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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리버풀 3-4-2-1, '토레스 더비' 주인공 됐다

 

첼시와 리버풀의 라이벌전은 '토레스 더비'라는 별칭으로 많은 축구팬들의 주목을 끌었습니다. 불과 며칠전까지 리버풀의 간판 골잡이로 활약했던 페르난도 토레스가 5000만 파운드(약 897억원)의 이적료로 첼시에 이적했기 때문입니다. 토레스가 첼시 이적 후 처음으로 상대하는 팀은 다름 아닌 리버풀 이었습니다. 이 경기에서 가장 많은 관심과 시선을 받았던 인물은 토레스 였습니다. 하지만 결국에는 리버풀이 웃었습니다.

리버풀은 7일 오전 1시(이하 한국시간) 스탬포드 브릿지에서 진행된 2010/11시즌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 26라운드 첼시전에서 후반 24분 하울 메이렐레스의 결승골로 1-0 승리를 했습니다. 스티븐 제라드의 오른쪽 측면 크로스가 첼시 문전 정면에서 두 번이나 바운드 되었고, 근처에서 쇄도했던 메이렐레스가 왼발로 골을 밀어넣으면서 리버풀에게 승점 3점을 안겨줬습니다. 이로써, 리버풀은 첼시를 리그 4연승 제물로 삼으면서 11승5무10패(승점 38)로 6위에 올랐습니다. 4위 첼시(13승5무7패, 승점 44)와의 승점 차이를 9점에서 6점으로 좁히면서 빅4 재진입 가능성에 탄력을 얻었습니다.

[사진=리버풀의 첼시전 1-0 승리를 발표한 국제축구연맹(FIFA) 공식 홈페이지 메인 (C) fifa.com]

리버풀의 첼시전 승리 비결은 '토레스 봉쇄'

리버풀은 첼시전에서 3-4-2-1 포메이션을 구사했습니다. 레이나가 골키퍼, 아게르-스크르텔-캐러거가 수비수, 존슨-켈리가 좌우 윙백, 루카스-제라드가 수비형 미드필더, 막시-메이렐레스가 공격형 미드필더, 카위트가 원톱에 포진했습니다. 캐러거의 부상 복귀, 최근 두 경기 연속 3백을 구사한 것이 눈에 띱니다. 그리고 첼시는 리버풀전에서 미드필더진을 다이아몬드로 놓는 4-3-1-2를 활용했습니다. 체흐가 골키퍼, 애슐리 콜-테리-이바노비치-보싱와가 수비수, 램퍼드-미켈-에시엔이 3선 미드필더, 아넬카가 공격형 미드필더, 드록바-토레스가 투톱을 맡았습니다. 리버풀이 3백으로 변형했다면 첼시는 토레스 선발 기용에 의해 4-3-3에서 4-3-1-2로 전환했습니다.

우선, 효리사랑은 며칠 전 리버풀 3백이 첼시전을 겨냥한 '맞춤형 전술'이라고 언급했습니다. 결국 그 말이 맞았습니다. 리버풀은 지난 3일 스토크 시티전에서 3백으로 바뀌면서 기존에 나타났던 스크르텔-켈리의 수비 실수를 커버 플레이 강화로 만회했죠. 토레스가 상대 수비 뒷 공간을 빠른 스피드로 두드리는 성향임을 감안할 때, 리버풀이 기존의 포백으로 첼시와 상대하기에는 토레스에게 뚫릴 가능성이 다분했습니다. 그래서 달글리시 감독 대행은 스토크 시티전에서 3백을 실험했는데 그 결과가 긍정적으로 나타나면서 첼시 원정에 대한 자신감을 키우게 됐죠. 결과는 1-0 승리였으며 토레스는 부진했습니다.

리버풀의 첼시전 승리 원인은 '토레스 봉쇄' 였습니다. 토레스를 빈틈없이 견제하느냐에 따라 첼시 원정에서의 희비가 엇갈리기 때문입니다. 물론 첼시는 투톱과 스리톱을 활용하는 팀이지만 토레스가 최전방 공격수로 나올 것은 확실했습니다. 토레스는 쉐도우-측면에서 활동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리버풀은 3백의 공격 가담을 자제하면서 토레스에게 뒷 공간을 내주지 않기 위해 커버 플레이에 힘을 쏟았습니다. 토레스가 공을 잡으면 2~3명의 선수가 밀착 마크를 하면서 공격을 저지하는 장면이 여럿 노출할 정도로 리버풀 수비가 견고했습니다.

그런 리버풀의 토레스 봉쇄는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수비수-미드필더 사이의 간격을 좁히면서 토레스쪽으로 향하는 패스 길목을 차단하는데 바빴습니다. 미드필더들이 적극적인 수비 가담을 펼치면서 수비수들의 활동 범위가 좁아졌습니다. 드록바-토레스, 아넬카-토레스 사이의 패스가 활발하지 못했던 것도 이 때문 입니다. 전반 30분에는 드록바가 루카스를 상대로 커팅했던 볼을 토레스가 받으면서 슈팅을 시도했으나 캐러거에게 차단 당했습니다. 그 장면 이외에는 드록바-아넬카가 토레스의 골 기회를 활용하는 패스가 연출되지 못했죠. 토레스가 65분 동안 패스 13개(성공 9개)에 그친 것은 리버풀 3백에게 발이 묵였음을 뜻합니다.

