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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조광래호, 일본전 트라우마 극복 못했다

 

조광래호의 아랍에미리트 연합(UAE)전을 보면서 저의 머릿속에는 '한국은 아시아 강팀 맞아?'라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습니다. 결과적으로 UAE를 2-1로 꺾고 승점 3점을 획득한 것은 만족스럽지만 경기 내용에서는 국민들의 기대감을 충족시키지 못했습니다. 이제는 아시아 약체와의 홈 경기에서 승리하는 것은 기본이 됐습니다. 지금까지의 한국 축구는 홈에서 강한 모습을 보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내실이 탄탄하지 않거나 진보하지 않으면 자칫 팀이 정체될지 모릅니다. 그것이 조광래호 문제점입니다.

한국 축구는 여전한 아시아 강팀입니다. 그러나 8월 일본 원정 0-3 패배, 9월 쿠웨이트 원정 1-1 무승부 및 경기 내용이 실망스럽습니다. 쿠웨이트 원정 이전에 국내에서 치렀던 레바논전에서는 6-0 대승을 거뒀지만 상대팀 레벨이 매우 허약했죠. 10월 UAE전은 2-1로 이겼지만 이번에도 경기 흐름이 매끄럽지 못했습니다. 일본전을 기점으로 트라우마에 시달리는게 아닌가 생각됩니다. 진정한 강팀이라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박지성이 강조하는 '위닝 맨탈리티'를 통해서 패배를 추스릴 수 있지만, 조광래호는 일본전부터 꼬였다는 느낌입니다.

UAE전에서 가장 실망했던 장면은 경기 막판 실점입니다. 선수들이 후반 30분부터 지친 기색이 역력했지만 UAE전은 평가전이 아닌 월드컵 아시아지역 3차 예선 입니다. 경기 종료 휘슬이 울릴때까지 최선을 다했어야 합니다. 2-0 이후 체력 저하에 시달리며 더 이상 추가골을 넣지 못해도 무실점은 지키는 것이 마땅했습니다. 지난 7일 폴란드전에서는 2-1로 앞섰던 후반 38분 조병국 수비 실수에 의한 실점을 허용했지만, UAE전에서는 또 다시 경기 막판에 골을 내줬습니다. 누군가의 실수가 아닌 수비진 전체의 커버 플레이 미스, 느슨한 대인 방어에서 비롯 됐습니다. 승리를 예상하고 마음이 풀어졌죠.

한국 대표팀에 통솔력이 탁월한 선수가 있었다면 경기 막판 실점은 막았을거라 생각합니다. 당시 상대팀에게 실점한 상황이 뜬금없이 벌어졌지만 우리 수비진이 끝까지 긴장을 늦추지 않고 경계했다면 경기는 2-0으로 끝났을지 모릅니다. 2-0 이후에 누군가 동료 선수들을 잡아줬어야 합니다. 안타깝게도 한국 대표팀에는 딱히 리더십이 뛰어난 선수가 보이지 않습니다. 주장 박주영이 수비수를 컨트롤 하기에는 포지션상으로 힘듭니다. 예전의 이영표처럼 후방에서 선수를 다그칠 선수가 필요합니다. 남아공 월드컵 나이지리아전 종료 직전에 누군가에게 벼락같이 화를 낸 적이 있었죠. 그때는 실점하면 끝이었지만, 지금의 조광래호 수비수들은 자기 역할에 급급한다는 느낌입니다.

[사진=한국의 UAE전 2-1 승리를 발표한 아시아축구연맹(AFC) 공식 홈페이지 메인 (C) the-afc.com]

물론 강팀도 실수 합니다. 매 경기 매 순간마다 잘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한국 대표팀 수비 불안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었습니다. 조광래 감독 이전에는 한국 축구의 환경적인 문제부터 탓해야 할 사안입니다. 그런데 최근의 조광래호 경기를 보면 공격과 수비의 밸런스가 맞지 않거나, 원톱과 2선 미드필더와의 호흡이 안맞거나, 풀백이 상대팀 공격 옵션에게 수비 뒷 공간을 내주는 문제점, 커버 플레이 미스로 상대팀에게 역습 또는 침투 패스를 내주는 불안함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출범한지 1년 넘었지만 팀이 완성된 흔적이 보이지 않습니다. 박지성-이영표가 대표팀을 떠난지 이제는 몇개월 됐습니다.

