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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잉글랜드 유로 2012 탈락, 윌셔가 있었다면?

 

유로 2012 4강에 진출한 포르투갈-이탈리아-스페인-독일의 공통점은 두 가지 입니다. 첫째는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 한국과 상대했던 유럽팀들이며 둘째는 유로 2012에서 강력한 미드필더 경쟁력을 자랑했습니다. 유로 2008에서는 러시아-터키가 스페인-독일 같은 전통적인 강팀과 함께 4강에 진출하는 이변으로 많은 사람들을 놀래켰다면, 이번 대회에서는 현대 축구에서 미드필더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음을 일깨우게 했습니다.

스페인 미드필더들의 역량은 굳이 의심하지 않아도 됩니다. '가짜 9번' 세스크 파브레가스를 포함한 6명의 미드필더를 기용하면서 제로톱을 활용했습니다. 제로톱은 아직까지 미완성 단계지만 미드필더들의 끈끈한 조직력에 힘입어 4강에 올랐습니다. 독일 미드필더진의 경쟁력은 남아공 월드컵 시절보다 더 강해졌습니다. 외질-슈바인슈타이거는 여전히 건재하며, 사미 케디라는 8강 그리스전 두번째 골을 통해서 공격 가담에 자신감을 얻었습니다. 마르코 로이스, 안드레 쉬를레 같은 백업 미드필더드들을 그리스전 선발로 기용했던 플랜B에 의해서 4:2로 이겼습니다. 마리오 괴체까지 포함하면 미드필더진에 가용할 선수층이 두껍습니다.

이탈리아는 8강 잉글랜드전에서 스페인을 방불케 하는 패스 축구를 자랑했습니다. 700개 넘는 패스를 기반으로 슈팅 35개 생산의 토대를 마련했습니다. 딥-라잉 플레이메이커 안드레아 피를로가 중원에서 창조적이고 정확한 패스를 많이 연결한 것이 주효했습니다. 공격수들의 골 운이 따랐다면 연장전 돌입 없이 잉글랜드를 이겼을 것입니다. 포르투갈은 호날두-나니 같은 측면 옵션들에게 의존하는 팀이지만, 메이렐레스-벨로수-무티뉴로 짜인 미드필더들의 응집력을 무시하기 어렵습니다. 앞서 언급된 세 팀에 비해서 점유율보다는 선 수비-후 역습에 주력하지만 상대 공격을 저지하는 압박이 발달됐습니다. 8강에서는 체코와의 허리 싸움에서 이겼으며 후반 34분 무티뉴 크로스가 호날두 헤딩골로 이어졌습니다.

그렇다면 잉글랜드는 어땠을까요? 8강 이탈리아전에서는 수비에 주력하면서 연장전을 포함한 120분 동안 무실점으로 틀어막는데 성공했습니다. 그러나 수비력이 마냥 좋았던 편은 아닙니다. 슈팅 35개 허용을 봐도 잉글랜드 미드필더들이 이탈리아 공격을 저지하는데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피를로를 누구도 찰거머리처럼 봉쇄하지 못한 것이 엄청난 슈팅을 내줬던 근본적 어려움으로 작용했습니다. 로이 호지슨 감독은 4-4-2를 선호하지만, 이탈리아전에서는 4-4-2가 아닌 4-2-3-1로 변형하면서 공격형 미드필더를 피를로 봉쇄맨으로 활용하는 것이 옳았습니다. 굳이 공격수를 두 명 기용할 필요가 있었을지 의문입니다. 실제로 대니 웰백은 아무런 활약을 펼치지 못했죠.

잉글랜드의 공격형 미드필더로 어울렸던 선수를 꼽으라면 스티븐 제라드 입니다. 이 글에서 말하는 피를로 봉쇄맨과는 플레이 성향에 따른 거리감이 있지만 프리미어리그의 정상급 중앙 미드필더로서 기본적인 수비력을 갖췄습니다. 제라드의 공격 성향이라면 이탈리아 중원을 괴롭힐 것이며 웨인 루니 공격력에 도움이 되었을 것입니다. 이탈리아 미드필더들의 공격력이 반감될 수 있었죠. 그럼에도 호지슨 감독은 4-4-2를 고집했습니다. 이탈리아가 3-4-1-2, 4-3-1-2, 4-1-3-2 같은 4선 포메이션을 선호한다는 점에서 잉글랜드에게는 맞춤형 전술이 필요했습니다.

만약 제라드를 공격형 미드필더로 놓았다면 수비형 미드필더 중에 한 명을 스콧 파커로 기용했겠죠. 또 다른 수비형 미드필더라면 장기간 부상 여파로 유로 2012에 합류하지 못했던 잭 윌셔(아스널)를 꼽겠습니다. 윌셔는 올해 20세 유망주이며 공격과 수비에 걸쳐 다양한 장점을 갖췄습니다. 피를로와 유사한 딥-라잉 플레이메이커라고 볼 수 있죠. 미드필더 밑에서 패스를 통해서 공격을 풀어가는 역량이 발달되었습니다. 2010/11시즌 UEFA 챔피언스리그 16강 1차전 FC 바르셀로나전 2-1 승리 과정에서 사비-이니에스타 같은 당대 최고의 플레이메이커들을 상대로 능수능란한 공격 솜씨를 자랑했습니다.

어디까지나 만약이지만, 윌셔가 이탈리아전을 뛰었다면 잉글랜드는 경기 내용에서 상대팀과 접전을 펼쳤을 것으로 보입니다. 이탈리아의 강점인 중앙 공격을 윌셔의 힘으로 정면 대응했겠죠. 그러나 윌셔가 유로 2012에 출전하기에는 아스널에서 부상으로 한 시즌을 날렸습니다. 실전 감각이 부족한 선수를 메이저 대회 주전으로 내세우는 것은 무리수입니다. 잉글랜드가 2014년 브라질 월드컵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려면 윌셔 효과는 필수입니다. 그때는 제라드-램퍼드 노쇠화를 염두해야 하니까요. 그보다는 윌셔가 앞으로 부상을 당하지 않고 2010/11시즌 시절의 포스를 되찾는 것이 중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