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 무리뉴 감독이 이끄는 레알 마드리드(이하 레알)는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최다 우승 횟수(9회)를 자랑하는 스페인 명문 구단 입니다. 하지만 2001/02시즌 이후 챔피언스리그 우승이 없었고, 2004/05시즌 부터 지난 시즌까지 6시즌 연속 챔피언스리그 16강에서 탈락하는 '16강 징크스'에 시달렸습니다. 그리고 지난달 23일 16강 1차전까지 리옹과의 역대 전적에서 7전 4무3패에 빠지면서 '리옹 징크스'까지 빠졌죠. 하지만 이번 리옹전 완승으로 두 가지의 징크스를 극복하며 챔피언스리그 우승 가능성을 봤습니다. 그야말로 봉인이 풀렸습니다.
레알은 17일 오전 4시 45분(이하 한국시간) 산티아고 베르나베우에서 진행된 2010/11시즌 UEFA 챔피언스리그 16강 2차전 리옹전에서 3-0으로 승리했습니다. 전반 37분 마르셀루가 결승골을 넣었으며 후반 21분에는 카림 벤제마가 승리에 쐐기를 박는 추가골을 기록했습니다. 후반 31분에는 앙헬 디 마리아까지 골을 터뜨렸죠. 1~2차전 통합 스코어에서 4-1로 승리하면서 2003/04시즌 이후 7년 만에 챔피언스리그 8강에 진출했습니다. 특히 2차전은 지구촌 축구팬들에게 16강 징크스, 리옹 징크스가 더 이상 없다는 것을 각인시켰던 경기였습니다.
레알, 리옹 징크스 이겨낸 챔스 8강 진출
레알은 리옹전에서 4-2-3-1로 나섰습니다. 카시야스가 골키퍼, 마르셀루-카르발류-페페-라모스가 수비수, 케디라-알론소가 더블 볼란치, 호날두-외질-디 마리아가 2선 미드필더, 벤제마가 원톱을 맡았습니다. 호날두가 부상에서 복귀하면서 베스트 일레븐이 그대로 선발에 나섰습니다. 반면 리옹은 4-3-3을 활용했습니다. 요리스가 골키퍼, 시소코-로브렌-크리스-르베이에르가 수비수, 툴라랑이 수비형 미드필더, 칼스트롬-구르퀴프가 공격형 미드필더, 델가도-리 산드로-브리앙이 공격수로 출전했습니다. 바스토스가 부상으로 결장하면서 왼쪽 측면의 무게감이 떨어졌습니다.
두 팀의 16강 2차전은 '골을 넣어야 한다'는 집념에서 판가름 되었습니다. 레알은 전반 28분까지 리옹에게 점유율 48-52(%)로 밀렸고, 전반 18~33분 점유율에서는 44-56(%)의 열세를 나타냈습니다. 하지만 축구는 점유율이 아닌 골로 말하는 스포츠 입니다. 리옹은 전반 중반까지 경기 주도권에서 앞섰으나 레알 골문을 겨냥하는 킬러의 면모가 부족했고, 레알은 전반 28분까지 슈팅 6-3(유효 슈팅 3-1, 개)의 우세를 점하면서 골을 해결지어야 할 시점을 계산했습니다. 리옹에게 골을 허용하면 원정 다득점 트러블에 걸리기 때문에 경기 초반부터 무리하게 공격을 시도할 이유가 없었죠. 이른 시간에 선제골을 넣는 것도 좋지만, 그보다는 오버 페이스를 조심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사실, 레알의 전반 중반까지 공격력은 시원스럽지 못했습니다. 호날두-벤제마-디 마리아가 리옹 박스쪽에서 연계 플레이를 시도하며 골 기회를 노렸지만 여러차례 패스가 끊기는 문제점을 나타냈습니다. 세 선수의 전반 28분까지 평균 패스 정확도는 58%에 불과했죠. 벤제마가 크리스를 제치지 못했고, 호날두-디 마리아가 리옹 선수들의 집중 견제를 받았습니다. 특히 리옹은 후방 압박 및 포어 체킹에 무게감을 두면서, 공격 전환시 역습보다는 점유율 강화에 주력했습니다. 그래서 리옹의 중앙 공간이 밀집된 양상이 두드러졌죠. 레알 입장에서는 외질을 활용한 공격 루트를 그리기 어려워졌고, 좌우 측면의 크로스로 공략하기에는 벤제마가 문전에서 상대 수비수들에게 둘러쌓인 것이 걸림돌 이었습니다.
[사진=리옹전 승리의 주역, 마르셀루 (C) realmadrid.com]
그래서 레알은 마르셀루의 오버래핑에 승부수를 띄웠습니다. 리옹 선수들 대부분이 수비쪽으로 내려가면서 레알 공격 옵션을 향한 커버링을 강화했던 상대팀 경기 흐름을 마르셀루가 풀어낼 필요가 있었죠. 마르셀루는 전반 37분 왼쪽 측면에서 호날두와 2대1 패스를 주고 받는 과정에서 리옹 박스쪽으로 침투하여 왼발로 골을 뽑아내는 재치를 발휘했습니다. 특히 돌파 과정에서는 브리앙-툴라랑-크리스 같은 리옹 선수들이 악착같이 따라붙는 견제가 느슨했습니다. 경기 내내 호날두-벤제마-디 마리아에게 압박의 초점을 모으면서 마르셀루의 오버래핑을 제어하지 못했죠. 마르셀루의 과감한 결단이 레알에 커다란 도움이 됐습니다.
