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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맨유, EPL 꼴찌 블랙번에게 패한 이유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하 맨유)의 2011년 마지막 경기이자 알렉스 퍼거슨 감독의 70번째 생일은 결국 패배로 끝났습니다. 맨체스터 시티와 1위를 다투는 상황에서 리그 최하위 팀에게 덜미를 잡히면서 향후 순위 싸움이 불리하게 전개 될 것으로 보입니다.

2011년 12월 31일 저녁 9시 45분(이하 한국시간) 올드 트래포드에서 진행된 2011/12시즌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 19라운드 블랙번전에서 2-3 패배를 당하면서 뜻하지 않은 이변의 희생양이 됐습니다. 전반 16분 야쿠부 아예그베니에게 페널티킥 선제골을 내줬고 후반 6분에도 야쿠부에게 골을 허용했습니다. 디미타르 베르바토프가 후반 7분, 17분에 2골을 몰아 넣었지만 후반 35분 블랙번의 21세 유망주 그랜트 한리에게 결승골을 헌납하고 말았습니다. 맨유는 2위를 그대로 지켰고 블랙번은 20위에서 19위로 올라섰습니다. 박지성은 풀타임 출전했습니다.

[사진=블랙번전 2-3 패배를 발표한 맨유 공식 홈페이지 (C) manutd.com]

맨유, 전반전 선수 구성부터 아쉬웠다

한 가지 재미난 사실은, 맨유는 2010년 11월 27일(현지 시간) 블랙번과의 홈 경기에서 7-1 대승을 거두었습니다. 베르바토프가 5골 넣었고 박지성-나니가 1골씩 추가했습니다. 스코어를 봐도 공격력이 완벽했습니다. 당시 블랙번은 앨러다이스 감독(현 웨스트햄)이 경질 위기에 처했고, 현재 지휘봉을 잡은 스티브 킨 감독도 팀이 리그 꼴찌로 추락하면서 블랙번 팬들에게 경질 압박을 받았던 공통점이 있습니다.

하지만 앨러다이스 체제와 스티브 킨 체제는 한 가지 차이점이 있습니다. 후자격에 속하는 팀의 선수들은 꼴찌에서 벗어나고자 경기 초반부터 육탄 수비를 펼치면서 맨유 선수들을 거칠게 다루었습니다. 일부 선수가 부상으로 빠진 공백을 영건(한리, 헨리, 페트로비치)으로 메웠으며 28세 백업 골키퍼 마크 번 슈퍼 세이브까지 더해졌습니다. 실전에서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붙으면서 맨유 선수들을 강하게 다루었습니다. 맨유전에서 잘해야 팀 내 입지를 키울 수 있는 동기부여가 충분한 셈이죠. 팀이 강등 압박을 받으면서 모든 선수들이 열의를 다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후반전 2실점을 봐도 수비가 완벽했다고 볼 수 없지만 13개월전 1-7 패배와는 다른 분위기 였습니다.

[사진=13개월전 블랙번을 7-1로 제압했던 맨유. 그러나 지금은... (C) 맨유 공식 홈페이지(manutd.com)]

맨유는 전반전 선수 구성이 잘못됐습니다. 데 헤아가 골키퍼, 에브라-존스-캐릭-발렌시아가 수비수, 웰백-박지성-하파엘-나니가 미드필더, 에르난데스-베르바토프가 공격수로 출전했습니다. 다수의 전문 센터백들이 부상으로 빠지면서 캐릭이 수비수로 내려왔고 발렌시아까지 포백을 도맡았습니다. 5개월만에 복귀한 하파엘은 오른쪽 풀백이 아닌 중앙 미드필더로 뛰었습니다. 평소 같았으면 하파엘이 오른쪽 풀백, 발렌시아가 오른쪽 윙어를 담당했을 것입니다. 왼쪽 윙어는 나니였겠죠. 웰백은 선덜랜드 임대 시절을 제외하면 측면 미드필더로서 딱히 인상 깊은 경기를 펼친 경험이 드뭅니다.

그 결과는 공격진의 불협 화음으로 이어졌습니다. 웰백-에르난데스-베르바토프-나니 같은 공격 옵션들의 폼이 모두 안좋았습니다. 웰백은 제이슨 로에게 봉쇄당했고 에르난데스는 팀 공격이 블랙번 밀집 수비에 막히자 박스 안에서 철저히 묶였습니다. 베르바토프가 2선으로 내려오는 움직임을 취했지만 주변에서 볼을 받아줄 동료 선수의 협력적인 움직임이 소극적 이었습니다. 나니는 좌우 공간을 활용하는 시야가 좁았습니다. 너무 돌파에 집착하면서 상대 선수들의 협력 수비에 걸릴 수 밖에 없었습니다. 전반 31분에는 크로스를 띄우는 타이밍까지 놓쳤죠. 발렌시아의 왕성한 오버래핑을 유도하기에는 센터백 캐릭의 수비 부담이 가중되는 불안함이 있었습니다.

