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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시즌 2호골' 구자철 임대는 성공작

 

축구 선수에게 임대란 좋은 이미지가 아닙니다. 원 소속팀에서 자리를 잡지 못했거나 감독 전술 계획에 없는 선수임을 뜻합니다. 세계적인 선수들도 임대는 예외 없습니다.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는 2009/10시즌 FC 바르셀로나 주전 공격수로 활약했지만 시즌 막판 UEFA 챔피언스리그 부진으로 다음 시즌 AC밀란에 임대됐습니다. 안드리 아르샤빈은 거듭된 경기력 부진끝에 지난달 아스널을 떠나 친정팀 제니트로 임대되면서 부활을 꿈꾸고 있습니다. 물론 지금까지 임대 경험이 있는 선수들이 못해서 팀을 잠시 떠난 것은 아닙니다. 얼마전 아스널에 2개월 임대로 활약했던 티에리 앙리의 경우를 봐도 말입니다.

[사진=구자철 (C) 아우크스부르크 공식 홈페이지 프로필 사진(fcaugsburg.de)]

그렇다고 임대가 나쁜 것은 아닙니다. 임대를 떠난 선수에게는 다른 팀에서 새롭게 도약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죠. 특히 젊은 선수들의 임대가 대표적입니다. 잭 윌셔(아스널) 다니엘 스터리지(첼시)는 볼턴 임대를 계기로 잉글랜드 축구의 신성으로 떠올랐습니다. 빅 클럽에서 자리를 잡기에는 경험 부족으로 주전 경쟁에서 밀렸지만 볼턴 같은 중소 클럽에서 기회를 얻으면서 고속 성장의 탄력을 받았습니다. 최근에는 일본인 미드필더 미야이치 료가 아스널에서 볼턴으로 임대되면서 1군 출전 시간이 많아졌죠. 그 외에도 유럽 축구의 많은 선수들이 유망주 시절에 임대를 통해서 경기력 향상에 성공했던 전례가 있었습니다.

'이 글의 주인공' 구자철(23)은 아우크스부르크 임대를 계기로 독일 분데스리가에 성공적으로 정착하기 시작했습니다. 17일 저녁 마인츠전에서는 시즌 2호골을 터뜨리며 팀의 2-1 승리에 기여했습니다. 전반 43분 페널티 박스 바깥에서 볼을 터치한 뒤 오른발 슈팅으로 마인츠 골망을 갈랐습니다. 팀이 0-1로 뒤진 상황에서 동점골을 넣으며 추격의 발판을 마련해줬고, 후반 6분에는 세바스티안 랑캄프가 역전골을 터뜨리면서 아우크스부르크가 승점 3점을 획득했습니다.

구자철은 아우크스부르크에서 총 7경기 뛰었습니다. 첫 선을 보였던 2월 4일 호펜하임전에서 후반 15분 교체 투입된 이후 나머지 6경기 모두 선발 출전했습니다. 요스 루후카이 감독에게 축구 실력을 인정받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원 소속팀 볼프스부르크에서는 펠릭스 마가트 감독에 의해 로테이션 멤버로 기용되었지만 미드필더 경쟁자들이 많았던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아우크스부르크는 중위권에 속한 볼프스부르크와 달리 시즌 내내 강등 위협을 받았습니다. 1월 이적시장에서 선수 보강을 통한 변화가 필요했고 그 정점이 구자철 임대였습니다. 루후카이 감독이 구자철을 신뢰하고 있다는 뜻이죠.

아우크스부르크는 마인츠전 승리로 분데스리가 15위(5승11무10패, 승점 26)를 기록했습니다. 16위 프라이부르크를 승점 1점 차이로 따돌리면서 강등권에서 벗어났습니다. 13위 FC 쾰른(28점) 14위 함부르크(27점)와의 승점 폭이 적다는 점에서 순위 향상이 기대됩니다. 특히 구자철 임대 영입 이후 7경기에서 2승4무1패(승점 10)를 기록했습니다. 임대 이전까지 19경기 3승7무9패(승점 16)를 기록했을때보다 성적이 더 좋습니다. '구자철이 아우크스부르크의 비상을 이끌었다'는 표현은 결코 어색하지 않습니다.

구자철은 아우크스부르크에서 좌우 윙어, 중앙 미드필더를 골고루 소화했습니다. 마인츠전에서는 오른쪽 윙어로 활약했죠. 특정 공간에서 활동하지 않고 부지런히 뛰어다니면서 정확한 패싱력으로 팀 공격을 조율했습니다. 출전 빈도가 띄엄띄엄했던 볼프스부르크 시절에 비해서 움직임이 경쾌해졌고 볼을 다루는 감각이 좋아졌습니다. 남은 잔여 경기에서 실전 감각을 기를수록 팀 공격에 관여하는 장면이 많이 연출 될 것으로 기대됩니다. 감독과 동료 선수들에게 신뢰를 얻었으니 앞으로는 볼 터치가 늘어날 것임에 분명합니다.

만약 구자철이 볼프스부르크에 그대로 잔류했다면 불안정한 팀 내 입지가 계속 이어졌을지 모릅니다. 볼프스부르크 미드필더 가용 인원이 많으니까요. 축구팬들에게 잘 알려진 마가트 감독의 독단적인 선수단 운영은 구자철에게 도움이 되었을지 의문입니다. 어쨌든 지금처럼 임펙트 넘치는 활약상을 보여주지 못했을 것 같습니다. 반면 아우크스부르크는 자신에게 붙박이 주전을 보장해줬죠. 마인츠전 시즌 2호골을 계기로 주전 경쟁을 크게 의식하지 않아도 됩니다. 자신의 축구 재능을 실전에서 마음껏 발휘할 여유를 얻었으니까요. 볼프스부르크에서는 불규칙적인 경기 투입 때문에 그럴 여유를 얻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구자철 임대는 지금까지 성공작입니다. 볼프스부르크보다 낮은 레벨의 클럽으로 임대되었지만 오히려 분데스리가에서 화려한 나날을 보내기 시작했습니다. 다른 방향으로 이야기를 틀면,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에서 이렇다할 출전 기회를 얻지 못하는 박주영(아스널) 지동원(선덜랜드)과 차별화된 행보입니다. 두 명의 공격수는 1월 이적시장을 통해 임대를 떠났다면 지금보다 더 좋았다는 아쉬움이 듭니다. 그만큼 구자철 임대가 옳았다고 봐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