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림 벤제마 활약상을 보면 스페인을 상대하는 프랑스 결과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벤제마는 스페인전에서 볼을 만질 기회가 적었으며 컨디션 난조까지 겹치면서 프랑스 공격에 이렇다할 도움을 주지 못했습니다. 조별 본선 3경기 무득점으로 골 감각이 저하되면서 스페인 골문에 어떠한 위협을 가하지 못했습니다. 스페인에 비해서 수비적인 경기를 펼쳤던 프랑스의 0-2 패배는 예상된 수순 이었죠. '스페인을 이기려면 원톱이 잘해야 한다'는 법칙이 이번 경기에서 확실하게 증명됐습니다.
벤제마 부진, 근본적으로 무엇이 문제였나?
그렇다고 프랑스 패배를 원톱 벤제마에게만 돌리는 것은 아닙니다. 1차적으로 오른쪽 측면 수비가 불안했습니다. 전반 19분 알론소에게 선제 결승골을 내줬던 장면에서는 카바예가 왼쪽 공간에서 볼을 몰고 들어가는 이니에스타를 놓쳤고, 오른쪽 윙어였던 드뷔시는 애초부터 알바의 침투 공간을 허용했습니다. 알바가 이니에스타 패스를 받으면서 돌파했을때는 드뷔시 뒷 공간을 뚫었습니다. 알바의 크로스는 알론소 헤딩골로 이어졌습니다. 프랑스는 측면 수비 강화를 목적으로 오른쪽 풀백이었던 드뷔시를 수비형 윙어로 활용하면서 변형 5백을 취했지만 오히려 패착이 됐습니다.
프랑스의 또 다른 문제점은 0-1 이후부터 공수 간격이 벌어졌습니다. 공격 옵션들이 동점골을 의식하자 움직임이 앞쪽으로 쏠렸습니다. 그러나 스페인에 비하면 볼과 관련 없는 움직임이 다소 많았습니다. 불필요하게 에너지를 소모하면서 스페인 박스쪽을 반격하는데 버거운 모습을 보였습니다. 좌우 공격형 미드필더를 맡았던 말루다-카바예는 각각 8.121Km, 12.011Km 뛰었으며(말루다는 후반 20분 교체 아웃) 출전 시간 치고는 많이 뛰었습니다. 특히 카바예는 스페인 미드필더 사비(11.857Km)-알론소(11.150Km)-부스케츠(10.785Km)보다 활동량이 많았죠. 하지만 세 명보다 폼이 좋지 못했습니다.
여기에 스페인 수비력이 프랑스 공격을 어렵게 했습니다. 스페인이 유로 2008, 2010 남아공 월드컵에 비해서 공격수 존재감이 부족하지만 그럼에도 이기는 이유는 탄탄한 수비력이 뒷받침 됐습니다. 프랑스전에서는 상대팀에게 공격을 허용하는 즉시, 파브레가스-이니에스타-사비-실바 같은 공격 옵션들이 포어체킹을 시도했습니다. 단순히 상대 선수를 압박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팀 볼 흐름과 선수들의 움직임을 재빨리 읽으면서 볼이 통과 될 공간에 미리 들어갑니다. 이때 프랑스 빌드업이 늦어지면서 속공 또는 지공이 어려워집니다. 이 과정에서 프랑스 공격 옵션과 간격이 벌어지면서 밸런스가 무너지게 됩니다.
벤제마가 부진했던 이유는 동료 선수들이 제대로 받쳐주지 못했습니다. 자신의 근처 공간에서 스페인 선수들을 유인하면서 원톱의 압박을 풀어주는 선수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나마 프랑스 선수 중에서 잘했던 리베리는 왼쪽 측면에서 활동하는 유형입니다. 벤제마가 잘하려면 중앙에서 활동하는 미드필더의 공격력이 뒷받침해야 하는데 말루다-음빌라-카바예는 스페인과의 허리 싸움에서 밀렸습니다. 말루다 대신에 음빌라를 왼쪽 공격형 미드필더로 올리면서(또는 4-2-3-1의 더블 볼란치로 활용하거나), 디아라를 수비형 미드필더로 활용했다면 스페인 공격을 차단할 명분을 얻었을 겁니다. 그러나 디아라는 프랑스 내분과 얽혀있죠. 벤자마가 혼자의 힘으로 스페인을 격파하기에는 역부족 이었습니다.
