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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지동원 EPL 진출, 무조건 찬성하지 않는다

 

'한국 대표팀 간판 공격수' 지동원(20, 전남)이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 선덜랜드 이적설로 주목을 끌고 있습니다. 국내 언론이 지난 1일 이적설을 제기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지동원 진로를 관심 깊게 바라보고 있죠. 지난 4월말 뉴캐슬에 이은 또 하나의 프리미어리그 이적설입니다.

만약 지동원이 프리미어리그로 진출할 경우, 최소 10년 동안 한국 축구의 미래를 책임질 선수의 '축구 종가' 도전은 상징성이 큽니다. 2년 전 볼턴 이적 및 팀의 에이스로 발돋움했던 이청용 성공 사례는 K리그 영건이 빅 리그에서 통할 수 있음을 증명했습니다. 지동원이라면 프리미어리그에 충분히 도전할 역량과 잠재력이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지동원의 이적을 바랄지 모릅니다. 하지만 지동원의 선덜랜드 이적은 무조건적인 찬성이 위험하다는 생각입니다.

[사진=지동원 영입설을 언급한 선덜랜드 공식 홈페이지 메인. 하지만 선덜랜드의 공식적인 언급은 아닙니다. 지동원을 중심으로 다루었던 이적설 모음에 가깝습니다. (C) safc.com]

지동원 선덜랜드 이적, 결과보다 과정이 중요

지동원의 선덜랜드 이적설은 선수 본인 및 전남 구단, 정해성 전남 감독이 몰랐음을 주목해야 합니다. 만약 지동원과 전남이 이전부터 선덜랜드와 접촉이 있었다면 이적설을 인정했을지 모르지만 실제로는 구체적으로 진행되지 않았음을 유추할 수 있습니다. 선덜랜드 이적설이 떴다고 해서 이적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현재 선덜랜드 공식 홈페이지에는 지동원 영입설과 관련된 소식이 메인에 있지만, 실제로는 선덜랜드 이적설로 주목받는 선수들을 리스트 형식으로 나열하면서 언론 보도를 그대로 전했을 뿐입니다. 지금까지의 상황을 종합하면, 지동원은 지금 당장 유럽에 진출할 수 있는 여건이 아닙니다.

물론 지동원은 유럽 진출을 희망하고 있습니다. 지난 1일 저녁 올림픽대표팀 평가전 오만전이 끝난 뒤 FC 바르셀로나에서 뛰는 것이 최종 꿈이라고 언급했죠. 하지만 지동원이 유럽 진출을 원한다고해서 즉시 팀을 떠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지동원은 2013년까지 전남과 계약된 선수입니다. 프로 선수는 구단과의 계약 기간을 지켜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지난 2008년 여름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의 레알 마드리드 이적을 막았던 전례를 봐도 말입니다. 호날두 이적은 이듬해 여름에 성사됐지만, 레알 마드리드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 8000만 파운드(약 1411억원)라는 역대 세계 최고의 이적료를 물어줬습니다.

선덜랜드가 지동원을 영입할 의사가 있다면 전남에게 이적료를 지불해야 합니다. 국내 언론들은 지동원 예상 이적료를 100만 달러(약 11억원) 연봉에서 상회하는 수준이라고 언급했습니다. 하지만 100만 달러는 2009년 여름 FC서울에서 볼턴으로 이적했던 이청용(200만 파운드, 약 35억원)보다 절반도 안되는 수치입니다. 이청용 이적료 200만 파운드도 결코 많은 돈은 아니었습니다. 만약 선덜랜드가 전남에게 100만 달러를 웃도는 이적료를 제시해도 지동원을 데려갈 수 있는 것은 아니죠. 전남이 이적료 액수에 만족하지 않으면 지동원 이적은 성사될 수 없습니다.

