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일 토요일 아침 이었습니다. 저는 '현대자동차 2011 KFA 유소년 클럽리그'를 현장에서 관전하기 위해 주말 아침부터 분주했습니다. 평소 같았으면 주말 오전에는 집에서 일상을 보내거나 취침하는 것이 보통인데 이날 만큼은 달랐죠. 토요일 오전에 축구를 보러가는 것은 매우 드문 일이었습니다. 축구 경기는 오후 또는 저녁에 진행되는 것이 다반사죠. 하지만 유소년 축구 스케줄을 맞춰야하기 때문에 평소보다 바쁘게 움직일 수 밖에 없었습니다. 서울 노원구에 소재한 용원 초등학교가 행선지 였습니다. 학교 주변의 녹색 가로수가 풍성했던 모습이 인상적 이었습니다.
용원 초등학교에서는 오전 11시 30분에 경기가 시작됐습니다. 이 날은 J-SOCCER-용원FC, 위더스FC-FC 썸즈-업, 한마음 FC-우이새싹FC가 대결했습니다. 6개 클럽은 유소년 클럽리그 서울 북동리그에 속했습니다. 토요일에 정기적으로 리그전을 치릅니다. 개인적으로는 토요일이기 때문에 초등학생들이 축구하는 또래 친구들을 응원하는 풍경을 기대했습니다. 그런데 초등학교가 놀토(수업 없는 토요일)라서 그런지 몰라도 일반 학생들이 안보이더군요. 교육 현장에서 주5일제가 시행되고 있음을 실감했습니다. 제가 초중고등학교 다닐때 주5일제는 꿈 같은 이야기였는데 말입니다.
그런데 이 날은 초여름 치고는 날씨가 더웠습니다. 낮 기온이 28.7도 까지 올라갔죠. 일부 남부 지방 기온이 30도를 넘었을 정도로 무더위가 엄습하기 시작했습니다. 적어도 9월 중순까지는 더운 날씨가 계속 됩니다. 유소년 축구 선수들은 무더운 날씨 속에서 축구를 해야 합니다. 특히 낮에 경기가 진행되는 곳은 현장에서 세심한 관리가 필요합니다. 경기전에 그늘에서 충분한 휴식을 취하거나, 물과 얼음을 충분히 준비하거나, 지친 선수를 무리하게 기용하는 일은 없어야겠죠.
다행히 용원 초등학교에서는 등나무가 있고, 스탠드 대부분이 지붕으로 가려졌고, 인조잔디 운동장 3면이 나무로 뒤덮였습니다. 그늘이 충분히 있었죠. 그럼에도 경기를 뛰는 어린이들은 지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뜨거운 햇빛 아래에서 땀을 흘리기 때문입니다. J-SOCCER, 용원FC 경기에서는 전반전 종료 후 몸을 숙이는 어린이가 눈에 띄었습니다.
축구 경기를 관전하는 저의 입장에서도 더위가 반갑지 않았습니다. 등나무 및 스탠드가 좁았죠. 유소년 선수들 및 학부모 분들이 먼저 자리를 잡고 있었습니다. 더욱이 등나무는 운동장과 시야가 멀었죠. 그래서 그라운드 중앙 끝쪽에 있는 그늘로 이동했습니다. 제가 그늘에 있을때는 사람들이 없어서 분위기가 매우 조용했습니다. 육상 트랙에서 개인기 연습을 했던 어린이 1명만 있었을 뿐입니다.
그런데 날씨가 점점 더워지면서 두번째 경기를 대기했던 FC 썸즈-업 선수들이 그늘쪽으로 이동하여 몸을 풀었습니다. 땡볕에서 훈련하는 것 보다 좋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FC 썸즈-업 같은 경우에는 학부모님들이 아이스박스를 들고 와서 어린이들을 챙기는 열성적인 모습에 감명을 받았습니다.
후반전을 앞두고 심판과 이야기를 나누는 용원FC 어린이의 모습. 사진에서는 두 사람이 서있는 모습이지만 실제로는 마치 재미있는 이야기를 나눈 것 처럼 활짝 웃더군요. 다른 유소년 클럽리그 현장에서도 비슷한 장면들을 봤습니다. 심판과 어린이가 즐겁게 대화하거나 장난치는 모습들 말입니다. 어느 대기심은 자신에게 장난쳤던 어린이에게 웃는 모습으로 레드카드를 보여주는 익살스런 제스쳐를 취하기도 했습니다. 성인 축구에서는 상상이 안되는 장면이기 때문에 일반 축구팬인 저의 입장에서 재미있게 느껴졌습니다. 유소년 클럽리그 특유의 훈훈함이 축구를 즐겁게 하는 것 같습니다.
