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파엘 베니테즈 감독은 첼시의 임시 사령탑이다. 올 시즌 종료까지 블루스를 지휘할 예정. 지난 두달 동안의 첼시 행보와 자신을 향한 현지 팬들의 부정적인 여론을 놓고 볼 때 다음 시즌 정식 사령탑으로 부임하는 일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유로파리그 우승을 이끌지라도 로만 아브라모비치 구단주가 만족하는 결과인지 의문. 지금 기세라면 베니테즈 감독의 경질은 실현 가능할 수도 있다.
물론 베니테즈 감독의 경질은 바람직하지 않다. 첼시는 감독 권한이 약하기로 소문난 클럽이며 성적 부진시 감독을 경질하는 안좋은 습관이 있다. 아브라모비치 구단주가 2003년 여름 팀을 인수한 이후 지금까지 거의 10년 동안 9명의 감독을 맞이했다. 그 중에는 한 시즌도 채우지 못하고 해고당한 감독도 있었다. 감독이 자신의 색깔에 맞는 전술과 선수 운영으로 시즌을 보내기에는 제약이 크다. 호셉 과르디올라 감독이 당초 물망에 올랐던 첼시가 아닌 바이에른 뮌헨을 차기 행선지로 선택한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베니테즈 감독이라면 상황이 달라진다. 프리미어리그 선두권 이탈 및 UEFA 챔피언스리그 32강 조별리그 탈락 위기에 빠졌던 팀을 원만하게 수습하지 못했다. 챔피언스리그 32강 탈락을 논외해도 FIFA 클럽 월드컵 우승 실패, 캐피털 원 컵 4강 탈락 및 1차전 홈 경기 0-2 완패, FA컵 4라운드 브렌트포드전 졸전(2-2 무승부), 최근 3경기 무승부, 1월 9경기 3승4무2패는 실망스러운 결과임에 틀림 없다. 흔히 팀을 완성시키는데 1년~1년 6개월의 시간이 필요하지만 첼시는 그런 여유를 허락하지 않는다.
베니테즈 감독의 가장 큰 약점은 첼시팬들이 싫어하는 지도자다. 과거 리버풀을 지휘했을 무렵 당시 첼시 사령탑이었던 조세 무리뉴 감독(현 레알 마드리드)을 비롯하여 첼시와 관련된 독설을 몇 차례 내뱉었다. 이 때문에 첼시 감독 부임 후 현지 팬들의 야유에 시달렸다. 스탬포드 브릿지 관중석에서는 "RAFA OUT"이라는 플랜카드가 등장했었다.
첼시 현지 팬들의 여론은 최근에도 변함없다. 잉글랜드 일간지 <데일리 메일>은 현지 시간으로 지난달 31일 기사를 통해 어느 첼시팬이 브루스 벅 첼시 회장과 이메일을 주고 받은 일화를 소개했다. 벅 회장은 이메일을 통해 베니테즈 감독을 비난했던 첼시팬에게 "보드진과 아브라모비치 구단주는 최근 결과에 대해 당신처럼 좌절하고 있다. 우리는 변화를 하도록 노력하겠다"는 답장을 보냈다. 이와 더불어 아브라모비치 구단주와 관련된 부분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어쩌면 베니테즈 감독 영입을 후회하지 않았을까.
첼시의 최근 성적 부진은 베니테즈 감독의 책임도 있지만 정확히는 아브라모비치 구단주와 첼시 구단의 책임이 매우 크다. 로베르토 디 마테오 전 감독을 경질하고 베니테즈 감독을 임시 사령탑으로 영입한 선택이 잘못됐다. 디 마테오 감독을 내치지 않았다면 첼시가 감독을 자주 바꾼다는 안좋은 인식을 조금이라도 개선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아브라모비치 구단주의 인내심은 부족했고 베니테즈 감독을 정식이 아닌 임시 사령탑으로 영입했다. 다음 시즌부터 과르디올라 감독에게 지휘봉을 맡기겠다는 포석이었다.
그러나 베니테즈 감독 영입은 지금까지 어떠한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 경기 내용과 성적에 걸쳐 긍정적으로 달라진게 없었다. 그나마 뎀바 바를 1월 이적시장에서 영입하면서 페르난도 토레스의 대안을 마련했으나 아직까지는 팀 성적에 커다란 영향을 끼치지 못했다. 현재의 침체가 계속 될 경우 베니테즈 감독을 정리해야 한다는 첼시 현지 팬들의 목소리가 커질 것으로 보인다.
어쩌면 베니테즈 감독은 임시 사령탑 계약 기간을 채우지 못하고 첼시를 떠날지 모른다. 자세한 계약 조건 여부를 떠나 지금 분위기라면 경질 타이밍이 빨라질 기세다. 그 시나리오가 실현되면 디 마테오-베니테즈 감독에 이어 올 시즌 3번째 지도자를 맞이할 것이다. 레알 마드리드의 경우 2004/05시즌 초반에 호세 카마초, 시즌 중반에는 가르시아 레몬, 후반기에는 반데를레이 룩셈부르고 감독에게 지휘봉을 맡겼던 전례가 있었다.
베니테즈 감독의 경질이 첼시에게 손해인 것은 분명하다. 외부로부터 "그럴거면 디 마테오 전 감독을 왜 경질했느냐?", "감독을 또 바꾼다"는 곱지 않은 시선을 받을 것이며 베니테즈 감독에게 위약금을 지불해야 할지 모른다. 하지만 경기력이 개선 될 기미를 보이지 않을 경우에는 극단적인 조치를 취할 수도 있다. 감독 교체가 잦았던 첼시라면 결코 불가능한 시나리오는 아닐 것이다.
또한 베니테즈 감독의 애제자이자 아브라모비치 구단주가 좋아하는 토레스는 최근 10경기에서 1골에 그쳤다. 뎀바 바 등장에 따른 풀타임 출전 감소를 고려해도 여전히 기복이 심한 모습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베니테즈 감독도 토레스 부활에 어려움을 겪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