2014 브라질 월드컵 본선에서 경쟁력이 없다는 것을 많은 사람들이 인지하게 됐다. 앞으로 남은 1년 4개월이 중요한 이유. 과거 히딩크호가 2001년 프랑스, 체코에게 0-5 대패를 당하는 시련을 겪으면서 전력 업그레이드를 이루어낸 끝에 2002년 한일 월드컵 4강 신화를 창조했던 때를 떠올려야 할 것이다.
한일 월드컵 4강, 런던 올림픽 동메달 공통점...강력한 수비
크로아티아전에 선보였던 최재수-곽태휘-이정수-신광훈으로 짜인 포백은 불안정한 조합이었다. 곽태휘-이정수 센터백 콤비는 지난해 대표팀에서 경기력이 떨어진 모습을 보였다. 노장 수비수로서 경험이 풍부하나 때때로 수비 집중력이 약한 문제점을 노출하며 기량 하락의 조짐이 나타났다. 최재수-신광훈 풀백 듀오는 아시아 이외의 팀들과 상대했던 경험이 풍부하지 않다. 소속팀 동계훈련을 통해 몸을 만드는 중이겠지만, 실전 감각이 쌓인 유럽 선수들과 상대하기에는 풀백으로서 몸놀림과 판단력, 체력에서 밀리기 쉬운 한계가 있었다.
한국의 수비 약점은 전반 6분부터 드러났다. 곽태휘 종패스가 크로아티아 선수쪽으로 향하면서 상대팀에게 공격권을 내주는 실책을 범했다. 다행히 실점을 모면했으나 센터백으로서 볼 관리에 신중할 필요가 있었다. 전반 17분까지 점유율에서는 56-44(%)로 앞섰으나 그 이후에는 수비에 신경썼다. 전반 초반에 수비 집중력이 떨어진 모습을 보이면서 미드필더들이 후방을 의식하게 됐다. 미드필더진과 포백의 폭을 좁히면서 크로아티아에게 침투 공간을 허용하지 않는데 주력했다. 기성용-구자철 같은 공격형 미드필더들도 압박에 충실했다. 다소 불안했던 포백이 안정감을 찾는 듯 했다.
하지만 한국은 전반 32분 만주키치에게 선제골을 내줬다. 라키티치의 오른쪽 프리킥이 만주키치의 헤딩골로 이어진 것. 만주키치 가까이에 있었던 신형민이 끈질기게 마크했으면 좋았을 장면이었으나, 선수들이 만주키치의 제공권이 강한 선수였음을 잊지 않았다면 신형민 혼자 마크하지 않았을 것이다. 문제는 A매치 4경기 연속 세트피스에서 실점을 허용했다. 지난해 9월 우즈베키스탄전 2실점이 세트피스였으며 10월 이란전, 11월 호주전에서도 세트피스에서 골을 내줬다. 한국 대표팀의 약점으로 부각되고 말았다.
전반 40분에는 스루나에게 골을 허용했다. 스루나가 박스 오른쪽에서 오른발 슈팅을 날리기 이전에 최재수 판단력이 좋지 못했다. 스루나쪽으로 달라 붙으면서 볼을 차단했어야 할 장면이었으나 근처에 있던 라키티치 움직임에 속았는지 활동 반경이 바깥쪽으로 빠졌다. 스루나에게 슈팅 공간을 허용하는 빌미를 제공한 것. 이정수의 커버가 늦은 것도 아쉬운 부분. 최재수가 공간을 비웠을 때 이정수가 앞쪽으로 나와서 스루나를 막았어야 했다. 후반 10분 옐라비치, 후반 39분 페트리치에게 추가 실점을 내줬을 당시에도 수비 대응이 석연치 않았다.
이날 한국은 포백 전원의 폼이 좋지 않았다. 상대팀 선수에게 뒷 공간을 내준 것을 비롯해서 패스 미스, 불안한 볼 관리, 느슨한 대인 마크에 이르기까지 답답함을 감추지 못했다. 크로아티아 공격에 의해 4실점 허용했기 보다는 한국이 빈틈없는 수비를 펼쳤다면 90분 내내 경기 흐름을 주도했을지 모를 일이다. 강력한 수비 없이는 손흥민 시프트, 기성용의 높은 패스 성공률, 이청용의 날카로운 크로스, 이동국-박주영 투톱 공존이 소용 없다는 교훈을 얻었다. 축구에서 수비가 약한 팀은 공격마저 잘 풀리지 않는다.
무엇보다 브라질 월드컵 본선에서 좋은 활약을 펼칠만한 수비수들이 대표팀에서 호흡을 맞출 시간이 많아야 한다. 히딩크호가 김태영-홍명보-최진철이라는 철옹성 스리백을 구축한 원동력은 세 선수가 대표팀에서 자주 발을 맞췄다. 이영표-송종국 같은 윙백들도 마찬가지. 반면 최강희호는 포백 인원 변동이 잦았다. 특히 풀백에는 마땅히 떠오르는 붙박이 주전 선수가 없다. 곽태휘-이정수 조합의 유지 여부도 고민해야 할 것이다. 개인 기량은 젊은 센터백보다 좋을지 모르나 실전에서 실수가 부쩍 늘었다. 수비수들이 함께 호흡할 기회가 많은 것도 중요하나 경쟁력 있는 조합이 아니라면 소용없다.
한국 축구의 자랑스런 업적이었던 2002년 한일 월드컵 4강과 2012년 런던 올림픽 동메달의 공통점은 강력한 수비였다. 짜임새 넘치는 협력 수비와 상대 공격을 저지하겠다는 끈기, 90분 동안 높은 수비 집중력을 유지하며 강팀들의 공세를 막았다. 이러한 수비력 없이는 국제 무대에서 좋은 성과를 거둘 수 없다. 최강희호의 1차적 숙제는 '언론에서 많이 보도된' 이동국-박주영 공존이 아닌 포백 안정이 되어야 할 것이다. 그 약점을 개선하지 않으면 언젠가 또 대패를 당하거나 브라질 월드컵 본선 진출조차 장담할 수 없는 상황에 몰릴지 모른다. 수비가 약한 팀은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