최근에 유소년 축구 경기들을 봤지만, 성인 축구처럼 전술을 논하는 것은 어색함이 있습니다. 성인 축구 위주의 관점에서 유소년 축구 경기를 바라보면 자칫 취약점을 건드리기 쉽죠. 유소년 축구 선수들은 성인 선수로 성장하기 위한 첫번째 과정에 있을 뿐입니다. 경기를 바라보는 사람 입장에서는 유소년 축구만의 특성을 익혀야 합니다. 이 선수들은 경기를 하면서 축구를 배우고 있기 때문이죠.
결코 승리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이기고 있을때 또는 지고 있을때를 대처하는 방법을 스스로 겪으면서 축구를 즐기는 것, 기초 기술을 연마하는 것이 유소년 축구에서 중요합니다. 언젠가는 이 부분에 대해서 유소년 축구 지도자에게 질문하고 싶네요. 기회가 있을지 모르겠지만요.
후반전에는 용원FC가 골을 계속 몰아쳤습니다. 상대팀과 함께 극강의 공격적인 경기를 펼치니까 난타전으로 진행되더군요. 상대 선수가 소유한 볼을 빼앗으면 즉시 반격을 노리는 양상 이었습니다. 특히 용원FC 공격 옵션들의 마무리 능력이 좋았습니다. 슈팅 날리면 바로 골이더군요. 후반 중반에는 3개 연속 슈팅을 날렸는데 모두 골이 됐습니다. 최근에 슈팅 연습을 많이 했거나 능률이 올랐기 때문인지 선수들의 골 감각이 특출났습니다. 상대팀과의 스코어를 계속 벌렸습니다.
용원FC는 후반 중반에 4명의 선수를 교체 투입하는 여유를 부렸습니다. 더운 날씨 속에서 주전 선수들의 체력을 안배하면서 후보 선수들에게 출전 기회를 부여하며 경험을 쌓겠다는 뜻이죠. 교체 선수가 3명까지 제한된 대표팀 메이져 대회 및 K리그에서 볼 수 없는 풍경이라 신선하게 느껴졌습니다. 지난해 6월 초 한국과 A매치를 치렀던 스페인이 후반 13분 4명의 선수를 교체했던 순간이 떠올랐습니다. 그때는 남아공 월드컵을 앞둔 평가전이었기에 가능했죠.
[동영상] J-SOCCER는 대량 실점 속에서도 끝까지 공격 의지를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골을 내주는 순간이 있더라도 한 골을 넣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넣었습니다. 어린 선수들이라 패배에 무기력함을 느낄 것 같은데 실상은 그렇지 않더군요. 어린이들도 승리욕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됐습니다. 경기는 졌지만 팀의 전체적인 마인드가 좋았던 것 같습니다.
용원 초등학교를 비롯한 유소년 축구 현장에서는 두 부류의 윙어를 볼 수 있었습니다. 신체 움직임이 날렵하거나 체격이 작은 선수들 말입니다. 선수 하드웨어의 비중이 크더군요. 키가 크거나 덩치 좋은 선수들이 후방쪽에 머무릅니다. J-SOCCER 27번 조졍현 선수는 몇 학년인지 모르겠지만 체격이 작은 선수는 아닙니다. 그런데 상대 수비를 따돌리는 드리블과 순발력이 발달 되었더군요. 프리킥까지 담당하더군요. 팀 패배 속에서도 인상적인 경기를 펼쳤습니다.
두번째 경기는 위너스FC(하얀색 유니폼) FC 썸즈-업(노란색 유니폼)의 대결 이었습니다. 경기 전에 심판 및 상대팀 선수들과 악수를 했습니다. 엄연히 공식 경기였기 때문에 선수 입장부터 격식을 갖췄습니다.
그런데 눈에 띄는 선수가 한 명 있었습니다. FC 썸즈-업에서 공격수를 맡은 9번이 김도훈 선수였습니다. 노란색이 유니폼 주색인 K리그 성남 일화 김도훈 코치 현역 시절을 연상케 했습니다. 김도훈 코치의 성남 현역 선수 시절 등번호가 9번이었죠. FC 썸즈-업 유니폼도 성남과 똑같은 노란색이죠. 그런데 김도훈 어린이는 김도훈 코치의 이름을 알고 있을까요?
