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의 귀환'은 없었지만 앞날의 밝은 희망과 미래를 꿈꿀 수 있었던 대회였습니다. 4강 일본전 승부차기의 고비를 넘지 못했지만, 태극 전사들이 마지막 순간까지 '아시아의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했던 것은 박수 받아야 마땅합니다. 비록 아시안컵 우승에 실패했지만 얻고 깨달은 것은 분명히 있었습니다. 앞날의 대표팀 행보 및 2014년 월드컵 선전을 위한 과제가 있었지만 충분히 이겨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아시안컵에서 3위를 확정지은 한국이 깨달은 10가지 교훈을 언급하고자 합니다.
1. 아시안컵, K리그의 승리였다
한국의 아시안컵 우승 도전은 실패로 끝났지만 K리그는 승리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아시안컵에서 한국의 공격을 짊어졌던 지동원(전남) 구자철(제주), 대표팀의 뉴 페이스로 떠오른 이용래(수원), '이란전 영웅' 윤빛가람(경남)은 K리그에서 활약중인 선수들입니다. 그동안 박지성을 비롯한 해외파 선수들의 비중이 높았음을 상기하면 대표팀 내에서 K리그의 비중이 높아졌습니다. 또한 해외파 선수들 중에는 K리그 출신들이 즐비합니다. 그리고 호주와 우즈베키스탄의 결승 또는 4강 진출을 이끈 사샤(성남) 제파로프(서울)도 K리그 소속입니다. 누군가는 K리그가 재미없다, 2류 혹은 3류 리그라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한국 축구가 발전하려면 K리그를 향한 많은 사람들의 긍정적인 관심과 성원이 필요합니다. K리그 발전이 곧 대표팀의 저력과 비례 합니다.
2. 한국 공격의 새로운 키워드, 지구라인(지동원-구자철)
리버풀하면 떠오르는 것은 '제토라인(제라드-토레스)' 입니다. 두 명의 핵심 주자들이 리버풀 공격을 짊어지며 리버풀팬들의 사랑을 받으면서 제토라인이라는 수식어가 완성됐습니다. 그리고 한국 대표팀이 박지성 의존도를 이겨낼 수 있었던 것은 '지구라인(지동원-구자철)'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지동원과 구자철은 한국이 아시안컵에서 기록했던 13골 중에 9골을 책임졌습니다. 특히 구자철은 5골을 터뜨리며 아시안컵 득점왕 등극이 유력합니다. 4골을 터뜨린 지동원은 대형 공격수로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습니다. 2012년 런던 올림픽에서도 한국의 공격을 짊어질 전망입니다. 그리고 지구라인의 또 다른 별명은 '지구특공대'가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지구라인이 더 좋지만 축구팬들은 어떤 별명을 더 선호할까요?
3. 한편으로는 영건 혹사가 걱정된다
일각에서는 구자철 약점을 체력 저하로 꼽습니다. 후반 중반에 교체되는 경우가 빈번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구자철은 광저우 아시안게임 및 K리그 챔피언십을 치른지 얼마되지 않아 대표팀에 소집됐습니다. K리그 챔피언십에서도 부상을 참고 뛰었습니다. 휴식이 부족했기 때문에 지칠 수 밖에 없었죠. 문제는 구자철을 비롯한 영건들이 빠듯한 일정에 직면했습니다. 각급 대표팀 및 소속팀 일정 때문에 혹사 위기에 몰려있는 현실입니다. 특히 지동원-손흥민은 청소년-올림픽-국가 대표팀에 모두 포함될 수 있는 선수들입니다. 과거 고종수-이동국-최성국-박주영 등의 전례를 밟지 않으려면 대표팀 차출에 대한 '교통정리'가 불가피합니다. 대한축구협회의 현명한 판단을 기대합니다.
4. 대표팀 주전 공격수, 더 이상 박주영의 자리가 아니다
한국의 아시안컵 최대 고민은 박주영 무릎 부상 공백 이었습니다. 박주영이 그동안 대표팀의 주전 공격수로 활약했고, 아시아 제패를 노리는데 충분한 경험이 있는 선수임을 감안할 때 그 존재감이 아쉬웠습니다. 하지만 박주영 공백은 아시안컵에서 없었습니다. 큰 틀에서 말입니다.(세부적으로 있었다는 생각이 들지만, 추후 언급하겠습니다.) 지동원을 제로톱으로 활용하는 공격 전술의 변화가 적중했죠. 또한 지동원은 4골을 터뜨리며 득점력에서도 검증을 받았습니다. 최근 부상에서 회복한 박주영이 대표팀에서 복귀하면 지동원과의 경쟁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또는 2선 미드필더로 뛸 수도 있겠죠. 대표팀 주전 공격수는 더 이상 박주영의 자리가 아닙니다.
5. 이청용을 자극할 경쟁자가 필요
이청용이 아시안컵에서 끝까지 최선을 다한 것은 분명합니다. 우리는 이청용이 대회 이전까지 체력 저하에 시달렸던 선수라는 것을 되새길 필요가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들이 생각했던 이청용의 파괴력은 기대보다 힘이 실리지 않았습니다. 이타적인 활약은 돋보였지만 박지성처럼 상대 수비 좁은 공간을 꾸준히 흔들어주거나, 또는 구자철처럼 골 기회를 노렸어야 했습니다. 특히 8강 이란전, 4강 일본전에서의 부진이 아쉬웠습니다. 이청용이 대표팀에서 전력의 핵으로 떠오르기 위해서는 자신의 존재감을 자극할 수 있는 경쟁자가 필요하다는 생각입니다. 허정무호 시절의 김형범-김재성처럼 말입니다. 대표팀에서 두드러지게 발전할 수 있는 이청용을 기대합니다.
