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남자들 중에는 어렸을 때 태권도, 합기도, 검도 같은 무술 학원을 다니며 체력을 키웠던 분들이 많을 것입니다. 모든 학원마다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제가 초등학교 다닐적에 태권도 학원을 다녔을 때 매달마다 승급 심사를 했습니다. 평소에 태권도를 할 때는 즐거웠지만 승급 심사 만큼은 긴장 됐습니다. 품세를 하고, 또래 친구와 겨루기를 하는 모습을 부모님들이 보셨죠. 그날은 실수하지 않으려고, 겨루기 할때 많이 맞지 않으려고, 사범님에게 꾸지람을 듣지 않으려고 초조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때는 부모님이 학원에 오실 때 '승급심사라서 그런가 보다'라고 생각했습니다. 저희 부모님 뿐만 아니라 다른 친구들의 부모님들도 많이 오셨죠. 학원의 의무사항이 아니라 자율적으로 언제든지 승급 심사를 보러 오는 형태 였습니다. 그럼에도 승급 심사를 보러오는 부모님들이 많이 계셨죠. 저희 부모님이 학원에 오실때는 제가 태권도했던 모습을 흐뭇하게 느끼셨답니다. 제가 무럭무럭 성장하는 모습이 반가웠다고 말입니다.
[사진=조쌍제 축구교실 부모님들이 어린이 축구 선수들에게 음료수를 나누어주며 격려하는 장면. 비가 내리는 날씨 속에서 힘든 경기를 펼쳤던 어린이들에게 큰 힘이 되었을 겁니다. 조쌍제 축구교실은 대한축구협회(KFA)가 주최하는 '현대자동차 KFA 2011 유소년 클럽리그(이하 유소년 클럽리그)' 결선 16강에 진출한 클럽입니다. (C) 효리사랑]
부모님들의 응원, 유소년 축구를 춤추게 하다
저의 태권도 학원 시절을 언급한 것은, 축구 매니아로서 유소년 축구를 예로 들기 위해서 였습니다. 현장에서 유소년 클럽리그를 볼때마다 자녀를 응원하는 부모님들을 보게 됩니다. 제가 어렸을 적에 태권도 학원을 다녔던 그때의 추억을 떠올리게 합니다. 예전에 저희 부모님이 제가 태권도 했던 모습을 보고 싶었던 마음과 똑같죠. 시대는 분명 달라졌지만 부모님들의 '자녀 사랑'은 변함 없이 강한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 아직 결혼하지 않아서 자녀를 키우는 입장이 마음속으로 와닿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부모님이 언젠가 저에게 이런 말씀을 하시더군요. "나의 최대 행복은 아들이 성공하는 것이다"라고 말입니다.
제가 유소년 축구를 보는 이유는 한국 축구를 더 넓게 이해하기 위해서 였습니다. TV에서 또는 K리그 현장에서 보는 것이 한국 축구의 전부는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예전에는 K3리그(현 챌린저스리그)를 현장에서 종종 챙겨봤던 기억도 있지만, 한국 축구의 뿌리는 유소년 축구라고 판단했었죠. 다수의 한국 축구 선수들은 초등학교 시절부터 운동을 시작했습니다. 올해는 대한축구협회가 유소년 클럽리그를 주최하면서 유소년 축구에 관심을 가져보기로 했습니다. '단순히 축구 구경만 하겠지?'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유소년 축구를 보면 볼수록 부모님들의 응원이 계속 됐습니다.
지난 5월 15일 경기도 파주 지산 초등학교에서 유소년 클럽리그를 봤을 때 였습니다. 처음에는 '유소년 축구는 관중들이 별로 없겠지'라고 생각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초등학생 스포츠가 인기를 끌었던 전례는 아마도 없었을 겁니다. 그런데 학교 운동장에 들어섰더니 부모님들이 관중석 스탠드에 있으셨습니다. '주말이라 부모님들이 있구나'라고 인식했습니다. 그런데 그 생각이 점점 변하더군요. 부모님들이 자녀가 소속된 팀이 골을 넣을때마다, 좋은 플레이를 할때마다 목소리를 높이며 응원을 했습니다. 하프타임이나 경기가 끝난 뒤에는 보온병에 담긴 따뜻한 물을 나누며 자녀를 격려했죠. 그때가 야간 경기였습니다. 따뜻한 물에서 올라오는 김 모습이 어찌나 아름답던지요.