그나마 한국에게 다행인 것은 UAE에서 포지셔닝과 골 결정력이 특출난 공격수 존재감이 미미했습니다. UAE 공격 옵션들은 개인기, 순발력, 침투 능력이 있는 선수들입니다. 하지만 한국 박스 안에서의 마무리 능력이 부족했죠. 그런 어려움을 딛고 막판에 골을 넣은 것은 경기에서 최선을 다했다는 뜻입니다. 한국보다 약한 상대인 것은 본인들이 잘 알겠지만 0-2 열세에 의기소침하지 않았습니다. 굳이 UAE 장점을 언급한 이유는, 앞으로 한국 축구가 UAE와 비슷하거나 그 레벨을 뛰어넘는 아시아 국가와 겨룰 일이 많기 때문입니다. 한국과 상대할 아시아 팀은 바짝 경계할 겁니다. 한국은 아시아 강호를 굳힌지 오래되었죠. 그럴수록 한국이 더 분발해야 합니다.

일본전 이전까지는 잘했습니다. 흔히 말하는 기술 축구가 정착되고, 처음에는 부정적인 어감으로 쓰였던 만화 축구가 나중에는 긍정적인 의미를 선사했죠. 그런데 지금은 정체 됐습니다. 8월 일본전-9월 쿠웨이트전-10월 UAE전에서 공격력이 둔화되고 수비 불안까지 겹치는 상황에 놓였습니다. 이러한 상황이 오랫동안 벌어지면 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 월드컵 본선을 감당할지 의문입니다. UAE전 승리에 만족하는 사람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경기를 확실히 봤던 분들이라면 경기 내용에서 답답하고 찝찝한 마음을 느끼셨을 것입니다.

공교롭게도 3년전이었던 2008년 10월 15일에는 한국 대표팀이 UAE와 월드컵 최종예선을 치렀습니다. 당시 허정무호가 4-1로 승리했죠. 그 경기가 열린지 한달 전에는 북한전에서 졸전을 면치 못하면서 허정무 감독을 질타하는 여론 분위기가 대세였습니다. 북한전 이전의 경기 내용도 전체적으로 만족스럽지 않았죠.

그런데 허정무 감독은 북한전 트라우마를 빨리 극복했습니다. UAE전에서 징계(경고 누적)로 뛰지 못했던 김남일을 대신해서 박지성을 주장으로 선임했고, 기성용-이청용 같은 영건들을 대표팀 주전으로 기용했으며, 김정우가 기성용의 부족한 경험을 채웠습니다. 남아공 월드컵 16강 진출의 원동력이었던 박지성-김정우-기성용-이청용 미드필더 조합이 처음으로 만들어진 것은 2008년 10월 11일 우즈베키스탄전이며, 4일 뒤 UAE전에 이르러 허정무호 기본 골격이 완성 됐습니다. 당시 허정무호가 출범한지 거의 1년 된 시점임을 감안하면 UAE전이 터닝 포인트 였습니다. 개인적으로 허정무 감독을 옹호하는 성향은 아니지만 당시의 판단은 옳았습니다.

그러나 조광래 감독은 이번 UAE전이 터닝 포인트가 되지 못했습니다. 일본전 트라우마를 극복하는데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공격이 의도하는대로 풀리지 않고 수비까지 답답해지는 상황에 놓였습니다. 이제는 리더 문제까지 겹쳤죠. 그렇다고 박주영 리더십 문제점을 제기하는 것은 아닙니다. 후방에서 젊은 선수를 리드할 또 하나의 경험 넘치는 수비수가 필요함을 느꼈습니다. 조광래 감독이 조병국을 발탁한 것과 비슷한 배경이죠. 안타깝게도 조병국의 폴란드전 실수는 불운했습니다. 그런 조광래호는 11월에 중동에서 A매치 2연전(UAE전, 레바논전)을 치릅니다. 그때는 지금같은 무거운 분위기에서 벗어났으면 하는 바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