6. 혼다 봉쇄법을 확실히 익혔다
굳이 허정무호와 조광래호를 비교하겠다는 마음은 없지만, 앞으로 일본전에서 혼다를 봉쇄하려면 허정무호의 전략이 필요하다는 것이 아시안컵을 통해 드러났습니다. 혼다는 상대의 밀착 견제를 받거나 좁은 공간에 포진하면 공격력에 힘이 실리지 않는 단점이 있습니다. 허정무호가 지난해 5월 25일 일본전에서 김정우를 혼다 봉쇄맨으로 활용하면서 미드필더진의 협력 수비를 강화한 것은 2-0 승리의 원동력이 됐습니다. 하지만 조광래호는 지난해 10월 12일, 그리고 지난 25일 일본전에서 미드필더진에 공간이 열리는 단점을 노출하며 혼다의 맹활약을 도와주는 꼴이 됐습니다. 김정우가 두 경기에서 결장했던 원인도 있지만, 미드필더진의 강력한 압박이 일본전에서 필요한 것은 분명합니다.
7. 포어 리베로, 아시안컵에서 성공했다
포어 리베로는 축구팬들이 아시안컵 이전까지 우려했던 존재였습니다. 한국이 3백을 구사할 때는 스위퍼 역할을 하면서, 4백으로 전환할 때는 수비형 미드필더로서 경기 흐름을 조절하는 역할이 포어 리베로 입니다. 조광래 감독이 한국의 수비 불안을 극복하기 위해 포어 리베로를 도입했지만 지난해 10월 12일 일본전에서 조용형이 기복 있는 활약을 펼쳤죠. 하지만 16강 이란전, 8강 이란전에서는 각각 기성용-홍정호가 포어 리베로 역할을 성공적으로 소화했습니다. 기성용은 이란의 활동 반경을 전방쪽으로 끌어올리면서 상대 압박 의지를 무너뜨렸고, 홍정호는 후방에서 경기를 조율하면서 일본에게 밀렸던 경기 흐름을 한국쪽으로 가져오는데 성공했습니다. 수비 안정에 어느 정도 기여했다는 평가입니다.
8. 한국의 수비 불안, 여전히 해결해야 할 과제
그럼에도 한국의 수비 불안은 전혀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일본전 페널티킥 오심까지 포함하면, 센터백들이 아시안컵에서 4번의 페널티킥을 허용했고 모두 상대팀의 골로 이어졌습니다. 곽태휘가 2번, 황재원이 2번 이었습니다. 그리고 이정수는 3~4위전 우즈베키스탄과의 후반전에서 집중력이 떨어지는 문제점을 남기면서 상대 만회골의 빌미를 제공했습니다. 아무리 포어 리베로가 성공하더라도 센터백들이 도와주지 않으면 한국은 수비 불안을 극복할 수 없습니다. 특히 곽태휘-황재원은 K리그에서 상대 공격 옵션들을 무리하게 손을 쓰는 습관이 대표팀에서 계속됐습니다.(곽태휘는 2009년까지 전남 소속) 젊은 센터백 발굴도 필요하지만, K리그가 손을 쓰는 동작에 관대한 판정을 내렸던 것이 아닌지 곰곰이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9. 앞날을 위한 플랜B가 필요하다
조광래 감독은 아시안컵에서 우승을 이끌지 못했지만, 제로톱 및 패스 게임을 통해 지략가로서의 면모를 발휘한 것은 긍정적입니다. 2014년 브라질 월드컵에서 한국의 성적을 짊어질 감독으로서 손색 없다는 생각입니다. 또한 박지성을 선수 보호 차원에서 우즈베키스탄전에 투입하지 않았던 결단은 적절했습니다. 하지만 인도전에서 이정수를 제외한 최정예 멤버들을 기용한 것은 조광래 감독의 실수였다고 봅니다. 토너먼트에서 선수들의 체력 저하가 두드러졌기 때문이죠. 8강에서 이란을 피하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으나, 한국의 토너먼트 진출은 기정 사실이나 다름 없었습니다. 어떤 측면에서는 대표팀의 플랜B가 없었던 것이 아닌가 싶은 생각입니다. 플랜B가 뚜렷해야 한국이 상대 전략에 읽히지 않을 수 있습니다.
10. 박지성-이영표, 은퇴 경기 마련해주자
지금까지 정황상, 박지성의 대표팀 은퇴는 사실상 확정적입니다. 아직 은퇴 기자회견을 하지 않았고 선별적 조건(중요한 A매치에서 대표팀 합류)을 받아들일 가능성도 없지 않지만, 조광래 감독은 우즈베키스탄전 종료 후 박지성-이영표의 은퇴가 아쉽다는 발언을 했습니다. 이영표는 대표팀 은퇴를 선언했습니다. 하지만 박지성-이영표의 대표팀 마지막 모습은 좀 더 성대한 곳에서 치러졌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한국의 아시안컵 결승 진출이 실패하면서, 그들의 은퇴 경기가 필요함을 깨달았습니다. 2002년 11월 20일 브라질전을 마치고 대표팀을 떠난 황선홍-홍명보처럼, 국내 축구팬들의 뜨거운 함성을 받으며 마지막 A매치를 즐기도록 말입니다. 그들의 대표팀 마지막 경기가 모든 사람들의 가슴에 잊지 못할 장면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