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시즌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 최고의 이적생을 꼽으라면 '스페인 특급' 미구엘 미추(26, 스완지 시티. 이하 스완지)라고 볼 수 있다. 지난 여름 이적시장에서 200만 파운드(약 34억 원)의 저렴한 이적료를 기록했던 선수가 프리미어리그 득점 단독 선두(16경기 12골)를 질주중이다. 불과 5개월전까지 다수의 국내 축구팬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음을 떠올리면 그야말로 격세지감이다. 누구도 미추가 로빈 판 페르시(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루이스 수아레스(리버풀)와의 득점 경쟁 우세를 예상하지 못했다.
미추는 시즌 중반에 접어들면서 눈부신 득점력을 과시했다. 최근 프리미어리그 5경기 중에 4경기에서 상대 골망을 흔들었으며 총 6골 터뜨렸다. 지난달 2일 아스널전, 9일 노리치전에서는 멀티골을 쏘아올리기도. 이는 프리미어리그에 순조롭게 적응했다는 뜻이자 스완지와 상대하는 팀들이 미추 봉쇄에 어려움을 겪었다. 주 포지션이 공격형 미드필더로서 때에 따라 원톱 전환이 가능하나, 전문 공격수가 아닌 선수가 시즌의 절반이 끝나지 않은 상황에서 10골 넘은 것 자체가 놀라운 일이다.
만약 미추의 오름세가 지속될 경우 프리미어리그 득점왕에 등극할지 관심이 가지 않을 수 없다. 그 시나리오가 실현되면 프리미어리그에서 12년 만에 빅4 이외의 클럽에서 득점왕이 탄생한다. 2000/01시즌 첼시(당시 6위, 로만 아브라모비치 구단주 인수 이전)의 지미 플로이드 하셀바잉크(23골)가 득점왕에 올랐던 이후 11시즌 동안 프리미어리그 득점왕은 4위권 이내 클럽에 속한 골잡이들의 몫이었다. 다시 말해 상위권 클럽에서 득점왕이 배출되는 경우가 많았다.
현재 8위를 기록중인 스완지가 4위권 이내의 순위로 시즌을 마칠 것 같지는 않아 보인다. 지난 시즌 후반기에는 뉴캐슬이 4위권 진입에 도전했으나 5위로 시즌을 마쳤다. 중위권으로 평가되는 클럽이 첼시, 아스널, 토트넘 같은 빅6 범주에 포함되는 클럽들과 4위권 경쟁을 펼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더욱이 스완지는 캐피털 원 컵 4강에 진출하면서 미추와 기성용을 비롯한 주력 선수들의 체력 부담이 커졌다. 선수층이 두껍지 못한 상황에서 프리미어리그 4위권 진입에 도전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런 점에서 미추의 프리미어리그 득점왕 도전은 중위권 클럽 선수가 상위권 클럽 선수들과의 경쟁에서 이길 수 있다는 희망을 제시했다. 또한 득점 3위 뎀바 바(16경기 10골) 소속팀은 뉴캐슬이며 현재 팀 성적은 14위다. 올 시즌 프리미어리그 득점왕 경쟁은 '양극화 해소'를 기대할 수 있는 분위기. 슈퍼 골잡이들의 전유물이었던 득점왕 경쟁이 올 시즌에는 미추-뎀바 바 맹활약에 의해 '중위권vs상위권 클럽' 구도로 바뀌게 됐다.
물론 미추의 득점왕 등극을 섣불리 장담할 수 없다. 아직 프리미어리그 일정의 절반이 끝나지 않았으며 모든 클럽들이 조만간 박싱데이 기간에 돌입한다. 프리미어리그는 미추가 지난 시즌까지 활약했던 스페인 프리메라리가와 달리 겨울 휴식기가 없다. 미추로서는 잉글랜드 무대에서 첫 시즌을 소화하면서 박싱데이 기간을 버텨야 하는 고민을 안게 됐다. 뜻하지 않은 부상, 상대팀 집중 견제도 조심해야 하는 상황. 지금은 펄펄 날고 있지만 어느 시점부터는 고비가 찾아올 가능성도 없지 않다. 골잡이 누구든 매 경기마다 골을 터뜨릴 수는 없다.
또 하나의 변수는 1월 이적시장 이후의 거취다. 미추는 현재 아스널, 리버풀,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같은 클럽들의 영입 관심을 받고 있다. 만약 스완지를 떠날 경우 다른 클럽 선수들과 발을 맞추면서 새로운 분위기에 적응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프리미어리그의 대표적인 먹튀로 분류되는 페르난도 토레스(첼시) 앤디 캐롤(리버풀, 현 웨스트햄 임대)의 전례를 떠올려 볼 때 1월 이적시장에서 클럽을 옮기는 것이 진리는 아니다.
그렇다고 미추의 득점왕 달성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다. 스완지는 올 시즌 프리미어리그 점유율 5위(55.6%) 패스 정확도 3위(86.5%)를 기록중이다. 지난 시즌에 이어 올 시즌에도 빅 클럽 못지 않은 수준 높은 공격 전개를 과시하며 '스완셀로나' 명성을 이어갔다. 기성용, 레온 브리튼, 웨인 라우틀리지, 파블로 에르난데스 같은 양질의 패스와 날카로운 침투로 상대 수비를 농락하는 선수들이 즐비하다. 이는 미추의 지속적인 골 생산에 도움이 될 것이다. 기성용 동료로서 올 시즌 몇 골 넣을지, 과연 득점왕에 오를지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