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소탱크' 박지성(31, 퀸즈 파크 레인저스, 이하 QPR)이 28일 선덜랜드 원정을 통해 6경기 만에 그라운드를 누볐다. 후반 20분 삼바 디아키테와 교체 투입돼 인저리 타임을 포함한 29분 동안 뛰었다. 후반 21분 선덜랜드 박스 오른쪽 바깥에서 스테판 세세뇽을 상대로 파울을 얻어냈으며 후반 27분에는 하프라인쪽에서 상대팀 선수의 돌파를 뒷쪽에서 커팅하는 빼어난 수비력을 과시했다. 경기 종료 후 <스카이스포츠>에 의해 "조용한 복귀전이었다"는 평가와 더불어 평점 6점을 부여 받았다.
무엇보다 해리 레드냅 감독의 데뷔전에서 중앙 미드필더로 출전한 것이 눈에 띈다. 원 포지션은 윙어지만 선덜랜드전에서는 중원을 지켰다. 후반 33분 아델 타랍이 교체된 이후에도 마찬가지. 이는 레드냅 감독 전략에 의해 향후 중앙 미드필더로 투입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뜻한다. 평소 중앙보다 측면에 있을때의 경기력이 더 좋았지만 레드냅 감독의 생각은 달랐다. 현 시점에서 박지성의 중앙 미드필더 복귀는 의미가 있다.
레드냅 감독 전략에 박지성이 있다
박지성이 선덜랜드전에서 측면에 포진하지 않았던 이유는 타랍-마키 같은 윙어들의 최근 폼이 좋기 때문이다. 타랍은 한때 벤치 신세를 졌으나 QPR이 성적 부진을 거듭하면서 선발 출전 횟수가 많아졌고 본래의 경기력을 회복했다.(경기력에 대해서는 사람마다 호불호가 갈리지만) 마키는 지난 주말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전에서 선제골을 넣는 등 위협적인 돌파력을 과시하며 2경기 연속 선발 출전하게 됐다. 레드냅 감독 입장에서 타랍-마키의 선발 출전은 당연한 선택이었다. 반면 박지성은 윙어로 뛰기에는 한 달 넘게 경기에 출전하지 못했던 실전 감각이 걸림돌이었다.
QPR의 기존 문제점 중 하나는 중원의 안정감이 부족했다. 어느 팀이든 경기에서 승리하려면 미드필더진을 장악해야 한다. 하지만 QPR은 중원 싸움에서 이기는 묘미가 부족했다. 수비 집중력 및 공격의 짜임새 부족까지 맞물리면서 번번이 승리를 놓쳤다. 프리미어리그에서 아직까지 1승을 거두지 못했던 이유. 스페인 출신의 이적생 그라네로가 중원에서 분투했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다. 중원 경쟁력에서 이길 수 있는 다른 무기가 필요했다. 레드냅 감독은 박지성의 중앙 미드필더 복귀를 택했다.
선덜랜드전에서 중앙 미드필더로 뛰었던 음비아-그라네로-디아키테의 공통점은 프리미어리그에서 중원을 책임졌던 경험이 부족하다. 더욱이 음비아는 QPR 입단 이후 한동안 센터백으로 뛰었다. 반면 박지성은 월드컵과 UEFA 챔피언스리그 등을 통해 풍부한 경험을 쌓았던 장점이 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시절에는 윙어로 더 많이 나섰으나 팀의 스위칭에 의해 중앙에서 볼을 터치하면서 공격을 전개하거나 볼을 빼앗는 경우가 빈번했다. 윙어로서 빼어난 수비력과 기동력을 자랑하면서 전술 이해도가 뛰어난 이점까지 포함하면 중앙 미드필더로서 좋은 경기력을 과시할 수 있는 선수다.
다른 관점에서는 레드냅 감독이 박지성의 능력을 모르는 것이 아니냐는 의심을 할 수도 있다. 박지성의 주 포지션은 중앙 미드필더가 아니기 때문. 하지만 QPR은 리그 꼴찌이자 강등 위기에 빠졌다. 앞으로 매 경기마다 강등권 탈출을 위해 사활을 걸어야 한다. 경기에서 이기지 못해도 승점 1점을 따내는, 골 생산이 어려우면 무실점 경기를 펼쳐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박지성처럼 연륜 있는 선수의 중원 배치가 불가피한 이유다. 타랍-마키가 측면에서 몸이 풀렸던 터라 박지성의 중앙 미드필더 배치는 결코 어색하지 않다. 레드냅 감독 전략에 박지성이 있다고 볼 수 있다.
QPR 중원, '캡틴 박' 효과 얻을까?
박지성의 중앙 미드필더 출전은 QPR 주장으로서 팀의 위기를 구할 자질이 충분한지 여부를 가늠하게 된다. 무릎 부상 이전에 윙어를 맡았을 때는 측면 옵션이 중앙에 있는 선수들에 비해 경기를 주도하기 힘든 구조적 단점이 있었다. 하지만 중앙 미드필더는 경기 흐름을 조절하거나 포백을 보호하는 다양한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더욱이 주장이 중앙 미드필더라면 동료 선수들을 컨트롤하기 쉽다.
일각에서는 박지성이 QPR 성적 부진 및 레드냅 감독 부임에 의해 주장직이 박탈될지 모른다는 걱정을 한다. 어쩌면 그런 걱정을 하는 국내 축구팬들이 많을지 모른다. 하지만 '캡틴 박'의 진면모는 이제부터라도 드러날 필요가 있다. 만약 박지성이 중앙 미드필더로서 특유의 헌신적인 자세로 경기에 임하면 동료 선수들이 자극을 받으며 팀 플레이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일 것으로 기대된다. 실제로 선덜랜드전에서는 QPR 선수들이 전체적으로 개인 플레이를 지양하는 모습을 보였다. 개인보다 팀을 위해 뭉치는 면모가 드러난 것. 이제 QPR 중원에서 캡틴 박 효과까지 어우러지면 17위권 이내 진입이 탄력을 받게 된다.
박지성이 리더로서 사람들이 일컫는 카리스마가 강하지 않은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카리스마 하나 만으로 주장의 자질을 따지는 시대는 지났다. 박지성이 2008년 10월 한국 대표팀 주장을 맡았던 배경에는 그의 실력이 출중했기 때문이다. 자신보다 어린 선수들이 국제 경기에서 리더의 존재감을 믿으며 절대 주늑들지 않고 경기에 임했다. QPR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박지성은 다른 누구보다 경험이 풍부했다. 항상 성실하고 근면했던 플레이는 동료들의 본보기가 되기에 충분했다. 그런 자질이 중앙에서 빛을 발하면 QPR의 결속력이 강해질 것이라는 기대감을 가지게 된다.
사실 QPR의 지금까지 경기력을 놓고 보면 캡틴 박 효과는 없었다. 박지성이 리그 개막 무렵에 중앙 미드필더로 뛰었을 때는 팀의 조직력이 정비되지 못했고, 그 이후에는 윙어로 모습을 내밀었으나 포지션 한계 때문에 경기를 리드하는 면모가 부족했다. 반면 지금은 선수들이 지속적으로 손발을 맞추면서 강등권 탈출이라는 동기부여를 얻었다. 이전 상황과 다르다. 여기에 레드냅 감독이 박지성에 대한 믿음을 꾸준히 표현하면 캡틴 박 효과는 이제부터 나타날 것으로 전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