위더스FC와 FC 썸즈-업의 대결은 팽팽하게 진행됐습니다. 전반전은 위더스FC가 1-0으로 앞섰지만, 두 팀 모두 수비가 안정된 모습 이었습니다. 공격 옵션들이 상대 박스쪽으로 침투하는데 어려움을 겪었을 정도로 말입니다. 수비 조직의 틀이 짜임새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두 팀의 수비 숫자가 달랐습니다. 1번 사진에서는 FC 썸즈-업이 4백, 2번 사진에서는 위더스FC가 3백을 활용했습니다. FC 썸즈-업이 풀백의 수비 가담을 늘리면서 후방이 안정되기를 원했다면, 위더스FC는 수비수들의 활동 폭을 늘리며 미드필더 숫자를 늘렸습니다. 3번 사진은 위더스 FC의 투톱입니다. 전반전에는 상대 수비에게 막혔습니다. 4번 선수는 왼쪽 수비수를 봤던 위더스 FC 28번 선수입니다. 또래 선수들 중에서 육중한 체격을 자랑하더군요. 웬만한 몸싸움을 잘 이겨냈습니다. 수비시의 포지셔닝이 매끄러웠죠.
전반전에는 위더스 FC의 골키퍼가 잘하더군요. 실점 위기 상황을 잘 막았습니다. 상대 선수가 슈팅을 날릴때 전혀 흔들림 없는 활약을 펼쳤죠. 골키퍼가 잘 버텨주니까 필드 플레이어 10명이 힘을 내더군요. 역시 골키퍼의 중요성을 실감합니다.
골을 넣은 선수들과 실점한 선수들의 차이. 위더스 FC가 전반전에 1골을 넣으니까 동료 선수들과 얼싸안으며 좋아하더군요. 상대팀 선수는 고개를 떨굽니다. 승부의 세계는 어쩔 수 없나 봅니다. 하지만 축구는 전반전과 후반전으로 나뉘어집니다. 0-1로 밀렸던 FC 썸즈-업의 반격이 성공했습니다.
FC 썸즈-업은 후반전이 되면서 공격의 탄력이 붙었습니다. 중앙쪽을 활용한 공격이 활발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특히 위더스 수비수들의 집중력이 떨어지니까 FC 썸즈-업의 골 생산이 순탄하게 진행되더군요. FC 썸즈-업이 후반전에 3골을 넣으면서 3-1로 승리했습니다. FC 썸즈-업 선수들은 무더위 속에서 역전승 분위기에 잔뜩 취했을 것이며 위더스는 후반전 뒷심 부족이 패인이었죠. 분명한 것은, 이것도 축구를 배워가는 과정입니다. 역전하는 노하우 및 방심의 위험함 말입니다. 경기에서 졌다고 끝나는 것은 아닙니다. 다음 리그 경기가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죠. 리그제의 장점인 것 같습니다. 승부에 연연할 필요가 없죠.
용원 초등학교 유소년 경기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 선수들은 경기 종료 후 상대팀 벤치로 찾아가 코칭스태프와 함께 인사합니다. 다른 유소년 리그에서는 부모님들에게 인사하지만 이 곳은 상대팀 벤치였습니다. K리그에서는 홈팀 선수들이 원정 서포터석에 인사하는 것이 관례지만 상대팀 벤치쪽으로 향하지 않습니다. 용원 초등학교 유소년들의 경우에는 상대팀을 존중하며 동업자 정신을 배우겠다는 뜻이죠. 아름다운 모습 이었습니다.
세번째 경기는 한마음 FC-우이새싹 FC의 대결 이었습니다. 노란색 유니폼을 입은 한마음 FC 선수들이 두번째 경기를 할때 그늘에서 몸을 풀었습니다. 1번은 스트레칭 장면, 2번은 러닝 패스 연습 장면, 3번은 양팀 선수들이 입장을 대기하는 장면, 4번은 경기를 끝낸 FC 썸즈-업 선수들이 아이스박스에 든 물병을 꺼내들며 수분을 섭취하는 장면입니다. 날씨가 덥다 보니까 목 마른 선수들이 많더군요.