분명한 것은, 전남은 대승적 차원에서 지동원을 선덜랜드에 보내야 할 의무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물론 한국 축구를 위해서 지동원을 외국으로 보내며 전력 약화를 감수하는 희생을 택할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전남은 선덜랜드와 똑같은 프로 클럽입니다. 아무리 선덜랜드가 빅 리그에 속한 클럽이라도 전남이 힘의 논리에 순응할 필요는 없습니다. 현실적으로 전남과 선덜랜드는 지구 반대편 사이에서 다른 리그에 속한 클럽일 뿐입니다. 그리고 전남을 비롯한 K리그 클럽들은 스타들을 외국으로 보내기 위해서 선수들을 키우지 않았습니다. 외국 클럽의 선수 영입을 위한 자선단체가 아닙니다.

선덜랜드가 지동원 영입을 '진심으로' 희망하는지 여부는 이적료를 봐도 알 수 있습니다. 이적료가 많을 수록 팀 전력에 즉시 가용할 확률이 높습니다. 하지만 언론에서 언급되는 100만 달러를 상회하는 수준의 이적료는 전남이 만족할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지동원이 20세 유망주임을 감안해도 액수가 적습니다. 선덜랜드가 지동원을 주전 공격수로 기용할 생각이 있는지 의문을 가질 수 밖에 없습니다. 만약 지동원이 팀 내 입지를 보장받지 않은 상태에서 이적이 성사되었다면(전남의 동의하에) 유럽에서 힘겨운 생존 경쟁을 해야 합니다. 벤치를 전전할수록 실전 감각 저하는 분명하며, 자칫 한국 대표팀 경기력에 영향을 끼칠 수 있습니다. 지동원 같은 어린 선수는 팀의 네임벨류 보다는 꾸준한 선발 출전 기회가 더 중요합니다.

다른 사례를 언급하면, K리그에서 프리미어리그로 이적했던 선수들 중에서 이동국-김두현-조원희는 철저하게 실패한 케이스 입니다. 이동국-조원희는 자유계약, 김두현은 웨스트 브로미치가 성남(당시 김두현 원 소속팀)에게 55만 파운드(약 9억 6900만원)의 이적료를 지불했습니다. 이동국은 적응 실패, 김두현은 부상 후유증을 감안할 필요가 있겠지만 애초부터 지속적인 선발 출전을 보장받았던 것은 아닙니다. 반면 일본의 카가와 신지는 지난해 여름 세레소 오사카에서 독일의 도르트문트로 떠났을때의 이적료가 35만 유로(약 5억 4000만원) 였습니다. 하지만 세레소 오사카가 유럽으로 보낼 의지가 있었고, 카가와 본인의 노력 및 도르트문트의 선수 육성 의지가 서로 맞물리며 '카가와 효과'가 결실을 맺었습니다.

하지만 지동원은 카가와와는 다른 특수성이 있습니다. 전남이 키워낸 유스 선수입니다. 지동원이 거쳤던 광양제철고 축구부는 전남의 유스팀입니다. 전남이 예전부터 공들여서 키웠던 선수였고, 지금은 팀의 간판 선수이자 아시안컵을 빛냈던 주역으로서 다른 클럽에 저렴한 이적료로 넘길 이유가 없습니다. 또한 지동원은 K리그 유스팀 선수 육성의 성공 사례로 꼽힙니다. 전남이 지동원을 다른 팀에 쉽게 내줄 상황이 아닙니다. 선덜랜드를 비롯한 다른 팀들이 지동원을 영입하고 싶다면 전남이 만족할 수 있는 좋은 조건을 제시해야 합니다. 향후 K리그 영건들이 유럽에 좋은 조건으로 이적하기 위해서, 유소년 시스템의 가치가 향상되기 위해서 지동원 이적료는 정당한 값어치가 있어야 합니다.

지동원의 선덜랜드 이적설이 반가운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이적이 성사되더라도 결과보다는 과정이 더 중요합니다. 선덜랜드 영입 의지보다는 전남의 입장이 더 우선 되어야 합니다. 물론 전남이 지동원 이적을 맹목적으로 반대하지는 않을 겁니다. 지동원 유럽 진출은 전남의 선수 육성이 성공했음을 의미하는 순간입니다. 이적 조건이 만족스럽다는 전제에서 말입니다. 지동원-전남-정해성 감독이 선덜랜드 이적설을 몰랐던 현 시점에서는, 지동원 프리미어리그 진출을 무조건 찬성하고 싶지 않습니다. 지금은 더 지켜보고 싶을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