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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토트넘, AC밀란 원정 승리는 '당연한 결과'

 

해리 래드냅 감독이 이끄는 토트넘(잉글랜드)이 AC밀란(이탈리아) 원정에서 승리하면서 8강 진출 가능성을 높였습니다. '에이스' 가레스 베일이 부상으로 결장했던 어려움 속에서도 다른 팀원들이 하나로 똘똘 뭉치면서 적지에서 의미있는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토트넘은 16일 오전 4시 45분(이하 한국시간) 이탈리아 산 시로에서 진행된 2010/11시즌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16강 1차전 AC밀란전에서 1-0으로 승리했습니다. 후반 35분 애런 레넌이 오른쪽 측면에서 AC밀란 수비진 사이를 뚫고 역습을 전개하는 과정에서 문전쪽으로 패스를 띄웠고, 피터 크라우치가 오른발 슈팅으로 상대 골망을 흔들며 팀에 귀중한 승리를 안겨줬습니다. 이로써, 토트넘은 다음달 10일 홈에서 열리는 2차전에서 최소 무승부를 기록하면 구단 역사상 최초로 8강 고지에 오릅니다.

'베일 결장' 토트넘, 경기 내용까지 AC밀란을 압도했다

토트넘은 AC밀란전에서 4-4-1-1로 나섰습니다. 고메스가 골키퍼, 야수 에코토-도슨-갈라스-촐루카가 수비수, 피에나르-산드루-팔라시오스-레넌이 미드필더, 판 데르 파르트가 쉐도우, 크라우치가 타겟맨을 맡았습니다. 베일은 등부상이 회복되지 않아 AC밀란 원정에 나서지 못했고, 2월초 맹장 수술을 받았던 모드리치는 후보 명단에 이름을 올렸습니다.(후반 16분 교체 투입) 정강이 부상에 시달렸던 판 데르 파르트는 선발 출전을 강행했죠. 이에 AC밀란은 토트넘전에서 4-3-1-2를 활용했습니다. 아비아티가 골키퍼, 안토니니-에페츠-네스타-아바테가 수비수, 플라미니-티아구 실바-가투소가 3선 미드필더, 시도르프가 공격형 미드필더, 즐라탄-호비뉴가 투톱 공격수를 맡았습니다.

두 팀은 경기 내내 과열된 공방전을 펼쳤습니다. 몸싸움 과정에서 손이나 팔꿈치를 쓰거나, 백태클을 서슴지 않으며 거친 태클을 가하거나, 말싸움을 하거나, 점프하는 선수를 양손으로 밀거나, 상대팀 선수와 신경전을 펼치면 밀치는 동작에 따른 보복 행위로 응수하는 접전의 연속 이었습니다. 주심이 그 분위기를 진정시켜야 하는데 판정이 매우 관대했습니다. 특히 후반 중반에 플라미니가 촐루카에게 양발 태클을 가한 것은 퇴장이 맞습니다. 양발 태클은 시도 차제가 퇴장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주심은 경고로 넘어갔죠. 특히 토트넘은 전반전에만 11개의 파울을 기록했습니다.(AC밀란 4개) 이것이 결국에는 AC밀란의 마인드 컨트롤이 무너지는 계기가 됐습니다.

특히 가투소가 문제였습니다. 후반 12분 토트넘 벤치쪽으로 다가가 오른손으로 상대팀 코치의 목을 졸랐고, 경기 종료 후에는 또 다시 토트넘 벤치쪽에서 상대팀 코치에게 박치기를 가하는 프로 선수 답지 못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경기 중에는 몇 차례 거친 파울 및 신경전을 펼쳤죠. AC밀란의 주장이라면 상대팀의 파울 세례 속에서도 선수들을 침착하게 다독이며 경기에 집중해야 하는데 오히려 팀 분위기를 스스로 저하 했습니다. 토트넘과의 허리 싸움에서 밀렸던 것도 문제였지만 경기력 분전에 노력했어야 할 에너지를 엉뚱한 곳에 허비했죠. AC밀란은 경기 스코어 및 내용, 그리고 매너에서도 패했습니다.

이러한 AC밀란의 자멸은 토트넘이 의도한대로 경기가 풀리는 계기가 됐습니다. 경기 초반부터 즐라탄의 높이를 견제하기 위해 거친 몸동작으로 방어했죠. 즐라탄이 AC밀란의 에이스이자 195cm의 높은 신장을 지녔기 때문에 상대팀 입장에서 기선을 제압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결국 즐라탄은 토트넘의 수비 공세를 이겨내는데 실패했고 4번의 슈팅 기회를 살리지 못했죠. 즐라탄의 침체는 호비뉴가 상대 수비에게 끌려다니는 연쇄적 부진으로 이어지면서 AC밀란이 공격의 돌파구를 찾는데 실패했습니다. 특히 도슨은 즐라탄-호비뉴를 상대로 거의 무결점에 가까운 수비력을 펼치면서 토트넘 승리를 공헌했죠. 결국, 토트넘이 전반전에 11개 파울을 기록한 것은 전략적 선택 이었으며 AC밀란이 그 기세에 말리고 말았습니다. 토트넘이 베일 없이 승리했던 이유 중에 하나죠.


