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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2005년 박지성, 그리고 2011년 박주영

 

저는 2005년 봄에 군 입대를 했습니다. 박지성-이영표가 네덜란드 PSV 에인트호벤 소속으로서 UEFA 챔피언스리그 4강 AC밀란전을 앞두었던 시점에 훈련소로 떠났습니다. 박지성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하 맨유)로 이적했던 소식은 입대 이후 두달 만이었던 자대 전입 첫 날에 들었습니다. 어느 간부가 "박지성이 맨유간거 알고 있냐?"고 묻더니, 저는 놀라면서 "몰랐습니다"라고 답했습니다. 알고 봤더니 바깥 세상에서는 박지성 맨유 이적을 환영하는 분위기가 지속적으로 이어졌더군요. 박지성이 한국인 최초의 프리미어리거가 되었던 순간은 영원히 잊지 못할 겁니다.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는 박지성 맨유 입단 이전에도 축구팬들이 손꼽아 좋아했던 유럽 리그 입니다. 빠른 템포와 쉴새없는 공수 전환, 때로는 힘과 힘이 부딪히며 파워풀한 경기를 펼치는 역동적인 경기 스타일이 축구팬들의 시선을 끌었습니다. 그 중에서 맨유와 아스널은 프리미어리그를 좋아했던 축구팬들에게 인기가 높았던 팀들입니다. 그 시절에는 맨유와 아스널이 프리미어리그 우승을 다투는 '양대산맥'을 형성했고, 알렉스 퍼거슨 맨유 감독과 아르센 벵거 아스널 감독은 서로 독설을 주고 받으며 상대를 자극했습니다. 데이비드 베컴, 라이언 긱스, 데니스 베르캄프, 티에리 앙리 등에 이르기까지 두 팀의 슈퍼스타들은 축구팬들의 주요 관심 대상 이었습니다.

[사진=박지성-박주영 (C) 맨유-아스널 공식 홈페이지(manutd.com / arsenal.com)]

하지만 아쉬운 점이 있었습니다. 맨유와 아스널에는 한국인 선수가 없었습니다. 2001년 여름에는 이나모토 준이치라는 일본인 선수가 아스널에 입단했지만 '마케팅용'이라는 비아냥을 받으며 북런던에서 철저히 실패했습니다. 그때는 한국인 선수의 유럽 진출이 손에 꼽을 정도로 드물었고, 국내의 슈퍼스타들은 일본 J리그 진출이 활발했습니다. 맨유와 아스널을 비롯해서 프리미어리그에 진출했던 한국인 선수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안정환과 이천수는 2000년대 초반에 각각 이탈리아 페루자, 스페인 레알 소시아다드-누만시아에서 활약했지만 뚜렷한 성공을 거두지 못했죠. 제가 군대에 입대했던 시점에는 유럽 빅 리그에서 두각을 떨쳤던 한국인 선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2011년 현재. 박주영이 아스널로 이적하면서 한국인 9번째 프리미어리거가 됐습니다. 2011/12시즌 프리미어리그 무대를 누빌 한국인 선수는 총 4명입니다. 박지성-박주영-이청용-지동원이 그들입니다. 한국 축구의 대들보, 미래를 책임질 신성들이 프리미어리그에서 공존 중입니다. 아쉬운 것은 이청용 부상입니다. 그가 부상 당하지 않았다면 올 시즌 프리미어리그는 '코리안 돌풍'이 후끈 달아 올랐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듭니다. '박주영vs이청용' FC서울 출신 맞대결을 비롯해서 아마도 더 많은 이야깃거리가 언론에 등장했겠죠. 내년 1월 복귀를 목표로 하기 때문에 볼턴의 시즌 막판 저력을 기대할 수 있습니다.

