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팀 모두 승리가 절박했기 때문에 치열한 격전이 펼쳐질 가능성이 높았습니다. 하지만 뚜껑을 열어보니 어느 한 팀이 90분 동안 경기 흐름을 주도하며 마치 당연하듯 승리했습니다. 어려운 여건 속에서 승리를 쟁취하는 그들의 경기 운영에서 '강팀 클래스'가 묻어났습니다. 이른바 '쌍둥이 변칙 작전' 이었습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하 맨유)가 라이벌 아스널을 물리치고 첼시-리버풀전 연패의 늪에서 탈출했습니다. 맨유는 13일 오전 2시 15분(이하 한국시간) 올드 트래포드에서 진행된 2010/11시즌 잉글리시 FA컵 8강 아스널전에서 2-0으로 승리했습니다. 전반 29분 파비우 다 실바, 후반 5분 웨인 루니가 골을 터뜨리며 맨유의 4강 진출에 기여했습니다. 그런 맨유는 아스널을 상대로 최근 7경기 연속 무패(6승1무)를 기록하며 북런던 팀에 강한 면모를 나타냈습니다.
맨유 골키퍼 에드윈 판 데르 사르는 아스널전에서 무려 11개의 슈퍼 세이브를 기록하는 선방쇼를 펼치면서, 경기 종료 후 맨체스터 지역지 <맨체스터 이브닝뉴스>로 부터 평점 10점 만점을 기록했습니다. 아스널전에서는 안토니오 발렌시아가 6개월 만에 복귀전을 치렀으며 박지성은 결장했습니다.
파비우-하파엘, 맨유 윙어로서 아스널전 승리 이끌다
맨유는 아스널전에서 4-4-2로 나섰습니다. 판 데르 사르가 골키퍼, 에브라-비디치-스몰링-브라운이 수비수, 파비우-깁슨-오셰이-하파엘이 미드필더, 루니-에르난데스가 공격수로 나섰습니다. 박지성-나니-캐릭-플래쳐-안데르손이 부상으로 무더기 결장하면서, 풀백 3명(파비우-오셰이-하파엘)이 미드필더를 맡았습니다. 11명 중에 7명의 수비수가 그라운드에 투입됐죠. 반면 아스널은 4-2-3-1을 활용했습니다. 알무니아가 골키퍼, 깁스-코시엘니-주루-사냐가 수비수, 디아비-데니우손이 더블 볼란치, 아르샤빈-윌셔-나스리가 2선 미드필더, 판 페르시가 공격수로 뛰었습니다. 부상 당한 파브레가스의 결장 공백은 윌셔가 메웠습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맨유의 윙어를 맡은 선수들이 브라질 국적의 1990년생 쌍둥이 입니다. 파비우-하파엘이 좌우 윙어를 맡으며 박지성-나니 부상 공백을 메웠습니다. 당초 긱스-오베르탕 같은 또 다른 윙어들의 아스널전 선발 출전이 유력했지만, 퍼거슨 감독은 그동안 풀백으로서 공격 성향의 경기를 펼쳤던 파비우-하파엘을 미드필더로 올렸습니다. 중앙 미드필더로 출전했던 오셰이까지 포함하면, 맨유는 가용할 수 있는 풀백 자원들을 총동원 했습니다. 깁슨이 유망주 꼬리표를 떼지 못하는 선수였음을 상기하면, 올 시즌 맨유의 주축 미드필더로 뛰었던 선수들은 전원 선발 제외 됐습니다. 또한 퍼거슨 감독이 오베르탕을 신뢰하지 않음을 아스널전 선발 라인업을 통해 인지할 수 있죠.
파비우-하파엘 윙어 출전은 어느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맨유의 변칙 작전 입니다. 현지 언론이 판단하는 맨유-아스널전 예상 명단에서는 두 선수 보다는 긱스-오베르탕쪽에 무게감을 두었죠. 아스널도 다를 바 없을 것입니다. 퍼거슨 감독이 의도했던 것은, 맨유 전력을 분석하고 올드 트래포드에 입성했던 아스널 벤치에 혼란을 일으키겠다는 뜻입니다. 아스널은 파비우-하파엘의 공격력을 무너뜨릴 대비책을 준비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높죠. 또한 아스널은 지난 9일 FC 바르셀로나 원정에서 수비 축구를 했으나 1-3으로 패했던 만큼, 수비가 결코 완벽하다고 볼 수 없습니다. 맨유 입장에서는 공격 지향적인 성격이 다분한 두 명의 브라질 쌍둥이를 승부수로 띄울 명분을 모색했죠.
[사진=파비우 다 실바-하파엘 다 실바 (C) 유럽축구연맹 공식 홈페이지 프로필 사진(uefa.com)]
파비우-하파엘은 선제골 장면을 제외하면 연계 플레이의 세밀함이 떨어졌습니다. 맨유가 공격을 시작할 때 어느 지점에서 볼을 터치하는지 판단력에 문제를 드러내며 위치선정이 매끄럽지 못했죠. 윙어로서의 경험이 부족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일이며 퍼거슨 감독도 감안했을 것입니다. 정작 이들이 노렸던 것은 아스널 공수 밸런스 붕괴 입니다. 루니-에르난데스와 함께 패스 위주의 경기를 펼치기 보다는, 측면쪽을 침투하는 움직임을 펼치며 패스 위주의 공격 축구를 펼치는 아스널에게 수비 부담을 안깁니다. 수비쪽으로 내려와서 압박을 펼치다가 팀의 역습이 시작되면 전방으로 달려는 패턴으로 말입니다. 맨유 진영쪽에 무게 중심이 쏠렸던 아스널 선수들이 후방쪽을 의식하며 내려갈 수 밖에 없죠.
