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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집념의 첼시, 소극적인 맨시티를 제압하다

 

'블루스' 첼시에게 값진 승리였습니다. 상대팀 맨체스터 시티(이하 맨시티)의 견고한 밀집 수비를 뚫는데 힘겨웠지만, 그 고비에서 주저앉지 않고 승점 3점을 획득하기 위해 경기를 포기하지 않았던 흐름이 좋은 결과로 이어졌죠. 두 팀의 승패를 가른 것은 경기에서 반드시 이기겠다는 집념의 차이가 아닐까 싶습니다.

첼시는 21일 오전 1시(이하 한국시간) 스탬포드 브릿지에서 진행된 2010/11시즌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 30라운드 맨시티전에서 2-0으로 승리했습니다. 후반 33분 다비드 루이스가 디디에 드록바의 왼쪽 프리킥을 헤딩 슈팅으로 결승골을 넣었습니다. 후반 46분에는 하미레스가 박스 바깥 중앙에서 마이클 에시엔의 스루패스를 받아 문전으로 쇄도한 뒤, 레스콧-콜라로프를 제치고 오른발 슈팅을 날리며 첼시의 승리를 굳혔습니다. 그래서 첼시는 맨시티를 4위로 밀어내고 리그 3위(16승6무7패, 승점 54)로 도약했으며, 최근 맨시티전 3연패 수렁에서 벗어났습니다.

루이스-하미레스, 첼시 승리 이끈 브라질리언

첼시는 맨시티전에서 4-4-2로 나섰습니다. 체흐가 골키퍼, 애슐리 콜-테리-루이스-이바노비치가 수비수, 말루다-램퍼드-에시엔-하미레스가 미드필더, 칼루-토레스가 공격수로 출전했습니다. 토레스가 2선으로 내려오면서 패스를 내주는 형태의 공격을 취했다면 칼루는 최전방에서 횡방향으로 움직임을 벌리는데 주력했습니다. 기존의 첼시 공격 색깔과 달랐죠. 그리고 맨시티는 4-2-3-1을 활용했습니다. 하트가 골키퍼, 콜라로프-레스콧-콤파니-리차즈가 수비수, 배리-데 용이 더블 볼란치, 밀너-야야 투레-실바가 2선 미드필더, 제코가 공격수를 맡았습니다. '첼시 킬러' 테베스는 정확한 사유가 전해지지 않았지만(체력 저하 또는 부상) 결장했습니다. 첼시에게 운으로 작용했죠.

사실, 첼시의 공격력은 시원스럽지 못했습니다. 맨시티의 밀집 수비를 깨는데 많은 시간을 소모했기 때문입니다. 그동안 여러 경기를 치르면서 피로가 누적되었고, 앞으로의 중요한 일정을 고려하면 공격쪽에서 오버페이스를 범하는 것을 경계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평소의 첼시였다면 점유율을 늘리면서 전방쪽으로 뻗는 패스 루트를 확보한 뒤 적절한 지점에서 슈팅을 날렸을지 모르죠. 하지만 상대는 맨시티 였습니다. 배리-데 용으로 짜인 더블 볼란치의 터프한 수비력을 기반으로, 팀 전체가 스피드-커버링-피지컬로 상대 공격 옵션을 밀어 붙이면서 압박의 강도를 높이는 안정 지향적인 팀 입니다. 아무리 첼시라도 견고한 수비 조직력을 자랑하는 맨시티를 농락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첼시가 그동안 맨시티에게 3연패를 허용했던 원인은 상대팀의 선 수비-후 역습에 말려들었기 때문입니다. 선수들이 맨시티 진영으로 넘어오면서 줄기차게 공격을 펼치다가 볼이 차단되면 상대팀에게 반격의 빌미를 제공했습니다. 그래서 첼시는 이번 맨시티전에서 전략을 바꿨습니다. 전반 20분 파울 숫자에서 7-0(개)로 앞섰죠. 맨시티 역습을 파울로 끊으며 상대 공격 템포를 끊겠다는 의도였습니다. 그때까지는 맨시티가 야야 투레-실바의 스루패스를 바탕으로 첼시 수비 배후 공간을 노리는 볼 배급이 즐비했죠. 이에 첼시는 램퍼드-에시엔을 포백 앞쪽으로 내리면서 존 디펜스를 유지했습니다. 맨시티 역습 차단을 위해 수적 우세로 맞섰으며 그 결과는 기선 제압 성공으로 이어졌습니다.

[사진=맨시티전에서 결승골을 터뜨린 다비드 루이스 (C) 첼시 공식 홈페이지 프로필 사진(chelseafc.com)]

첼시의 공격력이 맨시티 밀집 수비 앞에 답답했던 원인은 두 가지 였습니다. 첫째는 칼루-토레스 투톱의 달라진 공격 패턴이 지속적이지 못했습니다.(패턴은 앞에서 언급) 몇몇 장면에서는 상대 수비가 예측하지 못했던 공격 장면을 연출했지만 그 빈도가 띄엄띄엄했던 문제점을 남겼죠. 맨시티의 두꺼운 수비를 뚫으려면 좀 더 과감하게 움직이면서 많은 볼 터치를 기록했어야 합니다. 냉정히 말해, 칼루-토레스 투톱은 실패작입니다. 둘째는 말루다 부진입니다. 전반 초반에 활동 폭을 넓히는데 주력했지만 그때 뿐이었습니다. 하미레스가 오른쪽 측면에서 부지런히 뛰었던 것과 대조적입니다. 애슐리 콜의 왕성한 기동력으로 왼쪽에 대한 불안함을 견뎌낸 것이 첼시에게 위안이었죠.

