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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전북 서정진, 심상치 않은 '박지성 빙의'

 

과장된 표현일지 모르겠지만, 서정진(22, 전북) 활약상은 대표팀 신입 시절의 박지성을 보는 듯 했습니다. 오른쪽 측면에 국한되지 않고, 중앙과 왼쪽 측면까지 넓게 움직이며 대표팀 공격에 적극적으로 참여 했습니다. 후반 막판에 지쳤지만 자신의 첫 A매치를 소화했던(7일 폴란드전은 A매치 무효) 심리적인 압박감이 없지는 않았을 겁니다. 조광래호의 아랍에미리트 연합(UAE)전 경기력은 아쉬웠지만 서정진 활약상은 신선했습니다.

서정진은 조광래호 10월 2경기에서 3도움을 기록했습니다. 올 시즌 K리그 7경기 1골 2도움, K리그 통산 61경기 4골 5도움을 감안할때 조광래호에서 자기 역량을 100% 또는 그 이상의 능력을 쏟았다는 생각입니다. 지금까지는 전북의 촉망받는 미래였지만 팀의 붙박이 주전은 아닙니다. 올 시즌 상반기에는 장기간 부상으로 신음했죠. 그렇다고 갑자기 한국 축구에 등장한 선수는 아닙니다. 2009년 U-20 월드컵에서 이승렬, 조영철을 벤치로 밀어내고 주전으로 등극하여 홍명보호 8강 진출 주역으로 떠올랐습니다. 지난해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도 오른쪽 측면에서 착실한 활약을 펼치며 박주영-구자철과 더불어 홍명보호 공격을 짊어졌습니다.

서정진의 최대 강점은 테크닉 입니다. 상대 수비 대응에 주늑들지 않고 드리블 돌파를 시도하거나, 지체없이 동료 선수에게 패스를 밀어주거나, 전방쪽으로 패스 또는 크로스를 띄우며 팀 공격의 활기를 키워줍니다. 특히 K리그에서 단련된 경험 때문인지 폴란드의 터프한 수비, UAE의 밀집 수비에 흔들림 없이 지속적으로 볼을 배급하며 한국의 공격 활로를 열어줬죠. 자신의 기교가 빛을 발했던 것은 왕성한 움직임, 적극적인 수비 가담이 뒷받침되었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빠른 순발력까지 겸비하면서 상대 수비를 힘들게 하는 기질을 조광래호에서 입증했습니다.

특히 박주영과의 호흡이 잘 맞았습니다. 폴란드전에 이어 UAE전에서도 박주영 골을 직접적으로 도왔습니다. 후반 5분 상대 수비진 사이에서 문전 쇄도를 시도했던 박주영 움직임을 파악하고 스루패스를 밀어준 것이 선제골 발판이 됐죠. 대표팀 주장이자 부동의 골잡이로 활약중인 박주영의 새로운 도우미가 탄생한 순간입니다. 박주영 입장에서도 자신의 골을 도와줄 조력자가 등장한 것을 반길 겁니다. 박주영 원톱 체제가 계속된다는 전제에서는 서정진이 대표팀 오른쪽 윙어 경쟁에서 앞설지 모른다는 생각입니다.

기술에 중점을 두는 테크니션 보다는 팀과 함께 호흡하는 것이 바탕이 되는 테크니션이 더 강합니다. 혼자서 기교를 부리기 보다는 여러 사람과 협력하면서 자신만의 강점을 키울 수 있죠. 서정진은 후자에 속하는 선수입니다. 박주영의 골을 도왔던 장면을 비롯해서 구자철과 2대1 패스를 주고 받거나, 왼쪽과 중앙에서 패스 플레이에 관여했습니다. 개인을 위한 움직임 보다는 여러 사람을 도와주는 능력이 발달 됐습니다.

아쉬움도 있었습니다. 얼리 크로스에 일가견 있는 이청용에 비하면 크로스 타이밍이 더 빠르고 정교할 필요가 있습니다. 특히 UAE전은 크로스 세기가 힘에 부쳤던 느낌입니다. 그럼에도 몇 차례 크로스를 띄우는 장면을 통해서 다양한 개인 공격 패턴을 과시했죠. 경험까지 쌓이면 경기 운영 능력이 발달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 모든 것은 움직임이 밑바탕 되었기에 가능했습니다. 지금까지는 유망주 단계에 있었지만 조광래호 10월 2경기를 기점으로 과거의 박지성을 떠올리게 하는 심상치 않은 활약을 펼쳤죠.
 
그렇다고 서정진을 '제2의 박지성', '제2의 누구'라는 식상한 수식어로 치켜 세우는 것은 불편합니다. 하지만 폴란드전, UAE전 활약상 만큼은 '박지성 빙의'라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움직임에서 인상 깊은 모습을 보였습니다. 서정진 움직임이 눈에 띄었던 것은 역설적으로 동료 선수들의 움직임이 전체적으로 무거웠습니다. 조광래호는 패스를 받아줄 선수의 몸놀림이 자연스럽지 못합니다. 패스를 내줄 곳이 많을수록 다양한 공격을 펼칠 수 있는데 조광래호는 그 작업이 잘 안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난달까지는 남태희, 10월 2경기에서는 서정진의 움직임이 돋보였죠. 긍정적 관점이라면 남태희-서정진의 무궁한 재능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남태희도 앞날의 미래가 기대되지만, 서정진도 남태희 못지 않은 이유는 앞으로 대표팀에서 성장할 수 있는 선수 입니다. 비록 남태희가 조광래호 10월 2경기에서 중앙 공격형 미드필더로 전환했으나 만족스런 경기력을 보여주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나 오른쪽 윙어로 다시 옮기면 서정진과 직접적인 주전 경쟁을 해야 합니다. 서정진에게 반가운 것은 남태희와 경쟁하며 기량 발전에 구슬땀을 흘릴 수 있죠. 남태희 입장에서도 반길 일입니다. 두 명 모두 소속팀과 대표팀에서 날마다 열심히 할 수 있는 동기부여를 얻었죠. 여기에 이청용까지 부상에서 복귀하면, 한국 축구의 오른쪽 윙어 자원이 풍부해집니다.

그렇다고 서정진이 현실에 안주해서는 안됩니다. 아직 전북에서는 로테이션 멤버 입니다. 최근에는 이승현과 치열한 포지션 경쟁을 하고 있지만, 에닝요에 이은 전북 에이스로 성장할 수 있도록(에닝요는 아직 건재하지만) 노력을 해야 합니다. 공격에 가담하는 미드필더라면 이제는 득점력에 눈을 뜰때가 아닌가 싶습니다. 대표팀에서 좋은 활약을 펼쳤지만 앞으로는 남태희-이청용과 경쟁해야 하는 입장입니다. 그럴수록 공격 무기가 더 많아야 합니다. 그런데 득점력 아쉬움도 과거의 박지성과 흡사합니다. 박지성과 똑같은 유형의 선수라고 볼 수는 없지만, 조광래호에서 보여준 잠재력 만큼은 마치 산소탱크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