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에서 초대형급 선수 이적이 성사됐다. 아스널 주장이자 지난 시즌 프리미어리그 최고의 선수였던 로빈 판 페르시(29)가 라이벌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하 맨유)로 떠나게 됐다. 맨유와 아스널은 한국 시각으로 16일 새벽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서 판 페르시 이적에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메디컬 테스트와 개인 협상 동의를 마치면 판 페르시의 맨유 이적이 완료된다. 두 구단의 팽팽했던 라이벌 대립을 떠올리면 판 페르시 이적은 파장이 크다.
맨유, 판 페르시-루니 투톱 가동...그러나 공격진 포화
맨유는 2011/12시즌 맨체스터 시티와 승점 89점 동률을 이루었으나 골득실에서 8골 밀리면서 우승을 놓쳤다. 득점에서도 맨시티에 4골 부족했다. 판 페르시 영입은 맨시티보다 막강한 공격력을 앞세워 우승에 도전하겠다는 뜻이다. 지난 시즌 프리미어리그 득점 1~2위를 기록한 판 페르시(30골) 루니(27골) 투톱을 가동하게 된 것. 두 공격수의 골 기록을 합치면 57골이 되며, 지난 시즌 맨시티 공격을 담당했던 아궤로(23골) 제코(14골) 발로텔리(13골) 테베스(4골) 골 총합인 54골보다 더 많다. 또한 맨유의 또 다른 라이벌 리버풀의 47골을 능가한다.
판 페르시-루니 투톱은 기존의 루니-웰백, 루니-에르난데스 조합에 비해서 득점력이 보장되는 장점이 있다. 판 페르시는 잦은 부상 악령을 딛고 지난 시즌 프리미어리그 득점왕과 PFA(잉글랜드 프로축구선수협회) 올해의 선수상을 휩쓸었다. 루니는 꾸준히 골을 넣었던 공격수. 반면 웰백과 에르난데스는 기복이 심한 약점이 있다. 웰백은 다양한 공격 재능을 갖춘 것에 비해서 안정감이 부족하며 에르난데스는 연계 플레이가 떨어진다. 프리미어리그에서 수많은 경기를 소화했던 판 페르시-루니가 주전으로 뛸 수 밖에 없는 이유다.
당초, 판 페르시는 맨체스터 시티(이하 맨시티) 이적이 유력했다. 2011/12시즌부터 줄곧 맨시티 이적설이 제기됐다. 하지만 맨시티는 판 페르시 영입을 포기했다. 제코-테베스-발로텔리 같은 이적 가능성이 존재했던 공격수들이 그대로 팀에 남았기 때문. 판 페르시 입장에서도 맨시티에서 붙박이 주전을 보장 받으려면 치열한 주전 경쟁을 이겨내야 하는 부담감이 있다. 반면 맨유는 맨시티에 비해서 주전이 보장된다. 웰백, 에르난데스보다 잘하는 공격수라는 점은 의심의 여지없다.
그러나 맨유의 판 페르시 영입은 웰백-에르난데스 같은 젊은 공격수를 적극 기용하기 힘든 약점이 있다. 영건이 성장하려면 넉넉한 출전 시간이 보장되어야 한다. 퍼거슨 감독이 로테이션 시스템을 선호함을 감안해도 올 시즌 만큼은 판 페르시-루니 투톱의 비중이 강할 수 밖에 없다. 프리미어리그에서는 맨시티와 치열한 선두 다툼을 펼쳐야 하며 UEFA(유럽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에서는 명예회복을 벼르고 있다. 판 페르시-루니의 출전이 많을 것으로 예상되는 이유이자 웰백-에르난데스의 입지가 불투명하다. 다만, 판 페르시와 루니 중에 누군가 부상으로 신음하면 웰백과 에르난데스에게 기회가 찾아올 것이다.
맨유의 판 페르시 영입이 아쉬운 또 하나의 이유는 이적시장에서 중앙 미드필더를 보강하지 못했다. 맨유의 최대 약점이 중원인 것은 누구나 다 알고 있다. 지난 시즌 무관에 그쳤던 원인 중에 하나는 캐릭 이외에는 꾸준히 믿고 기용할 중앙 미드필더가 없다. 30대 후반에 속하는 긱스와 스콜스는 체력이 떨어진다. 올해 여름 이적시장에서는 카가와, 판 페르시 같은 대형 선수를 영입했지만 둘 다 중앙 미드필더가 아니다. 팀의 적자가 쌓여있는 상황에서 추가 선수 영입이 이루어질지 의문이다.
아스널, 이적료 챙겼지만 또 스타 잃었다
아스널은 판 페르시를 맨유로 보내면서 두둑한 이적료를 챙겼다. 현지에서는 판 페르시 이적료를 2400만 파운드(약 426억 원)로 추정하고 있다. 지난해 여름에는 파브레가스-나스리와 작별하면서 얻게 된 이적료를 통해서 이적시장 막판에 메르테자커-산투스-아르테타-박주영-베나윤(임대)을 데려오는 '폭풍 영입'을 단행했다. 올해 여름에는 판 페르시를 맨유에 내줬으며 남은 이적시장 기간에 새로운 선수를 보강할 것으로 보인다. 또는 이번 이적시장에서 보강했던 포돌스키-지루-카솔라 영입에 따른 손실액을 메우게 됐다.
그러나 아스널이 판 페르시와 작별한 것은 이득보다 손해가 더 크다. 무엇보다 팀의 이미지가 좋지 않게 됐다. 지난 몇 시즌 동안 팀의 주축 선수가 타팀으로 이적하는 경우를 반복했다. 에미레이츠 스타디움 건립으로 막대한 빚을 떠안게 되었고 다른 프리미어리그 빅 클럽에 비해서 주급이 약하다. 판 페르시가 맨유로 이적한 것도 주급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또 하나는 7시즌 연속 무관에 그쳤다. 나스리가 지난해 여름 아스널을 떠나 맨시티로 이적한 이유는 우승 때문이었다.
특히 맨유는 아스널과 오랜 시간 동안 우승을 다투었다. 판 페르시를 맨유에 내준 것은 상대팀 우승 의지를 키우는 꼴이 되고 말았다. 불과 몇 시즌 전까지 맨유와 대등한 전력이었으나 7시즌 연속 우승 실패로 '아스널<맨유' 구도로 바뀌었다. 이제는 판 페르시 이적으로 두 클럽의 레벨 차이가 한동안 좁혀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지난 시즌 득점왕을 잃으면서 현실적으로 올 시즌 프리미어리그 우승 전망이 어두워졌다. 판 페르시 대체자로 영입된 포돌스키-지루는 아직 프리미어리그에서 검증된 선수들이 아니다.
아스널은 판 페르시에게 의존했던 득점 루트의 다변화가 필요하다. 지난 시즌에는 2선 미드필더들의 골 결정력이 떨어지면서 판 페르시에게 골이 집중됐다. 이제는 판 페르시가 떠나면서 공격 전술 수정이 불가피하게 됐다. 포돌스키-지루는 득점력이 뛰어난 공격 옵션이지만 얼마나 팀에 녹아들지, 프리미어리그 특유의 빠른 템포에 적응할지 여부는 아직 확신하기 어렵다. 현재까지는 아스날 올 시즌 전망은 안갯속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