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일 '2012 FIFA 발롱도르' 시상식에서 공개된 2012년 월드 베스트 11의 특징은 11명 전원이 스페인 프리메라리가에서 활동하는 선수들이다.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를 비롯한 다른 리그에서 활동하는 선수는 단 한 명도 뽑히지 못했다. 그동안 유럽 최고의 리그로 명성을 떨쳤던 프리미어리그로서 굴욕을 느낄 법 하다. 2011년 월드 베스트 11에서는 웨인 루니, 네마냐 비디치(이상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이하 맨유)가 뽑혔으나 2012년에는 누구도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특히 로빈 판 페르시의 월드 베스트 11 선정 실패는 선수 본인을 비롯하여 프리미어리그 입장에서 아쉬움을 느낄 것이다. 판 페르시는 현존하는 프리미어리그 최고의 선수다. 지난 시즌 아스널 소속으로서 프리미어리그 득점왕(38경기 30골)에 올랐으며 올 시즌에는 맨유로 이적하면서 프리미어리그 득점 1위(21경기 16골)를 질주중이다. 이러한 활약에 지난 시즌 빅4 탈락 위기에 직면했던 아스널의 3위 도약을 주도했으며 올 시즌에는 맨유의 1위 행진을 펼치는데 앞장섰다. 지난해 4월에는 PFA(잉글랜드 프로축구선수협회)가 선정하는 2011/12시즌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했다.
그러나 판 페르시는 월드 베스트 11 공격수 부문에서 리오넬 메시(FC 바르셀로나)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레알 마드리드) 라다멜 팔카오(아틀레티코 마드리드)에 밀려 수상에 실패했다. 유로 2012 부진이 치명타가 되고 말았다. 조별본선 2차전 독일전에서 1골 넣었을 뿐 1차전 덴마크전과 3차전 포르투갈전에서 골을 터뜨리지 못했고, 우승 후보로 꼽혔던 네덜란드는 3전 전패로 탈락하는 수모를 겪었다. 팀의 에이스였던 판 페르시에게 악몽같은 시간이었다. 메시-호날두를 넘어설 명분을 얻지 못한 것.
또 하나의 마이너스 요인은 UEFA 챔피언스리그 였다. 판 페르시는 지난 시즌 챔피언스리그 16강 2차전 AC밀란전에서 골을 터뜨렸으나 아스널은 8강 진출에 실패했다. 유로 2012와 챔피언스리그를 통해 유럽 최정상급 공격수에 등극할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반면 팔카오는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의 지난 시즌 유로파리그 우승, 2012년 UEFA 슈퍼컵 우승의 일등 공신 역할을 했다. 만약 네덜란드 대표팀과 '지난 시즌의 아스널'이 두 대회에서 의미 있는 성과를 거두었다면 판 페르시의 월드 베스트 11 선정 확률이 조금 높았을지 모를 일이다.
하지만 2013년에는 다르다. 맨유 소속으로서 챔피언스리그-프리미어리그 동시 제패에 도전하는 입장이다. 만약 팀의 두 대회 우승에 공헌할 경우 메시-호날두에 뒤지지 않을 명성을 누리면서 2013년 월드 베스트 11에 등극할 것으로 보인다. 챔피언스리그 16강에서는 레알 마드리드와 상대하면서 호날두와 맞대결 펼치는 부담감이 있지만 자신의 유럽 제패를 위해 반드시 넘어서야 하는 존재다. 또한 맨유가 아스널에 비해서 챔피언스리그 경쟁력이 강한 것도 판 페르시에게 다행이다. 맨유는 지난 5시즌 동안 우승 1회, 준우승 2회를 거둔 경험이 있다.
판 페르시는 2013년에도 '프리미어리그 최고의 선수' 명성에 걸맞는 활약을 펼쳐야 한다. 두 시즌 연속 프리미어리그 득점왕을 달성해야만 한다. 현재 16골로 1위를 기록중이나 루이스 수아레스(15골, 리버풀) 뎀바 바(13골, 첼시) 미구엘 미추(13골, 스완지) 같은 도전자들의 기세가 만만치 않다. 이들과의 득점왕 대결에서 이겨야 2시즌 연속 PFA 올해의 선수상 수상 가능성이 밝다. 맨유의 프리미어리그 우승을 이끄는 것도 중요하다. 아스널에서는 프리미어리그 우승의 꿈을 이루지 못했으나 맨유에서는 우승을 향한 동기부여가 남다를 것이다.
변수는 부상이다. 판 페르시는 2011/12시즌 이전까지 '유리몸'이라는 오명을 받으며 잦은 부상에 시달렸다. 지난 두 시즌 동안 큰 부상 없이 자신의 기량을 만개했으나 여전히 불안함을 지울 수 없다. 또 하나는 맨유의 챔피언스리그 성적이다. 만약 16강이나 8강에서 탈락할 경우 판 페르시에게 좋을리 없다. 판 페르시가 2013년 월드 베스트 11에 포함되려면 챔피언스리그에서 의미있는 성과를 거두는 것은 필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