일주일 뒤에는 인천 서구 신석 체육공원에서 유소년 클럽리그를 관전했습니다. 그때는 주말 오후라서 가족 단위로 많은 분들이 운동장을 찾았더군요. 경기에 나서는 자녀를 응원하기 위해서 말입니다. 자녀가 소속된 팀이 골을 넣었을 때 부모님들 환호성이 공원에서 쩌렁쩌렁 울리더군요. 그날은 날씨가 맑아서 분위기가 화기애애 했습니다. 가족분들의 화목이 넘치는 현장을 보면서 역시 축구는 일상 생활에서 사람들에게 행복을 안겨주는 스포츠임을 느꼈습니다. 귀한 주말을 내어 자녀에게 파이팅을 불어넣은 부모님들의 사랑을 이때부터 알게 됐습니다.
[동영상=리틀 FC서울 선수들이 경기 종료후 부모님들에게 인사를 하는 모습입니다. (C) 효리사랑]
3개월 뒤 인천내 다른 구장에서 같은 대회를 봤는데, 어느 팀이라고 말하기는 그렇지만 대량 실점 패배 위기에 놓였습니다. 그 팀이 막판에 1골 넣으니까 부모님들의 함성 소리가 우렁찼습니다. 팀은 사실상 패했지만 아이들이 1골을 위해 최선을 다했던 보람을 얻으면서 부모님들이 좋아했죠. 어느 분이 "고기 먹으러 갈까?"라고 말했던 것 처럼 1골에 감동하시는 모습이 관중 입장이었던 저를 기쁘게 하더군요.
지난 여름에는 비가 많이 내렸습니다. 유소년 클럽리그도 어쩔 수 없이 수중전이 진행됐습니다. 7월 16일 은평 구립 운동장에서는 '결선 16강에 진출한' 조쌍제 축구클럽 유소년 선수들이 비를 맞으면서 경기를 했습니다. 후반전에는 비가 그쳤지만, 빗방울이 온 몸을 적신데다 인조잔디 그라운드가 젖으면서 평소보다 힘든 경기를 펼쳤습니다. 경기가 끝난 뒤에는 관중석으로 찾아가 한쪽에 모여있더군요. 부모님들이 "잘했어", "수고했어"라는 격려의 메시지와 함께 음료수를 돌리며 수중전을 무사히 마쳤던 아이들을 따뜻하게 맞이했습니다. 부모님들의 사랑이 느껴지는 모습을 보면서, 가족의 행복은 돈으로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자산임을 느꼈습니다.
이 과정에서 저는 '왜 부모님들은 축구장을 찾을까?'라는 의문을 품었습니다. 피아노, 미술, 영어 같은 일반적인 학원들은 부모님들이 자녀와 함께 가는 경우가 드문 편인데 유소년 축구 경기는 그런 분위기가 아니었습니다. 저의 머릿속에서는 답이 쉽게 풀리더군요. '당연하지. 경기니까...'라고 말입니다. 유소년 클럽을 운영하는 코칭스태프가 경기의 중요성을 어린이에게 인지했을 것이고, 어린이가 집에서 "내일 경기에 출전할거에요"라고 말하면 부모님들이 기대감을 가질 수 밖에 없겠죠. 어떤 형태로든 유소년 클럽리그 일정을 아시겠지만, 아이의 성장을 지켜보며 격려할 수 있는 분위기가 유소년 클럽리그에서 마련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부모님들이 경기만 보는 것은 아니더군요. 지난달에는 박지성 축구센터를 방문했습니다. 제가 현장에 갈때는 연령별 팀으로 한창 연습이 진행되었는데, 부모님들이 의자에 앉아 경기에 보시더군요. 휴식 시간이 되면 아이들에게 물병을 주며 격려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부모님 한 분에게 가장 보람찰때가 언제냐고 질문을 했더니 "선생님이 축구로 기교를 부리거나 또는 발동작을 처음에는 아이들이 따라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익숙해졌어요. 집에서 연습하고 훈련하는 모습을 보면서 보람을 느낍니다"라는 답변을 들었습니다. 아이들이 성장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싶었던 것입니다. 글의 앞에서 제가 결혼하지 않았다고 언급을 했지만, 저희 부모님이 "나의 최대 행복은 아들이 성공하는 것이다"고 말한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 같습니다.
평일 저녁이었던 어느 날에는 정장에 넥타이를 갖춰 입고 유소년 클럽리그를 봤던 아버님들을 봤습니다. 다른 학부모님들과 함께 응원하며 아이들에게 승리의 기를 불어 넣었죠. 직장일을 마치고 자녀의 경기를 보러 축구 현장을 찾았습니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직장인들이 평일 저녁에 개인적인 시간을 내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야근, 회식, 술자리, 사람과의 만남 등에 이르기까지 할일들이 많습니다. 그럼에도 아이가 뛰는 축구 경기를 보고 싶어서 현장에 오는 분들이 계십니다. 개인적으로 유소년 클럽리그를 보면서 결혼을 해야겠다는 느낌이 들더군요. 저도 그분들 처럼 나의 아이들에게 사랑을 함께하고 싶습니다. 부모님 사랑은 세상에서 최고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