하파엘 중앙 미드필더 전환은 실패작입니다. 정확히는 맨유의 중원을 지킬 선수가 마땅치 못했죠. 후반 시작과 함께 교체 투입된 '스포츠 머리 변신' 안데르손도 부상에서 복귀한 상태였습니다. 하파엘의 중원 이동은 어쩔 수 없었죠. 하지만 박지성과 호흡을 맞추기에는 콘셉트가 뚜렷하지 못했습니다. 박지성이 중원에서 1차 패스를 내주면서 때로는 상대 공격을 차단하는데 주력했지만 또 다른 중앙 미드필더는 패스를 여러 공간으로 벌려주는 역할을 수행해야 합니다. 하파엘은 그게 잘 안됐습니다. 후반전에 오른쪽 풀백으로 전환하면서 폼이 살아났을 뿐이죠.

맨유는 후반전이 되면서 에르난데스를 빼고 안데르손을 교체 투입했습니다. 발렌시아가 오른쪽 윙어로 올라가면서 크로스의 날카로움을 앞세워 맨유의 2골을 관여했습니다. 후반 7분 오른쪽 측면에서 크로스를 띄운 볼이 중앙쪽에서 상대 선수 몸을 맞으면서 하파엘 크로스-베르바토프 헤딩골로 이어졌고, 후반 17분에는 오른쪽 박스 공간을 치고 드는 상황에서 오른발 크로스를 띄운 것이 베르바토프의 오른발 동점골로 이어졌습니다. 애초부터 하파엘이 측면 수비수로 뛰면서 나니-발렌시아 측면 조합이 꾸려졌다면 맨유가 이겼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전반전부터 효율적인 공격 작업이 이루어질 수 있었기 때문이죠.

그러나 맨유는 후반 35분 한리에게 결승골을 내주지 말았어야 했습니다. 2-2로 비긴 상황에서 공세를 거듭했지만 상대팀에게 골을 허용하면서 사기가 꺾였죠. 골키퍼 데 헤아 실수가 아쉬웠습니다. 블랙번 왼쪽 코너킥이 날아왔을 때 한리와의 몸싸움에서 밀리면서 공중볼을 펀칭하지 못했습니다. 그때 한리는 데 헤아가 자리를 비운 틈을 노리면서 골을 넣었죠. 되돌이켜 보면, 맨유가 야쿠부에게 2실점을 내줬던 장면 또한 수비 실수였습니다. 전반 15분 베르바토프가 삼바의 왼팔을 강하게 잡아당겼던 것이 페널티킥으로 이어지면서 야쿠부에게 실점했고, 후반 6분에는 캐릭이 태클 과정에서 볼을 우물쭈물하게 처리한 것이 야쿠부 문전 쇄도에 이은 실점이 됐습니다.

루니 결장 또한 빼놓을 수 없습니다. 정확한 결장 원인은 알려지지 않았지만(부상 유력) 13개월전 블랙번전에서는 맨유 7-1 승리의 숨은 주역 이었습니다. 패스 108개 중에 87개를 정확하게 연결했는데 팀 내에서 가장 많은 패스를 날렸습니다. 공격수임에도 양질의 패스를 끊임없이 공급하면서 대량 득점의 발판을 열어줬죠. 하지만 이번 블랙번전에서 베르바토프와 함께 호흡을 맞췄던 에르난데스는 전반 45분 동안 패스 17개(15개 성공)에 그쳤습니다. 동료 선수들처럼 패스를 주고 받기에는 부지런하지 못한 단점이 있습니다. 지난 시즌에도 그랬지만 뛰어난 골 생산에 비해서 이타적인 면모가 부족합니다.

그나마 베르바토프의 2골이 반가웠습니다. 최근 3경기에서 6골을 퍼부었던 기세를 놓고 보면 맨유의 주전을 되찾을지 모릅니다. 웰백-에르난데스의 부상 복귀 이후 폼이 꾸준하지 못했던 아쉬움을 풀어줬습니다. 맨유의 UEFA 챔피언스리그 토너먼트 출전이 좌절된 상황에서 시즌 후반기에도 잔류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동안 챔피언스리그에 약했죠. 맨유가 블랙번에게 패했지만 베르바토프 부활 모드가 없었다면 0-3으로 완패했을 경기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