또한 리버풀은 첼시 특유의 빠른 템포 공격을 제어하기 위해 미드필더들의 수비 가담을 늘렸습니다. 막스-메이렐레스 같은 공격형 미드필더들도 후방 옵션들과 압박을 펼치는 장면이 잦았죠. 첼시 선수들이 반격할 수 있는 공간을 내주지 않기 위해 수비진을 두세겹씩 구축하면서 선 수비-후 역습 전술을 유지했죠. 그래서 전반전에는 공격쪽에서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지 않았고, 경기 내내 수비에 중점을 두면서 첼시의 공격을 차단하면 종패스로 상대 수비 사이를 파고드는 볼 배급을 즐겼습니다. 드리블 돌파 및 전방 쇄도를 아끼겠다는 차원이었죠. 이것은 첼시가 토레스의 골을 노리는 패턴을 저해하면서 기선 제압을 하려는 의도가 있었습니다. 결국, 토레스는 리버풀 수비를 상대로 힘을 쓰지 못하면서 후반 20분 교체 됐습니다.

리버풀의 토레스 봉쇄가 의미있는 이유는 축구가 팀 스포츠라는 것을 일깨웠기 때문입니다. '팀보다 위대한 선수는 없다'는 축구의 격언처럼, 리버풀 선수들은 서로가 똘똘 뭉쳐 토레스를 막아낸 것을 비롯해서 90분 동안 첼시의 공세에 흔들림 없이 대응 했습니다. 특히 막시-메이렐레스-제라드-루카스는 톱니바퀴처럼 서로 위치를 바꾸고 커버 플레이를 펼치면서 팀 전력의 응집력이 커졌습니다. 그 사이에 '지지 않으려는' 근성이 살아나면서 수비 라인의 분발을 유도했고, 공격에서는 첼시 진영쪽에서 종패스가 성공하도록 연계 플레이에 주력하는 모습을 나타냈습니다. 중요한 것은, 캐롤-수아레스 같은 이적생 없이도 '토레스가 속했던' 첼시를 제압했습니다. 팀 전술의 승리였죠.

그리고 리버풀의 3-4-2-1 에서는 제라드의 공격력이 으뜸 이었습니다. 미드필더 숫자가 많아지면서 구성원끼리의 동선이 겹칠 우려를 제라드가 말끔히 풀었죠. 경기 상황에 따라 곡선 또는 직선 형태로 움직임을 늘리면서 동료 선수들과 쉴새없이 패스를 주고 받았습니다. 특히 첼시 중원 뒷 공간을 흔드는 패스들이 여럿 있죠. 그 과정에서 리버풀 공격의 템포를 조절하거나, 루카스가 경기 초반에 의기소침했던 아쉬움을 자신의 역량으로 극복했습니다. 리버풀이 수비 위주의 경기를 펼쳤음에도 흐름 상에서 첼시를 압도했던 결정타는 제라드 공격력이 아닐까 싶습니다.

반면 첼시의 다이아몬드 시스템은 실패로 끝났습니다. 아넬카를 공격형 미드필더로 내렸던 시도는 좋았지만, 토레스가 리버풀 3백에 막혔고 드록바까지 힘을 못쓰면서 아넬카 공격력이 꽃을 피우지 못하는 연쇄적인 문제점이 나타났죠. 특히 토레스가 일방적으로 봉쇄당한 것이 첼시 전력에 리스크로 이어졌습니다. 그리고 램퍼드-미켈-에시엔쪽에서 전방 쪽으로 찔러주는 킬러 패스 시도가 적었습니다. 리버풀 미드필더들에게 수적 열세로 밀렸고 그들의 압박을 패스로 분산시키는 작업이 더뎠기 때문입니다. 볼 점유율은 리버풀보다 더 높았지만(57-43%) 정확히는 리버풀이 첼시에게 점유율을 내주고 경기에 임했죠.

특히 첼시는 미켈 부진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됐습니다. 중앙 미드필더로서 팀 공격을 조율하거나, 공수 밸런스를 잡아주거나, 쉴새없이 패스를 연결하면서 전방 옵션들을 뒷받침하는 '포스'가 시즌 초반보다 더 가라 앉았습니다. 공수 양면에 걸친 모든 활약이 불안합니다. 기존에는 에시엔이 그 역할에 강했지만 지금은 오른쪽 인사이드 미드필더로 뛰고 있습니다. 첼시 미드필더 선수층이 얇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미켈의 문제가 최근들어 부각되고 있습니다. 후반 25분에 교체 된 것은 첼시 벤치가 자신의 부진을 읽었다는 뜻입니다. 첼시가 리버풀전 패배를 추스리기 위해서는 토레스를 팀 전술에 적응시키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미드필더 문제도 돌아봐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