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과 포르투갈이 맞붙었던 유로 2012 4강 첫번째 경기. 두 팀은 연장전을 포함한 120분 동안 득점 없이 0-0으로 비겼습니다. 승부차기 끝에 스페인이 4-2로 승리하면서 결승에 진출했지만 아쉬움이 없지 않았던 경기였습니다. 두 팀 모두 상대팀 박스 안쪽을 활용한 공격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지지 못하면서 경기의 박진감이 떨어졌습니다. 최전방 공격수 활약상이 부족했던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특히 스페인의 알바로 네그레도 원톱 배치는 이해할 수 없습니다. 유로 2012 8강까지 총 4경기 출전 시간이 2분에 불과한 선수였습니다.(크로아티아전 후반 43분 투입) 포르투갈 센터백 알베스-페페 공략 차원에서 몸싸움과 테크닉이 고루 뛰어난 네그레도를 활용하겠다는 비센테 델 보스케 감독의 맞춤형 전술이었으나, 네그레도는 포르투갈전에서 실전 감각 부족을 이겨내지 못하고 후반 8분에 세스크 파브레가스와 교체 됐습니다. 파브레가스는 스페인 제로톱 활용 차원에서 투입되었지만 본래 공격형 미드필더입니다. 델 보스케 감독 입장에서 파브레가스에게 포르투갈전 선발 출전을 맡기기에는 파워에서 부담을 느낀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 눈에 띄는 것은 페르난도 토레스 결장입니다. 토레스는 파브레가스와의 출전 시간 경쟁에서 밀렸지만 네그레도에 비하면 실전 감각이 풍부합니다. 본선 2차전 아일랜드전에서는 2골 넣었습니다. 그러나 포르투갈전에서는 델 보스케 감독의 선택을 못받았습니다. 전술상으로는 토레스 선발 제외가 옳았습니다. 선 수비-후 역습을 펼치는 포르투갈의 골문을 공략하기에는 좁은 공간에서 싸워야 하는 단점이 있습니다. 토레스 결장, 네그레도 부진, 파브레가스 제로톱 활용을 놓고 보면 스페인이 최전방 공격수를 믿지 않음을 파악할 수 있습니다.
포르투갈도 다르지 않습니다. 최전방 공격수로 뛰었던 우고 알메이다가 스페인전에서 골을 터뜨리지 못했습니다. 경기 내용에서는 주변에 있는 선수와 패스를 주고 받는 크게 나쁘지 않은 모습을 보였으나 공격수의 본분인 골에 충실하지 못했습니다. 그런 포르투갈은 지난 몇년 동안 최전방 공격수 기근에 시달렸습니다. 파울레타 이후 걸출한 최전방 공격수가 등장하지 않은 원인도 있지만, 크리스티아누 호날두가 측면에서 중앙쪽으로 접근하면서 골을 노리는 패턴이 최전방 공격수 플레이를 위축시키는 특징도 없지 않았습니다. 8강 체코전까지 최전방 공격수로 뛰었던 엘데르 포스티가는 이번 대회 4경기에서 1골 넣었지만 호날두 3골에 비하면 골 숫자에서 아쉬움이 있습니다.
스페인-포르투갈 경기에서 네그레도-알메이다 존재감이 아쉬웠듯, 유로 2012에서는 최전방 공격수들의 활약상이 미흡했습니다. 대회가 끝나려면 아직 2경기 남았지만(4강 두번째 경기, 결승전) 대회 전체적으로는 독보적인 골 감각을 과시했던 최전방 공격수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디펜딩 챔피언이자 이번 대회 결승 진출팀 스페인의 경우를 봐도 최전방 공격수 3명(토레스, 네그레도, 요렌테) 모두 벤치 멤버 였습니다.
대회 득점 순위에서는 마리오 고메스(독일) 알란 자고예프(러시아) 마리오 만주키치(크로아티아) 호날두(포르투갈)가 똑같이 3골을 기록하며 득점 공동 선두를 기록했습니다. 최전방 공격수는 고메스-만주키치 뿐이지만 고메스는 8강 그리스전 선발 제외가 찜찜합니다. 만주키치는 자기 역할을 다했으나 크로아티아는 8강 진출에 실패했습니다. 크로아티아의 팀 클래스가 뒷받침했다면 만주키치의 골 솜씨를 더 볼 수 있었던 아쉬움이 듭니다.