마르셀루의 진가는 그 이후에도 계속 됐습니다. 전반 40분 박스 왼쪽 구석까지 드리블 돌파를 시도하면서 중앙쪽으로 논스톱 패스를 띄운 것을 벤제마가 왼발 발리 슈팅을 시도했습니다. 1분 뒤에는 알론소가 마르셀루와 비슷한 상황을 시도하면서 벤제마에게 골 기회를 열어줬죠. 리옹의 오른쪽 수비 배후 공간이 완전히 뚤렸습니다. 마르셀루가 구르퀴프-툴라랑 사이의 옆 공간쪽으로 오버래핑 지점을 확보하고 볼을 터치하면서 전방쪽으로 오버래핑을 시도했던 공격 패턴이 레알에게 주효했습니다. 또한 마르셀루는 수비시 리옹의 오른쪽 윙 포워드를 맡았던 브리앙을 봉쇄하면서 상대의 반격 의지를 제어했습니다. 여기에 라모스까지 델가도를 막아내면서 리옹의 측면 공격이 완전히 막혔죠. 결국, 마르셀루의 견제에 시달렸던 브리앙은 후반 시작과 함께 질책성 교체 됐습니다.
레알이 후반전에 2골을 추가한 것은 리옹의 자멸을 이용했던 결과물입니다. 리옹이 경기 분위기를 뒤집지 못했던 문제점는 이렇습니다. 후반전을 시작하면서 브리앙을 빼고 고미를 교체 투입했으며, 리 산드로-고미-델가도로 짜인 스리톱으로 승부수를 띄웠습니다. 그럼에도 리 산드로-델가도는 라모스-마르셀루에게 막혔습니다. 리옹이 후방에서 빌드업 속도가 늦어지면서 리 산드로-델가도가 레알 박스쪽을 빠르게 휘저을 타이밍을 찾지 못했죠. 그래서 리옹은 지공에 의존하는 공격을 펼쳤지만 레알의 압박에 막혔습니다. 또한 칼스트롬-구르퀴프가 공격의 실마리를 풀지 못했습니다. 좌우 윙 포워드와 공격형 미드필더의 동선이 측면쪽에서 겹치면서 레알 수비에게 저지당하는 흐름이 여러차례 전개 됐습니다.
결국, 레알이 노린 것은 리옹의 수비 실책 이었습니다. 후반 21분 벤제마의 골은 마르셀루가 발판을 열어줬습니다. 레알 진영 왼쪽 측면에서 르베이에르가 잘못 연결한 종패스를 걷어내면서 왼발로 길게 로빙 패스를 띄웠던 것이 외질쪽에서 원바운드 되었고, 벤제마가 아크 왼쪽에서 오른발 인사이드 슈팅으로 골을 해결했습니다. 특히 벤제마는 최근에 물이 올랐던 득점력을 잃지 않고 골 생산에 집중했던 것이 레알 두번째 골의 원동력이 됐습니다. 전반 중반까지 크리스에게 막혔지만 그 이후 마르셀루가 리옹의 수비 밸런스를 무너뜨리면서 상대 골문에서 골 기회를 노리는 움직임이 많아졌죠. 찬스에 자신감을 얻은 면모는 그동안 레알에서 부진했던 행보와 대조적 이었습니다. 이과인이 부상에서 복귀하더라도 주전 경쟁에서 쉽게 밀릴 것 같지 않은 예감입니다.
후반 31분 디 마리아의 골 상황도 마찬가지 였습니다. 카시야스 골킥-외질의 헤딩 패스에 이어 디 마리아가 문전 쇄도 과정에서 추가골을 기록했습니다. 특히 카시야스의 골킥이 날라왔을 때 리옹 선수 어느 누구도 외질과 공중볼 경합을 펼치지 못했고, 볼 낙하 지점에서는 또 다른 선수가 미리 자리를 잡을 필요가 있었습니다. 리옹이 더 이상 공격의 물꼬를 트지 못하면서 경기를 포기한 것 처럼 시간을 보냈던 것이 레알에게 추가골 발판이 됐습니다. 반면 레알은 승리에 대한 집념을 놓치지 않았습니다. 경기 템포가 2-0 이후에 느슨할 수 있었지만, 또 다시 추가골을 넣으면서 승리에 고삐를 늦추지 않는 것이 중요했습니다. 레알이 챔피언스리그 토너먼트에서 강팀의 클래스를 되찾았음을 일깨우는 장면 이었죠. 상대 수비 실수도 있었지만 외질-디 마리아가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죠.
레알의 리옹전 승리가 의미있는 또 하나의 이유는 호날두에 의존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호날두가 올 시즌 레알에서 40경기 37골 9도움을 올렸지만 상대팀 입장에서는 경계 대상 1호 였습니다. 그래서 리옹은 호날두에 대한 집중 견제를 강화하며 실점을 허용하지 않으려 했습니다. 호날두는 패스 성공률 68%(23/34개)에 그치면서 동료 선수와의 연계 플레이가 침체되었고 박스 쪽을 비벼주는 움직임이 날카롭지 못했습니다. 그럼에도 레알이 승리했던 것은 승부를 결정지을 플랜B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호날두가 상대팀에게 집중 견제를 받으면 다른 동료 선수들이 그 흐름을 이용해서 전방쪽을 과감하게 공략했죠. 리옹전에서는 마르셀루가 그 역할을 담당했습니다. 레알은 리옹을 이길 자격이 충분했고 챔피언스리그 우승 가능성을 얻게 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