한마음 FC와 우이새싹 FC 경기에서는 유독 눈에 띄는 선수들이 있었습니다. 사진 상단에서 화살표를 가리키는 우이새싹 FC의 '키 작은' 28번 선수, 하단에서 화살표에 위치한 한마음 FC '키 큰' 5번 선수 였습니다. 우이새싹 FC 28번 선수는 오른쪽 윙어로 출전하여 '체격 좋은' 또래들과 몸으로 부딪히는 장면들이 많았습니다. 초등학생 치고는 나이가 어린 것 같지만 실전 경험을 쌓기 시작하더군요. 한마음 FC 5번 선수는 전반전에 수비형 미드필더, 후반전에 센터백으로 출전하여 수비쪽에서 안정된 활약을 펼쳤습니다. 체격이 크니까 상대 공격을 잘 막아내더군요. 다른 선수들보다 축구 지능이 발달 되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두 팀의 경기에서는 몸을 다치는 선수들이 다른 경기보다 많았던 안타까움을 자아냈습니다. 상대 선수와 부딪혀서 다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죠. 2~3명은 다리쪽을 만지면서 그라운드에 쓰러졌지만 다행히 큰 부상이 아니었기 때문에 경기를 정상적으로 뛸 수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부상으로 경기가 중단된 경우가 종종 벌어졌습니다. 무더위속에서 쉽지 않은 경기가 진행됐죠.
무더운 날씨속에서 하프타임은 꿀맛같은 시간입니다. 경기를 뛰는 선수 및 심판은 물을 마시면서 휴식을 취하고, 그늘에서 더위를 식힐 수 있습니다. 경기를 관전하는 사람 입장에서도 물을 습관적으로 먹게 됩니다. 이제 여름이 왔다는 것을 실감합니다.
저는 네이버 축구 블로거 '루이'님과 함께 유소년 클럽리그를 봤습니다. 두 명의 축구 블로거 사이에서 '노란색 유니폼 5번 선수'에 대한 공통된 의견이 나오더군요. K리그 제주 유나이티드의 장신 미드필더 박현범을 보는 것 같다는 느낌 말입니다. 박현범은 제주에서 5번을 맡고 있는 194cm의 수비형 미드필더 입니다. 5번 선수에게 눈길이 모아지더군요.
세트 피스 상황에서는 장신 선수의 위력이 큽니다. 성인 축구에서도 마찬가지 입니다.
두번째 경기에서 역전승을 달성했던 FC 썸즈-업 선수들은 그라운드 밖 놀이기구에서 달콤한 휴식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경기에서 이겼기 때문인지 놀이기구를 통해서 승리의 기쁨을 즐기는 것 같더군요.
유소년 축구도 알고보면 몸싸움이 치열합니다. 상대팀 선수를 막아내는, 그것을 피하는 요령을 배우면서 성장하는 것이죠. 하지만...
경기 종료 직전 이었습니다. 두 팀 어린이 선수들이 공중볼 경합을 펼치다가 서로 머리를 부딪히면서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볼을 따내려는 마음이 앞서다보니까 상대 선수 머리 방향을 순식간에 판단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성인 축구에서도 이러한 장면을 종종 볼 수 있지만 아무래도 어린이 선수들이라 충격이 큽니다. 경기를 보는 저로서도 충격을 받았죠. 다행히 선수들은 이상이 없었지만 머리를 부딪히는 장면이 너무 아찔해서 놀랬습니다. 선수들의 열의는 넘쳤지만 역시 부상을 주의해야겠죠. 특히 무더운 날씨에 말입니다. 한마음 FC와 우이새싹 FC는 1-1로 비겼습니다.
경기 종료 후 용원 초등학교 인조잔디 운동장 모습을 찍었습니다. 불과 몇년 전까지 녹색 잔디를 기대하기 힘들었던 학교 운동장이 이제는 달라졌습니다. 어린이들이 잔디에서 축구를 익히면서 인프라가 보급되고, 축구 꿈나무들이 기본기를 충분히 습득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얻었습니다. 그리고 현대자동차 2011 KFA 유소년 클럽리그라는 한국의 축구 저변을 넓히기 위한 대회가 진행될 수 있었습니다. 한국 축구가 긍정적으로 발전하고 있음을 현장에서 실감합니다.
어느덧 시간은 2시 25분을 가리켰습니다. 저는 루이님과 헤어지면서 서울 월드컵 경기장으로 발걸음을 돌렸습니다. 저녁 7시에 진행되는 FC서울-포항 스틸러스의 경기를 바라보기 위해서죠. 하루에 총 4경기를 관전한 셈입니다. 축구 매니아로서 하루 스케줄이 '축구' 하나로 가득했던 순간 이었습니다. 서울 월드컵 경기장에 가기 전까지는 근처 PC방에서 유소년 클럽리그 사진작업을 했었죠. 역시 주말이라서 가능했던 일입니다. 효리사랑의 유소년 클럽리그 현장 이야기는 계속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