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여름에는 여행을 못갔습니다. 8월말 인천 월미도에 잠시 나들이 다녀온 것을 제외하면 바깥에서 특별한 시간을 보냈던 기억이 없습니다. 개인적으로 많이 지쳤던 시점이라 삶의 의욕이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7월 마지막주에는 춘천 여행을 다녀오려고 했는데, 당일 오전에 춘천에서 산사태 인명피해가 발생하고 서울에 엄청난 비가 내리면서 끝내 여행이 무산됐습니다. 적어도 8월 중순까지는 비가 너무 많이 내리면서 여행 다녀올 엄두가 나질 않았습니다.
그런데 9월 첫째주 주말은 유럽 축구가 없었습니다. 국제축구연맹(FIFA)이 규정하는 A매치 데이가 진행되면서 유럽 축구가 휴식기를 가졌습니다. 여름 늦더위가 9월 초순까지 계속 되면서 7~8월에 누리지 못했던 여행을 다녀올 여유가 생겼습니다. 또한 저는 늦여름을 좋아합니다. 무더운 여름이 저물어가고 선선하면서 풍요로운 가을 공기가 찾아오는 시점이 항상 저의 마음을 두근거리게 했습니다. 특히 파란색을 매우 좋아하기 때문에 '푸른 빛깔'이 넘실거리는 바다에 가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9월 3일 토요일에 경기도 화성에 있는 궁평항에 다녀왔습니다.
궁평항으로 떠나기 위해 서울 관악구에 있는 집에서 출발한 시간은 10시 40분. 하지만 집에서 늦게 나오는 바람에 지하철 1호선 신도림역에서 천안 방향으로 향하는 급행 열차를 놓쳤습니다. 당초 수원역에서 400번 버스를 타고 궁평항에 도착하려고 했는데, 급행 열차에 탑승하지 못하면서 일반 지하철을 타고 금정역에서 내렸습니다. 그곳 근처 편의점에서 점심을 해결하고 간식을 구입한 뒤, 제부도로 향하는 330번 버스에 올랐습니다. 제부도 이전의 정착지가 서신터미널 이었는데 그곳에서 400번 버스를 갈아타고 궁평항에 도착하겠다는 계획을 세웠죠. 급행 열차는 놓쳤지만 여행 준비는 잘했습니다.
저 포스터를 보면서, 경기도 군포하면 김연아라는 생각이 듭니다. 김연아가 군포에서 성장하면서 세계적인 피겨스케이팅 선수의 꿈을 꾸었고 목표를 달성했죠.
330번 버스는 12시 10분에 탑승했습니다. 군포-안산 반월동-화성 비봉면, 남양을 거쳐서 1시 40분 서신터미널에 도착했습니다. 버스에서 1시간 30분 동안 있었네요. 농촌 풍경을 바라보며 시골에 왔음을 느꼈습니다. 화성이 경기도 지역이지만 서울로 향하는 교통편이 발달된 곳은 아닙니다. 오히려 시골의 전형적인 모습을 볼 수 있어서 기분이 좋았습니다. 예상보다 오랫동안 버스에서 시간을 보냈지만 결코 짜증이 나지 않았습니다. 평소 주말에 일을 하는 사람이라 긴 시간 여행 다닐 여유가 없었는데 이날 만큼은 마음이 편안했습니다.
1시 40분 서신 터미널 도착. 400번 버스에 탑승하기 위해 이곳에서 기다렸습니다.
그리고 2시 10분. 궁평항에 도착했습니다. 집에서 궁평항까지 3시간 30분 소요됐습니다. 지금까지 경기도 여행을 다니면서 이동하는데 가장 많은 시간이 걸렸습니다. 화성 서쪽에는 고속도로가 없어서, 자가용을 이용하는 분들이라도 많은 이동 시간이 불가피했을 겁니다. '체감적으로' 서울에서 멀리 떨어진 느낌의 경기도 바닷가였지만, 그 특성이 궁평항의 매력을 돋보이게 하는 키 포인트 였습니다.
