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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EPL 3위 아스널, 잭 윌셔가 있었다면?

 

아스널의 시즌 후반기 오름세가 대단합니다. 최근 프리미어리그 10경기에서 9승1패를 기록했습니다. 2월 4일 블랙번전 7-1 대승을 시작으로 3월 24일 애스턴 빌라전 3-0 승리까지 7연승을 거두면서 3위 진입에 성공했습니다. 3월 31일 퀸즈 파크 레인저스전에서 1-2로 패했지만 4월 8일 맨체스터 시티전 1-0, 11일 울버햄턴전 3-0 승리로 2연승을 달렸습니다. 그동안 아스널하면 시즌 막판에 무너지는 경향이 강했지만 올 시즌에는 뒷심이 무섭습니다.

[사진=잭 윌셔 (C) 아스널 공식 홈페이지 프로필 사진(arsenal.com)]

이러한 아스널의 저력은 '신성' 잭 윌셔(20) 없이 거둔 성과라서 놀랍습니다. 한때 4위권 바깥에서 주춤했던 대표적 원인은 미드필더 경쟁력 약화에 있었습니다. 세스크 파브레가스(FC 바르셀로나) 사미르 나스리(맨체스터 시티) 이적 여파와 더불어 윌셔의 장기간 부상 공백이 컸습니다. 윌셔는 지난해 여름부터 지금까지 오른쪽 발목 부상으로 경기에 출전하지 못했습니다. 올해 초 복귀할 것으로 예상되었지만 부상이 재발하고 말았습니다. 아스널은 올 시즌 차포(파브레가스-나스리)를 잃은 상황에서 윌셔가 없었음에도 3위를 기록했습니다. 사실상 7시즌 연속 무관에 그쳤지만 빅4에서 탈락하지 않았습니다.

윌셔는 2010/11시즌 PFA(프리미어리그 선수협회) 영 플레이어상을 받았을 정도로 아스널에서의 성장세가 대단했습니다. 파브레가스-나스리에 이어 아스널 허리의 구심점을 맡을 것으로 기대됐습니다. 2선 미드필더를 맡았던 두 선수와 달리 송 빌롱과 함께 수비형 미드필더로 뛰었지만 2010년 상반기 볼턴 임대 시절에는 왼쪽 윙어로 활약했습니다. 기본적으로 공격력이 뛰어난 유망주였습니다. 전방쪽으로 날카로운 패스를 찔러주면서 동료 선수와의 연계 플레이에 적극 관여하며 공격을 이끌어가는 성향입니다. 수비형 미드필더로 뛰었을 정도로 중원에서의 투쟁심이 강했죠. 어린 선수 답지 않게 상대팀 선수에게 지지 않으려는 기질이 강했던 싸움닭으로 회자됩니다.

그는 2011/12시즌이 중요했던 선수였습니다. 이전 시즌에 아스널 신성으로 떠오른 기세에 힘입어 프리미어리그 최고의 중앙 미드필더로 자리잡기 위해 많은 노력을 다했겠죠. 과장이 없지 않지만 사비-이니에스타(이상 FC 바르셀로나) 아성에 도전할 특급 유망주로 부각되었을지 모릅니다. 자신의 축구 재능에 비해서 골이 부족하지만 수비형 미드필더로 뛰었던 선수에게 득점력을 요구하는 것은 무리입니다. 2010/11시즌에는 파브레가스-나스리 같은 공격 성향이 강한 미드필더들을 도와주는 목적이 더 강했으니까요. 하지만 두 선수가 없는 올 시즌이라면 득점 기회가 많이 찾아왔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만약 윌셔가 부상당하지 않았다면 아스널 성적은 지금보다 더 좋았을 겁니다. 아마도 맨체스터 두 팀과 우승 경쟁을 했을지 모릅니다. 시즌 초반부터 승점을 대폭 깎아먹지 않았다면 4위권 바깥에서 고생했을 시간이 줄었거나 아니면 없었겠죠. 시즌 내내 윌셔-송 빌롱 더블 볼란치 조합을 가동하면서 미드필더진을 안정시킬 수 있으니까요. 한때는 미켈 아르테타, 애런 램지 같은 파브레가스 대체자들이 부진하면서 아스널 경기력이 탄력을 받지 못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윌셔가 있었다면 전력 약화를 방지할 명분은 있었겠죠.

다른 관점에서는 윌셔가 있었다면 아르테타, 토마스 로시츠키의 재발견이 없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스널이 시즌 막판에 성적이 좋아진 요인 중에 하나는 아르테타-로시츠키의 재능이 만발했습니다. 아르테타는 아스널 주력 선수로 떠오르기까지 부침이 있었지만 실전에서 동료 선수와 끊임없는 호흡을 맞추면서 창의적인 패싱력과 빈틈없는 커버 플레이를 과시했습니다. 얼마전 맨체스터 시티전에서는 후반 42분 결승골을 터뜨렸죠. 로시츠키는 그동안 유리몸 오명을 떨치지 못했지만 시즌 후반이 되자 공격과 수비에서 의욕적인 자세로 경기에 임하며 팀의 활력을 깨웠습니다. 2012년에 접어들면서 풀타임 출전한 경기가 많아졌죠. 부상 후유증을 떨쳤다는 뜻입니다.

아르테타-로시츠키의 비상은 아스널이 윌셔 부상을 극복했던 원동력입니다. 기존의 주력 선수가 빠졌지만 내부 자원이 동기 부여를 잃지 않으며 경기력 향상에 매진했습니다. 파브레가스-나스리에 비해서 화려함이 떨어질지 몰라도 실속은 두 선수에게 결코 뒤지지 않았습니다. 이들이 다음 시즌에도 건재하고 윌셔까지 성공적으로 복귀하면 그때의 아스널 허리는 지금보다 짜임새 넘치는 경기력을 과시할 것으로 보입니다. 다만, 공격수 로빈 판 페르시의 거취가 변수입니다.

문제는 윌셔의 실전 감각 저하 입니다. 어린 나이에 부상으로 몇개월 동안 뛰지 못했습니다. 만약 한 달 안으로 복귀하지 못하면 한 시즌을 부상으로 날리게 됩니다. 많은 경기 경험이 필요한 유망주에게 치명타로 작용합니다. 곧 경기에 뛸지라도 2011/12시즌은 종료를 앞둔 상황이죠. 유로 2012 합류 여부도 불투명합니다.(런던 올림픽이라면 모르겠지만) 그럼에도 과거의 경기력을 되찾으면 아스널이 걱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적어도 새로운 중앙 미드필더를 영입할 필요성이 없으니까요.

p.s : 공교롭게도 2010년 상반기 볼턴의 미드필더로 활약했던 잭 윌셔, 스튜어트 홀든, 파트리스 무암바, 이청용이 장기간 부상으로 뛰지 못하는 현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