[사진=AC밀란전 승리의 숨은 감초 역할을 톡톡히 해냈던 산드루 (C) 토트넘 공식 홈페이지 프로필 사진(tottenhamhotspur.com)]

그리고 토트넘은 경기 초반부터 주도권을 잡고 있었습니다. 미드필더진에서 강하게 압박을 펼치면서 AC밀란 허리를 장악했죠. 특히 산드루가 11.629Km(팀내 2위, 1위는 12.017km의 크라우치)를 뛰는 왕성한 움직임으로 맹렬히 압박을 펼치면서, AC밀란 미드필더들이 직선을 활용한 공격을 펼치는데 어려움을 겪게 됐습니다. 산드루는 모드리치를 대신해서 선발 출전했는데 수비쪽에서 기대 이상의 활약을 펼치면서 토트넘 전력에 플러스 알파를 안겨줬죠. 또한 팔라시오스도 산드루와 더불어 중원에서 상대 공격을 철저하게 차단하거나 길목을 사전에 봉쇄하면서 토트넘 수비진에 힘을 실어줬습니다. 토트넘 수비가 안정적인 페이스를 유지하면서 즐라탄-호비뉴를 꽁꽁 묶었던 것은 산드루-팔라시오스 조합의 숨은 공헌이 돋보였습니다.

물론 AC밀란의 플라미니(13.267Km)-가투소(11.793Km) 같은 미드필더들은 산드루보다 더 많이 뛰었습니다. 그리고 AC밀란은 10Km이상 뛴 선수가 토트넘보다 더 많습니다.(6명:2명) 토트넘의 강력한 압박을 뚫지 못하면서 기동력으로 승부수를 띄웠지만 상대 박스쪽을 공략하는데 실패했죠. 특히 시도르프의 부진이 AC밀란에게 치명타가 됐습니다. 팔라시오스에게 봉쇄당한 끝에 공격의 줄기를 잡지 못하면서, 4-3-1-2의 포메이션이 경기 상황에 따라 4-3-0-2을 보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부진했죠. 그래서 시도르프는 후반 시작과 함께 교체되고 말았습니다.

토트넘이 AC밀란전에서 승리한 또 하나의 이유는 레넌-크라우치의 공격력이 상대 수비를 압도했기 때문입니다. 토트넘 입장에서는 베일이 부상으로 결장했고 피에나르가 챔피언스리그 경험이 부족하기 때문에 레넌의 기동력을 믿을 수 밖에 없었죠. 또한 AC밀란은 좌우 풀백이 취약한 고질적 문제를 안고 있었습니다. 그런 레넌은 경기 초반부터 AC밀란 왼쪽 풀백 안토니니 뒷 공간을 파고드는데 성공하면서 상대 수비 밸런스를 무너뜨리는데 일조했습니다. 박스쪽에서는 크라우치가 201cm의 높은 신장을 이용한 공중전으로 AC밀란 수비진에 위협을 가했죠. 토트넘 선수들 중에서 가장 많은 이동거리를 나타낼 정도로 상대 수비진을 힘들게 했습니다. 그 결정타는 후반 35분 레넌-크라우치가 결승골을 합작하는 값진 장면으로 연출됐죠.

그런 토트넘에게 약점은 있었습니다. 크라우치 이외에는 AC밀란 박스쪽을 공략할 수 있는 공격수의 존재감이 부족했죠. 판 데르 파르트가 정강이 부상 여파를 이겨내지 못하고 부진했습니다. 토트넘이 박스 바깥과 안쪽 사이의 연계 플레이가 원활하지 못했던 이유죠. 그래서 크라우치의 머리를 노리는 롱볼 빈도가 즐비했습니다. 판 데르 파르트가 올 시즌 토트넘에서 맹활약을 펼쳤던 것은 분명하지만 AC밀란 원정에 선발 출전하기에는 몸이 무거웠습니다. 디포가 극심한 부진에 빠진 것이 토트넘 전력에 마이너스가 되고 말았죠. 앞으로 챔피언스리그에서 승승장구하려면 크라우치의 높이와 견줄 수 있는 또 다른 무기가 필요합니다.

그럼에도 토트넘은 AC밀란 원정에서 기대 이상의 경기를 펼쳤습니다. AC밀란이 2006/07시즌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달성했던 시절까지만 하더라도 산 시로는 '원정팀들의 무덤'으로 꼽혔습니다. 하지만 AC밀란은 지난 시즌 16강에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게 2-3으로 무너졌고 이번에는 토트넘에게 0-1로 패했죠. 토트넘의 승리가 의미있는 이유이며 그 과정을 놓고 보면 '당연한 결과' 였습니다. 그것도 베일 없이 이겼기 때문에 2차전을 준비하는 마음이 가벼울 것으로 보입니다. 어쩌면 올 시즌 챔피언스리그의 다크호스는 토트넘이 아닐까 싶은 생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