궁평항에서 수원역으로 돌아가려면, '꿀맛 호박 고구마'라는 가게 앞 버스 정류장에서 400번 버스에 탑승하면 됩니다. 매시 25분, 55분에 출발하더군요. 나중에 수원역-서울로 돌아갈때 느꼈지만, 400번도 만만치 않게 시간이 걸립니다. 4시 55분에 이곳에서 출발했는데, 수원역에 도착한 시간은 6시 25분 이었습니다.(수원 시내에서 저녁을 해결했더니, 집에 도착한 시간은 저녁 9시 였습니다.) 서울 사람 입장에서는, 군포역에서 330번 버스를 탑승하거나 아니면 수원역에서 400번 버스에 오르거나 소요 시간이 비슷비슷 했습니다. 궁평항이 서울에서 멀리 떨어진 곳임을 실감했죠.
궁평항 버스정류장에서 궁평리 해수욕장으로 가려면 오른쪽 길(파란색 원)로 걸어가시면 됩니다.
궁평리 해수욕장으로 이동하던 무렵에 '멋진 풍경'을 발견 했습니다. 작은 길이 갯벌 사이에 가로질러 있었습니다. 썰물때라서 사람, 차량 이동이 가능하더군요. 근처 표지판에는 "이 지역은 만조(밀물)시 통행로가 침수되오니 차량통행에 주의하시기 바랍니다"라는 문구가 새겨졌습니다. 서해안이 밀물, 썰물이 활발한 지역임을 실감했습니다. 저 통행로가 있어서 궁평항에서 궁평리 해수욕장으로 이동하는 길이 편안하죠. 그런데 도로보다 눈에 띄는 존재가 있었으니...
바로 하늘의 모습 입니다. 하늘색 빛깔과 하얀색 구름이 공존하는 풍경이 매우 멋있었습니다. 올해 여름에 여행을 다녀오지 못했던 갈증을 풀기에 충분했습니다. 바닷가에서 이렇게 멋진 하늘을 볼 수 있다는 것이 신기했습니다. 저 같이 도시 생활에 익숙한 사람에게는 흔치 않는 풍경이죠.
햐얀색 구름이 둥둥 떠다니는 궁평항 하늘. 자연과 함께하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지 깨닫게 됐습니다.
갯벌의 모습입니다. 서해안의 전형적인 풍경이죠.
궁평항 해수욕장으로 이동하기 위해 도로를 건넜습니다. 도로 중간에는 장승이 버티고 있었습니다. 갯벌에 세워진 장승의 모습은 처음 봅니다.
도로 중간 지점에서 제가 방금전에 위치했던 공간을 촬영했습니다. 제법 운치있게 느껴집니다.
갯벌과 땅, 그리고 하늘의 조화. 이렇게 아름다울줄은 몰랐습니다. 맑은 날씨 때문인지 풍경이 멋있었습니다.
궁평리 해수욕장 모습입니다. 백사장 길이는 2km, 너비는 50m라고 합니다. 유명 해수욕장에 비하면 규모가 결코 크지 않지만 방문객 입장에서는 바다-갯벌-백사장을 동시에 볼 수 있어서 좋죠. 이곳에서도 나름의 멋진 낭만이 있습니다. 9월 초순에 접어든 날짜, 썰물 때문인지 몰라도 백사장 가운데에는 사람이 눈에 띄지 않았습니다. 백사장 바깥쪽 갯벌에 가족 단위의 관광객들이 있었을 뿐이죠. 생각보다 분위기가 조용했습니다. 그 분위기가 오히려 저의 마음을 편안하게 했습니다. 사람들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죠.
해수욕장 곳곳에서는 바닥에 널부러진 조개껍데기를 쉽게 볼 수 있었습니다.
제가 궁평리 해수욕장에 왔을때는 썰물이 한창때였나 봅니다. 바닷물이 매우 멀리 있었어요. 갯벌이 드넓게 펼쳐졌습니다.