그래서 첼시는 후반 24분 토레스-말루다를 빼고 드록바-아넬카를 교체 투입하여 4-3-3으로 전환했습니다. 그 이전까지는 공격 옵션들의 부조화로 횡패스 연결이 잦아지면서 맨시티의 수비 위주 경기에 말려들었죠. 교체 작전 이후에는 아넬카가 오른쪽 측면 뒷 공간 및 2선쪽을 흔들어주는 움직임을 취하면서 배리-콜라로프 사이의 공간을 파고들었고, 드록바는 레스콧-콤파니 사이에서 빈 틈을 찾는데 주력했죠. 후반 31분에는 말루다 대신에 지르코프가 마지막 조커로 나오면서 기동력을 강화했습니다. 이러한 첼시의 공격 변화는 선수들에게 '골을 넣어야 한다'는 마음속 인식을 자극하며 집념을 일깨웠죠. 한 가지 주목할 것은, 맨시티는 그 시간까지 교체 카드를 꺼내지 않았습니다.

특히 루이스의 공격 가담이 후반전에 눈에 띄었습니다. 엄연히 센터백이지만 경기 상황에 따라 첼시의 패스 작업에 참여하며 미드필더들의 공격 부담을 덜었습니다. 맨시티 선수들이 공격쪽에 많이 올라오지 않았던 것이 기회로 작용했죠. 그런 루이스는 후반 33분 드록바의 왼쪽 프리킥을 문전에서 헤딩으로 결승골을 넣었습니다. 그 프리킥을 마련한 선수도 루이스 였습니다. 왼쪽 측면 깊숙한 곳에서 리차즈와 볼 경합을 펼치면서 파울을 얻어냈습니다. 결승골 장면도 멋졌지만, 맨시티 진영을 파고들며 공격 기회를 연출하는 '과감함'은 첼시의 공격 무기를 다채롭게 키우는 계기가 됐습니다. 테리와 더불어 제코의 발을 묶었던 수비력까지 포함하면, 맨시티전 최고의 수훈갑이 아닐까 싶습니다.

후반 47분 추가골을 넣은 하미레스 공격력도 칭찬할 부분입니다. 박스 중앙에서 상대 수비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는 골 장면이 멋졌지만, 그동안 골과 거리감이 있었던 선수여서 더욱 반가웠던 활약상 이었습니다. 사실, 맨시티전은 윙어들의 득점력이 필요했던 경기였습니다. 드록바-아넬카-토레스-칼루 같은 공격수들의 득점력은 기복이 있으며, 램퍼드-에시엔은 무리한 공격 가담 보다는 공수 밸런스 조절에 힘을 쓰며 맨시티 역습을 허용하지 않는데 주력해야 합니다. 그래서 하미레스 같은 윙어에게 골이 요구되었죠. 하미레스는 단순히 오른쪽에서 움직이는 것에 그치지 않고 중앙까지 폭을 넓혔고, 그 흐름이 후반 47분 에시엔에게 골 기회를 연결받는 발판이 됐습니다. 하미레스도 루이스 처럼 과감한 공격력을 과시했죠. 공교롭게도 둘 다 브라질리언 입니다.

이러한 첼시의 골 집념은 맨시티와 대조됩니다. 첼시의 수비 강화에 의해 역습이 원활하게 풀리지 못했던 원인도 있지만, 가장 결정적 결함은 루이스에게 골을 내주기 전까지 '수비 모드'를 일관했습니다. 전반전 점유율 41-59(%), 후반전 점유율 31-69(%)로 점차 밀렸던 것은 첼시전을 소극적으로 운영했음을 뜻합니다. 제코-밀너의 부진으로 공격쪽에 갈피를 잡지 못한 것도 문제였지만, 루이스-하미레스처럼 공격의 끈을 놓치지 않은 존재가 없었던 것이 아쉬웠죠. 특히 후반 35분 발로텔리-존슨의 교체 투입 시점은 매우 늦었으며 맨시티의 첫 조커 활용 타이밍 이었습니다. 후반 중반에 나왔어야 할 선수들이죠. 만치니 감독이 첼시와의 후반전을 안일하게 보냈음을 짐작케 합니다.

테베스 결장 공백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맨시티는 야야 투레-실바가 공격에 관여하는 장면이 꾸준했지만, 역설적으로는 두 선수 이외에는 공격쪽에 내세울 무기가 없었죠. 만약 테베스가 출전했다면 특유의 왕성한 활동량 및 골 기회를 포착하는 본능을 앞세워 첼시 수비 뒷 공간을 뚫었을 명분이 작용했을지 모릅니다. 맨시티 4-2-3-1은 테베스의 장점을 최대화 시키는 전술이기 때문입니다. 3에 있는 선수들은 테베스 조력자들 입니다. 그런데 테베스가 결장하면서 제코가 그 공백을 메웠지만, 테베스 같은 에너지를 요구하기에는 성향이 달랐습니다. 맨시티의 밀집 축구가 지속된 것은 공격쪽에서 마땅한 돌파구를 찾지 못했음을 뜻합니다. '집념'의 첼시가 '소극적인' 맨시티를 제압한 것은 당연한 수순이라고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