FC 바르셀로나 챔스 탈락, 원톱에게 무너졌다...포르투갈 대응은?
지금까지 유로 대회 2연패 팀은 없었습니다. 그 징크스가 이번 대회에서도 적용되면 지난 대회 우승팀 스페인 우승은 어려워집니다. 스페인의 유로 2012 행보는 지금까지 긍정적이지만 4강 포르투갈전 이후에 벌어질 일은 누구도 모릅니다. 스페인 명문 클럽 FC 바르셀로나는 유럽과 세계 최고의 경기력을 자랑하지만 2009/10, 2011/12시즌 UEFA 챔피언스리그 4강에서 탈락했습니다. 각각 밀리토(인터 밀란) 드록바(당시 첼시, 현 상하이 선화) 같은 원톱에게 골을 허용하면서 무너졌습니다. 두 명의 원톱을 뒷받침했던 스네이더르(인터 밀란) 램퍼드-하미레스(첼시) 같은 미드필더까지 맹활약 펼쳤죠.
스페인 대표팀과 바르셀로나를 상대하는 팀들의 특징은 수비 축구를 했습니다. 스페인 특유의 점유율 축구 내지는 패스 축구, 공격 축구에 지고 들어가는 입장 이었습니다. 어떻게든 실점하지 않기 위해서 수비에 치중할 수 밖에 없었죠. 그런 팀들이 경기에서 이길려면 선 수비-후 역습을 통해서 원톱의 골 생산을 기대해야 합니다. 기본적으로 수비 축구를 하는 팀은 최전방 공격수의 득점력이 좋아야 합니다. 많은 선수들이 수비에 가담하기 때문에 공격수가 골을 해결할 수 밖에 없는 입장입니다. 바르셀로나에게 챔피언스리그 탈락을 안겨줬던 인터 밀란과 첼시는 이 작전이 성공했습니다. 상대팀 파상공세를 몸을 던져 막아냈던 수비력도 빼놓을 수 없죠.
한 가지 재미있는 것은, 스페인과 유로 2012 4강에서 맞붙을 포르투갈은 지난 몇년 동안 최전방 공격수가 취약했습니다.(정확히는 파울레타가 대표팀을 떠나면서 부터) 이번 대회에서도 최전방 공격수의 존재감은 미미했습니다. 8강 체코전에서는 포스티가가 햄스트링 부상으로 전반 40분에 교체되었죠. 그 이전까지의 활약상은 안좋았습니다. 최전방 공격수의 또 다른 부진 원인은 호날두와의 활동이 겹칩니다. 호날두가 측면에서 중앙쪽으로 쇄도하면서 골을 노리는 패턴이다보니 최전방 공격수의 역할이 제한됩니다. 포르투갈은 호날두-나니 같은 윙 어에게 너무 의존합니다. 두 명의 윙어가 최전방에서 원톱보다 볼을 더 많이 따냅니다.
포르투갈의 현 전력이 스페인전에서 되풀이되면 결승 진출이 좌절될 것 같습니다. 스페인은 호날두-나니를 집중 봉쇄할 것이 틀림 없으니까요. 포르투갈에는 스페인 공격 옵션들에게 뒤지지 않을 플레이메이커가 존재하는 것도 아닙니다. 남아공 월드컵 16강에서는 포르투갈을 1-0으로 이겼던 경험이 있습니다. 벤투 감독은 호날두 원톱 기용을 고민해볼만 합니다. 호날두는 원톱보다는 측면에 있을때 더 잘하지만, 기존 원톱이 불안하면 호날두 전방 배치를 염두할 수 있습니다. 물론 호날두를 충분히 대체할 윙어가 필요할 때 효과가 커지게 되죠. 그러나 호날두가 엘 클라시코 더비에서 피케에게 약했다는 점에서 원톱 기용이 성공적일지는 의문입니다. 포르투갈의 스페인전 공략은 어떻게 이루어질지 4강을 지켜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