갯벌에는 바닷물이 조금씩 남았습니다. 밀물이 되면 백사장 앞까지 물이 들어오나 봅니다. 제가 궁평항을 당일치기 여행한 관계로 이곳의 밀물 풍경을 직접 못봤지만, 실제로는 어떤 모습이었을까요? 밀물과 썰물이 활발한 서해안 특유의 매력이 아닐까 싶습니다.
다시 도로를 건너 궁평항 수산물 직판장에 도착했습니다. 저는 생선을 안좋아해서 직판장을 방문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이곳을 많이 찾더군요. 자동차가 주차장에 계속 들어왔습니다. 이 곳은 어민들이 궁평항 부근에서 조업했던 수산물이 판매되는 장소입니다. 서울로 비유하면 노량진 수산시장 같은 곳이 아닐까 싶네요.
궁평항 수산물 직판장에서 궁평항으로 향하는 길. 도로 가운데에 차선이 새겨지지 않을 정도로 한적한 곳이지만, 궁평항까지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드디어 궁평항에 도착했습니다. 이곳에 정박한 어선들이 먼저 눈에 띄었습니다. 썰물 때문에 갯벌 한 가운데에 배가 있네요. 밀물이 되면 배가 운항하나 봅니다.
갯벌이 매우 넓습니다. 항구 한 가운데가 갯벌로 채워졌어요.
또 다른 어선들도 이곳에서 정박했습니다.
궁평항에서도 맑은 하늘을 볼 수 있었습니다. 날씨가 흐린 기색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쾌청한 날씨는 오랜만에 보는 것 같습니다.
궁평항을 찾기 전까지 걱정했던 것은 '먹을거리' 였습니다. 바닷가에는 횟집들이 많다보니, 생선을 좋아하지 않는 저로서는 당연히 걱정할 수 있는 부분입니다. 그래서 음식점이 없지 않나 싶어서 군포에서 미리 간식을 챙겼죠. 실제로 궁평항에는 부녀회가 운영하는 식당 빼고는 다른 음식점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길거리 매점들이 궁평항에 있었습니다. 음료수 및 각종 음식을 판매하며 사람들을 맞이했습니다. 어떤 매점은 팥빙수를 판매하거나, 또 다른 매점은 새우튀김을 즉석에서 요리했습니다. 궁평항 도로 한 가운데에는 간이 커피점까지 있었죠. 특별히 간식을 준비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궁평항 도로 왼쪽에는 사람들이 낚시를 하고 있었습니다. 오른쪽에서는 썰물이 한창 진행중 이었지만 왼쪽은 특별히 썰물의 징후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다른쪽에 시선을 돌렸더니...
안쪽에서 물살이 거세졌습니다.
배수갑문에서 서해안쪽으로 물이 유입됐습니다. 배수갑문 사이에서 큰 도로가 관통하는데, 그 길이 일직선으로 곧게 뻗어있습니다. 바로 화성방조제 입니다.
궁평항에 뻗어있는 도로를 계속 지났습니다. 시원한 바닷바람 때문인지 날씨가 덥지 않았습니다. 한여름에 바다를 찾을때는 더위를 잊는 기분이 좋았는데, 늦여름에 이곳을 찾으니까 가을의 여운이 조금씩 느껴졌습니다.
역시 갈매기는 바닷가를 상징하는 새입니다.
갈매기에게 새우깡으로 먹이를 주려는 관광객의 모습. 갈매기가 공중에서 새우깡 냄새를 맡았기 때문인지(아니면 멀리서 새우깡을 바라보는 시각이 발달되었거나) 사람에게 금방 다가갑니다. 새우깡을 바로 낚아채더군요. 2년 전 추석 여행때 월미도에서 영종도로 이동하기 위해 배에 탑승한 적이 있었는데, 사람들이 갈매기에게 새우깡을 건냈던 기억이 납니다. 새우깡이 40년 동안 장수했던 '국민과자'인데, 롱런의 비결은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 같습니다. 바닷가에서 즐기는 대표적인 과자가 아닐까 싶네요.