맨유가 지난 7번의 아스널전에서 무패를 달렸던 키워드는 '역습' 입니다. 아스널의 공세를 끊기 위해 3선의 폭을 좁히고 커버링을 강화하는 압박을 펼치면서 상대 선수들의 활동 반경을 앞쪽으로 유도했죠. 상대 공격을 끊는 즉시 역습을 가하여 골 기회를 노렸습니다. 이번 아스널전에서는 골 결정력 불안으로 역습 완성도가 떨어졌지만, 상대 선수들을 앞쪽으로 올리며 역습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한 것은 성공 입니다. 아스널 공격을 끊으면 루니쪽으로 볼을 띄우면서 역습을 노렸고, 파비우-하파엘이 빠른 스피드로 측면 및 상대 박스쪽을 휘저으며 루니와 함께 장단을 맞췄죠. 퍼거슨 감독이 긱스-오베르탕을 선발 출전 시키지 않은 것은 역습에 최적화 된 선수들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사실, 맨유 공격은 단조롭다는 느낌이 없지 않았습니다. 공격의 초점이 루니에게 모아졌기 때문입니다. 루니가 후방쪽에서 볼을 건너 받으면 드리블 돌파에 의한 역습을 펼치면서 전방에 있던 에르난데스에게 종패스를 띄웠습니다. 루니가 에르난데스의 골을 도와주는 체제였습니다. 깁슨-오셰이로 짜인 중앙 미드필더 조합이 패싱력에 장점이 있는 선수들이 아니기 때문에 수비 위주의 경기를 펼쳤고, 루니가 2선으로 내려와서 이들의 공격 부담을 덜어줬죠. 실질적으로 공격수보다는 플레이메이커 성향의 경기를 펼쳤습니다. 파비우-하파엘는 측면에서의 침투 동작으로 상대 수비가 루니쪽에 쏠리는 시선을 분산시키는 효과를 안겨줬습니다. 맨유 공격이 루니쪽으로 단조로워지는 약점을 커버했죠.
전반 28분 파비우 선제골은 완벽에 가까웠던 골 장면 입니다. 파비우가 하프라인쪽에서 드리블 돌파로 역습을 펼치면서 오른쪽에 달려들던 하파엘에게 대각선 패스를 밀어줬고, 하파엘은 중앙쪽에 있던 파비우에게 논스톱 패스를 밀어주면서 2대1 패스가 완성됐습니다. 그래서 파비우는 뒷쪽에 자리잡던 루니에게 백패스를 띄웠고, 에르난데스는 박스쪽에서 루니의 로빙패스를 헤딩 슈팅으로 받아냈으나 골키퍼 알무니아의 선방에 막힙니다. 그런데 파비우가 문전으로 달려들면서 오른발 리바운드 슈팅으로 골을 넣었습니다. 아스널 선수들이 앞쪽에 쏠리면서 수비가 덜 정돈된 것을 파비우-하파엘이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죠. 루니-에르난데스의 참여도 있었지만, 파비우의 과감함과 하파엘의 볼 처리는 아스널 수비가 막을 수 없었습니다.
후반 5분에는 루니가 추가골을 넣었지만, 골의 발판을 마련한 선수는 하파엘 이었습니다. 개인 드리블 돌파로 박스 오른쪽을 비집으면서 깁스의 마크를 단번에 뚫었고, 에르난데스에게 침투 패스를 띄운 것이 주루의 몸을 맞고 루니가 머리로 골을 터뜨렸습니다. 그런 하파엘은 후반 시작부터 18분 교체되기까지 4-2-3-1의 공격형 미드필더로 뛰었습니다. 아스널이 골을 넣기 위해 공격 지향적인 경기를 펼칠 가능성이 다분했던 만큼, 하파엘이 아스널 후방 빈 공간을 찾아다니며 또 다시 상대 밸런스를 물고 늘어졌습니다. 루니의 골 과정에서는 볼을 터치했을 때 근처에서 마크했던 선수가 없었죠. 그만큼 아스널 수비가 불안했습니다.
결국, 아스널은 맨유 역습에 이렇다할 대응을 하지 못하면서 공격 템포가 둔화되는 단점에 직면했습니다. 샤막-램지-로시츠키를 교체 투입하는 변화를 시도했지만 맨유 수비를 뚫기가 쉽지 않았고, 판 데르 사르의 신들린 선방을 막아낼 재간이 없었습니다. 퍼거슨 감독이 벵거 감독과의 지략 대결에서 승리한 순간 입니다. 팀을 실점 위기에서 구해냈던 판 데르 사르를 칭찬하지 않을 수 없겠지만, 아스널을 FA컵에서 탈락시킨 결정타는 쌍둥이 변칙 작전을 꼽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