4강 두번째 경기를 앞둔 독일과 이탈리아도 최전방 공격수 고민을 안고 있습니다. 독일은 토너먼트 진출 8개국에 비해서 최전방 공격수들의 활약상이 좋습니다. 고메스는 본선에서 3골, 클로제는 8강 그리스전에서 1골 넣었습니다. 그러나 본선에서 잘했던 고메스가 그리스전에 선발 제외된 것은 독일 벤치가 그의 기량 일부분을 신뢰하지 않다는 의미입니다. 끈적하고, 파워풀하며, 높이가 있는 그리스 수비를 공략하는데 있어서 고메스보다는 '민첩함이 있는' 미로슬라프 클로제에게 선발을 맡긴 선택은 결과적으로 옳았습니다. 하지만 고메스로서는 그리스전이 득점 단독 선두로 치고 올라갈 기회였으나 실제 출전 시간은 11분 입니다. 그럼에도 다른 팀에 비하면 '고메스vs클로제'는 행복한 고민이지만요.
이탈리아는 잉글랜드전을 어렵게 이겼습니다. 승부차기 끝에 승리했으나 연장전까지 슈팅 35개(유효 슈팅 20개)를 난사했으나 단 한 골도 넣지 못했습니다. 최전방 공격수로 뛰었던 마리오 발로텔리는 슈팅 11개(유효 슈팅 7개) 날렸으나 득점 창출에 실패했습니다. 유로 2012 4경기에서 1골 기록했으나 잉글랜드전에서 골 결정력 부족을 드러냈습니다. 안토니오 디 나탈레(3경기 1골) 안토니오 카사노(4경기 1골)도 이번 대회에서 1골에 그쳤죠. 4강 독일전에서 공격수들의 골 감각이 살아나지 못하면 결승 진출 전망이 암울합니다.
8강에서 떨어진 4팀 모두 최전방 공격수 활약이 미흡했습니다. 체코의 밀란 바로스는 4경기 무득점에 그쳤으며 8강 포르투갈전에서는 상대 수비에 철저히 고립 됐습니다. 프랑스도 카림 벤제마가 4경기 무득점으로 대회를 종료했죠. 잉글랜드는 '맨유 투톱' 웨인 루니(2경기 1골) 대니 웰백(4경기 1골)의 8강 이탈리아전에서 못했습니다. 특히 웰백은 프랑스-이탈리아 같은 강팀에게 약한 면모를 보였습니다. 루니는 본선 3차전 우크라이나전에서 결승골을 넣었으나 징계에 따른 실전 감각 부족으로 경기 내용이 저조했습니다. 그리스는 테오파니스 게카스가 4경기 1골에 그쳤죠. 8강 독일전에서는 디미트리스 살핑기디스(4경기 2골)가 최전방을 맡았으나 실제로는 오른쪽 윙어이며 독일전에서는 후반전에 오른쪽으로 포지션을 바꾸면서 골을 터뜨렸습니다.
이 같은 최전방 공격수들의 주춤한 영향력은 2010 남아공 월드컵에서도 마찬가지 였습니다. 대회 최다 득점(5골)을 기록했던 토마스 뮬러(독일) 디에고 포를란(우루과이) 다비드 비야(스페인) 베슬러이 스네이더르(네덜란드)는 다른 포지션에서 뛰거나 최전방 공격수로 뛰지 않았을때 골을 터뜨린 인물들입니다. 포를란은 루이스 수아레스를 뒷받침하는 쉐도우였으며 비야는 왼쪽 윙어로서 5골을 넣었을 뿐 원톱으로 나왔을때는 무득점에 빠졌습니다. 유로 2012는 현대 축구에서 팀이 골을 넣는데 있어서 최전방 공격수의 비중이 작아졌음을 알 수 있었던 대회였습니다. 한편으로는, 유로 2012는 최전방 공격수들의 무덤인 것 같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