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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토레스 삭발-시세 카타르행이 전하는 교훈

 

한국 시간으로 지난 21일 첼시-아스널 경기에서는 페르난도 토레스가 삭발한 머리를 선보이며 많은 사람들의 눈길을 끌었다. 같은 날에는 퀸즈 파크 레인저스(이하 QPR)의 공격수로 뛰었던 지브릴 시세의 카타르 알 가라파 임대가 공식 발표됐다. 이들에게는 한 가지 교집합이 있다. 공격수로서 골이 부족했던 책임을 지고 말았다. 토레스는 지난 2년 동안 첼시에서 먹튀 논란에 시달렸고 시세는 올 시즌 프리미어리그 18경기에서 3골에 그쳐 QPR 꼴찌 추락의 원인 중 하나로 꼽히게 됐다.

토레스와 시세는 1월 이적시장에서 강력한 경쟁자들을 맞이했던 공통점이 있었다. 토레스 소속팀 첼시는 뉴캐슬 간판 공격수 뎀바 바를 750만 파운드(약 126억 원, 토레스 이적료의 15%!)에 영입하며 공격력 보강을 꾀했다. 뎀바 바는 데뷔전이었던 지난 6일 사우스햄프턴전에서 2골 넣으며 첼시의 5-1 대승을 이끄는 임펙트를 과시했다. 열흘 뒤 사우스햄프턴전에서는 선제골을 터뜨렸다. 강력한 파워와 위력적인 제공권 장악능력, 적극적인 몸놀림에 이르기까지 '드록바 대체자'로서 부족함 없는 활약을 펼쳤다. 7경기 연속 무득점에 빠진 토레스와 달랐다.

시세는 QPR이 로익 레미를 영입하면서 사실상 전력 외 선수로 분류됐다. QPR이 첼시 같은 빅 클럽이었다면 로테이션 시스템에 의해 팀에 잔류했을지 모를 일이지만 현실은 꼴찌 클럽의 공격수였다. 프리미어리그에서 3골 넣었음에도 최전방에서 위축된 플레이를 거듭하며 팀의 공격력 약화를 초래했다. 해리 레드냅 감독의 눈도장을 받는데 실패한 이유. 반면 레미는 지난 주말 웨스트햄전에서 데뷔골을 터뜨리며 자신의 QPR 데뷔전을 성공적으로 치렀다. QPR로서는 레드냅 체제에서 시세의 부활을 기대할 필요 없게 됐다.

토레스와 시세의 명성만을 놓고 보면 첼시와 QPR의 간판 공격수로 맹위를 떨쳤을지 모른다. 시세의 경우 지난 시즌 후반기 QPR 이적후 8경기에서 6골 넣으며 반짝했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프로는 실력으로 말한다. 아무리 네임벨류가 화려한 선수라도 실적이 저조하면 소용없다. 다른 선수에게 주전 자리를 내주거나 팀을 떠나야 한다. 국내 프로야구의 경우 그 해 부진한 선수는 연봉 삭감의 책임을 지게 된다. 토레스와 시세는 프로의 숙명을 받아들이게 됐다.

축구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공격수는 골을 넣어야 한다'는 말을 들어봤을 것이다. 주방에서 조리원들의 역할이 다르듯 축구에서는 선수 11명의 임무가 포지션마다 차이가 있다. 축구는 골로 경기 결과를 결정짓는 스포츠이며 상대팀 골대와 가까운 위치에 있는 공격수는 득점을 해결해야 하는 존재가 된다. 때로는 미드필더와 수비수가 골을 터뜨릴 때가 있지만(어떤 때는 골키퍼가 골을 넣는다) 어느 팀이든 공격수의 득점이 많다. '미추 효과'로 톡톡한 재미를 봤던 스완지 시티를 봐도 축구에서는 공격수 득점력이 팀의 승패를 좌우하게 쉽다.

로베르토 만치니 맨체스터 시티 감독은 얼마전 현지 언론에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맨체스터 시티의 차이는 로빈 판 페르시의 유무였다"고 밝혔다. 판 페르시는 지난 시즌 종료 무렵까지 맨체스터 시티 이적이 유력했던 프리미어리그 득점왕이었다. 시티가 유나이티드보다 선수 영입 및 주급에 더 많은 돈을 쏟을 가능성이 높았기 때문. 아스널 출신 선수를 두루 영입했던 경험도 빼놓을 수 없다.

하지만 판 페르시의 행선지는 올드 트래포드였다. 올 시즌에도 프리미어리그 득점 1위를 질주하며 퍼거슨호의 선두 질주를 이끌었다. 반면 만치니호는 마리오 발로텔리 슬럼프, 다비드 실바의 시즌 전반기 폼 하락 등을 이유로 지난 시즌의 불꽃 같은 득점력을 재현하지 못했다. 지난해 여름 발로텔리를 다른 팀에 보내고 판 페르시를 영입했다면 지금쯤 프리미어리그 선두를 내달렸을지 모를 일이다. 공격수 한 명의 존재감이 라이벌끼리의 희비를 엇갈리게 했다.

국내 축구도 다르지 않다. 일부 축구팬들은 이동국의 대표팀 발탁을 원치 않는다. 그가 국내용이라는 이유만으로 폄하한다. 그러나 공감하지 않는다. 이동국이 대표팀 명단에 꾸준히 이름을 올리는 원인은(지난해 한 번 제외되었음을 감안해도) K리그 클래식에서 그를 넘어설 국내 공격수가 없다. 2011, 2012시즌 이동국보다 더 많은 골을 기록했던 국내 공격수는 단 한 명도 없었다. 더욱이 이동국은 2011년 AFC 챔피언스리그 득점왕을 달성하며 아시아 정상급 공격수임을 실력으로 과시했다.

유럽파로 눈을 돌리면 이동국 대표팀 발탁이 설득력을 얻는다. 박주영은 셀타 비고의 백업 멤버이며, 지동원은 분데스리가 데뷔전을 잘 치렀으나 아직 실전 감각이 쌓이지 않았으며, 손흥민은 지금까지 대표팀에서 두각을 떨치지 못했다. 누군가는 대표팀에서 지동원과 손흥민 같은 영건들에게 꾸준한 선발 출전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고 주장할지 모르겠지만, 최강희호는 브라질 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에서 본선 진출권을 획득해야 하는 절대적 과제를 안고 있다. 변화보다는 안정, 그리고 이동국 경쟁력에 힘이 실릴 수 밖에 없다.

축구의 전술은 시대의 흐름에 따라 변화를 거듭했다. 이탈리아 세리에A가 유럽 최고의 리그로 군림했던 시절도 있었다. 불과 10년 전 호나우두와 지네딘 지단이 세계 최정상급 선수로 군림했다면 지금은 리오넬 메시의 시대다. 하지만 공격수가 골을 넣어야 한다는 교훈은 앞으로도 불변할 것이다. 많은 축구팬들이 선호하는 프리미어리그에서도 득점력이 뛰어난 공격수는 생존할 것이며 그렇지 않은 선수는 외면받을 것이다. 토레스는 본인이 심기일전을 위해 삭발했지만 뎀바 바와 경쟁하면서 주전을 위협받게 되었고 시세는 결국 카타르로 떠났다. 축구는 치열한 생존 경쟁속에 발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