저의 시야에서는 구조물 하나가 눈에 띄었습니다. 사람들의 움직이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이곳은 궁평항 바다낚시터 입니다. 사람들이 바다낚시를 즐기거나 멋진 바다 풍경을 볼 수 있도록 2009년에 설치됐습니다. '피싱피어(Fishing Pier)'라는 이름으로 알려졌죠. 국내에서 보기 드문 구조물이 있었습니다.
바다낚시터 입구 모습입니다. 이곳에는 오전 7시부터 저녁 8시까지 출입이 가능합니다. 바닥은 목조로 되었지만 기둥과 밑바닥은 철골 이었습니다. 철골이 목조를 떠받치는 형태였죠. 목조 건축물은 아늑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장점이 있는데, 궁평항 바다낚시터는 바다를 찾는 사람들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줍니다.
주말 때문인지 이곳에서 낚시를 하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낚시대의 압박이랄까요...^^
궁평항 바다 낚시터에서 바라본 풍경입니다. 바다와 하늘의 풍경이 아름답네요. 시원하게 느껴집니다. 멀리 보이는 땅은 충청남도 당진 입니다.
바다 낚시터에서 발걸음을 쉽게 떼지 못했습니다. 편안한 분위기 때문에 이곳에 계속 머물고 싶었습니다.
궁평항 바닷가에서는 어선들이 조업하고 있었습니다.
이번에는 도로 끝쪽으로 이동했습니다. 그런데 하늘 모습이 심상치 않습니다.
궁평항 하늘 풍경입니다. 태양을 가린 구름의 모습이 생생하네요.
바다 낚시터쪽으로 시선을 돌렸더니 구름이 활짝 피어 올랐습니다. 일생생활에서는 하늘을 보며 '비가 오는지, 안오는지...'만 확인하지만, 바다로 나오니까 하늘 풍경도 멋있음을 느꼈습니다. 궁평항은 바다, 하늘까지 구경할 수 있는 아름다운 공간 입니다.
햇쌀이 바다를 비추는 장면은 지금까지 제가 두 눈으로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개인적으로 바다 여행을 즐기는 편이 아니라서 이러한 장면을 처음 보는 것 같습니다. 그동안 바다에 갈때는 바닷물 풍경만 보고 말았는데 궁평항은 그게 아니었습니다. 서울에 있는 집에서 궁평항까지 3시간 30분 여정을 각오했는데, 멀리까지 방문했던 보람이 느껴졌습니다.
조업하러 바닷가로 향하는 어선의 모습. 어부는 눈부신 햇빛을 보며 고기가 많이 잡히기를 바랄 것입니다.
그동안 저의 마음속에서 갈망했던 풍경입니다. 푸른빛이 넘실거리는 바다, 맑은 하늘, 구름의 생생한 모양, 따사로운 햇쌀이 공존했습니다. 바다를 보며 마음속 안정을 되찾고, 하늘과 구름을 보며 꿈을 키우고, 바다를 아름답게 비추는 햇쌀을 보며 저의 찬란한 미래를 바랬습니다. 저녁에 집으로 돌아오는 일정이라 아쉽게 노을을 보지 못했지만, 이 정도로 충분히 만족합니다. 다시 되돌아갈때는 양팔을 벌리며 좋아했습니다. 머릿속에서 '정말 좋은 곳에 왔다'는 생각이 스쳤습니다. 1박2일 여행이었다면 아마도 이곳에 계속 있었겠죠.
제가 궁평항을 떠날때는 밀물이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바닷물이 들어찰때의 궁평항을 보지 못했지만,이번 추석때 또 다른 곳을 여행할 예정이라 실망스럽지 않았습니다. 추석 여행은 지하철과 가까운 장소로 갈까 생각중입니다. 그 곳은 궁평항처럼 아름다운 특색이 있는 곳이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