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하 맨유)에게 등번호 7번은 각별하다. 바비 찰튼, 조지 베스트, 스티브 코펠, 브라이언 롭슨, 에릭 칸토나, 데이비드 베컴,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같은 맨유와 프리미어리그를 빛냈던 영웅들의 등번호였다. 하지만 2009년 여름 맨유에 입단했던 마이클 오언이 레알 마드리드로 떠난 호날두의 등번호를 물려 받으면서 맨유의 7번 가치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오언은 3시즌 동안 52경기 17골 1도움에 그쳤으며 부상으로 전력에서 이탈했던 시간이 많았다. 과거의 기량을 되찾는데 실패하면서 지난 시즌 종료 후 재계약에 실패했다.
2012/13시즌에는 안토니오 발렌시아가 7번 유니폼을 달고 있다. 칸토나-베컴-호날두 같은 맨유 에이스로 군림했던 레전드들과 달리 조연에 어울리는 콘셉트지만, 2011/12시즌 맨유 올해의 선수에 뽑힐 정도로 발군의 실력을 자랑했다. 날카로운 크로스와 빼어난 문전 침투, 악착같은 수비, 팀을 위해 헌신하는 자세에 이르기까지 공수 양면에서 만능적인 활약을 펼쳤다. 때때로 골까지 넣으면서 루이스 나니와의 주전 경쟁에서 이겼으며 일부 경기에서는 오른쪽 풀백으로 활약했다. 비록 맨유의 에이스는 아니었지만 팀에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자원이자 맨유의 7번을 받을 자격이 충분했다.
그러나 발렌시아의 이번 시즌 활약상은 저조하다. 프리미어리그 17경기에서 4도움을 기록했을 뿐 단 한 골도 넣지 못했다. 각종 대회까지 포함하면 21경기 동안 골이 없었다. 본래 다득점을 자랑했던 윙어는 아니었지만 박싱데이 이후에도 골이 없는 것 자체가 좋은 현상이 아니다. 맨유가 1월 이후 치렀던 다섯 경기에서는 한 경기에만 선발로 모습을 내밀었다. 가장 최근이었던 21일 토트넘 원정에서는 후반 29분 교체 투입했으나 패스 성공률이 67%에 그칠 정도로 팀 공격에 활력을 불어넣지 못했다.
발렌시아의 부진 원인은 부상 후유증이다. 2010/11시즌부터 크고 작은 부상에 시달렸다. 지난 시즌까지는 부상 복귀 이후 평소의 역량을 되찾는 모습을 보였으나 올 시즌은 달랐다. 지난해 9월 29일 리버풀전에서 발목 부상을 당했으며 11월 25일 퀸즈 파크 레인저스전을 앞두고는 엉덩이 부상으로 신음했다. 엉덩이 부상의 경우 한동안 통증을 참으며 경기에 임했다. 이러한 정황을 놓고 볼 때 최근에도 완전한 몸 상태가 아닌 상태에서 경기에 임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어쩌면 발렌시아에게는 충분한 휴식이 필요할 수도 있다. 아무리 최고의 기량을 자랑하는 축구 선수라도 몸이 좋지 않으면 평소의 실력을 발휘하기 어렵다. 그러나 발렌시아가 빠질 경우 맨유의 전력 약화가 불가피하다. 발렌시아의 공백을 루이스 나니, 대니 웰백이 메울 수 있으나 두 선수의 올 시즌 폼이 좋지 않다. 최근에는 맨유가 윌프레드 자하(크리스탈 팰리스)를 영입한다는 루머가 제기됐으나 2부리그의 촉망받는 유망주가 1부리그의 빅 클럽에서 두각을 떨친다는 보장은 없다.
발렌시아의 침체가 길어질 수록 맨유의 등번호 7번 딜레마는 점점 깊어질 것이다. 호날두가 올드 트래포드에서 7번 유니폼을 입었던 시절까지는 다른 팀들이 부러워할 7번 계보를 이어갔으나 오언의 실패 이후로 상황이 달라졌다. 발렌시아도 7번 주인공이 되면서 부상과 경기력 하락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 이유가 등번호 때문만은 아니겠지만 7번의 기대치를 충족시키지 못한 것 하나만은 분명하다.
누군가는 '과연 발렌시아가 7번 적임자일까?'라는 의문을 제기할 것이다. 틀린 말은 아니다. 발렌시아는 맨유 에이스라는 이미지와 거리감이 있다. 그러나 올 시즌 종료 후 다른 선수에게 7번 유니폼을 양보하는 것은 모양새가 좋지 않다. 현재로서는 발렌시아 스스로 슬럼프를 극복해야 한다. 그가 맨유 역사에 길이 남을 레전드가 되고 싶다면 등번호 7번의 가치를 화려하게 빛내야 할 것이다. 지금의 어려움을 반드시 이겨낼지 앞으로의 행보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