격세지감이라는 표현이 떠오릅니다. 불과 몇년 전에는 한국 축구와 프리미어리그는 아무런 인연이 없었지만 이제는 국민들이 잉글랜드에서 활약하는 한국인 선수의 활약상을 지켜보며 일상을 보내고 있습니다. 유럽 축구를 좋아하는 축구팬들에게 주말하면 프리미어리그 입니다. 과거에는 주로 축구 매니아들이 유럽 축구를 선호했지만 이제는 일반인들도 TV를 통해 즐기는 대상이 됐습니다. 그 분들은 한국인 선수 활약상이나 빅 매치를 보고 싶어서 밤잠을 설치며, 새벽에 일찍 일어나 축구를 보셨을 겁니다. 프리미어리그가 우리의 삶에 영향을 끼치게 됐습니다. 그 열기는 '박주영 아스널 이적' 영향을 받으며 앞으로 계속 뜨거워질 겁니다.

한국 축구와 프리미어리그의 관계는 더 이상 멀게 느껴지지 않습니다. 박지성-이영표가 한국인 1~2호 프리미어리거로서 특유의 성실한 활약으로 소속팀에서 인정 받으면서 다른 팀들이 새로운 한국인 선수들을 영입했습니다. 2009/10시즌에는 이청용이 볼턴의 에이스로 자리잡으면서 한국 축구의 위상을 국제적으로 드높였죠. 올해 여름 이적시장에서는 지동원-박주영이 잉글랜드 무대로 둥지를 틀었고 언젠가는 또 다른 한국인 프리미어리그가 탄생할 것으로 예상합니다. 셀틱의 기성용은 현지 언론에서 리버풀-토트넘-애스턴 빌라-블랙번 이적설로 시선을 사로잡았으며 FC서울 시절에는 맨유의 영입 대상자 중에 한 명 이었습니다. 훗날 박지성이 맨유에서 은퇴해도 한국인 선수의 잉글랜드 진출은 계속 될 것 같습니다.

특히 박주영의 아스널 이적은 한국 축구 역사에서 매우 상징적입니다. '맨유 박지성vs아스널 박주영'이라는 새로운 구도가 형성 됐습니다. 몇년 전까지는 이루어질 것 같지 않은 시나리오 였습니다. 잉글랜드를 대표하는 두 클럽에 한국인 선수들이 존재한다는 의미에 국한되지 않는, '양박'이라는 이름으로 한국 축구 대표팀을 짊어졌던 두 아이콘이 이제는 맨유와 아스널의 공격을 책임지는 막중한 임무를 맡게 됐습니다. 박지성은 얼마전 아스널전에서 시즌 1호골을 터뜨리며 맨유 공격에 없어선 안 될 선수임을 각인시켰고, 박주영은 벵거 감독 전화에 의해 아스널 진출을 권유 받았을 정도로 팀에서 '즉시 전력감'으로 활용하겠다는 의지를 나타냈습니다.

박지성은 2005년 맨유 이적을 통해서 한국인 선수가 프리미어리그에 정착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줬습니다. 그리고 박주영은 2011년 아스널 이적을 계기로 한국인 선수가 프리미어리그에서 인정받고 있음을 세계적으로 알렸습니다. 지구촌 축구팬들은 잉글랜드 빅 클럽에서 뛰는 두 명의 PARK을 주목하면서 한국 축구를 향한 긍정적인 시선을 느낄 것입니다. 만약 박주영이 아스널에서 최상의 활약을 펼치며 팀 전력에 필요한 선수가 된다면 한국 축구의 인지도는 날이 갈수록 높아질 겁니다.

맨유와 아스널이 에미레이츠 스타디움에서 대결하는 내년 1월 22일 오전 0시(이하 한국시간) 설날 연휴에는 '양박 더비'가 펼쳐질 예정입니다. 지금까지 한국인 선수끼리 진검승부를 펼쳤던 코리안 더비를 뛰어넘는 맞대결이 2012년 설날 연휴를 즐겁게 할 것으로 기대됩니다. 명절하면 과거에는 성룡, 오늘날에는 걸그룹이 인기를 끌었지만 2012년 설날 만큼은 박지성과 박주영, 그리고 프리미어리그에 쏠리는 국민적인 관심이 매우 높을 겁니다. 지난 30일 저녁에 아스널 공식 홈페이지에서 박주영 영입을 공식 발표했던 순간, 저는 그 소식을 트위터에 전하며 축구팬들과 함께 기쁨을 느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